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assic Style
- Zine Style
- Gallery Style
- Studio Style
- Blog Style
그럼에도 샘터교회식구 모두 안녕하시지요?
오늘은 저의 삶에 관한 얘기를 조금 해보려합니다.
한 때 저는 조용필의 ‘내가 지금 사는 이유는 21C가 간절히 나를 원하기 때문이다’라는 노랫말에 기대어 오만하게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20대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모든 것이 만만하고 시시해 보였습니다.
공부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다가 필요 없으면 집어치우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군대에 갈 때도 일반군대는 시시콜콜하여 특전사를 지원해 근 5년을 머물렀습니다.
낙하산에서 중간에 추락하여 기적적으로 살아난 경험을 비롯하여 구타를 당해 기절하기도 하고, 하여튼 체력이 특출 나지 않았던 저로서는 입에 단내를 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대 때 받은 퇴직금은 군 선배에게 빌려줬다가 못받았습니다.
왜그런지 제대 후 군대얘기는 거의 하지 않게 되더군요.
그런 고생 후에 속이 깊어진 듯하나 내면의 오만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직장생활 1년 후, 기업가로서의 꿈을 꾸며 줄곧 사업을 했는데 30대 초반에 보기 좋게 고꾸라졌습니다.
사기와 부도에 집도 날리고 2살, 3살 된 두 아이를 데리고 처가로 들어가 1년간 살기도 했습니다.
처가에서는, 어려운 살림에 피아노를 전공시킨 딸의 덕은 못 볼지언정 이게 무슨 꼴인가 하는 눈총도 받아봤습니다.
해서 부모님 본가에 들어갔는데 채권자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와 집안의 가재도구를 경매에 붙이더군요.
설마 했는데 몇 주후 사람들이 들이닥쳐 흥정하더니 후다닥 트럭에 물건을 모두 싫어갔습니다.
가스렌지와 그릇만 남겨놓고.
4살 된 큰 아이가 왜 우리 것 다 가져가느냐고 울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비로소 아들 형편을 알게 된 어머니도 화병으로 1달을 누우셨습니다.
그때는 교회에 다니지 않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한강대교에 걸터앉아 긴 밤을 지세다 새벽녘 집으로 걸어가던 길에 상도동 집 부근의 교회에서 울려나오는 찬송소리를 듣고 예배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가 본 예배당이었는데 마침 새벽기도를 하고 있더군요.
아무 생각 없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선반에 내려놨습니다.
그리고 중얼거렸습니다.
‘이제부터 즐기던 술과 담배를 끊겠습니다. 그러니 내 짐 좀 덜어주십시오.’
그 뒤로는 술,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담배 끊는 것을 힘들어하던데 고맙게도 저는 담배생각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곤 모든 일이 잘 풀렸습니다. 빚도 다 갚고 다시 일어선 것이지요.
신앙생활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숨어있던 교만이 또 치고 올라오더군요.
(사실 저의 교만은 지독한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과의 싸움은 너무도 처절한 것이었기에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고백하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30대 중후반쯤 되어 보기 좋게 또 수렁에 빠졌습니다.
정말 깊고 깊은 웅덩이였습니다.
처음부터 지속했던 실내건축업에 주택재개발시행사업, 프랜차이즈 유통사업 등등으로 확장하던 중 헤어나기 힘든 실패를 하게 된 것이지요.
내면의 욕심은 식을 줄을 모르더군요.
사업을 하는 사람, 특히 건축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재개발 시행사업은 욕심이 나는 사업이거든요.
자기자본이 좀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대형 건설사들을 오라 가라 하기도하고, 성공했을 때 보이는 돈 보따리 등등.
용산의 크지 않은 땅에서도 개발이익이 4조원이라지요. 시행사, 건설사, 지주가 나눠가지는 수익입니다. 그중 1%만 세입자에게 돌렸어도 그런 참사는 생기지 않았을 텐데, .......
저 역시 그런 욕심에 빠져 사업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 수렁이 얼마나 깊은지 한참을 벗어나려 발버둥치다 30대를 마감했습니다.
돈, 체면, 인격, 관계, 비전, 의지,......
모든 것이 시궁창 속이었습니다.
어둡고 고독했습니다.
참으로 벼랑 끝이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쥐어져 있던 주먹을 비로소 폈습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걸 깨닫고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아니 그 포기조차도 그냥 그렇게 되어졌습니다.
신음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입을 다물고, 눈을 감고, 귀를 막아야 했습니다.
변명할 것이 없고, 판단할 것이 없고, 거스를 것이 없는 그길로 내팽개쳐 졌습니다.
그런 가운데 40대를 맞이했습니다.
.....................
그 후, 몇 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마음속에 잔잔함과 고요함의 싹이 트는 듯하군요.
저의 실패는 분명 필연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합니다.
교만해서 실패했다는 말씀은 아니죠?
실패하고 보니 교만했다는 느낌이 든 거죠?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에서
박승수님 삶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
다만 ‘교만’이라는 어휘가 사용되는 점이 아쉽습니다.
삶을 진단/처방하는 데 도움이 안 되는, 나쁜 도구죠.
자신에게 들이대든 남에게 들이대든,,
부언하자면, ‘겸손하게 노력했더니 성공했다.’는 식의 얘기는
원인과 결과를, 개인의 노력과 연결 짓는 데서 오는 한계로 인해,
일면 옳고 일면 그른 것에 그치지 않고,
복잡하게 얽힌 세상에서, 합리적인 인식과 실천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동할 뿐이지요. ㅋㅋ^^
이전엔, 교만하면 실패하고 겸손하면 성공하는 줄 알았어요.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지도 무른체 말이지요.
그것은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성공과 실패를 삶의 지평에서 내려놓고 살기로 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그 열심을 추동하는 그 무엇인가를 내 안에서 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행인것은,
그 교만의 모가지를 부여잡고 있는 더 큰 손을 보았다고 할까요?
이제는 그 손을 의지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제 삶의 결과를 실패냐 선공이냐가 아닌
필연으로, 감사로 여겼던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많은 교우님들의 살아 온
간증(?)이 대세가 되고 있네요~^^*
지나온 삶을 나누고
속내를 밝히고
수치를 드러내고
그랬더니
비로소 가까워 진다는
그런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나는 바보 입니다
승수 님!
부인마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나는 잡초 같은 인생이래요
천상은 기억에 없었고
일상 아니 평균 이하에서
무저갱으로 떨어 지는 삶
오르내리기를 수차례
탈진을 겨우 넘긴 실오라기 인생
그런데 참 신비로운 체험을 합니다
그 분이 오셨어요~ㅎ
모든 것을 초월 할 수 있을 듯한
용기가 생기게 됩니다
밭에 숨기워진 보화를 본거지요
승수님의 글에
동감을 하면서
좋은 글 감사~^^*
다시 일어섰어요?
특전사 출신이라니
정말 의외군요.
교만은 아무리 노력해도 줄어들 뿐이지 없어지지 않을 거에요.
오죽했으면 어거스틴 같은 사람은
원죄를 가리켜 '휘브리스'(교만)이라고 했겠어요.
주님, 우리의 교만을 다스려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