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3)
당신 취미생활은 무어요, 하고 물으면 나는 대뜸 테니스라고 답한다. 얼마 전에도 후배 목사가 내게 전화해서 하는 말이 다음 주 월요일에 신학대학교 동문 테니스 대회가 있으니 함께 참가하자고 했다.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요즘 한 주일의 내 일정이 빡빡하게 돌아가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개최 장소가 서울이었다. 이른 아침 출발해서 시합에 참가하고, 또 밤늦게 돌아와야 할 텐데, 투자 대비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게 더 많을 것 같아서 미련을 거두었다.
내가 테니스 라켓을 손에 잡은 지는 햇수로 36년이 되었다. 1979년 10월부터 시작했다. 신학생 시절부터 테니스를 시작한 친구들도 있긴 했지만, 나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기회를 못 잡았다. 신학생 때는 주로 탁구, 그리고 배구와 축구 등을 했다. 테니스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유는 1980년 봄 군목 입대와 연관된다. 선배들 말로 군목활동을 하려면 테니스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천호동에 살면서 동네 사설 테니스장에 나가서 레슨을 받지도 않고 무조건 벽치기를 시작했다. 돌아보니 무식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레슨을 받지 않고 테니스를 배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때 왜 레슨을 받지 않으려고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테니스장에서 그런 안내를 받지 못해 레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조차 몰랐는지, 아니면 레슨비용이 부담이 되었는지, 또는 레슨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지 그렇게 벽치기만 몇 달 하다가 1980년 3월에 군목으로 입대하면서 테니스를 칠 줄 아는 사람으로 자처했다. 8사단 예하 연대에서 2년, 57후송 병원에서 1년, 이렇게 3년을 테니스와 함께 군목 생활을 하다가 제대했다. 당시가 1980년 대 초다. 벌써 삼십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
저희부대는 현역도 이런저런 핑계로 주말에 시내에나가서 목욕탕도가고 피시방도 가고 그랬는데 ...
갓 이등병시절 고참이 교회랑 피시방 중에 고르라그래서 순교자적 마인드로 교회를 택했습니다 ..
근데 재미난건 그 힘든 이등병 일병 시절은 그 갈굼이 있어도 열심히 교회나갔는데 .. 일병 꺽인 시점부터 안나가기 시작해 말년에는 교회는 돌아보지도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 ㅎㅎ
한가지 기억에 남는건 대대군종병이었는데...
교회가면 혼자 앞에서 기타하나들고 찬양했는데 .. 돌이켜보니 그렇게 아름답게 노래하는 사람은 이제껏 본적이 없네요 ... 그 특별한 거 없는 기타 스트록이 얼마나 사람 심금을 울리던지 .. 그 빠알갛게 물든 콧망울과 감동어린 미소가 10년도 지난 지금 아침출근길이 감동스럽네요 ..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분들에게서 존재를 경험한 건 아니였던가 생각해봅니다 ..
53사단 128연대 2대대 숭실대 컴공 다녔던 군종을 찾습니다 ㅋㅋㅋ 뭐 나를 기억도 못하겠지만 ㅋㅋ
우와 목사님
그 당시 제가 그 병원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혹시 기억하세요.
한의사로서 사병으로 근무했던 병사를
그리고 제가 잠시 군종병을 했습니다.
그때 군종병이 제대 말이라서
장신대 졸업한 "이.."이었는데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그리고 후임으로 온 군종병도 신학교 출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 근무하던 간호 장교들 중에 기억나시는 분 계세요.
혹시 고인숙 중위.
그리고 제 후배 한의사인데 이충원 중위.
저는 여기서 여러 분을 만났습니다.
저는 거기서 잠시 군종병으로 있다, 2동 상층의 신경 외과에 근무하다,
그러다 2군수 사령부에 일병 때 한의사로 파견나갔습니다.
우와~ 8사단에서 군 생활을 하셨네요.
저는 8사단 10연대에서 복무 했습니다.
연대에서 생활한 탓에 위병소로 내려 가면 바로 교회였습니다.
군대가면 고참들이 교회 못가게 한다고 해서 좀 걱정했었는데
예상외로 자유롭게 다녔던 것 같습니다.
성가대도 하고 그랬으니까요.
예배 마치고 성가대 연습한답시고
사제밥에 사제라면 먹는 재미로 열심히 다녔던것 같네요.^^;
그 때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