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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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7월 17일(금)) 경향신문 2면 하단에는 '전국대학의 민주동문들과 전대협의 벗들이 함께하는 시국선언'이라는 광고기사가 있었다. 그 밑에는 '오늘 우리를 고백하며 다시 민주주의를 향한 장정을 시작합니다'라고 되어 있었다.

 고 노무현의 죽음 이후 이제는 시국선언을 외치는 분위기가 많이 잠잠하여 진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나보다.


 내가 보기에 MB는 민주주의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물론 막연하게, 관념적으로 민주주의가 중요하고 민주적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인식은 큰 틀에서 가지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나는 민주주의에, 민주적 운영에 관심이 없소이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생각해 보라. 현 시대를 살아가는 지도자중에 이렇게 고백하는 순수한 영혼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은 곧 지도자 인생의 종말이요, 스스로에게 내리는 사망선고임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민주주의에, 민주적 운영에 관심이 없는 지도자들의 딜레마가 있다.

 마음 같아서는 왜 민주적 운영을 해야 하는지 국민들과 맞짱을 뜨고 싶지만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는 딜레마.


 그렇기에 남은 임기동안 최대한 자신이 민주주의에 관심이 없음을 숨겨가면서, 계속적인 민주적 국정 운영 요구에, 필요하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의내려가면서, 국가의 위기 또는 생존을 자주 언급하여 공안정국을 형성해가면서 오히려 현정권과 지도자 1인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게 만들면서 민주주의 요구를 희석시켜 나갈 것이다.


 지도자는 반드시 민주적 국정 운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는 아니다.


 민주주의에 관심이 없는 지도자가 느끼는 내적 갈등. 즉, 민주적 운영을 지향해야 한다는 당위와 민주적 운영에 관심이 없는 실존과의 괴리. 여기에서 발생되는 문제를 몇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MB는 시국선언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민주주의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 그 이유이겠지만 더 큰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끊임없이 MB 내면의 갈등을 상기시킨다. 앞에서 살펴본 지도자의 딜레마처럼 솔직하게 국민들께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없음과 민주주의에 관심없음 사이에 그렇지 않아도 갈등의 폭이 큰 데, 스스로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시국선언이 올라오고 민주적 국정 운영 요구는 거세져만 간다.


 이럴 경우 MB가 취하는 방식 중 하나는 시국선언을 외치는 자들을 '정치 세력화' 시키는 것이다. 시국 선언의 내용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어떤 다른 '의도'가 있음을 가정하면서 끊임없이 그들을 세력화 시키고 무리짓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목소리를 내는 자들을 세력화 시키는 것의 장점은 그들이 요구하는 내용을 받아들일 필요 없이 '너는 나의 반대되는 세력'이라는 '다름'의 문제로 상황을 몰고 감으로써 평행선을 긋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방어 기제를 설정하며 자신의 상처를 보호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 하나. 위에서 언급한 다름은 순전히 생각의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한 국가에서, 한 공동체에서 생각의 다름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는가. 모든 사람이 모든 상황에 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지 않는가. 건강한 공동체를 가늠하는 기준은 얼마나 다양한 생각이 자유롭게 공존할 수 있느냐가 그 기준이 아니였던가. 생각의 다름은 문제가 아니다. 비록 특정 영역에 생각이 다르더라도 더 큰 가치를 위해 생각의 다름을 접고, 보류하고 함께 갈 수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생각의 다름을 내비치는 주체들이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때이다. 국가로 본다면 대통령과 국민, 교회로 따진다면 목사와 교인사이 처럼 이런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주체들 사이에서 생각의 다름이 문제가 될 때 생기는 문제가 더 크다. 


 권력자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지 간에 생각의 다름이 제기될 때 그것이 자신의 내적 갈등의 영역을 건드릴때 자동반사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상대방을 안티라고 낙인시키기 쉽다. 권력자에 의해 낙인이 부여된 자들은 피권력자 중 권력자에게 호의적이며 추종하는 세력들로부터도 동시 다발적인 집단 낙인을 받을 경향도 크다.


