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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의 흐름15-1
지난 번 공지한 것처럼 오늘은 3. 기독론의 구조 / '3) 중심이신 그리스도'를
연재하겠습니다. 날씨가 꽤 더워져 이제 여름이 코앞인데, 저는 왜 책상 앞에만
앉으면 졸음이 몰려올까요?^^ 봄을 타는 것도 아니고.....ㅜㅜ
연재하겠습니다. 날씨가 꽤 더워져 이제 여름이 코앞인데, 저는 왜 책상 앞에만
앉으면 졸음이 몰려올까요?^^ 봄을 타는 것도 아니고.....ㅜㅜ
3) 중심이신 그리스도
본회퍼 신학의 근간이 되는 기독론. 본회퍼의 기독론 세 가지 특징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현존", "현재와 초월의 변증법적 긴장",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인 "중심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앞의 두 특징을 질문의 형식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현존", "현재와 초월의 변증법적 긴장",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인 "중심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앞의 두 특징을 질문의 형식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오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현실적 질문)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장소는 어디인가?" (말씀, 성례, 교회, 공동체로서 존재하지만,
이들 경계를 넘어서서 존재하시는 하나님)
이들 경계를 넘어서서 존재하시는 하나님)
[이미 보았듯이 본회퍼는 인간의 경건성과 내면성을 그리스도를 만나는
장으로 보지 않는다. 본회퍼에게 이는 바로 그리스도를 종교화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매우 위험한 것이다. 그는 인간의 사적인 영역에
그리스도를 두지 않고, 교회라는 가시적인 공간에 두지도 않는다. 이 모든
개념들은 무종교의 시대에 맞지 않는다.]
장으로 보지 않는다. 본회퍼에게 이는 바로 그리스도를 종교화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매우 위험한 것이다. 그는 인간의 사적인 영역에
그리스도를 두지 않고, 교회라는 가시적인 공간에 두지도 않는다. 이 모든
개념들은 무종교의 시대에 맞지 않는다.]
본회퍼는 그리스도의 역사 속에서의 위치를 세 범주로 제시합니다.
"인간 존재의 중심이신 그리스도"
"역사의 중심이신 그리스도"
"하나님과 자연 사이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위의 세 범주를 살펴보기 전에 본회퍼의 신학적 물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본회퍼는 '누구?'라는 인격적 질문이 아니라 '어디에?'라는 위치에 대해 묻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위치는 '공간적'의미가 아닙니다. 바로 인간의 '한계'(한계선)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본회퍼의 말입니다.
본회퍼는 '누구?'라는 인격적 질문이 아니라 '어디에?'라는 위치에 대해 묻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위치는 '공간적'의미가 아닙니다. 바로 인간의 '한계'(한계선)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본회퍼의 말입니다.
이 한계 지점에 나는 홀로 있을 수가 없다. 그리스도는 그곳에, 곧 나와 나 사이,
옛 존재와 새 존재 사이, 그 중심 지역에 서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나 자신의 한계인 동시에 내가 재발견한 중심, 곧 나와 나 사이와, 나와 하나님
사이에 존재하는 중심점이다.
옛 존재와 새 존재 사이, 그 중심 지역에 서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나 자신의 한계인 동시에 내가 재발견한 중심, 곧 나와 나 사이와, 나와 하나님
사이에 존재하는 중심점이다.
본회퍼가 말하는 이 한계는 인간에게는 좌절이고 심판이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지점, 바로 이 한계 선상에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한계가 절망적인 것만이 아니라 옛 존재가 새 존재가 되는 결정적인 장소,
새로운 피조물로 나아가는 장소라는 겁니다. 간단히 요약해서 옛 것과 새 것의
중심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지점, 바로 이 한계 선상에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한계가 절망적인 것만이 아니라 옛 존재가 새 존재가 되는 결정적인 장소,
새로운 피조물로 나아가는 장소라는 겁니다. 간단히 요약해서 옛 것과 새 것의
중심입니다.
이제 본회퍼가 질문한 ‘어디?’에 대한 답변으로, 역사 속에서의 그리스도의 위치
세 범주를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세 범주를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인간 존재의 중심이신 그리스도
본회퍼의 이 말은 "우리 인격과 사유와 느낌의 중심"이라는 말이 아니며, 심리학적
의미도 아닙니다. 또한 신앙적(?) 성격으로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있다거나, 우리
중심에 그리스도를 두고 있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의미도 아닙니다. 또한 신앙적(?) 성격으로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있다거나, 우리
중심에 그리스도를 두고 있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오히려 중심이라는 말은 존재론적이고 신학적인 성격을 가진다. 인간은 율법과
성취의 사이에 있다. 인간은 율법을 완수하려 했으나 하지 못했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실패한 그곳에 있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실패한 그 "한계이자 심판이며
동시에 인간의 새로운 존재의 시작이자 그것의 중심이다."]
