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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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신은 버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혈기의 사람이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부인할 때 부인할지언정 그래도 그 혈기는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전도할 때, 봉사할 때 베드로의 혈기를 배워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해야 합니다."
결국 이 것은 목사님이 가진 신학의 치명적인 아킬레스 건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설교로 보였습니다.
이 본문의 포인트는 베드로가 아닌, 다시 살아나서 먼저 갈릴리로 가 계시겠다던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는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번이나 나를 부인할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에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고 장담을 해버리는 베드로... 다른 제자들도 다 같은 말을 하였지만, 베드로의 어조가 가장 강하였는지 그가 대표격으로 나옵니다.
저는 여기서 예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는 어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베드로의 실상을 일깨워주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칼을 들어 목자를 치리니 양떼가 흩어지리라" 고 기록되어 있는 대로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살아나서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
스가랴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말씀을 하시는데 그 설명을 덧붙이자면 길고, 일단 제자들의 배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살아남, 갈릴리로 그들보다 먼저 감이 대비가 되면서 저는 무한(Infinitum)이 유한(finitum)을 품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무한이 유한을 품는 것... 그 것 밖에는 길이 없다는 것...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서 인간의 유한성을 여실히 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 것이 아무리 선하고 강하고 확고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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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다음으로 바로 요한복음 마지막 장으로 넘어갔습니다... 21장... 시간이 지나고 난 후, 베드로와 예수의 해후가 드러납니다...
티베리아 호수 - 여기가 원래 갈릴리 호수의 다른 명칭이라죠... 마치 러시아의 샹트 페테르부르크가 레닌그라드로 불렸던 것처럼... 여기에서 베드로는 나머지 제자들에게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합니다...
이 부분이 그냥 베드로가 생업으로 다시 돌아간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저는 전후 문맥상 베드로는 예수를 다시 보려고 무의식적으로 그물을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를 만났던 그 처음... 그 추억을 회상하며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 첫 추억은 마지막에 그대로 재현됩니다...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허탕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밤이 "영혼의 어두운 밤" 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를 처음 만나서, 그를 위해서 자신의 것을 다 버리고, 같이 동고 동락하며 기쁨을 누렸지만, 예수가 죽고, 겁에 질린 베드로는 예수를 처절하게 배신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난 그 영혼의 어두운 밤 속에서 그 영혼의 그물에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그런...
이틑 날 새벽이 동터오면서 예수께서 저 멀리에 서계셨지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무얼 좀 잡았소?"
"아무 것도 못 잡았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져 보시오.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오"
그대로 했더니 그물을 건져올릴 수 없을 정도의 고기가 잡혔습니다... 이건 틀림 없는 그와 만났던 첫 추억의 재현입니다... 고기는 153마리...
그 때 예수의 사랑받던 제자 - 요한 복음에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요한이겠죠 - 가 저 분은 주님이십니다 하면서 소리 칩니다... 그 때 베드로는 옷을 벗고 있다가 그냥 옷을 두르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갑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너무 너무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예수는 친히 숯불에 물고기를 굽고, 빵을 집어서 제자들을 먹이고, 제자들은 감히 누구신지 묻지를 않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는 이 분이 누구라고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겠죠... 우리는 먹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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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분... 예수와 베드로의 대화는 가슴이 찡합니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예수는 시몬 베드로에게 세번 묻습니다...
기본적인 형태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니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니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니가 사랑하느냐? " 라고 조금은 다른 표현으로 세 번을 묻고 베드로는 일관되게 세 번 "예,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하고,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 부탁하십니다...
그런데 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처음 두 번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할 때, "아가파오" 로 묻습니다... 그에 비해 베드로는 일관되게 "필레오" 로 대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예수께서도 "필레오" 로 묻고, 베드로는 역시 "필레오" 로 대답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베드로가 야꾸(주:깡)가 많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더 이상 예전의 자신있던 베드로가 아닙니다...
아가페는 부부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으로, 서로가 바로 목적인 사랑으로, 무언가 서로 몸이 섞이고, 핏줄이 당기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랑을, 자식이 거리에서 차도에 뛰어들 때 어머니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처럼, 생명까지 주는 사랑을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이 사랑의 유비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에 적절해서 아가페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쓰이게 되었다는군요...
반면에 필로스는 "동호회" 처럼 어떤 하나의 목적이 서로를 엮어주는 , 그 목적이 사라지면 서로 간에 호감이나 좋아함이라는 감정도 사라지는 그런 사랑을 말한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동업자적 사랑이겠죠...
