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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의 존재론적 근거는
인간행동의 객관적 분석과의 관련에서 확립되어야 한다.
막스 쉘러와 하르트만은 가치들은 참다운 존재를 가지지 않고
어떤 실체에 붙어 있는것 뿐이라고 가치의 위계를 확립했다.
존재와 가치의 이원론은 권위주의적인 선언으로부터 구별될수 있다.
하나님나라를 윤리에 근거해서 검토하고 있군요.
선이란 사람이 아직도 결정적으로 소유하고 있지 않는것
여전히 실현하려고 노력해야 하는것이다.
선은 그자체안에 존재와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선한것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것은
윤리학 연구의 좋은 출발점을 제공해준다.
칸트에 의하면 고대의 소크라테스 윤리학은 결국 행복주의가 되고 말았는데,
행복주의는 윤리적행위가 그 행위자에 미치는 결과와는 상관없이
선 자체만을 위해서 행해져야 한다는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선이 무엇인지에 대해 요구되는것은 선의기준에 대한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참행복은 덕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고 해서 선이란 개인의 희생이나
강요된 의무는 아닐것같은데,
윤리와 하나님나라와 개인이 어떻게 연결이 될까요?
가치윤리학도 한계가 있다.
저는 요즘 시고 달고 매콤한 맛을 좋아합니다.
존재론적 근거는
가장 좋은 출발점은
선을 탐구하는 것이다.
선은 행복을 추구하며 행복은 덕에 있다.
덕은요? 끝이 없네요..
윤리학의 존재론적 근거는
인간행동의 객관적 분석과의 관련에서 확립되어야 한다.
막스 쉘러와 하르트만은 가치들은 참다운 존재를 가지지 않고
어떤 실체에 붙어 있는것 뿐이라고 가치의 위계를 확립했다.
존재와 가치의 이원론은 권위주의적인 선언으로부터 구별될수 있다.
하나님나라를 윤리에 근거해서 검토하고 있군요.
선이란 사람이 아직도 결정적으로 소유하고 있지 않는것
여전히 실현하려고 노력해야 하는것이다.
선은 그자체안에 존재와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선한것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것은
윤리학 연구의 좋은 출발점을 제공해준다.
칸트에 의하면 고대의 소크라테스 윤리학은 결국 행복주의가 되고 말았는데,
행복주의는 윤리적행위가 그 행위자에 미치는 결과와는 상관없이
선 자체만을 위해서 행해져야 한다는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선이 무엇인지에 대해 요구되는것은 선의기준에 대한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참행복은 덕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고 해서 선이란 개인의 희생이나
강요된 의무는 아닐것같은데,
윤리와 하나님나라와 개인이 어떻게 연결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