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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질문 하나 올리겠습니다. 강호제현님들의 좋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요즘 주로 보고 있는 쪽은 1,2세기의 정경에 들지 못한 문서등에 대해서 간략하게 보고 있습니다. 점점 퍼즐이 맞춰져 가는 느낌이랄까요? 예수 부활이후 초대교회의 그림이 점점 그려져 가는데요, 다소 실망스러웠던 점은 기독교가 초기에는 로마제국내에서 별다른 영향력이 없는 집단이었다는 것과 근친상간이나 문란한 성윤리를 가지고 있고 로마제국에 비 협조적인 그런 집단으로 매도되었다는 건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독교가 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공인되고 나중 국교화되었는지가 궁금합니다. 황제가 기독교 세력을 등에 업고 제국을 다스리기에는 너무 힘이 없는 세력이고, 꿈에 십자가가 나타나서 내전을 이기고 공인했다고 하기에도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또한 기독교 공인 이후에는 여전히 이교 종교행사에 참석하는 등 기독교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고 보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습니다.
권력의 손익계산상으로도 답이 안 나오고 또한 신앙의 관점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데 왜 콘스탄티누스는 이런 상당한 반발과 위험이 동반되는 기독교 공인이란 일을 했을까요? 일반적으로 신학계에서는 콘스탄티누스 기독교 공인의 원동력이나 원인을 뭐라고 말씀들 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부디 무지몽매한 저를 깨우쳐 주소서.
2013.07.10 23:30:27
ㅎㅎ 육바금지 님이 제기한 질문들은
고대교회사 전공 신학석사 학위 논문 주제로 보입니다.
아직 확정되지 않고 여전히 논란이 된다는 뜻이에요.
당시 기독교 세력은 정치가들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컸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먼저 기독교 세력을 손에 넣은 거겠지요.
거기서 신앙이 어떤 작용을 했는지를 잘 모르겠네요.
그는 거의 죽을 때가 되어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데,
확실한지는 잘 모르겠네요.
보통 기독교 신학의 역사를 콘스탄티누스 전과 후로 구분합니다.
포스트 콘스탄티누스 기독교는 바약적인 발전을 하지요.
그게 기독교의 입장에서 잘 된 건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여하튼 그런 역사로 흘러나오고 말았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시는군요.
고대교회사 전공 신학석사 학위 논문 주제로 보입니다.
아직 확정되지 않고 여전히 논란이 된다는 뜻이에요.
당시 기독교 세력은 정치가들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컸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먼저 기독교 세력을 손에 넣은 거겠지요.
거기서 신앙이 어떤 작용을 했는지를 잘 모르겠네요.
그는 거의 죽을 때가 되어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데,
확실한지는 잘 모르겠네요.
보통 기독교 신학의 역사를 콘스탄티누스 전과 후로 구분합니다.
포스트 콘스탄티누스 기독교는 바약적인 발전을 하지요.
그게 기독교의 입장에서 잘 된 건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여하튼 그런 역사로 흘러나오고 말았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시는군요.
기독교를 이용(?)하려던 것은 당시 권력층의 비슷한 발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밀라노 칙령이 발표되던 시절은 4두정치(정황제2명, 부제2명)와 연결이 되는데,
서방정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 외에도 동방정황제 리키니우스의 이름이 밀라노 칙령에 함께 나온다고 합니다.
또 밀라노 칙령 발표 이전에도 전대(?) 동방정황제인 갈레리우스가 기독교 탄압 중단령을 내린적이 있다고 합니다.
역사학자들은 기독교 공인으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시회인식이 문화나 관습적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소X교회나 여XX XXX교회로 사회인사들이 대거 몰려든 것과 비슷한 모양입니다.
일종의 시너지 현상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