지금 여기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슬프게 커밍아웃 하고 있는 겁니다... 이미 베드로는 옛날의 베드로가 아닌듯 합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고 믿고 맡기시는 것도 이미 달라진 베드로에 대한 신뢰감이 묻어납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항상 베드로를 사랑하고 믿어주셨습니다... 항상 흔들흔들거리던 물가에 내놓은 자식같던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바우" 라는 든든한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그 역설적 사랑이 아니고는 설명이 안되죠...
(전에 전병욱 목사는 설교 시간에 "베드로란 뜻이 뭔 줄 알아요? 짱돌이에요 짱돌... 그래서 예수께서 베드로를 부를 때 '어이, 짱돌' 이라고 한 거죠 라고 하더군요... 사실 알고 보면 그건 그 분이 교인들과 스탶들을 관리하던 방식이더군요... 예배 시간에 신디가 약간의 실수를 하자... 설교 전에 바로 "어이 신디.. 지금 장난치나?" 하던 그 쇼킹한 장면을 잊을 수가 없군요...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습니다...아... 까는 건 안하려고 했는데... 꼭 필요할 거 같아서... ^^;;;)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네가 젊었을 때에는 제 손으로 띠를 띠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이를 먹으면 그 때는 팔을 벌리고 남이 와서 허리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 말은 베드로의 말년에 어떻게 순교를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영적으로는 이제는 베드로가 절대의탁의 길로 들어섰음을 이야기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 단상이라고 해놓고는 글이 괴발새발 길어졌습니다만, 베드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자신과 신앙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쩌면 베드로의 모습에서 제 모습을 본 거 같애요...
숯불양념치킨 맛있겠어요... 쩝쩝쩝... 논공에는 찜닭 집이 정말 맛있는데, 직원들이랑 같이 찜닭 시키면 저는 거의 당면하고 밥만 먹습니다... 고기는 덜 땡기고, 당면이 맛있어서요... ㅋㅋㅋ... 그러고 나면 그 날 오후는 배가 빨리 꺼져서 심하게 꼬록 꼬록... 직원들 입에서는 닭 트림 냄새가 나고... (이거 잘 못 들으면 직원들 고기 먹으라고 당면만 먹는 줄 알겠어요, 우헤헤헤)
몇년전에 구역예배 인도를 위해서 같은 본문으로 써 놓았던 글이 생각나서 댓글로 올립니다.
첫날님의 글과 완전히 같은 내용입니다.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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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예수님의 입장에서 본문을 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6장 31절에서
제자들이 도망가고 흩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이것은 주님이 아직 십자가를 지시기 전이므로 불가피한
일입니다. 인간이 사탄의 종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당연한 패배입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예언하십니다. 그러나 32절에서
‘그러나’로 반전을 하십니다. ‘그러나’, 즉 내가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여 사단의 등뼈를 부수고
승리한 후에는 얘기가 달라질 거다, 그 때에 갈릴리에서 보자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베드로야 나도 네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나를 결코 부인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단다, 그러나 너는 네 자신이 네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 너는
네가 죄의 노예이고 그의 사슬에 묶여 있어서 너의 진심과 상관없이 죄의 뜻에 따라 살 수 밖에 없음을 모른다. 나는
네가 정말로 불쌍하단다. 그래서 나는 너를 죄로부터 해방 시키기 위해서 지금 십자가를 지러 가는 거란다. 너 자신도 네가 죄의 종이라는 걸, 네가 세 번 부인하는 걸 통해서
알 수 있을거다.”
이제 베드로의 눈으로 본문을 봅시다. 이와 거의 병행구 라고 해도 좋을 만한 말씀이 로마서 7장에 있습니다. 바울의 유명한 곤고한 사람의 고백이죠.
아...오늘 몇 년만에 약국 새단장을 했습니다.
전면의 간판 교체하고, 전면유리와 복도의 쉬트지 모두 바꾸고,
간판 안에 전등들도 새 거로 바꾸고..
간판작업은 아저씨들이 했는데
간판작업하느라 힘들었으니 잘 먹어야한다면서
점심으로 직원이랑 숯불양념치킨 한마리 해치웠습니다.
그런데 사랑채에 들어와보니 뭉클한 글이 또 있군요.
첫날님 잘 읽었습니다.
요즘은 첫날님 교회나 예전의 제가 다니던 교회가
모두 그 시즌인가봐요.
해마다 두번은 총동원주일을 했었는데
이런 전도행사를 접목한 예배를 드릴 때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나..항상 생각했더랬습니다.
전도와 예배는 필히 분리되었으면 하구요.
초청된 사람들에게 촛점을 맞추는 예배는
정확히 말하면 예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첫날님의 감동적인 베드로의 묵상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