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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2011년 4월20일, 저녁 8시, 시편 128편
복 있는 자!
요즘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가 인류 구원의 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절기이다. 이 고난은 시편기자들도 자주 말하는 주제다. 탄원의 내용이 그것을 말한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함이니이다.”(시 109:22) 시편은 고난이 아닌 복도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은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복을 감사해야 한다는 말인지. 128편은 복을 말한다. 그 복이 무엇인가?
1절: 경외와 구도
복의 조건을 두 가지로 말한다. 하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의 길을 걷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은 여호와를 높이고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이게 쉽지 않다. 그 여호와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경외할 수는 없다. 겉으로는 여호와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우상을 따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경외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삶, 즉 생명을 계량화하고 도구화하는 데 익숙한 태도로는 경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그의 길’을 간다는 것은 경외의 삶을 구도적으로 추구한다는 뜻이다. 경외와 구도의 태도로 사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은 이것 자체가 이미 복이라는 뜻이다.
2-4절: 복된 삶의 내용
시편기자는 2-4절에서 복 있는 사람의 삶을 노래한다. 그게 예상 외로 평범하다. 2절은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고 한다. 크게 출세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들은 실망할 것이다. 고대인들은 손이 수고한 것, 즉 노동의 대가를 그대로 받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재해, 전쟁, 세금 등으로 일상이 위태로웠다. 3절은 아내와 자식들이 복된 삶이라고 말한다. 이것도 평범한 일상에 속한다.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는 고대 유대인들에게 실제 삶이나 종교적인 차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삶의 중요한 근거였다. 시편기자는 여호와의 복을 이런 일상에서 찾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자리에 올라서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삶 자체가 복의 자리다. 사람들은 이런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일상을 여호와 신앙과 연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적인 준비가 없으면 일상은 상투성으로 떨어진다. 어떻게 이런 데서 벗어날 것인가? 1절이 말하고 있듯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길을 구도적으로 걸어야 한다.
5,6절: 축복 기원
시편기자는 마지막 단락에서 축복을 기원한다. 일종의 축복기도다. 여기서는 복이 국가의 차원으로 연결된다. ‘예루살렘의 번영’이 복이다. 자식의 자식을 보는 것도 역시 이스라엘의 평강 때문이다. 이런 표현을 단순히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시편기자의 관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복이라는 사실에 있다. 평화롭고 정의로운 일상을 가능하게 하려면 어쩔 수 없이 공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필요하다. 국가는 노동의 대가가 바르게 주어지고 가정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정의와 평화를 책임진 기구일 뿐이지 자기 자신을 목적으로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복 있는 자’는 일상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