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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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7년동안 정든 교회를 떠나, 다시 1년동안 여러 교회를 찾아 방황 했습니다.
그러다가 잘 아는 목사님(?)께서 성공회로 가보라고 소개하셔서, 집 근처의 성공회로 11월경에 옮겼습니다.
일반 개신교 신자로써 예배 형식들이 어색하고, 성호를 긋는 것은 아직까지 못합니다.
관상기도회를 다섯번 가량 참석을 해보았지만 모르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지만 예배 도중 중간 중간 감격이 밀려 옵니다.
처음에 성공회가 일반 개신교 교회라고 해서 의아했습니다.
저의 무지가 여기서 드러났습니다.
여하간에 건전한 개신교 교회로써 교회예전에 충실히 하고 있음을 체험합니다.
청주 복대동 성공회의 오동균 신부님의 추천으로 견진세례를 내년 1월 10일에 받습니다.
12월 24일 예배때 사모님의 강요(?)로 인해, 견진 세례(=입교세례)를 위한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세례명은 "요한"입니다. (아들-룩가, 딸-마르다, 집사람-보류중)
너무나 빨리 진행되는 것같아, 1년 정도 다니는 것을 보고 난 다음 결정하시는 것이 좋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사모님은 신부님이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하시는 것이니, 아멘으로 화답하라고 강요를 하셨습니다.
저도 왠만하면 남에게 밀리지 않는 사람인데, 사모님이 저보다 한 수 위의 내공을 가지져서 그만 작은 모기 목소리로 아멘하고 화답 했습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오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성공회로 옮겼다는 소식에 조금은 의아하시면서, '너 문제있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전화상으로 이야기 하지 말고,
나중에 이야기 하자고는 말씀을 하십니다.
어머니는 카톨릭 계통으로 알고 계십니다.
저도 성공회 대해 무지인데, 일반적인 철저한 감리교 신자의 어머니로서는 얼마나 더 하실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감리교의 원뿌리는 성공회라고 말씀을 드리자, 어머니는 그 정도는 알고 있다고 하시면서 전화를 끊으십니다.
삶의 놀람의 연속입니다.
어머니의 반응은 이미 예상했지만, 가슴이 저밀어 오네요.
언제까지 성공회에 다닐지는 모르겠지만, 다니고 있는 동안에는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공회 교회에 맞게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다시 외워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다는것이 왠지모를 아쉬움있네요. ^^!
그러다가 잘 아는 목사님(?)께서 성공회로 가보라고 소개하셔서, 집 근처의 성공회로 11월경에 옮겼습니다.
일반 개신교 신자로써 예배 형식들이 어색하고, 성호를 긋는 것은 아직까지 못합니다.
관상기도회를 다섯번 가량 참석을 해보았지만 모르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지만 예배 도중 중간 중간 감격이 밀려 옵니다.
처음에 성공회가 일반 개신교 교회라고 해서 의아했습니다.
저의 무지가 여기서 드러났습니다.
여하간에 건전한 개신교 교회로써 교회예전에 충실히 하고 있음을 체험합니다.
청주 복대동 성공회의 오동균 신부님의 추천으로 견진세례를 내년 1월 10일에 받습니다.
12월 24일 예배때 사모님의 강요(?)로 인해, 견진 세례(=입교세례)를 위한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세례명은 "요한"입니다. (아들-룩가, 딸-마르다, 집사람-보류중)
너무나 빨리 진행되는 것같아, 1년 정도 다니는 것을 보고 난 다음 결정하시는 것이 좋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사모님은 신부님이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하시는 것이니, 아멘으로 화답하라고 강요를 하셨습니다.
저도 왠만하면 남에게 밀리지 않는 사람인데, 사모님이 저보다 한 수 위의 내공을 가지져서 그만 작은 모기 목소리로 아멘하고 화답 했습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오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성공회로 옮겼다는 소식에 조금은 의아하시면서, '너 문제있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전화상으로 이야기 하지 말고,
나중에 이야기 하자고는 말씀을 하십니다.
