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 1월22일(화)

조회 수 4094 추천 수 0 2013.01.22 22:47:02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문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을 가리킬까? 하나님과 영광은 하나다. 하나님은 어떤 실체로가 아니라 영광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뜻이다.

     출애굽기에 따르면 모세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수여받았다. 이 사건이 유대교의 출발이자, 뼈대다. 모세는 하나님께 ‘당신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하나님은 모세가 죽을까 염려해서 당신 자신의 영광을 보여줄 수 없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못보고 등만 보았다고 한다. 하나님을 본 자는 죽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 자체다. 그것은 궁극적인 생명이다. 세계 전체이며, 시간 전체다. 그 영광은 고대인들에게 태양처럼 절대적인 능력이었다. 태양을 직접 바라보면 눈이 먼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하나님을 직접 경험할 수 없다.

     예수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는 말은 예수의 운명에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생명 사건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예수의 부활에서 경험했다. 그러나 그 부활마저 우리는 직접 대면할 수 없다. 그것을 본 자는 죽는다. 종말까지 우리는 그 생명을 변증해나가야 할 것이다.


[레벨:5]블루군

2013.01.23 01:27:46

궁금한게 있습니다.

출애굽 전승에서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하자,

바위틈으로 뒷모습만 보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1. 모세는 얼굴은 아니지만 뒷모습을 보았다는 것이고 즉 하나님의 영광을 일부 보았지만 죽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즉 무한하신 하나님을 겪었음에도 살았다는 점입니다. 설마 무한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고, 등을 보면 살고 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만약 이것은 인정한다면 하나님을 제한시키게 됩니다.무한의 끝자락도 무한이니까요) 모세는 왜 무한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고도 죽지 않았을까요? 


2. 가장 본질적으로 우리는 전승의 주제에 집중해야 하는데 여기서 전승의 주제는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보통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전승의 내용이 쓰여진다고 보면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는 진술이 가지는 진실성은 얼마나 될까요? 후대에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표현하기 위해 삽입된 전승일텐데 그 구절의 곁가지만을 떼어내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라는 얘기를 잘 듣고서는 머리에 옛날에는 호랑이가 담배를 핀 것이 사실이라고 인식하는 건데요. 결국 위의 구절을 근거로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요절주의가 아닐까요? 제가 잘 몰라서인지 성경의 다른 곳에서 위의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내용을 찾아보지 못한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요한복음 1장 18절인데 여기서는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하네요. 여기서는 모세의 뒷모습을 본 사건은 무시되는 것 같습니다.


또 생각해 볼 것은

명시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오시는 소리를 듣고 숨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돌려 말하면 그들도 하나님을 보았다는 이야기인데요. 이것이 아담으로 제시되는 인간의 죄(하나님에게서의 멀어짐)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렵네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3.01.23 17: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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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블루군 님,

마지막에 '어렵네요.' 했군요.

나도 어려워서 답하기가...

1. 모세는 하나님을 직접 경험한 게 아니라 간접적으로 경험해서 죽지 않은 겁니다.

얼굴은 직접적인 것을, 등은 간접적인 것을 가리키지요.

2. 하나님을 본자는 죽는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많지 않아도

그걸 의미하는 구절은 제법 됩니다.

호렙산 전승에서 영광, 얼굴, 등에 대한 이야기는 사족이 아니라

십계명 수여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십계명이라는 언어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그 사건이 말해주니까요.

3. 하나님 소리를 듣는다거나 천사를 보았다는 표현은

어떤 절대적인 경험을 했다는 뜻이에요.

생명의 신비, 거룩한 두려움, 절대타자 등등이요.

어렵지요?

[레벨:5]블루군

2013.01.23 18:19:09

목사님 답변 감사합니다.


실은 전 최근까지도 축자영감에 의한 무오류설을 신봉했었습니다.

그 전에도 신정통주의 관련 책들은 읽었었지만요.


하지만 도저히 풀리지 않는 오류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고민하다가 그걸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신앙관의 정체성을 다시 잡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현대신학자들의 내용을 읽어보면서 (제가 개혁주의 신학 위주로 보아와선지)

어느 구절에 대한 해설들은 논리적 비약이 있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구원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것만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절대 타자를 강조하기 위해서 강조되는 구절들이 조금 다르더라구요.


예를들어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전승의 주가 되는 요소인 원죄론과 또 대속과 관련된 사항등등이 

결국 절대타자에 대한 강조에서 인식차이가 생기더라구요.

위의 신을 보면 죽는다도 절대타자에 대한 강조로 사용되었지만 아직까지 전 다른 구절에서 지지하는 내용을 본 적이 없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느낀 사건 자체는 무척 중요한 주제입니다만 그 속에서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는 내용은 그 시대의 신에 대한 인식일 뿐 진리적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판넨베르크의 베드로전서의 죽음 후 구원관계에 대한 구절 해석이나

(대체적으로 제가 느끼기에) 주로 전천년설의 입장에서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것이나..

(요한계시록을 역사비평적으로 보면 묵시록의 형식을 지닌 그 시대의 박해받는 성도들에게 대한 권면의 내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자연히 무천년설로 갈 수 밖에 없고 그게 개혁주의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 지는데, 다비아에서는 그런 인상을 못 받았습니다. )


앞으로 관련 내용들이 나올 때마다 귀찮게 질문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칼빈주의와 신정통주의 사이에서 신앙관을 확립하려니 힘드네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3.01.23 23:15:17

예, 질문은 제가 아는 범위 안으로 가급적 해주세요. ㅎㅎ

칼빈주의인 개혁주의와 신정통주의는 같은 흐름이니

그 사이에 서지 말고 동일한 토대로 삼는 게 좋을 겁니다.

아마 한국에서 알려진 개혁신학은

원래의 개혁신학이라기보다는

미국 쪽의 근본주의에 가깝지요.

칼빈신학은 바르트 신학과 다르지 않거든요.

블루군 님에게서 신학적인 역동성을 느끼게 되니

보기에 정말 좋습니다.

힘든 만큼의 결실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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