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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음’의 영성을 아는 설교자는 성서 텍스트에 몰두한다. 몰두할수록 성서텍스트에서 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방식으로 설교 행위의 존재론적 기쁨을 향유하니, 복 있는 사람이다.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막 4:21). 설교 행위만이 아니라 예술이나 운동, 또는 바둑의 세계도 원리는 비슷하다. 아마추어 바둑 동호인들은 시합이 끝나면 끝이지만 프로 고수들은 시합 후에 복기를 한다. 자신들이 실제로 놓은 수보다 더 많은 수를 거기서 확인하는 것이다.

한 설교자가 존재 지향적 설교를 하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려면 그가 설교 시간에 성서의 세계에 얼마나 몰두하는지를 보면 된다. 성서텍스트의 세계를 밋밋하게 경험한 설교자는 본문에 관해서는 대충 말하고, 회중들의 세상살이에 관해서는 미주알고주알 알뜰하게 챙기는 방식으로 설교한다. 회중들은 일반적으로 그런 설교에 반응한다. 한국교회 설교에서 예화와 간증이 넘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서텍스트에 대한 관점이 상투성에 떨어진 채 상품의 판매 전략에 몰두하는 홈쇼핑 매니저처럼 복음을 포장하고 파는 일에 전력을 기울인다. 이런 방식으로라도 회중들이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좋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시적으로는 신앙적인 열정이 뜨거워지는 것처럼 느끼겠지만 결국에는 영성이 메마르고 만다. 종교적인 처세술만으로는 영적인 만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성서텍스트에 몰두하는 이유는 성서텍스트에서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 발견은 한번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진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다.’(마 13:44). 월터 브루그만의 『텍스트가 설교하게 하라』(성서유니온 선교회 발행)의 추천사에서 윌리엄 윌리몬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직면한 설교의 위기는 수사적인 요인이 아니라 신학적인 요인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평생을 성경 본문을 붙들고 씨름한 브루그만은 아직까지도 성경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는 어린아이처럼 놀라고 사춘기 소년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또한 글을 폭넓게 읽고 다양한 학자들과 수준 높은 대화를 하면서도 언제나 그 어느 것보다도 성경텍스트를 더 우선시한다. ... 그리하여 이 시대의 문화에 길들여진 교회를 부끄럽게 하고,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동원하여 예언자적 말씀을 새롭게 묘사함으로, 우리 시대와 장소에 걸맞은 말씀으로 와 닿게 한다(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