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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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으며 또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겨자씨한 알을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싹이 돋고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겨자씨와 같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어떤 여자가 누룩을 밀가루 서 말 속에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 덩이가 부풀어올랐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런 누룩과 같다."(루가복음서 13:18-21)예 수는 하느님의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한다. 이들은 귀찮고 멸시받는 존재들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 신학자인 존 도미니크 크로산에 의하면겨자는 잡초이다. 그러니까 겨자씨는 자라면 큰 나무가 되는 식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길게 뻗어가는 잡초가 된다.물론 잡초는먹이사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그래서 생태계 유지를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지만, 농사를 짓거나 꽃을 키우는 분들에게는귀찮고 반드시 제거해야 할 말 그대로 잡스러운 식물로밖에는 안 여겨질 것이다. 누룩도 마찬가지다. 성서에서 누룩은 거룩하지 않은 불순물로 여겨진다. 그런데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는 잡초들과 불순물들의 나라라고 말했다. 이는 예수를 따르던 민중(오클로스)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말해준다. 지금도 그렇지만 민중들은결코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들이 아니다. 사회에서 특히 지배계급들이나 그들의 논리를 따르는 보수적인 사람들은 민중을 멸시한다.그들이 보기에 민중들은 배우지 못해서 어리석고, 불만이 많아서 귀찮고, 감정에 치우쳐서 사회질서를 해치는 비윤리적인 사람들이다.하지만 예수가 보기에는 민중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가는 하느님나라의 시민이다. 우리 민중들은 세상의 구조적인악-성서는 이를 사탄, 지옥, 마귀, 악한 영등으로 부른다.-을 직접 경험하는, 그래서 예수가 하느님의 나라, 하늘나라라고 부른 새로운 질서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위 글을 끼적이면서 사회질서를 해친다면서 중형을 언도받은 용산 철거민들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
바우로님 잘 지내시지요?
저는 첫줄에서 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군요.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한다. 이들은 귀찮고 멸시받는 존재들이다.
이 부분에서 겨자씨와 누룩이 왜 귀찮고 멸시받는 존재와 동일시 되는 것인가에 대한 논리적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겨자와 누룩은 삶에서 필요한 부분들이고 사람들에 의해 길러지고 사용되는 것인데요.
예수님의 비유 처음에도 어떤 사람이 밭에 심었다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말이죠.
그리고 민중이라는 개념이 있는가 하는 의문은 예전부터 들었었습니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젊을 땐 모두 진보의 편을 들지만 나이가 먹으면 저절로 보수가 된다고요
젊을땐 가진게 없지만 나이가 들면 기득권이 되어버리니까요
그럼 젊은이만 민중인건가요? 아니면 민중이였다가 민중이 아닌게 되는건가요?
저는 겨자와 누룩에 대한 크로산과 바우로님의 견해와 달라서 답글을 달고 있군요.
겨자가 보잘 것 없는 잡초이고 누룩은 곰팡이에 불과하다는 것에 포인트가 있다기보다는
그것의 끈질기고 강한 생명력과 그것의 번식과 성장으로 인해
처음의 겨자와 누룩만을 두고 보았을 때와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형성한다는 것에
이 비유의 의미가 있지않는가 생각합니다.
잡초와 누룩을 민중으로 비유하셨는데요,
이럴 때 언급되는 민중에 대한 저의 생각은
민중을 너무 이상화 시키면서
실상은 그 누구도 위에서 표현하신 민중에
자발적으로 속하고 싶어하지않는 것에 그 모순이 있습니다.
위에서 정의하신 의미의 민중이 하나님나라의 시민이라면
하나님나라를 두고 또다른 계급투쟁이 일어나겠군요,
민중과 민중이 아닌 자들간의 투쟁 말입니다.
저도 용산 철거민의 중형 언도는 기가 막히는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