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식에 관한 글이 여기 사이트 어딘가에 있소. 긴 글도 있고, 짧은 글도 있을 거요. 그리스도교의 다른 예전도 마찬가지이지만 성찬식도 그걸 대하는 사람의 영적 깊이에 따라서 차이가 크오. 어디 종교적인 예전만이겠소. 세상살이가 다 그렇소. 철이 없을 때는 세상이 밋밋하지만 철이 들면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것과 같소. 그대가 영적으로 철이 들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면 성찬식 앞에서의 느낌이 어떤지를 보시오. 한국 개신교회가 성찬식을 소홀히 대하는 이유는 영적으로 철이 덜 났다는 증거요. 영적으로 철이 난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대도 알 거요. 기회가 되면 나중에 좀더 설명하겠소.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를 잘 보시오. 우리는 빵을 예수님의 몸으로, 포도주를 예수님의 피로 믿소. 빵과 포도주는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핵심 물질이오. 빵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보시오. 아마 아득한 느낌을 알게 될 거요. 포도주도 마찬가지요. 그것은 우주론적인 사건이오. 하나는 고체이고, 다른 하나는 액체요. 서로 다른 형태와 내용이지만 우리 생명의 필수 요소요. 성찬대에 놓인 빵과 포도주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마지막 먹을거리일 수도 있소. 그것을 만지기도 송구스러워할 거요. 그 맛을 느끼기 위해서 집중할 거요. 빵과 포도주의 냄새와 맛이 얼마나 감미로운지 말로 표현하기 힘들 거요. 우리 모두 결국 마지막 먹을거리 앞에 서는 날이 온다오.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순간에 득달같이 달려올 거요. 그런 심정으로 성찬식 앞에서 빵과 포도주를 받으시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요.
지난 주 성찬식에서는 목사님께서 "이 빵과 포도주가 우리에게 마지막 먹을 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을 덧붙인 것을 새롭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나누실때 예수님의 심정은 어떻셨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이제 곧 잡히실 것이고, 사랑하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이며 또 당신에게는 마지막 유월절 식사이니 그 심정이 얼마나 비장하셨을까 하고요, 그리고, 아울러서.. 우리에게도 이런 생애의 마지막 식사시간이 곧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마지막 넘겨지는 물 한 모금, 미음 한 수저가 우리의 마지막 식사가 될 수도 있는, 그런 마지막 식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체 게바라는 사형되기 전에 어느 소녀가 만들어준 땅콩죽을 받아 들고 그랬다지요.
고맙다, 소녀야.
쿠바 혁명을 완수하고 모든 권력과 영예를 뒤로 한채
중남미 민중의 해방을 위해 볼리비아로 떠난 체 게바라.
결국 이곳 오지 마을에서 미국 CIA에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당시 이 마을의 하녀로 일하고 있던 아르마(60세)는
교실 구석에 묶여 있던 체 게바라에게 땅콩죽을 만들어 드렸다.
지상의 마지막 온기를 받아 들며 체 게바라는
쿨럭이는 피기침 사이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라시아스 니냐"(고맙다 소녀야) -La Higuera, Santa Cruz, Bolivia, 2010.
-박노해 사진전에서-
제게, 성찬의 의미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사'입니다.
어제 목사님의 말씀에서 그 의미를 더 또렷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철이 들어간다는 게 제게는 너무 먼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