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

조회 수 1472 추천 수 0 2015.08.24 21:15:10

824

<이다>

  

<이다>는 2차세계대전 중 갓난아이였을 때 한 수녀원에 맡겨져 자란 유대계 한 수녀에 관한 이야기다. 이 수녀의 이름이 이다. 이 수녀원은 폴란드의 한 지역에 있는 갈멜 수녀원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서원한 사람은 부모가 세상을 뜨는 경우 외에는 평생 수녀원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이다가 서원식을 하기 전에 원장 수녀는 단 하나 남은 혈육인 이모를 한번 만나보라고 조언한다. 서원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됐는지를 확인하려는 절차로 보인다. 이모는 무슨 이유에선지 조카를 한번도 만나러 오지 않았었다.

이다는 이모를 만나 그제야 자신이 유대 여자이며, 부모는 폴란드 어느 지역에서 나치의 유대인 증오 광풍에 휩쓸려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수녀복을 입은 채로 이모와 함께 부모를 살해한 사람을 찾아 나선다. 이다의 어머니가 살해당할 때의 나이가 지금 이다 나이쯤이 아니었을지. 살해자의 정보를 이모가 웬만큼 알고 있어서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다. 살해자는 놀랍게도 한 동네에서 살던 아주 평범한 이웃 주민이었다. 이다는 부모의 뼈를 유대인 공동묘지로 이장하고, 수녀원에 돌아간다.

이다는 고민 끝에 서원식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마리아 상(?), 또는 예수 상 앞에서 자기는 아직 준비 되지 못했다고 기도한다. 부모 살해자를 찾아다니다가 만난 한 남자, 매력적으로 생긴데다가 앨토 색소폰을 부는 한 남자에게 마음이 흔들린 까닭인지 모른다. 그 사이에 이모가 자살한다. 이모 장례식에 갔다가 며칠 머물면서 담배와 술도 맛보고, 높은 굽의 구두도 신어보고, 급기야 색소폰 부는 남자와 하룻밤 지낸다. 남자는 이다에게 결혼해달라고 한다. 이다는 묻는다. 결혼해서 뭐하는 데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아기 낳고 고양이도 키우면서 재미있게 사는 거지. 다음날 새벽에 이다는 남자에게 말도 없이 집을 나와 씩씩하게 수녀원으로 돌아간다. 그게 끝이다. 아마 다음 서원식에 참여하지 않았겠는가.

이다는 왜 매력적인 그 남자의 청혼을 거절하고 수녀원으로 돌아갔을까? 감독은 직접 답을 주지 않는다. 정답은 없을 것이다. 관객들이 각각 알아서 판단할 뿐이다. 나도 관객의 입장에서 한 마디 한다면 이렇다. 모든 평범한 삶에 숙명처럼 끼어드는 악을 그녀가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는지. 유대계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이미 말한 악의 평범성이 그것이다. 이다의 부모를 잔인하게 죽이고 집을 빼앗은 사람은 평범한 이웃이었다. 잘 지내던 이웃이 유럽에 몰아친 반유대 광기에 휩싸여 마치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 죽이듯이 이다의 부모를 죽인 것이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단초도 시기심이었다. 이런 일은 오늘 우리의 자리에서도 일어난다. 어찌할 것인가? 수녀원으로 들어갈 것인가, 투쟁할 것인가. 각자가 선택해야 한다.

동구권의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적고, 배우들의 내면 연기가 강조되고, 동구의 공산 체제가 가져온 현상인지 모르겠지만 담배 피는 씬이 많다. 이 영화도 그렇다. 그리고 흑백이다. 잔잔하나 울림이 큰 영화다.


profile

[레벨:24]또다른세계

2015.08.25 09:06:35

매일묵상에 '이다'라고 적혀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 영화를 즐겨보시는 분이 아니신데 어떤 경로로 '이다'를

보게 되셨을까 궁금하기도 했구요.

시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간결했던 흑백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영화가 끝날 때쯤 과연 주인공은 어떻게 삶을 인식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모호하기도 했는데... 목사님은 이렇게 보셨군요.

조만간 시간이 되면 다시 한 번 보고 제 생각도 올려보겠습니다.

주의 평화 가득한 하루 되시구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5.08.25 17:48:30

예,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컴으로 영화를 봅니다.

대구샘터교회에서 한달 여 전에 특강을 할 때

미야자키 이야기를 하면서

기회가 되면 그의 다른 작품도 봐야겠다고 말했더니

고 아무개 양(대입준비생으로 영화 전공 희망)이

자기에게 전집이 있으니 빌려주겠다 해서

'오케이' 해서 받았어요.

하는 말이 다른 영화 파일도 있으니

한번 보라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어디선가 이름을 들은 작품을 중심으로 보고 있어요.

모르긴 해도 영화가 150편 이상 들어 있는 거 같애요.

<이다>에 대한 또다른 님의 생각이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영화는 거의 안 보는 처지였다가

이번에 몰아쳐 보면서 많은 걸 배웁니다.

정성일 영화 평론가의 책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처럼

우리의 삶 자체가 어느 누구 가릴 거 없이

영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3788 <심야식당> [2] 2015-09-10 1847
3787 나팔꽃, 송충이 외 file [6] 2015-09-09 2789
3786 야고보와 바울 2015-09-08 1407
3785 성경과 신학논쟁 2015-09-07 1233
3784 율법과 죄, 그리고 은총 2015-09-05 1651
3783 하나님 경험과 언어의 한계 [2] 2015-09-04 1292
3782 모세의 말과 하나님의 말 2015-09-03 1295
3781 모세 오경 이야기 2015-09-02 1468
3780 원초적 피조물로서의 자리 [2] 2015-09-01 1212
3779 십계명 [2] 2015-08-31 1279
3778 산만한 영혼 2015-08-29 1269
3777 양자택일 2015-08-28 1446
3776 스클레로스 2015-08-27 1470
3775 썩을 양식 2015-08-26 1636
3774 요한복음 6장 [5] 2015-08-25 4878
» <이다> [2] 2015-08-24 1472
3772 '취함'에 대해 2015-08-23 1654
3771 성경과 일상 [2] 2015-08-21 1576
3770 <코쿠리코 언덕에서> file [5] 2015-08-20 3782
3769 조장 file [7] 2015-08-19 2185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