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님 말씀 중에서,
진정으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사람은
세계와 소통하면서 세계 내에 자기 자신을 위치시키며 살아가기 때문에
세계를 상실할 가능성이 없다는 말씀은 틸리히의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다만, 틸리히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용기'를 규정하는 것과
님께서 말씀하신 '진정으로 자기 자신으로 존재..'는 그 함의가 다른 것 같습니다.
틸리히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용기를 서구 철학의 흐름,
그러니까 플라톤부터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자연주의를 거쳐
실존주의에 이르기까지의 서구 개인주의의 형성을 따라 규정합니다.
여기에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용기는
'개체적 자아가 자기의 세계에 대한 참여를 고려하지 않고
개체적 자아로서의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자아 긍정'으로 규정되거나,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자아란..' '자기의 세계에 대한 참여로부터 떨어져 나온 자아..'로서
'텅 빈 조개 껍질과 같은 것', '단순한 가능성에 불과한 것'으로 설명됩니다.
실제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존재의 구조를 긍정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데,(이 대목에서 틸리히와 님의 말씀이 연관되는군요.)
서구 개인주의 형성 과정에서 '세계의 구조로부터 떨어져 나온 자기 긍정'은
결국 나치나 공산주의 같은 '신집단주의로 변형'되고 말았다는 것이 틸리히의 설명입니다.
제가 틸리히 신학을 아는 것도 아니고,
서구 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것도 아니어서,
전반적인 설명을 할 수는 없고,
존재의 용기를 읽은 대로만 말씀드렸습니다.
대구샘터교회 교우들 중에서 여러 분들이
지금 틸리히의 바로 이 책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분들 중의 한 분이 도움의 말씀을 주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너무 오래 전에 저 책을 읽어서
세세한 부분은 다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