 자신의 내적 갈등과 괴리를 순수하게 토로하지 못하는 지도자(권력자)는 자신이 솔직하지 못한 만큼 상대방도 그러할 것이라는 심리적 투사(投射)의 덫에 쉽게 빠지기도 한다. 상대방의 진정성과 순수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방어막이 덮여 씌워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자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세력들로부터 자신에게 듣기 좋은 말,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말을 좇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이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주체들 사이에서 생각의 다름의 문제가 제기될 때 발생되는 문제들이다. 피권력자는 권력자와 집단으로부터 받은 낙인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순수성이 계속해서 오해받고 곡해되는 경험을 감수하면서 계속해서 주체로 서 있을 것인지, 본인들의 생존을 위해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 갈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것이다. 생각의 다름은 국가와 공동체를 향한 지혜로운 사랑이라는 것이다.


 용산 철거민들의 죽음은 사고사인가. 공권력에 의한 타살인가.. 아니면 무관심했던 우리에 의한 죽임당함인가..

 고 노무현의 죽음은 어떠한가.. 

 이제 더 이상의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겠다. 우리 사이에.



솔나무

2009.07.18 10:26:25
*.47.118.47

제목과 관계없이 내용은 
4071...4071...4071...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우리사이에'...

月光

2009.07.18 16:51:05
*.183.139.212

찬선군의 글은 분명 시국에 대한 글인데
왜 나의 레이다엔 복선이 깔린 것으로 읽혀지는 것일까요???
화가가 그려 놓은 그림을 보고 화가의 생각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름 자신의 느낌을 찾아내는 것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듯이...
윗 글에서도 난 또 다른 느낌을 찾아내는 것인지, 아님 본 뜻을 찾아낸 것인지
그것이 아리송합니다.

신학도

2009.07.19 03:00:47
*.39.0.176

박찬선님
님의글 잘보았습니다
글에서의 저의 생각은 지금 현상황 에서의
민주주의  민주적 국정운영에 대한촉구 바램...좋습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우리모두가 자기 하고 싶은 얘기 의 한10%로만이라도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날지우기

2009.07.19 12:08:26
*.46.26.58

"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위 문구가 사랑방의 정체성인것 같은데요....
님의 글은 꼭지글을 쓰시는 분들과 읽으시는 분들의 말과 귀를 막으려는 의도로 보일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때문에 10%를 안해야하는지요?
이 시국, 또는 이 시점에서 10%를 더 해야하지 않을까요?

차성훈

2009.07.19 21:48:29
*.44.109.231

그 하고 싶은 얘기 10%를 하기 위한 것, 하자는 것이 민주주의의 공리라고 생각합니다.

솔나무

2009.07.19 23:07:42
*.119.116.11

학도님...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들어오니...
모르는 닉네임이 눈에 들어오네요.
혹시라도 얼굴을 뵌분인가 아리송하구요.

그런데...
박찬선님의 글이 민주적 국정운영에 대한 글이라는 말씀인가요?
국정운영에 대한 이야기 아닌듯하여~~내가 잘 못 읽었나?

염려는 뒷뜰에 던져 놓으셔요.
그리고,
현시점에서 우리모두가 자기 하고 싶은 얘기의 한 10%로만 줄여주시고요.

고맙습니다.

권요안

2009.07.21 12:22:03
*.62.45.17

민주주의에 관심을 갖고 고민하시는 박찬선 님의 글을 몇 차례 읽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한 사람으로 고민에 동참하고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마음에 어설프게나마 좀 '다른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박찬선 님께서는 "민주주의에 관심이 없는 지도자가 느끼는 내적 갈등"과 거기서 비롯된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주체들 사이에서 생각의 다름이 문제가 될 때 생기는 문제"를 지적하셨는데, 저는 민주주의에서 지도자 한 사람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시스템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신완식 목사님의 칼럼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칼럼에서 신완식 목사님은 민주주의를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구석구석까지 깊이 스며들어가 있어야 하는 문화요 정신이요 제도"라고 이야기하셨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민주주의는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남긴 여러 교훈 중 중요한 한 가지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를 불편해하는 한국사회의 견고한 시스템은 용산철거민들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균열조짐을 발견하는 즉시 시스템 밖으로 튕겨내 버립니다. 이때 가장 전방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마 족벌언론 시스템일 것입니다. 물론 이와 함께 다양한 시스템이 동시다발로 작동합니다만.

