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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는 본회퍼의 생애와 그의 신학을 평가하는 학자들의 의견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절 부터는 본회퍼 신학적 특징에 대해, 한계는 있지만 조금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머리가 좀 아픕니다.^^
책은 아니지만 그의 '기독론 중심적' 신학의 특징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특별히
이 책에서 본회퍼는 전통적인 교리와 종교의 틀에 구애받지 않고 거침없이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본회퍼 기독론의 세 가지 특징은 "그리스도의 현존", "현재와 초월의
변증법적 긴장", "중심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천천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비교적 적은 양이다. 그렇다보니 본회퍼의 기독론에 대해 짜임새가 없다거나 비체계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교회에 왜 교인들이 줄어드는지, 혹은 왜 신앙과 생활이 유리되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딱딱하고 어려운 것이 되었고......(교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자
나오나 우리의 설교가 그들이 예수에 이르는 길을 막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가지 못한다.......우리의 설교가 사실 지나치게 '교의적'이어서 교인들의 삶과 완전히
유리된 것은 아닐까?
예전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헐거워진 설교와 방종에 가까운 예전과 교회운영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본회퍼의 말은 동시대의 사람들이 발 딛고 사는 사회나 역사와 무관한 성경이해가
우리에게 무의미하다는 뜻입니다.
정황 속에서 현재 의미를 주지 못한다면 그 교리와 설교는 공허한 것이다.]
의미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위의 인용이 자칫 '상황윤리'나 '실존주의 신학'으로 오해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다룰 것입니다.
본회퍼는 『그리스도론』의 본론 제1부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바로 이 말이다. '현존'(present)이라는 말은 시간적 장소적 개념, 즉 지금 여기(hic et nunc)라는
말로 이해되는 말이다. 그래서 현존이라는 말은 인격자를 정의하는 부분이 된다.
이라는군요. 승천하고 없는 예수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그의 힘이나 영향력이 남아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격이 현존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분은 누구인가?"하는 것이다. 대답은 "신 - 인이신 한 분 인격적 존재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답이다. 나는 인간 예수가 동시에 하나님이다. 라고 말하지 아니하고는 이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가 동시에 인간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이 서로 격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두 요소를 분리시킬 수 없다. 무시간적 영원 속에 있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현존하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찾는 방법으로 이 위험에서 벗어난다고
합니다.ㅠㅠ 그리고 마지막 인용문 "무시간적 영원 속에 있는......."은 본회퍼의 기독론적
강조점을 잘 보여주는 주장이라는군요. 즉 본회퍼에게 하나님은 영원 속에서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인간의 역사에 현존함으로 그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이 이 세 가지 양식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아니고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인데요. 그의 말을 들어보죠.
사이에서만 존재한다......대화는 무시간적인 것이 아니고 역사 안에서 일어난다......
대화로서의 말씀의 본질은 하나의 공동체를 요구한다......진리는 그 자체 속에서 자체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고, 두 인격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어떤 것이다. 진리는
공동체 속에서만 생겨난다.
구체화 된다는군요. 그러니까 관념과 사변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행위로 보았습니다. 즉 성례 가운데 현존하는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은 말씀이며, 성례를
통해 그리스도가 대리하지 않고 친히 현존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가 공동체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의 로고스가 시간과 공간 속에 뻗어 들어와 공동체로
존재하게 되었고 또 공동체 안에 존재하게 되었다“ 는 뜻입니다. 본회퍼는 공동체를 역사
속에서 승천과 재림 사이에 있는 그리스도의 단 하나의 형태로 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공동체는 계시의 말씀을 받는 그릇 정도가 아니고 공동체 자체가 계시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죠.
관심이 없다. 본회퍼의 관심은 기독론에서도 구체적인 정황 속에 있는 나에게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현재성'에 모든 관심이 집중된다.]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는 그리스도는 철저히 나를 위한 그리스도(pro me)여야 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본회퍼가 철저히 추구하고 의미를 찾는 나를 위한 그리스도는 나의
실존 속에 함몰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를 위한 그리스도는 동시에 '우리를 넘어서는'
(extra nos) 그리스도이다. 본회퍼의 기독론의 두 번째 특징은 나를 위한 그리스도와
우리를 넘어서는 그리스도 사이의 변증법적 긴장에 있다.]
웃기기도 합니다.^^
만나는 장으로서 '역사'와 '구체성'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특정한 영역에 두는 것을 반대한다.)
일상생활이라는 역사적 현장 속에서 만나져야 하는 자라는 뜻이다.)
여기서부터 긴장해야 합니다. 그 어려운 변증법적 설명이 이제부터 들어갑니다.
나를 위한 그리스도는 우리를 넘어서(extra nos)는 그리스도에 의해 변증법적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본회퍼의 신학은 실존적이고 내재적인 범주를 넘어선다.]
밖으로부터 그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결정된다. 종교 개혁가들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의 의(義)는 '남의 의'(alien righteousness), 말하자면 '우리 밖에서'
(extra nos) 온 의이다......그는 자기 밖을 향해서, 그에게 들려오는 말씀을 향해 서 있다."......
만약 그대의 구원과 의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는 결코 자신을 가리킬 수 없다.
사람입니다. 즉 "나를 위한(pro me) 그리스도라는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요소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우리 밖의(extra nos) 초월적 요소가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죠. -_-;
현재에 대한 질문이지만, 답변은 현재에서 오지 않고, 현재를 넘어서는 곳에서 온다. 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역사 속으로 나아가는 것(합)으로 나타난다.]
본박사님과 판박사님이 비슷한 말씀을 하신건가요?
<본>===============================================================================
위 내용 중에 아래 다시 적은 내용을 다른데서 본 기억이 어렴풋!
<본>-------------------------------------------------------------------------------
"무시간적 영원 속에 있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
........................................
본회퍼에게 하나님은 영원 속에서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인간의 역사에 현존함으로 그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본>===============================================================================
<판>===============================================================================
5월19일자 주보에 인쇄된 <사도신경해설 제55강 -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2)>
에 아래의 내용이 있었군요.
<판>-------------------------------------------------------------------------------
...쏼라쏼라1............................
"이런 주장은 영원(eternity)을, 그리고 이와 더불어 하나님을 무시간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시간 속에서 발생하거나 혹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영원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 된다."
* 무시간적으로(zeitlos)라는 말은 성서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헬라적인 개념이다.
판넨베르크는 여기서 하나님의 영원을 이렇게 무시간적, 비역사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위험하게 생각한다. 하나님의 영원은 현재의 시간에 의존적이며 현재의 시간은 하나님의
영원을 선취하고 있다.
...쏼라쏼라2.............................
"영원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부합하지 않는다."
...쏼라쏼라3.............................
"이와 달리 기독교는 이 시간적 역사가 하나님에게도 결정적으로 의미 있다는 신앙에 근거한다.
따라서 시간과 영원의 결탁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원이 세계의 미래에 의존적이라는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판>===============================================================================
막상 놓고 보면 뭘 말하는 건지, 정말 띠-ㅇㅇ 해 옵니다.
그러나 어차피 가야 할 길이니, 안 갈 수도 없고...
그동안 현대신학을 자꾸 기피해 가면서 편한 길만 가려다 보니
우리에게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