성취의 사이에 있다. 인간은 율법을 완수하려 했으나 하지 못했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실패한 그곳에 있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실패한 그 "한계이자 심판이며
동시에 인간의 새로운 존재의 시작이자 그것의 중심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인간의 한계가 극복된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인간 존재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인간 존재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역사의 중심이신 그리스도
이 주제 역시나 철학적, 사회학적인 논증으로서 보지 않습니다. 본회퍼는 이
주제가 논증되어야 할 말이 아니라 선포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위와
마찬가지로 신학적 의미로 사용됩니다. 역사의 구조도 인간의 구조와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어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그 한계가 극복된다는 의미입니다.
주제가 논증되어야 할 말이 아니라 선포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위와
마찬가지로 신학적 의미로 사용됩니다. 역사의 구조도 인간의 구조와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어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그 한계가 극복된다는 의미입니다.
["역사는 약속과 성취 사이에 그 생명을 갖고 있다. 역사는 그 자체 안에 약속을
내포하고 있는데, 곧 역사가 하나님을 탄생시키는 태(胎)가 된다는 신적 약속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도처에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 살아 움직인다.
역사의 진정한 생명은 이 메시아에 대한 기대 속에 있으며, 이 기대로 부터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메시아의 도래와 그의 지배가 바로 역사의 의미라 볼 수 있다.]
내포하고 있는데, 곧 역사가 하나님을 탄생시키는 태(胎)가 된다는 신적 약속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도처에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 살아 움직인다.
역사의 진정한 생명은 이 메시아에 대한 기대 속에 있으며, 이 기대로 부터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메시아의 도래와 그의 지배가 바로 역사의 의미라 볼 수 있다.]
셋째, 우주의 중심이신 그리스도
여기서 다루는 내용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자연의 중재자이고 자연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속으로 들어온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본회퍼는 자신의
사상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시대적 배경
때문인데요. 그렇지만 저자는 그의 사상을 조심스럽게 발전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속의 은혜 속으로 들어온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본회퍼는 자신의
사상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시대적 배경
때문인데요. 그렇지만 저자는 그의 사상을 조심스럽게 발전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금 발전시켜 본다면 그의 사상은 단순히 '자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우주를 향한 구속의 완성으로 보는 것이 정당하다......자연도 역사와 마찬가지로
무의미와 자유의 상실로 고통 받고 있다. 창조세계의 타락으로 자연은 벙어리가
되었고, 인간은 죄에 사로잡힌 노예가 되었다......]
우주를 향한 구속의 완성으로 보는 것이 정당하다......자연도 역사와 마찬가지로
무의미와 자유의 상실로 고통 받고 있다. 창조세계의 타락으로 자연은 벙어리가
되었고, 인간은 죄에 사로잡힌 노예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의 완성에 자연도 소외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서두 부분에 본회퍼는 '어디에?' 라는 질문을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위치 세 범주를 살펴본 결과 본회퍼는 이 '어디?'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를 어떤
장소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누구?'라는 질문의 해답으로 이끌었습니다.
인간, 역사, 우주의 중심이 되는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해서 말입니다. 저자의 견해를
끝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위치 세 범주를 살펴본 결과 본회퍼는 이 '어디?'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를 어떤
장소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누구?'라는 질문의 해답으로 이끌었습니다.
인간, 역사, 우주의 중심이 되는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해서 말입니다. 저자의 견해를
끝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는 본회퍼 사상을 관통하는 현재에 대한 관심이 그의 기독론에 녹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본회퍼 신학의 토대가 되는 기독론의 중요한 특징이 바로 그리스도의
현존성과 연관된다. 필자는 '현재'에 대한 강조와 그리스도의 현존성을 본회퍼 사상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관점으로 본다.......
우리를 둘러싼 이 세상에 대한 이해 없는 현재가 있을 수 없다. 계시는 구체적인
이 세상과 역사 안에서 일어난다. 복음의 전파와 설교의 선포도 이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예수의 부름과 그의 부름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따름도 이 세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철저히 '현재'의 세상이지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세상이 아니다.
그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기 위해 시도하는 비종교화는 바로 이 세상 속에서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만나려는 시도이다. 그가 그렇게 강조한 윤리의 핵심, 곧 이
세상에서 신 없이, 그리고 신과 함께 사는 것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려는
응답을 의미한다.]
발견하였다. 본회퍼 신학의 토대가 되는 기독론의 중요한 특징이 바로 그리스도의
현존성과 연관된다. 필자는 '현재'에 대한 강조와 그리스도의 현존성을 본회퍼 사상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관점으로 본다.......
우리를 둘러싼 이 세상에 대한 이해 없는 현재가 있을 수 없다. 계시는 구체적인
이 세상과 역사 안에서 일어난다. 복음의 전파와 설교의 선포도 이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예수의 부름과 그의 부름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따름도 이 세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철저히 '현재'의 세상이지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세상이 아니다.
그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기 위해 시도하는 비종교화는 바로 이 세상 속에서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만나려는 시도이다. 그가 그렇게 강조한 윤리의 핵심, 곧 이
세상에서 신 없이, 그리고 신과 함께 사는 것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려는
응답을 의미한다.]
본회퍼가 더 오래 살아서 자신의 신학을 더 발전시키고 완성했더라면
우리에게 남겨줄 것들이 참 많고, 깊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내용들을 이렇게 공짜로 잘 요약해주셔서 감사하고, 많은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