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0:14

조회 수 494 추천 수 0 2024.03.14 20:17:4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55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천년 왕국에 이어서 최후의 심판이 끝나면 사망(θάνατος)과 음부(陰部, ᾅδης)도 끝난다고 합니다. 놀라운 발언입니다. <새번역> 성경은 사망과 지옥이라고 번역했고, NIVdeath and Hades라고 번역했으며, 루터 성경은 der Tot und sein Reich(죽음과 죽음의 나라)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스어 타나토스는 사망, 죽음이라는 뜻이니까 번역에서 큰 어려움이 없으나 문제는 하데스입니다. 우리말 <개역개정>이 선택한 음부라는 단어는 불교 색채가 강합니다. 그것보다는 <새번역>지옥이 더 나아 보입니다. 루터는 죽음의 나라라고 번역했는데, 그 의미로 보면 가장 정확하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죽음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 또는 하늘나라와 대비됩니다. 말하자면 하데스는 하나님이 없는 나라, 또는 죽음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그 죽음의 세력에서 건져내지 못합니다. 죽음은 이미 우리의 실존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나 마치 죽음과 상관없다는 듯이 태평스럽게 일상을 삽니다. 이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긴 합니다. 죽음은 생명과 반대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성령은 생명의 영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며 진리이고 생명 자체입니다. 지옥, 하데스, 또는 스올이라고도 하는 그 죽음의 나라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에서 제외된 곳입니다. 우리가 모두 죽는다는 사실만 생각하면 우리의 운명은 절망적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최후의 심판이 끝나면 그 죽음과 죽음의 나라가 불못에 던져진다고, 즉 더는 세력을 떨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 불못은 둘째 사망입니다. 더는 심판받을 기회도 얻지 못하는 운명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죽음이 없는 세계는 어떨까요? 상상이 갑니까?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다르게 질문합시다. 죽음이 없는 세상은 행복할까요? 사도신경의 마지막 단락은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입니다. 영생은 곧 타나토스와 하데스가 없는 세상입니다. 죽음이 없는 세상이니까 몸의 부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몸의 부활과 영생은 같은 의미입니다. 몸의 부활을 통해서만 우리는 영생에 들어갈 수 있고 영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세상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를 우리는 더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최선은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우리도 그 부활의 선물을 약속받았다는 사실 안으로 수행하듯이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읽기도 이런 수행의 한 과정입니다


[레벨:9]소유와존재

2024.03.15 10:54:41

"그 죽음의 나라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에서 제외된 곳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에서 제외된 곳이라는 표현이 좀 까다롭습니다.

물론 아니지만 언뜻 하나님의 통치가 제외된 곳이 있다는 말이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으로도 보이기도 해서 말입니다.

우리 눈에 십자가의 죽음도 하나님으로 부터의 철저한 유기였고, 그것으로 끝날 것 같았지만

그 안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이 미쳤듯이 

하나님의 통치라는 것이 그 죽음의 자리마저도 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서 이런 의문이 드는것 같습니다.


죽임에서 살림으로의 설교 문에서 "우리의 실제 삶에서 죽임의 길과 살림의 길이 눈에 띄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 죽는 길일 수 있고, 죽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 사는 길일 수 있다." 는 것처럼 우리의 눈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통치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 제가 엉뚱한 내용을 서로 연결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 아직 사고가 유연하지 못해요... 귀엽게 봐주세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4.03.15 20:03:55

소유존재 님이 엉뚱한 내용을 연결한 것도 아니고 사고가 유연하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

신학용어가 가리키는 개념은 어떤 의미로 쓰느냐에 따라서 그 범주가 달라진답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말할 때 세상 모든 것이 그의 창조이기는 하나

세상에 있는 '악'은 그의 창조가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악을 창조한 또 다른 악한 창조자가 있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악의 근원이 무엇이냐를 놓고도 많은 신학 논쟁이 전개되었어요.

십자가의 예수께서는 지옥에까지 내려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사도신경이 말하니까

죽음에도 구원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봐야 하나

죽음 자체는 생명과 반대되는 개념이라서 하나님의 통치에서 제외되었다고 표현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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