저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은 시스템의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자 한 사람에게만 집착해서는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고 말 것입니다. 박찬선 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권력자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지 간에 생각의 다름이 제기될 때 그것이 자신의 내적 갈등의 영역을 건드릴때 자동반사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진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는데, 지도자의 위치에 있을 경우 이러한 방어기제가 더 예민하게 작동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를 향해 당신은 비민주적이다라고 지적하는 것은 지도자의 방어기제를 점점 더 강하게 작동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문제는 이러한 직접적인 지적 또한 비민주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비민주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다름'의 영역에 속한 것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고, 내 판단을 민주와 비민주를 가르는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전형적인 비민주의 특징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국가든 교회든 어떤 공동체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권력자는 놔두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의 구석구석까지 깊이 스며들어가 있어야 하는 문화요 정신이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신완식 목사님의 칼럼을 인용하자면 "민주주의는 결과중심, 실적위주, 통계우선이 아니라 과정중심"입니다. 절차와 과정의 중요성 또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겨준 유산의 하나 아닙니까?

신완식 목사님은 "그러므로 당장의 열매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차선이 아닐 수도 있고 차차선 수준일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습니다, 결과가 차차선 아니라 차악, 아니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저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낙선에 낙선을 거듭했던 바보 노무현처럼 말이지요. 부족하더라도 그렇게 민주주의 시스템을 차근차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의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겠다. 우리 사이에."라는 말씀에 담겨있는 진심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 함께 고민하고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주의는 시스템이다'라는 제 어설픈 반론에 박찬선 님의 날카로운 반론을 꼭 덧붙여주시기 바랍니다.

박찬선

2009.07.22 20:00:09
*.109.153.233

저의 글이 민주주의에 관한 글이 아니고,

더군다나 ‘민주주의는 지도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라는 ‘주장’을 펼친 글도 아니여서 요안님의 글이 반론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안님의 글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해야 달성할 수 있겠느냐라는 성취에 관한 글로 읽히는데요. 사실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서로 다르다면 성취방식을 논의하는 것은 괜히 겉도는 얘기가 되겠지요.

 

네이버 사전을 보니 민주주의를 이렇게 요약하여 놓았더군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그런데 ‘누가 이렇게 해야하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민주주의 논의의 한 축은 언제나 권력자(권력기관)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즉, 친구들 10명이 모여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하는데요. 10명의 돈을 갹출한 친구가 얘들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바밤바를 사왔을 때. 넌 왜 물어보지도 않고 사오니? 넌 왜 민주주의 안하니? 라고 농담삼아 이야기 하지만. 여기에서의 ‘민주주의’는 사실 ‘다수결의 원칙’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민주주의가 아니고요. 다수결의 원칙이 민주주의를 위한 부득이한 방식이긴 하지만 다수결의 원칙이 절대화 되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저는 평등한 관계 사이에서 ‘민주주의’논의는 애시당초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는 거지요.

 

그 10명중에 권력자 1명이 있다고 해봐요.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형성이 되어 있는 상태인데요. 그 권력자 한명이 나머지 9명이 좋아하는줄 알고 수박맛바를 사왔는지 묻지 않은채 그냥 수박맛바를 사왔거나 아니면 우연찮게 사왔는데 나머지 9명이 다 좋아하는지 간에, 독재의 방식으로 수박맛바를 사왔을 때. 이건 민주주의인가? 저는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일단 민주주의 논의를 할 수 있는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형성이 되어 있고, 또 하나는 결국 ‘민’을 위하는 ‘선택’이 되었기 때문이 그 이유인데요.

 

저는 지금 독재의 방식이여도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얘기하고 있는데요. 독재자가 혼자 결정해가면서 국민을 위할 수는 있겠지만(이것 또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지만), 독재의 방식은 ‘구조적으로’ 독재자 우선주의라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독재의 방식이 벌어졌을 때 민주주의를 해하는 것으로 간주해도 무리는 없다는 것이지요. 사람을 못 믿는게 아니에요. 그 방식의 구조적인 힘을 믿지 못하는 거지요.

