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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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예장 통합 총회에서 이단대책위원회가 가톨릭의 이단성에 대해 몇가지 문제는 있으나 "이단"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며, 개신교와는 다른 전통위에 서있는 교회로 보아야 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었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 기독교 관련 인터넷 사이트들에서 갑론을박 말들이 많은데, 가톨릭이 어째서 이단이 아니냐느니 통합측은 정신차리라느니 심지어 가톨릭과 야합하는 통합은 이단이라는 과격한 언사들까지 쏟아져 나오는군요. 통합측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나 일부 통합측 목사들중에서도 그런 말들을 하는 경우가 있으니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합동측 총회에서는 가톨릭에서 영세받고 생활하다가 개신교로 회심한 사람들은 새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황당한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는 가톨릭을 이단 내지는 타종교로 간주하기 때문에 세례의 유효성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아주 강경한 입장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종교개혁자 루터나 칼빈도 가톨릭에서 베푼 영세는 그대로 인정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합동측은 그들보다 더욱 엄격한(?) 개혁신학의 길을 고집하는 것 같습니다. 까탈스럽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 가톨릭조차도 2012년 주교회의에서 "비가톨릭 그리스도교파에서 받은 적법한 세례는 모두 인정한다" 고 결정한 것에 비하면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가톨릭의 교리에 개신교인들이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종할 수 없는 이단 내지는 타종교로 간주하는 극단적인 생각은 교회사와 기독교 신학에 대해 피상적으로 혹은 왜곡된 시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시각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상당히 보편적으로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며, WCC 는 물론 NCCK 가입 교단들까지도 모두 친가톨릭주의자들로 매도당하는 일들이 점점 더 심화될 것 같다는 우려가 많이 듭니다. 나라 돌아가는 꼴도 말이 아닌데, 교회 돌아가는 꼴도 만만찮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서늘한 가을밤이 심히 쓸쓸하게 느껴지네요....
합동측 총신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이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WCC 대책위원회
중앙위원인 문병호 목사는 그의 저서
"교회의 하나됨과 교리의 하나됨"-
WCC의 비성경적, 반교리적 에큐메니즘 비판:
정통 개혁주의의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합니다. :
-WCC는 전 세계 교회의 기구적 단일화를 절대 과제로 삼으며,
이를 위해서는 성경의 진리조차도 일종의 타협거리로 여긴다.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전통의 한 원형에 불과하다고 한다.
-WCC는 정통 삼위일체론과 기독론과 구원론을 부인한다. 삼위일체론에
대한 초대 신경의 고백을 수용하기는 하지만, 본질상 성부만이 하나님이시고
성자와 성령은 각각 성부의 드러나심과 활동의 양상에 불과하다는 양태론적 이해를 드러낸다.
-WCC는 교회의 비가시적인 본질을 무시하고 교리적 차이를 문제 삼지 않고 오직
가시적인 교제만을 편향되게 강조한다. 협의회를 통한 기구적 교제만을 강조할 뿐,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의 영적인 교제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등등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내막과 배경을 살펴본다면, 이들 근본주의자들은 종말에 까지 열려있는
다양한 기독론, 교회론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그 근저에는 그들만이 옳다고 여기는
문자적으로, 사실적으로 절대무오하다는 성경관이 자리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래는 과거 내가 요약해 두었던 성경관에 대한 김기석 목사님의 기고문이다.
성경관
성경을 보는 관점은 사람에 따라, 학자들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신앙인이 성경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관점이 그 사람의 신앙 전반에 대해 거의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래 글은 기독교 사상 2011년 1월호에 실린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님의 "행동하라는 요구"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하는 관점에서 발췌 정리한 글이다. 5번 항에 나오는 내용은 성공회 신학자이자 '예수 세미나'의 일원인 마커스 보그의 저작 "기독교의 심장"을 읽어 보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나의 성경관은 김목사님의 주장과 거의 일치하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의 성경관은 어떠하신지 무척 궁금합니다.
