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얼과 가면에 대해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면" 의 역할은 지대하다... (그 가면을 전문용어로 "페르조나" 라고도 이야기 한다...)
가면이 없다면 삶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는 학생으로서, 집에서는 딸로서, 동생에게는 누나로서, 나중에 결혼해서는 아내로서, 자신의 아이에게는 엄마로서, 직장에서는 직원으로서, 혹은 사장으로서의 가면을 써야만 이 세상에서는 삶이 가능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삶은 "가면극"이다...
가면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때로는 그 가면이 우리의 쌩얼을 가려버리고 그 가면이 우리 자신과 동일시 되어버릴 때... 불행이 시작된다...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너무나 엄하며 억압적인 모습을 띠게 되고, 사장들은 직원들에게,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비슷한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대방을 힘들게 만든다...
또한 그러한 삶은 결국은 자신도 행복과는 전혀 관계 없는 고립의 길로 내몰게 된다...
우리의 삶이 연극이며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이 어떤 필요한 역할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라는 깨달음이 있을 때... 그래서 항상 우리 쌩얼과의 접촉을 유지할 수 있는 한에서만 내가 행복하고,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
재벌 총수가 자신이 가진 재산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작은 액수 때문에 자기 형님과 소송을 벌이는 이유가 뭘까? 그냥 단지 그 돈이 아까워서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는 이미 쌩얼을 잃어버려... 재벌 총수가 자신과 동일시 되어 그에게 도전하는 형님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이미 자신의 형님에게 아우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고모부를 죽인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사실은 너무도 불행한 사람들이다...
반면에... 김수환 추기경은 왜 존경을 받고 그가 돌아가셨을 때 왜 그런 국민적인 애도를 받았던 것일까?
그는 추기경이라는 가면이 그 자신이 아님을 알았던 것이고... 그 가면은 자신이 해야 할 어떤 역할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는 자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그는 자기가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약한 자들, 핍박 받는 자들의 옆에서 그의 "쌩얼" 로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어떨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그도 자신의 "位" 를 자신이 해야할 어떤 역할로만 생각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그 "위"를 완전히 망각하시고 사람들과 완전한 쌩얼로 함께 하며 그들을 사랑하시다가... 종국에는 가장 낮은 길... 그 십자가의 길까지 묵묵히 걸어갔던 사람이었다...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자신의 쌩얼에 충실했던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예수를 꼽겠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또한 사장이 직원에게, 어른이 젊은이들에게, 또한 선생님이 학생들어게, 또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직원이 사장에게, 젊은이들이 어른들에게, 또한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삶이라는 "연극" 의 동반자로서 서로의 쌩얼을 드러내며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때...
그때 정말 행복한 세상이 올 거 같다...
그게 천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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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라지요.
쌩얼갖고 살고 싶은 마음은 불쑥 불쑥 떠오르지만
정작은 가면으로 살아야하는 삶이 더 많아
그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다
그러다가 가는 인생.
저도 버나드쇼와 같은 묘비명 남기다 가는게 아닌가
살짝 염려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