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돌아온 아이

Views 2348 Votes 1 2013.10.26 0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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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화살 같이 지나갑니다.
시월의 마지막 주말입니다.  추수 시기라 이래 저래 정신없이 보낸 것이 날짜 가는 줄 모르고 보내온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을은 빛나는 은총입니다.  오색단풍과 그져 바라만 보아도 배부른 날들입니다. 일부러 일 하지 않아도 그냥 하루 종일 낙엽처럼 이저 저리 굴러 다녀도 좋은 계절...가을의 절정입니다.

아래의 기도문은 도종환 시인이 초기에 교사로 일하면서 적은 기도문인데 기도문 배경이 이러하더군요.
시골마을 어머님와 이혼하고 웅기를 굽는 아버지 밑에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가난한 아들이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생겨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물건을 훔치다 잡혔는데, 연락받고 가는 도중에 이 아이가 도망을 쳐서 몇 일을 학교에 오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몇 일 만에 어느 친구가 산에서 발견했다고 하면서 그 아이를 찾아 상담실에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 손에 칼로 찢은 자국을 발견한 선생님께서 왜 이렇게 했냐고 물어니 이 아이가 성당에 다녀는데 고해성사 중에 신부님께 네 손이 죄를 짓거든 찍어 버려랴 한 쪽 손없이 천국이 들어가는 것이 더 낫으니라는 말씀이 생각 났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스스로 자해를 했다고 합니다.   몇 일 을 컴컴한 밤에서 혼자서 보낸 그 상처와 아픔을 생각하며 그 상처난 자리에 선생님의 한 쪽 손을 포개어 도종환 선생님이 기도문을 올려 드렸다고 합니다.

가슴깊이 다가오는 기도문입니다.
이 가을 우리 모두도 하나님앞에 각자의 아름다운 기도를 올려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온 아이와 함께

                                                                                                                    -도종환-

지금 당신 앞에 돌아와 무릎 꿇고 올리는

이 아이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달도 없는 밤 가을 숲 속에서 몇 밤을 지새고

다섯 번째 도둑질을 하다 들킨 왼손을

오른손의 칼로 내리긋고

피 흘리며 돌아온 이 아이의 한 손에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제 한 손을 포개어

당신께 올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이 아이가 자라며 원망해 온

남루함과 헐벗음 누추함보다

이 아이의 아비가 진흙에 손을 넣고

대대로 빚어온 붉고 고운 항아리들의 의미가

더욱 값진 것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고

이 아이가 자라며 동경해 온

풍성함과 사치스러움 비어 있는 반짝거림보다

흙에서 건진 것들로 일용할 그릇을 삼는

저 정직한 옹기들의 넉넉함이

더욱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가마 옆에서 평생을 살아오는 이들과

그 이웃들의 가난이 어대서 비롯되었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당신께

이 아이가 원망해 온 것들과 유혹에 빠져온

나날들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계셨을 당신께

또다시 죄의 보속을 비옵는 까닭은

그들을 빼앗김과 짓눌림 한스러움에서

더욱 벗어나지 못하도록 옥죄어 오는 끈끈한 거미줄이

이 땅의 어느 구석에서 움솟는 것인지

그들에게 바르게 이야기하고 참되게 일깨워

제 손에 칼을 긋던 다른 한 손을 들어

결연히 그 어떤 것을 금그어 가야 하는지를

아직 다 깨우쳐 주지 못한 까닭입니다.

자신을 속이며 쉽게쉽게 사는 일보다

흙을 디디고 흙을 만지며 정당하게 노동하는 일이

보람찬 삶임을 뜨겁게 깨닫는 아이가 되도록

바른 삶의 지혜를 불어넣어 주시옵고

제게 맡기신 가난한 이 땅의 많은 아들 딸들도

어떻게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하며

무엇이 우리를 바르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지

우리가 진정 미워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아이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제게 힘을 주시옵고 도와 주시옵소서.

아흔아홉 번 용서하시고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시는 당신 앞에

돌아온 아이와 함께 무릎 꿇고 올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피 흘리며 돌아온 이 아이의 한 손에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제 한 손을 포개어

당신께 올리는 기도를 들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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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옹달샘  -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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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a

2013.10.27 18:05:46
*.100.14.191

달팽이님~ 가을에 마음을 적시는 시를 올려 주셔서 감동입니다.
수확하신 농산물이 팔려 나가는거 보시면서 어떠세요?
수고의소산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지요..
지난 겨울에 가져온 검은콩을 밥에 넣어 먹었는데...맛있어요~
가까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가을은 이민자의 설음을 자극하네요^^
누군가가 나를 위해 한손을 포개어 중보 하실거예요
어쩌면 우리 엄마이실지도..
제 한손도 포개어 기도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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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13.10.28 12:51:25
*.154.137.51

이 기도문을 어느 방송에서 도종환 시인이
직접 낭송해 주셨는데.. 그 깊이가 더해 마음을 울컥하게 하더군요.
오늘부터 감따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리산 산청의 가장 큰 대업 시작되었습니다.
바쁜 가운데서도 일상의 소소함한 기쁨을 잊지 않도록
즐기면서 하루를 생활해 봅니다.
모든 어머니들의 따듯한 손으로 인해
이 세상은 온기를 잃지 않은 것 같네요...

profile

클라라

2013.10.31 21:51:05
*.34.116.82

마음까지 따스해지는 기도네요.
아이 손 위에 따스한 손을 얹고
기도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마치, 주님의 마음처럼 느껴지네요.
저도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애써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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