 

그런점에서 민주주의가 다수이익우선주의는 아닌 것 같고, ‘피권력자 지향주의’라고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에요.

 

이런 맥락에서 요안님의 ‘민주주의는 시스템이다’이다를 생각해 봅니다.

바로 드는 생각은 권력자가 시스템을 파괴해버리면?

또 하나는 권력자가 시스템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결정하고 행동한다면?

 

요안님이 말씀하시는 ‘민주주의는 시스템이다’라는 말은 ‘삶의 구석구석까지 깊이 스며들어가 있어야 하는 문화요 정신이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시스템으로서 지도자도 불가항력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괜찮은가요?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시스템이다’라는 말에는 지도자조차 종속되는 시스템이라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사료되는데 국가라는 우산속에서 권력기관과 피권력기관이 나뉘어져 있는 현실속에서 살고 있는 상태에서 지도자조차 종속되는 시스템이 지도자가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달성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시스템 구축은 지도자가 싫어하겠지요. 자유로운 권력행사를 방해하잖아요. 그런데 무슨 수로 피권력자 사이에서 만든 시스템으로 권력자를 종속시키도록 만들 수 있을까? 그 권력이 피권력자들에게는 없다는 것이지요.

결국 지도자조차 종속되는 시스템은 결국 국회나 정부의 권력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주는 그 무엇(법이라든가...)이여야 하겠다는 생각.

삶의 구석구석까지 깊이 스며든 문화 또는 정신이 국민들 사이에 관습으로 형성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관습이 국가기관의 자유로운 권력 행사에 방해가 된다면 관습법으로조차 인정되기도 힘들 것 같고요.

이런 점에서, 지도자(권력기관)를 제외한 민주주의 시스템 구축은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아요.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을 아무리 국민들이 떠들어도 막상 국민에게는 권력이 없기 때문에 비참하지요.

권요안

2009.07.23 17:47:55
*.62.45.17

혹시 지금 이 논의가 불편한 건 아닌지 조금 염려됩니다. 만약 그러시다면 그냥 편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도 즐겁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주고 받는 것이 더 즐겁고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제 개인적으로 출석하는 교회 문제에서도 민주주의는 피부에 와닿는 중요한 고민거리이기에 반론을 읽으며 공부도 하고 생각도 다듬을 수 있어서 기쁩니다.

먼저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글의 전반부 "친구들 10명"을 예로 들어 설명하신 부분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독재의 방식이여도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얘기하고 있는데요. 독재자가 혼자 결정해가면서 국민을 위할 수는 있겠지만(이것 또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지만), 독재의 방식은 ‘구조적으로’ 독재자 우선주의라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독재의 방식이 벌어졌을 때 민주주의를 해하는 것으로 간주해도 무리는 없다는 것이지요. 사람을 못 믿는게 아니에요. 그 방식의 구조적인 힘을 믿지 못하는 거지요."

이 문단은 저와 같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사실 모든 독재자들은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고 자신은 '민주주의'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독재의 방식은 ‘구조적으로’ 독재자 우선주의"이며 "민주주의를 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 방식의 구조적인 힘"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시스템의 중요함'을 주장한 것이고, 그것을 "지도자도 불가항력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시는 것에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박찬선 님이 말씀하신대로 한국의 현실은 "지도자도 불가항력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권력자가 시스템을 파괴"하고 있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을 아무리 국민들이 떠들어도 막상 국민에게는 권력이 없기 때문에 비참"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런 비참한 현실과 함께 살펴봐야할 것이 있습니다. 현 정권이 지나치게 '쇼'에 집착한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어제는 다른 법안들은 다 놔두고 무리하게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그 이유가 한국에 연약하나마 민주주의 시스템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지율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갖가지 어이없는 '쇼'를 해대고, 여론이 두렵기 때문에 그것을 통제할 법을 기를 쓰고 만들려 하는 것이겠지요. 권력자가 지지율이나 여론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시스템, 아직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것을 보면 완전히 절망적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 시스템이 더 견고하게 자라도록 힘을 모아야겠지요.

