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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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있다.
지구촌 어느 곳에서 또다시 큰 아비규환 사태가 벌어졌다.
어떤 기자는 지진 현장 상황을 보도하기를 "지옥이 있다면, 아마도 저런 모습이 아니겠느냐
하는 느낌이 든다" 라고 전한다.
우리 모두는 "극한상황" 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비극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정신적 쇼크던 육체적 쇼크던, 견디기 힘든건 매마찬가지다.
일정치를 넘는 육체적 고통이 오면 쇼크로 인해 체온이 급감하면서 심장이 멎어 결국 절명할 수가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신속히 (마약주사) 몰핀을 놓아줘야만 절명하는 걸 막을 수 있다.
신약 기록에 보면 초기 기독교 박해시, 가죽을 벗겨 죽이는 것, 톱으로 켜 죽이는 것이 나와 있고,
전승에 의하면 지금의 아르메니아 땅에서 바돌로메가 가죽 벗김을 당했고, 도마는 인도에서 가마솥에서 구워지는
환난을 당하고 순교했다고 한다.
살이 찢겨나가는 그런 극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아직 "인간임"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순간이 올 때 우리 머리에는 무슨 생각, 우리 눈에는 어떤 것이 떠오르게 될까?
삶과 죽음의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인가?
극한 상황에서는 살며 생각한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사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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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
리하르트 쉬트라우스(독 1864~1949),
아이헨도르프의 시에 의한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제4곡 '저녁 노을'
소프라노, 아를린 오제
지휘, 앙드레 프레빈
비엔나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악듣기 주소 : http://blog.paran.com/jong161070371220/34265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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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어느 곳에서 또다시 큰 아비규환 사태가 벌어졌다.
어떤 기자는 지진 현장 상황을 보도하기를 "지옥이 있다면, 아마도 저런 모습이 아니겠느냐
하는 느낌이 든다" 라고 전한다.
우리 모두는 "극한상황" 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비극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정신적 쇼크던 육체적 쇼크던, 견디기 힘든건 매마찬가지다.
일정치를 넘는 육체적 고통이 오면 쇼크로 인해 체온이 급감하면서 심장이 멎어 결국 절명할 수가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신속히 (마약주사) 몰핀을 놓아줘야만 절명하는 걸 막을 수 있다.
신약 기록에 보면 초기 기독교 박해시, 가죽을 벗겨 죽이는 것, 톱으로 켜 죽이는 것이 나와 있고,
전승에 의하면 지금의 아르메니아 땅에서 바돌로메가 가죽 벗김을 당했고, 도마는 인도에서 가마솥에서 구워지는
환난을 당하고 순교했다고 한다.
살이 찢겨나가는 그런 극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아직 "인간임"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순간이 올 때 우리 머리에는 무슨 생각, 우리 눈에는 어떤 것이 떠오르게 될까?
삶과 죽음의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인가?
극한 상황에서는 살며 생각한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사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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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
리하르트 쉬트라우스(독 1864~1949),
아이헨도르프의 시에 의한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제4곡 '저녁 노을'
소프라노, 아를린 오제
지휘, 앙드레 프레빈
비엔나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악듣기 주소 : http://blog.paran.com/jong161070371220/34265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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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네요...
최소한의 인간됨 마저도 앗아가는 극한적 상황...
예전에 일본의 생체실험 부대가 모성애의 한계를 실험한다고 아기와 엄마를 넣어놓고는 서서히 열을 가하면, 끝까지 아기를 지킬것만 같던 어머니가 나중엔 너무 뜨거워서 아이를 깔고 앉더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한계를 비교하며 이야기 하는 것을 들으면서...
너무도 비참한 죽음을 앞에 두고 흐느끼던 고 김선일 씨를 보면서 죽음 앞에서 의연하지 못한 겁장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 이야기를 너무도 자신있게 하는 그 인간이 너무도 잔인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님의 말씀대로...
우리 모두는 "극한상황" 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비극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애통하며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되는 길을 찾을 자격 밖에는 어떠한 자격도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