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Articles 7,958
관련링크 : |
---|
대구 **교회 사태가 지금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첫 시발점은 사실은 원로목사가 자신의 아들을 담임목사로 세습시킨 시점이 되어야 했을텐데, 세습 중에는 그래도 아주 바람직하게 된 경우라 자찬하며 그냥 그렇게 넘어갔나 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담임 목사를 낀 원로목사의 섭정이 심해지면서 교회에 여러가지 무리가 일어나고 급기야는 원로목사가 쫓겨나고, 담임목사마저도 지금 코너에 몰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는 마지막으로 노회에 구원요청을 했고, 지금은 교인들과 노회를 낀 담임목사와의 지리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정당성은 그 교회 교인들에게 있습니다. 그 분들의 용기는 너무도 가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렇게 하기가 쉽지가 않은데... 그래서 그 교인들은 카페를 만들어서 서로 소통하면서 저항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교인들을 담임목사는 신천지로 몰고 있구요... 정말 담임목사의 행태는 같잖지도 않습니다...
저도 그 교회 교인들과 생각을 함께 하고 싶어서 그 카페에 가입을 했습니다... 그래서 글도 많이 올리고 공감도 많이 받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좀 오바를 한 것일까요... 아킬레스건을 건드려버렸습니다... "칼빈을 넘어서자" 라는 제목으로... 제가 좀 겁대가리를 상실했었나 봅니다... 현재에까지 이어져오는 칼빈의 부정적 아우라... 즉, 기독교 신앙이 정치화하면서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는 "성시화 운동", 정통성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과 집착에서 오는 "배타성", 또한 목사가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자리에 서서 하나의 "신" 으로 등극하게 되는 메커니즘까지...
근데 이글이 이 분들에게는 "급체" 를 일으켰나 봅니다... 갑자기 글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글이 왜 사라졌는지, 조금 과격하긴 했어도 생각할만한 글이 아니었냐고 다시 글을 달았더니 그 밑에 댓글이 하나 달렸습니다...
" 본 카페는 신앙적 교리 노선에 있어서는 매우 편협 합니다. 앞으로도 카페의 노선과 달리 하는 글은 강제 삭제할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께 이해 부탁드립니다. 본 카페는 칼빈주의에 입각한 개혁파 신학(Reformed Theology)을 근본 신앙으로 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 문답'을 교리적 표준으로 채택합니다"
저는 제가 좀 오바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좀 많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예수 보다도 칼빈이 더 우선시 되고, 성서 보다도 자신들의 노선이 더 중요시 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그 노선에 위배될 때는 그 내용의 가부를 묻지 않고 귀를 닫아버리는 그런...
한편 그런 생각도 듭니다... 지금 그 교회는 전시 상황인데, 담임 목사에게 어떤 빌미라도 제공한다면 아주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라 내부 단속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별로 글 쓸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카페엔... 오히려 초상집에 분란 일으키는 인간으로 보일 것 같네요...
그런데 그 이후에 담임 목사를 낀 원로목사의 섭정이 심해지면서 교회에 여러가지 무리가 일어나고 급기야는 원로목사가 쫓겨나고, 담임목사마저도 지금 코너에 몰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는 마지막으로 노회에 구원요청을 했고, 지금은 교인들과 노회를 낀 담임목사와의 지리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정당성은 그 교회 교인들에게 있습니다. 그 분들의 용기는 너무도 가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렇게 하기가 쉽지가 않은데... 그래서 그 교인들은 카페를 만들어서 서로 소통하면서 저항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교인들을 담임목사는 신천지로 몰고 있구요... 정말 담임목사의 행태는 같잖지도 않습니다...
저도 그 교회 교인들과 생각을 함께 하고 싶어서 그 카페에 가입을 했습니다... 그래서 글도 많이 올리고 공감도 많이 받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좀 오바를 한 것일까요... 아킬레스건을 건드려버렸습니다... "칼빈을 넘어서자" 라는 제목으로... 제가 좀 겁대가리를 상실했었나 봅니다... 현재에까지 이어져오는 칼빈의 부정적 아우라... 즉, 기독교 신앙이 정치화하면서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는 "성시화 운동", 정통성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과 집착에서 오는 "배타성", 또한 목사가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자리에 서서 하나의 "신" 으로 등극하게 되는 메커니즘까지...
