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의 죄론에서 창조와 인간본성에 대한
종교 개혁자들의 긍정적 평가와는 달리,
물질에 대한 그리스적인 부정적 가치판단과
비극적 세계관이 남아 있군요.
어거스틴은 죄가 정신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것을 알고 있었고,
죄의 종교적 성격을 명백하게 보여준 점이 중요하네요.
죄는 도덕적 실패도 아니고 불복종도 아니며
이것은 죄의 결과이며,
원인은 신이 우리를 통해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랑으로서의 신에게서 돌아서는 것이라는군요.
최고선에서 돌아선 결과는 최고선의 상실이며,
신의 상실은 존재의 힘의 상실을 의미하는군요.
혼이 죽는다면 그 혼은 몸을 지배하는 힘을 잃는것이고
죄의 결과는 한없는 욕망이라고 하네요.
아담에게서 끝없는 리비도가 성생활의 일부가 되어
유전에 의해서 모든 자손에게 전해지게 되었다고 하지만
죄의 정신적 성격을 원죄의 개념에다 결부시키는데
어려움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는군요.
다음 강의 은총론을 기대해야 겠네요.
죄에 대한 한가지 치유법, 신에게로 돌아가는것인데
실존의 조건 아래서는 상실되어 있다고 하니까요.
어거스틴의 죄론에서 창조와 인간본성에 대한
종교 개혁자들의 긍정적 평가와는 달리,
물질에 대한 그리스적인 부정적 가치판단과
비극적 세계관이 남아 있군요.
어거스틴은 죄가 정신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것을 알고 있었고,
죄의 종교적 성격을 명백하게 보여준 점이 중요하네요.
죄는 도덕적 실패도 아니고 불복종도 아니며
이것은 죄의 결과이며,
원인은 신이 우리를 통해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랑으로서의 신에게서 돌아서는 것이라는군요.
최고선에서 돌아선 결과는 최고선의 상실이며,
신의 상실은 존재의 힘의 상실을 의미하는군요.
혼이 죽는다면 그 혼은 몸을 지배하는 힘을 잃는것이고
죄의 결과는 한없는 욕망이라고 하네요.
아담에게서 끝없는 리비도가 성생활의 일부가 되어
유전에 의해서 모든 자손에게 전해지게 되었다고 하지만
죄의 정신적 성격을 원죄의 개념에다 결부시키는데
어려움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는군요.
다음 강의 은총론을 기대해야 겠네요.
죄에 대한 한가지 치유법, 신에게로 돌아가는것인데
실존의 조건 아래서는 상실되어 있다고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