1.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장의 기본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권위때문에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 있지 아니하고, 그 변혁하고 자유하게 하는 힘을 인식하는 데 있다. “하나님 말씀”은 구체적인 경험 속에서 인식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참으로 듣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작용하기 때문이다.(토마스 머튼)
2. 말씀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성경에 ‘들어라’는 말이 넘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들어라 이스라엘!’,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은 들어라.’ 물론 말씀은 외적 감각 기 관인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마음으로 듣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속에서 들끓고 있는 욕망의 말들이 잠잠해져야 한다. 우리 속이 말끔히 비워질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소리가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3. 성경은 모든 때와 장소에 들어맞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성경은 체계로서의 진리가 아니라 이야기로서의 진리를 제시한다. 처음부터 완결된 이야기도 있지만, 오랜 전통을 통해 변화과정을 겪어온 이야기들도 있다. 성경은 후자에 속한다. 성경이 전해주는 이야기 속에는 수 천 년의 역사가 온축되어 있고, 이야기를 전승해 온 사람들의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 그렇기에 성경은 매끈한 텍스트가 아니라 접힌 부분이 많다. 그렇기에 그 해석은 다양하고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 이야기의 어느 부분에 주목하느냐 혹은 어떤 전승 주체의 입장에 공감하느냐에 따라 같은 본문도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으니 말이다.
4. 다양한 해석 가능성이 성경의 권위를 해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은 해석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성경을 삶에 관한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간주한다. 성경을 삶과 역사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이 아니라 처방전(prescription)으로 보는 것이다. 이때 성경은 닫힌 텍스트가 되고 만다.
5. 마커스 보그는 성경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볼 것을 제안하면서 역사적(historical), 은유적(metaphorical), 성례전적(sacramental)이라는 세 개의 형용사를 제시하고 있다. 성경이 고대 이스라엘과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위해 기록된 텍스트라는 의미에서 ‘역사적’이고, ‘문자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뜻에서 ‘은유적’이고, 신성한 것을 매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례전적’이라는 것이다.
6. 성경을 이런 관점에서 읽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이야기가 갖는 힘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자아낸다는 데 있다. 이야기를 듣는 시간, 그 이야기는 과거에 속한 것이 아니라 지금 그 자리에 현전(現前)한다. 과거의 맥락과 현재 우리 삶의 맥락이 만나 새로운 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창조와 출애굽, 십자가와 부활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사건이 된다. 그래서 이야기는 생성이다. 성경에 대한 해석은 이미 있는 의미를 수용하는 것이나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미를 빚어내는 일이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의미를 찾아가는 모험과 도전에 뛰어드는 길이기에 우리가 예기치 못했던 새로운 삶을 체험하는 길이기도 하다. 울면서라도 그 길을 걷는 이들은 하나님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우쿵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말씀하신대로 김기석목사님은 기독교 영성과 문학적 소양이
상당히 깊으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 분의 설교문을 좋아해서 한동안
제 친구들에게 퍼날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좀 희한했던 건 교회다니는 친구들은 별로라 그러고
교회 안 다니는 친구들이 더 좋아하더라구요.^^
아주 오랜만에 우쿵님 덕에 청파교회 홈피에 들어가 봤습니다
몇 편의 설교문을 읽다가 저도 좋아하는 조이스 럽 수녀님의 기도문이 보이길래,
그대로 옮겨봅니다. 특강 준비로 애쓰시는 우쿵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제 영혼의 보호자시여,
오늘 하루 길 가는 저를 인도하소서,
해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주님과, 주님의 땅과, 주님의 온 가족과
관계가 더욱 깊어지게 하소서,
제 안에 주님의 사랑이 강건하여져서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제가
주님의 평화의 임재가 되게 하소서, 아멘.
ㅎㅎㅎ
닥터 케이 님은 세상 편하게 살기는 힘들겠습니다.
말이 안 되는 것들이 눈에 보이니 말입니다.
눈이 밝은 사람들은 피곤할 수밖에 없는 세상인데,
그게 십자가라면 십자가이겠지요.
통합 교단이 그래도 중심을 잃지 않고 있어서 다행이군요.
사실 한국가톨릭도 두 분의 추기경들이 계시긴 한데,
뭔가 답답한 면이 적지 않네요.
주님의 평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