어머니는 카톨릭 계통으로 알고 계십니다.
저도 성공회 대해 무지인데, 일반적인 철저한 감리교 신자의 어머니로서는 얼마나 더 하실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감리교의 원뿌리는 성공회라고 말씀을 드리자, 어머니는 그 정도는 알고 있다고 하시면서 전화를 끊으십니다.
삶의 놀람의 연속입니다.
어머니의 반응은 이미 예상했지만, 가슴이 저밀어 오네요.
언제까지 성공회에 다닐지는 모르겠지만, 다니고 있는 동안에는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공회 교회에 맞게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다시 외워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다는것이 왠지모를 아쉬움있네요. ^^!
새하늘님,
우선, 저는 새하늘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어요.
저도 10여년전에 덕수궁 근처에 있는 성공회 본당에 3달정도 다녔답니다.
그냥 사람들 틈에 묻혀서 다녔어요.
그런데, 제 주변분들의 완강한 반대로 더 다닐 수가 없었답니다.
만일, 지금이라면 어땠을까, 싶어요. 저는 그리 큰 고민을 할 것 같지 않군요.
그러나 지금, 샘터예배공동체를 만나고 나서는 성공회에 대한 미련은 사실, 많이 누그러졌어요.^^
아마, 그때 갈증이 고조되었던 것은, 예배에 대한 목마름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는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갈망이 원초적인 것이 아닐까 싶어요.
축하드립니다. 요한,룩가 형제님! 마르다 자매님!
우선, 저는 새하늘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어요.
저도 10여년전에 덕수궁 근처에 있는 성공회 본당에 3달정도 다녔답니다.
그냥 사람들 틈에 묻혀서 다녔어요.
그런데, 제 주변분들의 완강한 반대로 더 다닐 수가 없었답니다.
만일, 지금이라면 어땠을까, 싶어요. 저는 그리 큰 고민을 할 것 같지 않군요.
그러나 지금, 샘터예배공동체를 만나고 나서는 성공회에 대한 미련은 사실, 많이 누그러졌어요.^^
아마, 그때 갈증이 고조되었던 것은, 예배에 대한 목마름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는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갈망이 원초적인 것이 아닐까 싶어요.
축하드립니다. 요한,룩가 형제님! 마르다 자매님!
그렇습니다. "예배 드리기를 원하는 심정" 그게 바로 기독교적인 어떤 종교심의 발원이지요.
예배가 사적인 의식(儀式)이 아니라 일종의 공동의식이라는 점이 불교 등과는 원초적으로
다른, 큰 차이점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대다수의 교회 담임자들이 공적인 의식(意識)보다는 사적인 의식으로
흐르고 있어요. 교인들을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냥 "(내 휘하에
있는) 내 교인"이라는 것이지요. 그러한 의식이 정말로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견해처럼
교회들이 이미 私立(사립)교회로 전락해 버렸어요. 교회가 마치 담임목사 개인 기업처럼 되어
있어요. 물론 교인들도 담임자가 능력있는 사람(그 능력 여하의 기준은 말씀의 능력이나 교회
운영의 본래적 합리성보다는 오히려 운집 신도수 증가 여부로 판가름 나지요)이라고 생각될
경우 그 분을 거의 신적인 존재로 모시고 있지요. 그리고 그러한 감정과 분위기는 이심전심으로
전 교인에 거의 똑같이 공유되지요. 그러면서 자신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 교인 수가 날로 불어나
게 되면 뭔가 돼가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거기에 소속된 자신의 구원이 확정되기라고 하는 것같
은 그러한 착각에 빠지기가 쉬워요. 일종의 군중심리이거나 아니면 집단의식일 수도 있을 것인데,
사람 마음은 대부분 비슷비슷해요. 특별히 각성하기 전에는 그에 관한 문제점을 절대로 지각하지
못하지요.
이런 모습들은 원래 일반 기업체의 전형적인 양상인데 이와 관련하여 세속 언어로 "'그 사람이
카리스마'가 있다 없다"라는 식으로 표현하지요. 이게 바로 개신교적 병폐의 모습인 것입니다.
