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2011년 4월27일, 저녁 8시, 시편 129편

여호와의 의로우심

 

우리가 시편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놀라게 되는 것은 시편기자들이 모든 삶의 과정을 여호와와의 관계에서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사람들이 주로 일상에서 자기를 확인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여호와의 본질을 깨닫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신앙과 삶이 분리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마치 시인이 언어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듯이 영성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한 하나의 길이 시편기자와 같은 영적인 대가들의 글을 깊이 있게 읽는 것이다.

 

1-4절: 여호와의 의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129편은 125편과 동일한 주제의 시편이다. ‘제의 의식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저작된 이스라엘 계약 공동체의 의식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로 말하면 예배 중에 함께 암송하는 사도신경과 비슷하다. 이스라엘은 역사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결국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들을 특별한 방식으로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일정한 형식의 고백문으로 작성한 것이다. 1-3절 사이에는 이방이 그들을 괴롭혔다는 사실이 거론된다. 이런 표현들은 대표적으로 애굽과 바벨론 시절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이 시편이 어떤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고난을 탄원의 방식으로 거론하지 않는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거론한 것뿐이다.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의롭다고 말한다. 이것이 시편기자의 독특한 영성이다. 여호와의 의는 ‘악인들의 줄’을 끊으신다. 거꾸로 악인들의 줄을 끊으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이시고, 그의 행위는 의롭다. 이런 구절을 이해하기가 까다롭다. 어떻게 보면 여호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생각에 불과하다. 이런 이기적인 생각은 다른 민족에게도 있었다. 전쟁하는 나라들이 각각 자기 신을 의롭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스라엘에게도 그런 생각이 있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의를 말하면서 자신들이 의롭게 살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실제적으로 얼마나 의롭게 살았는지는 둘째 치고 그런 방향을 잡았다는 것만은 인정해야 한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의이고, 그와 일치를 통해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으며, 더 나가서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5-8절: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

1-4절에 나오는 악인들과 5-8절에 나오는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다르다. 전자는 유대와 완전히 대립하는 이방인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킨다.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930년에 시작해서 앗시리아에 의해 722년 멸망당할 때까지 210년 동안 지금의 남북한처럼 남유대와 다퉜다. 시편기자는 물론 남유대의 입장에서 북이스라엘을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수치를 당하고, 지붕의 풀과 같고,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여호와의 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다른 구약문서도 그렇지만 시편 역시 어떤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런 부분들을 인정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호와가 의롭다는 사실에 집중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