"자유로운 권력행사를 방해하"는 "시스템 구축은 지도자가 싫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니 "국회나 정부의 권력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주는 그 무엇(법이라든가...)"은 권력자와 싸워서 얻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 상황에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자를 직접 상대하는 것은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란 "삶의 구석구석까지 깊이 스며들어가 있어야 하는 문화요 정신이요 제도"라는 점에서 우리가 구축해야할 시스템은 보다 더 근본적인 영역인 '정신과 문화'의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이렇게 정신과 문화의 영역에 뿌리내린 민주주의 시스템에 의해서 여론과 지지율이 움직일 때 권력자는 이 시스템에 "불가항력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 전에 우리가 먼저 그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에 "불가항력적으로 종속"되어서 "삶의 구석구석까지 깊이 스며들어가 있어야"겠지요. 그것이 우리가 싸워야할 진짜 싸움이 아닐까요?

박찬선

2009.07.23 19:30:26
*.109.153.228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괜찮습니다.^^


제가 앞에서 민주주의를 ‘피권력자 지향주의’라고 했는데요. 권력자가 피권력자를 지향할 수 있으려면 일단 공동체 내에서 권력의 불균형으로 인해 권력자와 피권력자가 나뉘어져 있어야겠지요. 동일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피권력자 지향’이란 말이 성립할 수 없으니까요. 이런 맥락에서 동일권력을 소유한 무리들의 예로 ‘친구들’이라고 했고요.


신완식 목사님의 글을 보니 민주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해 놓으셨는데요.


“그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신뢰하면서 보다 나은 오늘과 내일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루어가는 공동체 약속이다. 서로 다른 너와 나의 견해의 처지 그리고 형편을 고려한 후 최선책을 도출하려는 노력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목사님의 유일한 아이디어는 아니겠지만요. 저 또한 이것이 민주주의이고 또 민주주의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저의 논의 전개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회 구성원들이 동일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상태라면 그런 공동체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민주주의가 되지는 않는 거지요.


삶의 구석구석까지 깊이 스며들어가 있어야 하는 문화요 정신이요 제도.

이 말을 물통같다고 불러도 될까요?

물을 채울건지, 기름을 채울건지, 저는 아직 판단이 안서는데요.

시스템이란 말도 물통이지요.

어떤 내용이냐, 어떤 시스템이냐. 이런 부분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그래서 요안님이 민주주의는 시스템이다. 삶의 구석구석까지 ~~제도이다라고 말씀하셔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잘 못하고 있나 봐요.

요안님께서는 자명하다고 생각되는 전제가 저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서요.


신목사님의 글에서 인용하며 요안님의 생각을 추정해 보면요.

결과중심, 실적위주, 통계우선이 아닌 과정중심의 문화와 정신과 제도가 우리 삶에 스며드는 것을 얘기하신다고 봐도 되나요?


저는 결과중심에서 과정중심으로의 생각, 그런 문화, 그렇게 해서 형성된 시스템이 동일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그런 생각, 문화, 시스템을 민주주의라고 이름 붙이지 않는다는 거지요.
 (결과중심에서 과정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은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란 말을 옳음의 대명사로 너무 손쉽게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순간 드는군요 )그냥 그런 생각, 문화, 시스템인 거지요. 여기까지는 민주주의가 아닌데 그렇게 해서 생겨난 시스템이 권력기관으로 하여금 피권력자인 국민들을 지향하도록 만든다면 그때부터는 민주주의라고 부르겠다는 것이고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협의의 민주주의이고요.


국민들이 동일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가정인데요. 사실 국민들 사이에서도 권력의 불균형 현상은 존재하지요. 그렇기에 국민들 사이라고 하더라도 결과중심에서 과정중심으로 가고자하는 노력 중에 피권력자 지향이 일어났다면 이것 또한 광의의 민주주의로 이름 붙이고 싶네요.


어제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했는데요. 그 미디어법이 피권력자인 국민을 위하고 지향하는 법이라면 한나라당의 강행처리를 민주주의라고 보고요. 하지만 무엇이 국민을 위하고 지향하는지 매사에 명확하게 판단내리기 어렵기 때문에(미디어법은 다행히 쉽게 판단이 내려지지만) 그리고 그 판단 권한은 또 누가 가지고 있을 것이며 등등 이런 복잡한 여러 가지 것들때문에 그 과정이나 절차를 통해 민주주의를 가늠해 보려는 노력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다수결로 하지 않았다고, 정해진 규정대로 행동하지 않았다고 바로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좀 망설여 보는 것이지요.


