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손님

조회 수 1789 추천 수 0 2016.05.28 21:31:57

오늘 아침 7시 조금 지나서

1층에 내려와 계란말이 식빵을 만들어 먹으면서

잠시 왼편 창문을 통해 녹색으로 가득한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주 이색적인 생명체가 대나무 숲에서 올라와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

저의 눈에 들어와 순간적으로 여기가 지금 어디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낯선 경험은 다 그렇습니다.

쏜살같이 이층으로 올라가서 카메라를 들고 내려와 몇장 찍었습니다.

첫 장면을 보시지요.

IMG_0608.JPG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을 줌으로 당겨 찍은 거라 좀 흐릿하지만,

저 낯선 손님의 자태에 품위가 있어보이지요?

원당에 들어와서 본 몇몇 야생동물이 있습니다.

거의 자기집처럼 드나드는 고양이들은

반려동물이지만 지금은 야생으로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뱀은 딱 세번 봤습니다.

그것도 초창기이고 최근에는 거의 못 봤습니다.

고라니도 몇번 봤습니다.

언젠가는 한낮에 개에게 쫓겨 산에서 내려오는 고라니가

허둥 대면서 동네를 가로질러 가기에

뒤쫓아오던 개를 내가 반대편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내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실을 그 고라니는 모르겠지요.

위 사진의 동물은 처음입니다.

아주 가까이 가서 찍고 싶었지만 인기척을 들으면 달아날 게 뻔해서

가능한 소리를 죽이면서 집 안에서 찍었습니다.

IMG_0604.JPG

10분 정도 저런 자세로 앉아 있었습니다.

도대체 저 녀석이 밤도 아니고 이 아침에

우리집 텃밭까지 내려온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조금 후에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제가 고양이에게 주는 먹이가 목표였습니다.

IMG_0612.JPG

방근 전에 먹이를 먹던 고양이는 어디론가 사라졌네요.

얼마 전부터 고양이들의 행동에 이상한 기색이 엿보였습니다.

평소에는 3-4마리가 모여서 먹이를 주면 곧장 다 먹어치웠는데,

얼마 전부터 늙은 수컷 한 마리만 와서

먹이를 다 먹지도 못하고 사라지곤 했습니다.

저 낯선 손님이 고양이들에게 위협이 되었을까요?

봄이 되어 야생에서 먹을 걸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

우리집에는 그런 사냥을 못하는 늙은 고양이만 오는구나 생각했지요.

또 하나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돼지 앞다리 바베큐의 살점을 발라낸 뼈다귀를

두 번에 걸쳐서 고양이 먹이 그릇에 던져놓았습니다.

밤에 그렇게 했지요.

뼈에 붙어 있는 살점을 고양이들이 먹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근데 아침에 보면 뼈 채 없어진 겁니다.

고양이들은 그 굵은 뼈를 처리할 수 없거든요.

아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생각하니 저 낯선 손님이 처리한 거 같습니다.

누굴까요?

너구리인가요?

앞으로 너구리도 염두에 두고 먹이를 준비해야겠네요.

우리 삶에서 낯선 경험은 소중합니다.

가장 궁극적으로 낯선 경험은 물론 하나님이지요.

모두 5월 마지막 토요일 밤을 따뜻하게 보내시고,

귀한 주일을 맞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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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웃음

2016.05.28 23:02:06

신기하네요.

너구리인것 같습니다.

한번도 본적은 없지만요 ㅎㅎ

한번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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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6.05.29 22:40:39

이름이 참 거시기 하지요?

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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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최용우

2016.05.29 09:50:54

너구리입니다. 고양이의 천적이지요.

목사님의 선행(?) 밥주기를 멈추면 당연히 사라집니다.

사람을 위협하지는 않는데 닭이며 토끼며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이

다 사라지지요. 저도 너구리에게 당한 경험이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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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6.05.29 22:41:27

너구리가 고양이의 천적이라구요?

놀랍고 무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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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캔디

2016.05.29 13:29:37

너구리가 먹이를 찾아 민가까지 나타났네요.

참 신기하고 묘하네요.

멋지게 생기기 까지 ㅎㅎ


동물의 세계에서 약육강식은 생존을 위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그래도 이런모습을 대할때면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수가 없네요.

사람에게 기대어 살아가고 있던 길냥이들이 너구리의 먹이가 되지는 않았는지.

그들의 삶이 어찌되었을지... 살아있기나 한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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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6.05.29 22:42:40

만약 저 너구리가

길냥이를 잡아먹었다면

내가 용서할 수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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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16.05.29 21:51:32

너구리라니까 전 출출할 때 먹는 오동통 너구리가..^^

목사님께서 너구리 식사까지 챙겨주시다 보면 들냥이들은 근처 얼씬도 못할거여요.

천적이라고 하니까요.그렇다고 배고픈 너구리를 안 봤으면 모를까, 안 챙겨 줄수도 없고요.

이런 곤란한 일은 어떻게 처리해야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디에 기준점을 둬야하나...

 

저는 고양이를 키워요. 고양이들은 예민하고 영리하잖아요?

우리 냥이도 다른 통화엔 관심 없다가도 택배아저씨 방문예고 통화는 귀신같이 알아들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동물과의 교감, 충분히 가능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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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6.05.29 22:44:30

나는 길냥이들에게 먹이를 주기는 하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일단 그들이 내는 소리가 별로에요.

늙은 숫놈 고양이의 목소리는 정말 들어주기 힘듭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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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4]또다른세계

2016.05.30 10:46:06

전 너구리를 보면서 생뚱맞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나중에 저 너구리를 따라 대숲 속으로 들어가면 뭔가 신비한 세계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들어서 한참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런데 댓글을 보니... 역시나 생존이 달려있는 현실은 만만치 않네요. 

그래도 목사님 덕분에 같이 창가에 앉아서 재미있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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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6.05.31 09:13:46

매일 아침마다 너구리가 다시 나타날지 눈여겨보는데

저 날 말고는 소식이 없네요.

당일 둘째 딸이 출근하면서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나자

고양이 먹이를 슬쩍하던 너구리가

쏜살같이 대숲 밑으로 숨어버렸습니다.

이 근처에 꿩은 많습니다.

텃밭에 일하러 가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푸드득' 거리면서 참 볼 품 없게 날아가는

꿩을 봅니다.

그나저나 가장 늙은 숫놈 고양이 말고

나머지 고양이가 전혀 눈에 뜨이지 않으니

너구리에게 당한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네요.

[레벨:8]쌀알

2016.06.01 22:34:35

한동안 바쁜 일이 있어서 주일 설교만 겨우 듣다 오랜만에 밀린 묵상 읽고 있는데 재미있는 글이 많이 올라왔네요.
너구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었을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글을 보고ㅠ.ㅠ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더니 고양이 사료를 뺏어먹는다는 내용은 많이 나오는데 잡아먹는다는 말은 없네요ㅋ
너구리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는 사람도 보이고요.
밥이 없어지니 냥이들이 다른 곳으로 밥을 찾아 떠났나봐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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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6.06.01 22:51:46

쌀알 님이 다행스러운 정보를 알려주셨군요.

고양이 밥은 늙은 숫놈 한 마리만 오면서부터

오늘 늦게까지, 또는 저녁까지 남아 있다가

아침에 보면 없어집니다.

다른 고양이들이 밥이 없어서 오지 않는 건 아니에요.

뭔가 사정이 있겠지요.

그렇게 오랫동안 아침마다 내가 주는 먹이를 기다리던 녀석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궁금증이 가시질 않네요.

어쩔 수 없지요.

다시 나타나면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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