물론 모두다는 아니지요. 대세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예배가 사적인 의식(儀式)이 아니라 일종의 공동의식이라는 점이 불교 등과는 원초적으로
다른, 큰 차이점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대다수의 교회 담임자들이 공적인 의식(意識)보다는 사적인 의식으로
흐르고 있어요. 교인들을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냥 "(내 휘하에
있는) 내 교인"이라는 것이지요. 그러한 의식이 정말로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견해처럼
교회들이 이미 私立(사립)교회로 전락해 버렸어요. 교회가 마치 담임목사 개인 기업처럼 되어
있어요. 물론 교인들도 담임자가 능력있는 사람(그 능력 여하의 기준은 말씀의 능력이나 교회
운영의 본래적 합리성보다는 오히려 운집 신도수 증가 여부로 판가름 나지요)이라고 생각될
경우 그 분을 거의 신적인 존재로 모시고 있지요. 그리고 그러한 감정과 분위기는 이심전심으로
전 교인에 거의 똑같이 공유되지요. 그러면서 자신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 교인 수가 날로 불어나
게 되면 뭔가 돼가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거기에 소속된 자신의 구원이 확정되기라고 하는 것같
은 그러한 착각에 빠지기가 쉬워요. 일종의 군중심리이거나 아니면 집단의식일 수도 있을 것인데,
사람 마음은 대부분 비슷비슷해요. 특별히 각성하기 전에는 그에 관한 문제점을 절대로 지각하지
못하지요.
이런 모습들은 원래 일반 기업체의 전형적인 양상인데 이와 관련하여 세속 언어로 "'그 사람이
카리스마'가 있다 없다"라는 식으로 표현하지요. 이게 바로 개신교적 병폐의 모습인 것입니다.
물론 모두다는 아니지요. 대세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음..감리교 신자인 어머님의 성공회에 대한 거부감이 제가 보기에는 어색하군요..저도 친구중에 감리교 신자가 있고, 미국 연합 감리교회에서 목회하시는 감리교 목사님과 전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는데 말입니다. 새하늘님의 말씀대로 성공회는 가톨릭이 아니라 감리교의 원천입니다. 그 실례로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 신부님은 성공회 신부였고 별세할때까지 자신을 성공회 사제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저도 웨슬리 신부님을 산업혁명으로 도시빈민이 많아지는 문제에 대해 성공회가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던 답답한 싣에 민중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고 사회선교를 실천함으로써 성공회에 복음주의 전통을 남긴 분으로 존경하고 있고요. 당연히 감리교에 대해서도 형제교회라는 친밀감을 느끼지, 거부감은 없습니다.
그나저나 견진성사를 받으신다고요..견진성사는 주교님의 안수로 성령을 받음으로써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들을 맺어가는 성사이니 되도록 받으시면 좋겠습니다..물론 결정은 새하늘님이 하실 일이지만요.
그나저나 견진성사를 받으신다고요..견진성사는 주교님의 안수로 성령을 받음으로써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들을 맺어가는 성사이니 되도록 받으시면 좋겠습니다..물론 결정은 새하늘님이 하실 일이지만요.
전에 우리 교회에 계셨던 신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바우로. 고교회이니 저교회이니 광교회이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전례와 성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신앙생활하면 되고, 성서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신앙생활하면 되는 거야.
