계 3:21

조회 수 780 추천 수 0 2023.02.24 07:38:4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0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우리말 성경의 번역이 매끄럽지 않네요. <새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이기는 사람은, 내가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이, 나와 함께 내 보좌에 앉게 하여 주겠다.” 이긴다는 표현이 두 번 나옵니다. 십자가 운명을 본다면 예수께서는 이긴 자가 아닙니다. 그가 처형당한 십자가 옆을 지나던 이들은 모두 예수를 가련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누구도 십자가에 처형당한 이를 이긴 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라는 사실에 근거해서 요한은 그를 이긴 자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도 우리가 너무 자주 들어서 감동적으로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교회 전통이 부활을 말하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일 뿐입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에서 부활의 의미를 조금 더 새롭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기는) 그 사람을 내 보좌에 앉게 하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보좌는 세상 임금이 앉는 자리가 아닙니다. 세상의 방식으로 아무도 그 자리를 약속받을 수 없습니다. 그 보좌의 주인만이 우리에게 그 보좌를 약속할 수 있습니다. 그 보좌는 영원한 생명이 담보된 자리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곧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품으로 안기는 것을 보좌에 앉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 보좌에 앉으려면 하나님의 품이, 또는 하나님의 통치가,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와 그 완성이,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고 느껴야겠지요. 비유적으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이 가리키는 음악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려면 그것을 알고 느낄 줄 알아야 하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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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23.02.24 10:24:05

공동번역 [3:21 승리하는 자는 마치 내가 승리한 후에 내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옥좌에 앉은 것같이 나와 함께 내 옥좌에 앉게 하여 주겠다.]


새번역[ 3:21 이기는 사람은, 내가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이, 나와 함께 내 보좌에 앉게 하여 주겠다.]


2천년전 라오디게니아교회가 처한 극한 상황에서 복음의 존패가 달려 있기에 책망과 독려가 중요하겠지요.
초대 일곱교회는 전쟁에 나가는 병사들이기에 승리가 더 절실 하고요.

그래서 그점은 동의가 갑니다.

이기는 것은 좋은데, 

현재 제가 처한 상황에서 모든 것들을 승리주의로 판단 하는 것이 옳은지 다르게 반문합니다.

지는 것에 늘 익숙한 저에게는 승리의 단어가 어색합니다.

교회의 승리 열광주의는 더 거북 스럽고요.

지금의 세계사에서 극과 극으로 몰고가는 승리주의에 더욱 매몰되는 것은 답답합니다.
때론 지는것도 좋다고 이야기 할 수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중심이 어디 있느냐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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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02.24 20:07:42

ㅎㅎ 요한이 말하는 '이긴다'는 말은 승리주의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새하늘 님이 언급한 '지는 삶'을 가리킵니다.

십자가 죽음이 어떻게 일반적인 의미의 승리주의이겠어요.

[레벨:23]브니엘남

2023.02.25 08:11:25

이기는

1. 세상을 이기는: 이 세상의 풍조를 이기는(요일 5:4)

2. 교회의 하락을 이기는(계 2~3장): 맘몬에 물든 교회의 하락을 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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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최용우

2023.02.27 11:00:34

"자리"
절에서는 1년에 여름과, 겨울에 '안거'를 하는데, 시작하는 처음 1주일 동안은 아예 한 숨도 자지 않고 좌선만 하는 초인적 용맹정진(勇猛精進)합니다. 오늘날 한국의 선원에서 가장 엄격히 지키고 있는 제도인데, 55분 동안 눈을 감고 좌선하고 앉아있다가 죽비소리에 일어나 5분동안 뼈가 굳지 말라고 방안을 서너바퀴 돌고 다시 앉습니다.그것을 7일동안 합니다. 하루 네번 죽을 주는데 그것도 10분동안 후루룩 마십니다. 당연히 화장실도 못갑니다. 정진을 시작하기 전에 몸을 비웁니다. 하루에도 몇명씩 픽픽 쓰러져 행자들이 들고 나가면 '탈락'입니다. 
그렇게 1주일동안 용맹정진을 성공적으로 견디어  낸 사람은 끝난 뒤에 "자리"가 바뀝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40일금식을 몇번 했다는 것을 이력에 붙이듯이.
스님들은 '용맹정진'을 몇번 했다는 말이 마치 이력처럼 붙습니다.

저는 청년때 하루 24시간 계속 기도하는 것에 도전했다가 정신을 잃은 경험이 있습니다.

"이기는 자"란 "견딘 자'라는 말과 같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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