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구원이라는 것

조회 수 818 추천 수 1 2018.04.16 15: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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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라는 것.

 

얼마 전에 아내랑 선우예권의 피아노 연주회를 보러 갔더랬습니다. 북미 최고 권위를 가진다는 2017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라고 하더군요. 저는 음악에는 문외한이긴 하지만 참 잘친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저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악보를 머리에 다 넣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눈을 감고, 몸을 흔들면서 온몸으로 음악의 세계를 느끼면서 연주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1위 했을 때의 소감이 걸작입니다. “내 손가락이 연주를 했고, 나는 단지 그것을 감상했을 뿐이다.”

연주회가 끝나고 와이프에게 어땠는지 물어봤습니다. 아내는 음악 전공자라서 저보다는 음악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깊을 거니까요.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고 좋았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그런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거냐고 물어보니까, 음악은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더군요. 마음으로 들으니 연주자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더라고, 그게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와서 곰곰히 와이프의 말을 듣다가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아서, 생각이 정리되는 데로 이렇게 글을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정확히 책 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이어령 씨의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이 납니다. 이어령 씨는 따님을 먼저 보낸 아픔이 있으신 분이죠. ‘자식이 아무리 아파도, 엄마 아빠를 부르짖더라도, 부모가 대신 아파줄 수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대신 그 고통을 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얇은 살갗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실존이라고.

저도 어린 딸이 아플 때 더군다나 제가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 감정이 메마른 사람임에도 눈에서 눈물이 나더군요.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가 그런 내용이죠.

 


성탄제(聖誕祭)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늘한 옷자락에
()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자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시가 전해주는 마음을 절절히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아픈 아이를 위해 눈밭을 뒤지던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아팠던 아이는 이제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아버지를 그리워하지만 이제 아버지를 볼 수는 없습니다.

사르트르라는 사람이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했다지요. 타인이 내 주체성을 훼손시킬 때도 그렇지만, 내가 스스로 타인이 되고자 하더라도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입니다.

그런데, 예술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순간이나마 극복이 되나 봅니다. 선우예권의 피아노 선율을 느끼면서, 성탄제 시를 읽으며 잠시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고, 그 순간만큼은 자기자신을 잊어버리고 너와 나의 경계는 허물어집니다. 어쩌면 그것이 구원의 한 모습이 아닐런지요.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상에서, "아버지, 이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것은 도덕적 우월감이나 그들을 비꼬면서 정죄하는 말씀은 아닐 겁니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그 고통가운데서 그들의 마음의 완악함까지도 느끼시면서도 그들과 같은 입장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신 것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종말에 가서야 의 구별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 땅 가운데서도 때때로 그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천국을 이 땅에서도 먼저 느끼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나누며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8.04.16 21:47:18
*.182.156.130

예, 저도 복서 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이루실 절대적인 생명 세계인 천국을

지금 여기서 맛보면서 살고 싶습니다.

재미 있게 잘 읽었습니다.

profile

[레벨:29]최용우

2018.04.20 12:30:37
*.62.42.226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료해주는 의사도...아프죠.

사실 오늘 병원 진료예약했었는데... 의사가 병가를 냈다고

병원에서 먼저 예약을 파기하였습니다.

이후에 도래할 영의 세계에서는 너와 나가 없다고 하니

그 세계가 기다려집니다.

[레벨:17]홍새로

2018.05.15 23:34:17
*.151.83.22

연주자가 음악의 세계에 푹 빠진 모습을 보시고
그 감동은 어떻게 하면 느낄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생겨났군요.
그래서 음악 전공자인 아내를 통해
음악은 마음으로 들어야 연주자의 마음이
전달된다는 답을 들을수 있었네요.
부모자식 사이라도 본질적으로는
타인일수 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에서
예술가들이 순간이나마 타인의 마음을 느낄때
타자의 경계를 허물수 있는것을 보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신거네요.
그렇군요. 타인의 마음을 느낄때 지금 여기에
시작되는 하나님나라를 경험할수 있게 되는것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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