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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 꼭 이런글을 써야하는지 고민을 한다.
교회의 운영에 있어서 자꾸 소통에 장애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문다는 것이 싫다.
조금 늦게 가는 방식으로 상대의 동의를 구하며 움직여 갈 수는 없을까?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는 하지만 수순에 맞추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에 스케즐대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정관작업...
그 전에 필요하다는 집사제도...
정해진것은 없다고 했지만 정말일까하는 의문은 항상 보여왔다.
결국 꽉 막힌 막다른 길에 도달 할 듯한 느낌이다.
자동차는 전진 기어 만으로는 운전을 할 수 없다.
엑설레이터 기능 만으로 운전하는 것 역시 아니다.
브레이크도 있어야 하지만 후진 기어 역시 작동을 잘 하고 있는지 항상 정검을 하여야 한다.
일단 진행을 할테니 3개월만 말없이 믿어달라고 했다.
그 이후에 뒤돌아 나와야하는 순간이 된다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몇번의 시행착오를 격었으면서도 늘 똑같은 패턴의 일들이 진행된다.
운전면허증이 있고 주행능력이 있다고해도
안전하다고하는 것이 확보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인가
운전을 해서 이동하고자하는 목적지 까지의 주변상황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동하고자 하는 그 기간동안에 악천우가 온단다.
너무도 추운 계절에 대설주의보가 발령되었다한다면...
자꾸 내가 가정만을 늘어놓고 만약에, 만약에 하면서 불안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운전하는 사람들 많이 봐 왔다.
나는 멋진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지휘자를 많이 보아 왔다.
나는 선생들을 많이 보아 왔다.
그런데 나는 운전자,지휘자,선생도 아니지만 그래도 보면 보이는 세계가 있다.
교회의 담임이 되던지 지휘를 맏았던지, 아님 선생은 그 대상이 인정을 할 때에만이 그렇게 되어진다.
동의는 강요의 방식이 아니라 그저 기다려서 상대로 부터 인정받을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단계를 줄여버리는 순간 참다운 교육(관계)은 숨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어떤이는 그 진정성을 몰라서 그런다고 오히려 상대를 탓을 한다.
정말 그럴까?
결국 그것역시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상대에게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살아있어야만 한다.
단, 건강하게...
건강이 상실되는 방법은 용납할 수 없다.
그래도 살아있어야하는 것 아니냐는 강요를 듣는다.
자기논리에 사로잡히는 것을 보고 있기를 기대하지 말라.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 얼마나 많은 말들을 해왔던가.
내가 소유한 잣대로 남들을 평가해왔지만
그 잣대가 건강한 것인지 항상 돌아봐야만 한다.
그런데 오늘 스스로는 그 잣대로 인하여서 스스로 함몰되어 가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체성이 어떠하구...진보인지,보수인지가 뭔 가치이며...민주적교회는 또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이런 모든 미사용어가 뭐 그렇게 거룩하고 특별하게 내 것 인양 주장하는가
내가 움직이는 회사에 조선족 여직원이 있다.
대화중에 공산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공산주의는 없단다.
그 것을 향하는 오늘은 사회주의라고 답을 한다.
오늘 우리의 사회는 진정한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자본만능주의 아닌가?
샘터교회 출발이 5개월이 되었다.
모세를 따라 무작정 광야로 나와버린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심정이다.
먹을 것도 떨어지고 목도 말라온다. 친구들도 하나 둘 많이 힘들어함이 보인다.
아직도 가나안으로 가기위해서 39년하고 7개월을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가?
모세의 영웅담과 여호수와의 영움담을 위해서...
그 여정 가운데 많은 생명들이 무참히 사라져간 그 험한길을 무작정 기다리라 하는가 말이다.
감히 길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선동하지 말라.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잊지 말라.
정말 당신은 샘터교회와 다비아를 그리고 이땅의 하나님의 나라와 그 세계를 사랑하는가?
그 많은 화살을 주변으로 날려 보내며 어떤자리에 서 있는가?
진정으로 선생은 말하는 자가 아니라 등을 보이며 이끌어가는 자이며
자녀와 학생은 부모와 선생의 말보다는 그의 행동을 보고 배우는 것이다.
더이상 형제들에게 상처를 주지 마라.
모두가 희생의 대상이 아닌 살림의 대상이기에 어느누구도 소외됨이 없기를 바란다.
샘터와 다비아는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다투고 분쟁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다른 무언가에 사로잡힌다.
그 갈등을 넘어서 하나됨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샘터나 다비아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역시 철모르는 철부지도 아니다.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에게 합당한 역할만 했으면 좋겠다.
지휘는 지휘자가 하고
연주는 연주자의 몫이니까
서로 어우러지면 좋은데...
오히려 실력있는 지휘자는 어설픈 연주자들과 연주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무언가에 평가를 기대하기보다는 그 안의 행복을 연주해내기위한 돌봄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연주하는 실력이 기본이상이라면 소리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어느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 음에 튜닝을 하고 흥에 겨운 화음의 어울림이 시작 될 것이다.
멋진 지휘자?
있어서 좋다.
그래도 연주를 할 만큼 준비된 사람으로 보아주기를 바란다.
지휘자의 지휘에 연주자들이 어울려 하나의 하모니가 들려지기까지 애정이 있어야 하겠다.
왜곡되지 않기를 바라며...
어떤 연주회에 가보면 연주자가 독주를 해도 보이지 않는 나름의 지휘자가 마음속에 있다.
합주를 하는 연주회에서도 연주자중에 지휘자를 보지 않고 눈을 감고 연주하는 사람들고 있다.
연주자는 항상 지휘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보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필요하다.