근데 이글이 이 분들에게는 "급체" 를 일으켰나 봅니다... 갑자기 글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글이 왜 사라졌는지, 조금 과격하긴 했어도 생각할만한 글이 아니었냐고 다시 글을 달았더니 그 밑에 댓글이 하나 달렸습니다...
" 본 카페는 신앙적 교리 노선에 있어서는 매우 편협 합니다. 앞으로도 카페의 노선과 달리 하는 글은 강제 삭제할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께 이해 부탁드립니다. 본 카페는 칼빈주의에 입각한 개혁파 신학(Reformed Theology)을 근본 신앙으로 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 문답'을 교리적 표준으로 채택합니다"
저는 제가 좀 오바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좀 많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예수 보다도 칼빈이 더 우선시 되고, 성서 보다도 자신들의 노선이 더 중요시 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그 노선에 위배될 때는 그 내용의 가부를 묻지 않고 귀를 닫아버리는 그런...
한편 그런 생각도 듭니다... 지금 그 교회는 전시 상황인데, 담임 목사에게 어떤 빌미라도 제공한다면 아주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라 내부 단속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별로 글 쓸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카페엔... 오히려 초상집에 분란 일으키는 인간으로 보일 것 같네요...
시대의 천재 마르크스가 "자본론" 이란 책을 썼는데, 그 책을 기반으로 한 공산주의가 몰락하자 사람들은 마르크스 자본론의 시대는 끝이 났다고 이야기 했지만, 마르크스에 대한 탁월하고 새로운 해석이 나타나면서 "마르크스의 원래 의도가 그게 아니었다." 라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을 들어본 일이 있습니다... 칼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칼빈은 천재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저같은 필부들이 따라갈만한 그런 수준은 넘어서 있겠죠... 다만 지금까지의 칼빈에 대한 해석들과 적용들이 그 의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변죽만 울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워낙에 칼빈의 신학적 언어 자체가 법률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그 것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주 제한적인 지시적 의미로 받아들일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한계도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정목사님도 말씀하시지만, 저는 신학의 언어는 시의 언어, 여백의 언어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를 넘어선 여백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게 하나님의 말씀일 거구요...
칼빈에게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손에 잡히게 하려는 집착이 지시적 언어라는 감옥 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오히려 가두어 버리는 패착이 보이지는 않은가 한 번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정성훈 님의 코멘트가 듣고 싶네요... 부탁드립니다... 꾸벅...
칼빈은 천재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저같은 필부들이 따라갈만한 그런 수준은 넘어서 있겠죠... 다만 지금까지의 칼빈에 대한 해석들과 적용들이 그 의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변죽만 울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워낙에 칼빈의 신학적 언어 자체가 법률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그 것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주 제한적인 지시적 의미로 받아들일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한계도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정목사님도 말씀하시지만, 저는 신학의 언어는 시의 언어, 여백의 언어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를 넘어선 여백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게 하나님의 말씀일 거구요...
칼빈에게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손에 잡히게 하려는 집착이 지시적 언어라는 감옥 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오히려 가두어 버리는 패착이 보이지는 않은가 한 번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정성훈 님의 코멘트가 듣고 싶네요... 부탁드립니다... 꾸벅...
제가 대구에 있을 당시에는 이상헌 목사님이 서문교회를 목회하셨구 아들은 저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구 이상근 목사님 교회 대구 제일교회 목사님 맞습니다.
당시에( 이십 몇년전) 부흥회를 비롯해서 예배 드리러 대구 제일교회와,서문교회에 몇번 갔었습니다.
근데 제일교회 갔다가 같이간 친구가 돈을 가지고 있었는데 저를 좀 기다리지도 않고 먼저 버스를 타고
산격동으로 가버리고, 저는 교회 인파들 속에서 한참을 친구를 찾다가 결국 못 만나고
혼자 걸어서 제일교회 앞에서 산격3동 까지 걸어서 간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당시에 꽤 걸은것 같은데 혹시 대구 사시는 분은 대구 제일교회에서 산격3동 산성교회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아시면 좀 가르쳐 주세요.
