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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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틸리히는 하나님을 "깊이" 로 이해했다.
그 것은 크신 하나님, 높으신 하나님처럼 하나님을 양적으로, 공간적으로 표현하는 것과 궤를 전혀 달리 하려고 의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언제 어디에라는 개별적인 시공간에 있으면서 시공간적인 제약을 받는 현실적 존재일 수 없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실존"이 아니며, 실존 너머에 있는 "본질" - 우리는 이 것이 하나님이 아닐까 착각하기도 하지만 - 조차도 아니다...
그는 "존재자체" 이다. 그 존재자체는 "無" 로 드러난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그 "존재자체" 는 모든 현실적 존재들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순됨, 또 그 모순됨이 하나님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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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히는 초자연주의적 신관과 자연주의적 신관을 다 거부한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의 기본 신관이랄 수 있는(?) 초월주의적 신관과 기독교에서 배격하는 범신론적 신관을 다 거부한다는 이야기다...
초자연주의적(초월주의적) 신관은 하나님을 인간과는 다른 최상위 계층적 존재로 이해함으로써, "완전한 존재, 최고의 존재" 라는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하나님을 한계적인 "존재"의 차원으로 전락시키면서 또한 인간과는 동떨어진 존재가 되어버리게 만들었고...
자연주의적(범신론적) 신관은 하나님과 자연을 동일시 함으로써, 하나님을 피조물의 차원으로 전락시키는 오류를 범한다...
자연주의적 신관은 어쩔 수 없이 다신론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밖에 없지만, 초자연주의적 신관의 신도 유한성의 범주의 있는 다신론의 한 신일 수 밖에 없어진다...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의 싸움도 어쩌면 초월주의적인 두 신의 싸움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틸리히는 하나님을 우리가 대상으로서 파악할 수 있는 실존적 존재로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신에 대한 틸리히의 이해에 점점 반해간다...
그러면서 한가지 너무 너무 궁금한 것은 틸리히는 이런 관점을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해석해내는가 하는 점이다... 나의 최대 관심사이기도 하고...
흥미진진하다...
첫날처럼님 덕분에 저도 기억 속에서 틸리히를 다시 끄집어 내봅니다...
신학생 시절,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틸리히의 책을 읽으며 홍정수 박사에게 많이 깨졌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