눈치보지 말라. 눈치도 주지 말라.
큰소리와 작은 소리를 낼 줄 알아야 연주가 된다.
불협화음이 생겨도 불협화음을 지나야 진정한 하모니가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결국 드러나야 할 대상은 지휘자도 연주자도 아닌 바로 음악의 세계이니까 말이다.
청중들은 박수를 보낸다.
그들의 수고와 땀으로 보여진 세계를...
정말 존중되어야 할 것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기를...
사람을 섬겨라 방치하면 하늘이 운다.
내 마음도 눈물 난다. 그러나 미련이 없다. 미련이 없다는 말을 이해하는가
요즈음 5개월 전 창립예배때 흘렸던 그 눈물에 의미를 거두고 싶어진다.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으면 사랑을 시작도 말아야 한다.
이미 사랑을 시작했으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남들이 우리의 사랑을 본다.
억지로 웃을 순 없는 것이다.
부족한 사람이 글쓰기가 모자라서 두서없음을 이해 부탁합니다.
목사님,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와서 댓글을 올립니다.
솔나무가 흔든다고 흔들리면 되겠습니까?
왜 이렇게 하는지를 알고 계시는 것 맞지요?
제한 조치도 쉽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구요. 명분을 찾기 어려우니까요.
그렇지만, 이번 5월 체육대회때에 여러사람들을 멋지게 초대한번 해 주시겠습니까?
목사님도 어렵게 부탁(경고)을 했으니 저역시 한가지씩 부탁하는 차원이랍니다.
화창한 5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그날이 세상을 보게 된 날이랍니다.
주변의 다비안들이나 샘터교우님들 너무 걱정어린 눈으로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정말 웃음다운 웃음이, 행복이 넘치기를 원한다면...
서로가 노력을...
목사님도 주님의 은총이...
라크리매님,
제가 닉네임과 얼굴이 잘 연결이 되지않아요.
혹시...비올라를 연주하셨던?...
님의 글에 또한 삐딱하게 글을 달아올리면 모습이 우습겠지요.
그런데, 저는 '일단 믿어보자'라는 것에 대해서 거부반응이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믿음의 대상이 아니면 절대로 믿는다는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언제부턴가...)
그 되어진 결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랍니다.
예배후 회중에게 제안을 할때에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요청을 했었더라면 너무나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미리 조심했으면 좋았을 가치에 대한 반응이랍니다.
라크리매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글의 내용에 진정한 마음이 전달되는군요.
한가지...
'고정된 관념'과 '창의'가 무슨 연관이 있나요?
즉문즉답시간에 한번 물어보시는 것은 어떤지요.
예수님을 사로잡은 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요?"
라크리매님,
예수님의 대답을 기억하거나 알고계시나요?
대글을 정중하게 달아주셨는데
속상할까봐 상당히 조심스럽네요.
그저 저는 다른 분들이 보는 관점에서의 저(솔나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내안의 나로서 규정되어지는 것이지 남이 나를 평가함에 대해서 별로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다시말씀드리니다만
저는 고정관념이 무엇인지 내안에 그런것들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여지는 그대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다고나 할까요.
대화를 하는 중에도 남이 하는 이야기를 100%믿는 것이 아니라 들어줍니다.
그런중에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와 뜻이 드러나는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그래서
라크리매님이 보시는 솔나무는
고정된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그리고 창의와 거리가 먼...등등으로 생각하고 있는 분이구라고 만 이해합니다.
아니면, 저로인해 지금 다비아와 샘터교회에서의 문제에 걱정스러워 무언가 조언을 하시고자 하는 마음...
아니면, 또 다른 무슨 생각으로?...
나쁘거나 좋거나의 개념이 아닙니다.
나를 그렇게 평가를 하지만 나는 그런것이 아님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서 내 길을 가는 사람이구요.
이런 글쓰기에 혹시 마음 상하셨을까 살짝 고민을 하구있구요.
속마음은 전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구요.
라크리매님도 한주간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참! 출판기념회때 연주 너무 좋았습니다. 늦었지만...
그럼...
라크리매님...
하하..절대로 오해가 없습니다.
다시말해서 오해를 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 성격이구요.
누구라도 있는 그대로 대하기 때문에 적잖은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마는...
이런정도로 오해하지 않으니 마음 놓으셔도 좋습니다.
말을하다보니 한가지..
우리는 내안의 정보를 가지고 상대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많이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어린시절 공부할때 역시 문제를 보고 4가지 제시하는 답중에서 잘 찾아내는 훈련 말입니다.
실체,실질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문제 출제자의 의도를 어느정도 파악을 하면 연필도 잘 굴려지는 ㅋㅋ
나는 나로써 이해받고 싶어하는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런 사고와 정체성을 가진 솔나무가 오히려 주변에 어울리지 못하는 것으로도 보일 수 있습니다.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긍정이아니기에...
아무튼 우리 이렇게라도 글로 나누었으니 다음 얼굴인사하며 좋은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좀더 서로을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서로의 껍질을 벗어버리는 새로운 시각들이 열리리라 생각합니다.
예배후에 라크리매님의 질문을 듣다보면 참 진지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좋아보여요.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께요.
라크리매님에 대해서 더 알아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다비아,서울샘터에서 만나 반갑구요.
다시말씀드리지만 오해...없어요.
그럼...
솔나무 님,
서울샘터교회나 다비아에 전혀 도움이 되지도 않고,
오히려 흔들기에 불과한 글을 반복적으로 쓰고 있군요.
앞으로 이런 방식으로 꼭지글이나
대글을 한번 더 달면 어쩔 수 없이 글쓰기 제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주의 은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