그때 제가 한참을 걸어 온것 같아서요..
교회 앞에서 기다리지 않고 먼저간 친구가 정말 야속한 밤이었습니다.
그리구 이상근 목사님 교회 대구 제일교회 목사님 맞습니다.
당시에( 이십 몇년전) 부흥회를 비롯해서 예배 드리러 대구 제일교회와,서문교회에 몇번 갔었습니다.
근데 제일교회 갔다가 같이간 친구가 돈을 가지고 있었는데 저를 좀 기다리지도 않고 먼저 버스를 타고
산격동으로 가버리고, 저는 교회 인파들 속에서 한참을 친구를 찾다가 결국 못 만나고
혼자 걸어서 제일교회 앞에서 산격3동 까지 걸어서 간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당시에 꽤 걸은것 같은데 혹시 대구 사시는 분은 대구 제일교회에서 산격3동 산성교회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아시면 좀 가르쳐 주세요.
그때 제가 한참을 걸어 온것 같아서요..
교회 앞에서 기다리지 않고 먼저간 친구가 정말 야속한 밤이었습니다.
그렇군요... 꽤 먼거리가 맞군요....
그때는 고딩시절이라 겁없이 걸어간것 같은데,
지금 만약에 제일교회에서 산격3동 까지 걸어가라 하면 도저히 못갈것 같은 거리인것 같아요..
고등학교때 마산에서 불량서클 애들과 어울린다고 , 친구 엄마가 교회에 상담해서
당시에 대구에 있는 기독교 고등학교로 친구와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 학교에서 주님을 알게 되었고, 간절한 회개도 해 보았고, 소위 말하는 뜨거운 불 세례도
이 시절에 일찍이 맛을 보았습니다.
중간에 이론 시험을 쳐보면 제가 친구보다 성적이 월등히 앞서기도 했구요.
그런데 제일교회에서 걸어온 사건과, 다른 사건들이 겹쳐서 그 후에 친구와 대판 싸우고
학교 기숙사에서 나오고 말았어요
매사에 이기적인 친구의 모습에 제가 너무 실망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었었죠..
친구는 고신대를 나와서 목회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김해 시골교회 목사로 있습니다.
목회가 힘들어 항상 고민하고 있더군요..
그때 친구와 크게 다투지 않고 그 학교를 계속 다녔다면 저도 지금쯤 목사가 되어 있을 겁니다.
당시에 다니던 기독 고등학교를 나오면 거의 고신대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몇년전에 다시 이십여년 만에 만났는데 저를 보고 많이 미안해 하더군요.
자기 때문에 제가 그학교를 그만 둔것을 자신은 알겠죠..
이 모든 일들도 다 하나님님의 섭리라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때는 고딩시절이라 겁없이 걸어간것 같은데,
지금 만약에 제일교회에서 산격3동 까지 걸어가라 하면 도저히 못갈것 같은 거리인것 같아요..
고등학교때 마산에서 불량서클 애들과 어울린다고 , 친구 엄마가 교회에 상담해서
당시에 대구에 있는 기독교 고등학교로 친구와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 학교에서 주님을 알게 되었고, 간절한 회개도 해 보았고, 소위 말하는 뜨거운 불 세례도
이 시절에 일찍이 맛을 보았습니다.
중간에 이론 시험을 쳐보면 제가 친구보다 성적이 월등히 앞서기도 했구요.
그런데 제일교회에서 걸어온 사건과, 다른 사건들이 겹쳐서 그 후에 친구와 대판 싸우고
학교 기숙사에서 나오고 말았어요
매사에 이기적인 친구의 모습에 제가 너무 실망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었었죠..
친구는 고신대를 나와서 목회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김해 시골교회 목사로 있습니다.
목회가 힘들어 항상 고민하고 있더군요..
그때 친구와 크게 다투지 않고 그 학교를 계속 다녔다면 저도 지금쯤 목사가 되어 있을 겁니다.