요안님과 저는 일단 민주주의에 대한 전제(적어도 이번 논의에 있어서) 가 서로 다른 것 같고요. 민주주의 논의를 통해서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도 서로 다른 것 같아요.


이제 우리의 논의가 좀 더 의미가 있으려면 서로가 가지고 있는 논의의 전제가 얼마나 합당하지, 아니면 불합리한지 이런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크게 보면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단지 어느 부분을 좀 더 강조하며 드러내느냐 이런 차이가 좀 더 크지 않을까요?

권요안

2009.07.24 14:11:06
*.62.45.17

저도 "우리가 크게 보면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어느 부분을 좀 더 강조하며 드러내느냐 이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그리 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점 차이가 좁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로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이해하고 합의해 나가는 민주주의적인 토론에 대해 좋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박찬선 님이 말씀하신 "민주주의에 대한 전제"를 어느 정도 이해했습니다. 이제 제가 그 전제에 집중해서 논의를 이어가는 것이 도리일 것 같습니다. 박찬선 님이 말씀하시는 민주주의는 "공동체 내에서 권력의 불균형으로 인해 권력자와 피권력자가 나뉘어져 있"을 때 "권력자가 피권력자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권력자는 피권력자를 지향해야한다'인 것 같습니다. 다시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공동체 내에서 최종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러한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는(혹은 그들이 원하는) 선택을 해야한다'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권력자가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지 않는, 혹은 그들이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이 되겠지요. 권력은 불평등하고, 권력자는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를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거기에 대해 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박찬선 님은 '권력이 없기 때문에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까지가 현재 논의된 것이고, 이 토론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차이인 것 같습니다.

제가 대략 정리를 했는데 빠진 부분이나 오해한 부분은 없는지 한 번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에 '불평등한 권력관계 하에서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가'에 대해 다시 논의했으면 하는데 어떠신지요.

박찬선

2009.07.24 16:55:04
*.109.153.239

 


시스템은 만들 수 있겠지요. 만들 필요도 있을 테고요. 단지 그 시스템에 자동적으로 권력자가 종속되는 것을 기대하지는 말자는 것이었지요.

생각해보니 제가 사용한 권력자라는 말은 특정 개인(대통령이나 총리)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권력기관이란 말도 정부, 국회, 국정원등 특정 기관을 얘기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오히려 요안님의 표현을 빌려 권력구조, 권력문화, 권력정신, 권력시스템을 칭하는 말에 가깝다는 생각.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차기 대통령은 민주주의에 관심이 있는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까는 우리 논의에서 제외되겠지요.


그렇다면 이제 요안님의 말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특정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권력자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도록 촛불도 들고, 시위도 하면서 조금씩 권력기관이 민주주의를 학습할 수 있도록 할 필요도 있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만. 진정한 싸움은 시스템VS시스템에서 판가름 나지 않을까? 그렇다면 피권력자들은 제대로 멋있게 붙을 수 있도록 좋은 문화와 정신이 스며든 시스템으로 무장해 놓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


제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런 시스템은 권력자를 단박에 종속시키게 만드는 시스템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민주주의가 시스템화(이것도 참 이상적이지만)되는데 일당백 하는 것일 수는 있겠어요. 권력기관의 시스템과 맞붙어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들을 학습시키는 시스템이니까요. “이런 전망을 가지고” 동일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 사이에서 권력자를 배제한 채 시스템을 갈고 닦는다면 이것 또한 민주주의로 봐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민주주의 논의를 하고 있다는 공통된 생각은 가진 셈이네요.

근데 어떻게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요? 참 어려운 문제네요...

권요안

2009.07.25 11:36:23
*.138.4.18

이제 우리 논의가 거의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요? 민주주의 실현은 참 어렵고도 기나긴 세월이 필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내 주변 소소한 일들, 이를테면 가족, 친구, 직장, 교회 등에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차근차근 실현해 나가야 하는 것인지, 어찌보면 이제부터 해야할 이야기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못다한 이야기들은 앞으로 기회가 닿는대로 얼굴을 마주하고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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