실제로 한국 성공회는 십자고상, 교회력에 따른 예전색등의 가톨릭적인 전통을 부흥시킨 Oxford 운동에 참여했던 고교회적인 선교사들에 의해 전래된 교회이지만, 성공회 교우들과 사제들의 신앙은 다양합니다. 저처럼 전례에 따른 성찬예배,성만찬, 세례,견진성사등의 성사, 교회력에 따른 예전색, 교회력에 따라 성서말씀이 배열된 성서정과를 통한 영성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사회적 실천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도 있고, 전통에 따른 신앙생활보다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 교인의 정치참여도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진보신당 당원이 된 저처럼 긍정하는 분들도 있고, 교회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성서해석도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은 저처럼 오병이어는 민중들이 먹을 것을 나누어먹은 민중들의 잔치였다고 보는 분들도 있고, 서울교구장이신 김근상 주교님처럼 오병이어는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먹을 것을 나누어 먹게 하심으로써 실천하신 역사적 사건으로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성공회는 고교회적인 전통을 가진 교회라거나 진보적인 교회라는 하나의 색상이 아닌, 관용과 중도(라틴말로 비아메디아)를 추구함으로써 다양한 색상을 가진 무지개같은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앙적인 너그러움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는 성공회의 모습이 근본주의적이고 개인적인 신앙이 강한 한국의 대다수 교회에서는 진보적인 교회라고 인식되는 모양입니다만...
바우로. 고교회이니 저교회이니 광교회이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전례와 성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신앙생활하면 되고, 성서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신앙생활하면 되는 거야.
실제로 한국 성공회는 십자고상, 교회력에 따른 예전색등의 가톨릭적인 전통을 부흥시킨 Oxford 운동에 참여했던 고교회적인 선교사들에 의해 전래된 교회이지만, 성공회 교우들과 사제들의 신앙은 다양합니다. 저처럼 전례에 따른 성찬예배,성만찬, 세례,견진성사등의 성사, 교회력에 따른 예전색, 교회력에 따라 성서말씀이 배열된 성서정과를 통한 영성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사회적 실천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도 있고, 전통에 따른 신앙생활보다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 교인의 정치참여도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진보신당 당원이 된 저처럼 긍정하는 분들도 있고, 교회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성서해석도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은 저처럼 오병이어는 민중들이 먹을 것을 나누어먹은 민중들의 잔치였다고 보는 분들도 있고, 서울교구장이신 김근상 주교님처럼 오병이어는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먹을 것을 나누어 먹게 하심으로써 실천하신 역사적 사건으로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성공회는 고교회적인 전통을 가진 교회라거나 진보적인 교회라는 하나의 색상이 아닌, 관용과 중도(라틴말로 비아메디아)를 추구함으로써 다양한 색상을 가진 무지개같은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앙적인 너그러움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는 성공회의 모습이 근본주의적이고 개인적인 신앙이 강한 한국의 대다수 교회에서는 진보적인 교회라고 인식되는 모양입니다만...
제 조카(남, 35세 학원강사)도 천주교로 옮기고 그곳에서 결혼식도 하고 거기를 다니고 있어요.
모르지요. 과연 조카가 언제까지 성당에 다닐지는.
우리 고향 교회가 감리교회이기 때문에 전형적인 개신교 집안이지요. 그 아이의 말은,
한마디로 언제부터인가 교회들이 왠지 "후루꾸"로 느껴지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한때는 그 아이도 교회에서 보컬 찬양팀 활동도 하고 그랬어요.
모르겠습니다. 당시 그 조카의 결혼 상대자가 성당에 다니던 사람이라는 영향도 있었겠지만,
어떻든 나도 그때 조카애한테 많이 실망했어요. 나는 그저 이렇게 말했지요. "성당이 좋지
않은데...." 라고 말입니다.
조카의 친부모인 형님과 형수께서는 더 걱정이 있으시겠지요.
교회 성장론이니 뭐니 떠들지만 말고, 개신교회들이 우선 전례적인 모습에서부터 새로운 각성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하고 있을 때, 부흥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사람의 몫이 아니라 주님의 몫일 것입니다. 인간의 꾀로 하려해도 절대로 이룰 수 없어요.
한마디로 예배는 "예배" 그 자체이어야 하겠습니다. 예배 외에 다른 목적이 개입되지 말아야 해요.
지금의 개신교 예배에는 사(私)적인 요소들이 너무 짙게 배어 있어요. 그게 문제지요.
"교회 성장론"은 난무하는데, 왜 "예배론"은 아무 말도 없을까요.
교회가 원래 예배하기 위한 장소인데 말입니다. 참으로 패러독스한 현상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