당시에 다니던 기독 고등학교를 나오면 거의 고신대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몇년전에 다시 이십여년 만에 만났는데 저를 보고 많이 미안해 하더군요.
자기 때문에 제가 그학교를 그만 둔것을 자신은 알겠죠..
이 모든 일들도 다 하나님님의 섭리라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비아에 참 오랜만에 들어옵니다.
현실의 한국기독교 그 중에서도 소위 보수신학을 자처하는 이들에겐
칼빈은 굉장한 스승이지요,
그런데 정작 그 스승을 따르는 이들은
제자가 아닌 꼬봉이 되어있으니 문제가 발생하는것이라고 봅니다.
칼빈을 따른다는 보수층은 칼빈의 가르침을 토대로 사유하여 신학적 정립을 위한 하나의 노선적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 칼빈이 무슨말을 했고 안했고에 집착하여 그의 말을 토대로 편가르기 하는 실정이지요
저도 첫날처럼님의 말씀에 적극 동의합니다, 현실의 한국기독교의 보수층은 아주 배타적입니다.
그 배타성으로 인해, 보수신학이라고 불리우는 신학은, 더 이상 새로운것을 받아들이기 싫어하죠
그래서 자신과 조금만 다른말을 하게되면,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고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칼빈의 꼬봉화가 되어있는 모습도 보수층의 일면이지요,
예수께선, 자신의 가르침을 토대로 개인의 사유와 특성에 따라 자유롭게
기독교를 전파할 수 있도록 제자를 기르셨는데,
현실에선 꼬봉들이 양성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현실의 한국기독교 그 중에서도 소위 보수신학을 자처하는 이들에겐
칼빈은 굉장한 스승이지요,
그런데 정작 그 스승을 따르는 이들은
제자가 아닌 꼬봉이 되어있으니 문제가 발생하는것이라고 봅니다.
칼빈을 따른다는 보수층은 칼빈의 가르침을 토대로 사유하여 신학적 정립을 위한 하나의 노선적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 칼빈이 무슨말을 했고 안했고에 집착하여 그의 말을 토대로 편가르기 하는 실정이지요
저도 첫날처럼님의 말씀에 적극 동의합니다, 현실의 한국기독교의 보수층은 아주 배타적입니다.
그 배타성으로 인해, 보수신학이라고 불리우는 신학은, 더 이상 새로운것을 받아들이기 싫어하죠
그래서 자신과 조금만 다른말을 하게되면,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고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칼빈의 꼬봉화가 되어있는 모습도 보수층의 일면이지요,
예수께선, 자신의 가르침을 토대로 개인의 사유와 특성에 따라 자유롭게
기독교를 전파할 수 있도록 제자를 기르셨는데,
현실에선 꼬봉들이 양성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칼빈주석 영문판을 얻었는데 그냥 폼으로만 가지고 있고 실제로 읽어지지도 않고 해서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물론 그거 가지고 있으면 책장이 좀 더 빛날것 같긴한데...ㅋ 그 친구는 저에게 기독교 강요를 주더군요.. 저는 다 그냥 얻었습니다. ㅎㅎ 암튼 칼빈주의자라고 하시는 분들이 칼빈의 책을 한권이라도 읽어보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저를 포함해서)..ㅋ 그냥 어떤 신조인것 처럼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것이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라도 읽어보았나 몰라요..(이건 몇번 읽었습니다..학교다닐때 숙제가 많아서...) 암튼 칼빈주의자라면 칼빈의 책을 한권이상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ㅋㅋ 저도 먼지 쌓인 기독교 강요를 한번 꺼내 읽어봐야 할듯..ㅎㅎ 어짜피 교리도 성경에서 나온 것이니 그 교리가 성경적인지 검토하는 작업이 항상 필요하겠지요.. 그게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저를 포함) 개혁이 아닐까 싶네요...ㅎㅎ
예수보다 칼빈이 중심인것은 공자보다 주자가 중심이었던 것처럼 우리나라 유구의 전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때도 아마 주자의 권위에 도전하면 죽음을 면치 못했던가 그랬었더랬죠... 요즘은 그래도 죽지는 않으니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