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일
루디아
어제(5월1일) 주일예배 설교에서 핵심적으로 다뤄진 인물은 루디아다. 빌립보에서 잘 나가는 여성 사업가로 살던 여자였다.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성서가 아무 말이 없지만 우리가 몇 가지는 추정할 수 있다. 이방 여자였다면 당연히 그리스 로마 신전을 드나들면서 종교생활을 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종교적인 것과 완전히 담을 쌓고 세속의 삶에만 기울여졌을지도 모른다. 유대교로 개종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원래 종교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남편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어쨌든지 루디아는 당시 신흥종교인 기독교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루디아의 운명이 달라진 데에는 그녀와 무관해 보이는 사건들의 영향이 크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바울이 빌립보에 온 것이다. 왜 하필 빌립보인가. 만약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과 원만하게 지냈다면 소아시아 지역을 떠날 필요도 없었고, 마게도냐로 올 필요도 없었다. 갈라디아서를 보면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과의 갈등이 아주 심각했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온 감독자들을 가리켜 복음 변절자들이라고 했다.
루디아가 종교적으로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면 바울의 설교를 듣고도 별로 마음의 감동이 없었을 것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함께 나름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루디아는 유대교적 경건생활로 만족할 수 없었고, 나사렛 예수에 대한 바울의 설교에 마음이 움직여서 복음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루디아가 빌립보 교회에서 계속해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을까? 이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없지만, 사도행전에 그 이름이 올라 있는 걸 보면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초기 기독교가 부끄러워할 이름이었다면 그대로 남겨 두지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 역사는 크고 작은 루디아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유지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기적 같은 기독교 역사도
루디아 같은 수많은 분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이루어졌는데
지금의 현실은 대부분의 교회가 영혼의 만족이 아니라
육신의 만족을 위한 광대놀이에 빠져있는 상황이고
일부는 신천지 같은 사교집단에 매몰되어 신음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개독교라 비난받고 있어서
피와 땀과 눈물로 교회를 세우신 여러 루디아님께
두손 모아 용서를 청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