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일기(5)

Views 2065 Votes 0 2011.05.02 23:22:34

     앞서 이야기에 이어서 쓰오. 나무를 심으려면 우선 땅을 파야하오. 땅을 파기 전에 장소를 잘 선정해야 할 거요. 그런데 원당 농가 땅은 워낙 나빠서, 사실 나쁘다는 것도 우리의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장소를 정하고 말고도 없소. 그냥 보기에 적당한 곳을 정하는 거요. 어쨌든지 한 시간 이상 땀을 흘리면서 겨우 구덩이를 팠소. 화원 주인아저씨의 설명으로는 우선 물을 70% 정도 채운 다음에 나무를 그 안에 넣고 흙을 덮는 거요. 왜 물을 먼저 부어야 하는지는 물어보지 못해서 모르겠소. 너무 뻔한 질문 같았기 때문이오. 나는 물이 붓기 전에 우선 좋은 흙을 깔아야 했소. 그래서 구덩이를 원래보다 더 크게 판 거요.

     좋은 흙이 무언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그대가 알 거요. 부식토요. 물기도 잘 빠지는 흙이오. 그게 농가 바로 옆 숲에 무진장하게 있소. 그걸 생각하면 기분이 좋소. 그 숲은 작은 계곡으로 되어 있소. 양쪽 언덕의 낙엽이 모두 그곳으로 모이오. 매년 쌓인 낙엽이 썩고 썩어서 나무에 좋은 비료가 되어 있소. 그곳에 들어가서 걸으면 양탄자 위를 걷는 것처럼 폭신한 느낌이 드오. 숲은 별로 크지는 않지만 내가 아무리 갖다 써도 남을 정도는 되오. 오늘 양은 대야로 숲의 흙을 열심히 날랐소. 지난 번 묘목을 심을 때는 그냥 삽으로 떠서 가져오느라 수고만 많았지 성과는 별로 없었는데, 대야를 사용하니 노력한 표시가 났소. 7-8번 정도 떠오니 수북했소. 숲의 흙을 구덩이에 넣을 때마다 내가 들어가 살 집을 마련한 것처럼 흐뭇했소. 흙 색깔이 원래 마당에 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오. 검은 색이오. 손에 들어붙지도 않소. 마치 고급 밀가루로 만든 식빵을 만지는 느낌이 드오.

     적당한 정도로 숲의 흙을 구덩이에 채운 뒤에 물을 충분히 주었소. 이제 모과나무를 구덩이에 묻기만 하면 되오. 나 혼자 들기는 힘들어서 다시 집사람의 도움을 받았소. 나무를 너무 깊게 심어도 안 되고, 너무 얕게 심어도 안 되오. 적당한 깊이로 심어야 하는데, 그 적당한 깊이라는 게 보기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정하기가 쉽지 않소. 그럴 때는 자꾸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소. 나무를 믿고 결정하는 거요. 약간 깊거나 얕아도 자기들이 알아서 살 길을 찾을 거라는 믿음이오. 다 심었소. 잘 자라줘야 할 텐데. 

List of Articles
No. Subject Date Views
2346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42) May 21, 2011 1814
2345 착각하지 말기 May 20, 2011 2560
2344 부러워하지 않기! May 19, 2011 2410
2343 예루살렘 성전 [1] May 18, 2011 2900
2342 스티븐 호킹의 천국 이야기 [4] May 17, 2011 3906
2341 사람에 대한 존중 [1] May 16, 2011 2695
2340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41) [1] May 14, 2011 1773
2339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40) [2] May 13, 2011 1922
2338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39) May 12, 2011 1904
2337 영적 만족과 겸손한 삶 May 11, 2011 2437
2336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38) May 10, 2011 1753
2335 원당일기(7) file [19] May 09, 2011 2787
2334 원당일기(6) file [4] May 07, 2011 2143
2333 소말리아 해적 [3] May 06, 2011 2272
2332 어린이날 [3] May 05, 2011 2419
2331 성찬식 [6] May 04, 2011 2728
2330 오사마 빈 라덴 [3] May 03, 2011 2560
» 원당일기(5) May 02, 2011 2065
2328 원당일기(4) [3] Apr 30, 2011 2402
2327 모종을 산 날 [2] Apr 29, 2011 2424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