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가 뭔지도 몰랐던 저에게 많은 도전을 주시고, 길잡이가 되는 책이었습니다.
제가 여태 해 온 설교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했고, 또 상당부분 스스로 변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변화의 과정을 거쳐가고 있습니다.
많은 점에서 목사님의 생각을 공감하고 있지만, 읽으면서 든 생각은...
'올바른 설교자가 되려면 모든 목회자가 박사 정도의 공부를 해야만 가능할 것 같다.'
였습니다.
물론 목회자가 평생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해야지요. 그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수준 높은 설교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라 할지라도 다 다른 모양으로 지으셨으니까요.
목회자가 아무리 수준 높은 설교를 하려 한다 할지라도 결국 완벽한 설교에는 이를 수 없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결국 불완전한 설교끼리 엎치락 뒤치락 하는 수준의 설교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라고 하는 것은 이 정도의 퀄리티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다만 목사님께서 제시하시는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속해 있는 교단(예장통합)의 많은 목회자들이 단 3년간의 신대원 수업만을 이수하면 목회현장으로 거의 투입이 됩니다.
아마 다른 교단도 이보다 열악했으면 열악했지 더 낫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현실이 이럴진대, 신대원만 마치고 바로 목회현장으로 투입된 일선의 목회자들에게 좀 더 유의미한 기준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기준이 현실에 따라 바뀌고, 수요자에 따라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미 나가 있는 일선의 목회자들에게 좀 더 나은 설교를 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제와 다시 Th.M. 과정이나 Ph.D. 과정을 밟을 수 없는 그들에게, 부교역자로서 살아가기 때문에 시간이 없는 그들에게, 그래서 자신의 설교에 늘 자괴감을 느끼는 그들에게, 그래도 설교가 정말로 설교가 되려면 목숨 걸고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 이것만은 해야 한다고 정말로 최저의 기준을 제시하신다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친절히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성서 텍스트의 근본에 대해 고민하고, 필요한 자료를 참고하라.
2. 조직신학적인 틀 안에서 숲과 나무를 함께 보라.
3. 인문학을 통해 인간을 포함한 피조세계를 이해하라.
4. 이를 총체적으로 종합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설교다.
라는 답을 주신 것이라고 나름 정리해봅니다.
결국 바른 설교를 하겠다는 자세 자체가 중요한 거로군요.
귀한 답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비아에서 하시는 설교공부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작년 11월쯤에요.
창원에서 대구까지 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참석하기가 쉽지만은 않아서 아쉽습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바른 설교까지 해야할 공부가 많은 것 같아서 Th.M. 과정에 입학해서 더 찾아뵙기는 쉽지 않을 것 같네요. 그래도 홈페이지를 통해서 또 기독교사상에 쓰시는 글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Hub-union 님,
두 가지 질문이지요?
1) 설교행위의 수준을 너무 높게 잡은 거 아니냐?
내 글에 겁 먹지 마세요.
신학박사 학위를 공부했다고 해서 설교자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이것은 한국교회의 기본기와 연결되는 이야기에요.
아니면 한국이라는 사회 정서와 연결되기도 하구요.
오늘 한국교회는 근본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지요?
그게 문제에요.
설교자도 근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내가 말하는 설교행위는 그렇게 고상하게 아니랍니다.
첫째는 성서텍스트를 말하자는 것이고,
둘재는 성서텍스트를 해석하자는 것이에요.
이런 것은 개인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많은 공부보다는 최소한 본질에 대한 관심만 있으면 가능한 거에요.
2) 바람직한 설교행위의 대안을 말하라.
첫째는 성서텍스트를 역사비평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것은 좋은 주석서를 보면 해결될 수 있어요.
둘째는 인문학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인간, 삶, 역사에 대한 공부가 없이 성서를 해석할 수 없어요.
그리고 설교를 들어야 할 청중들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셋째는 조직신학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조직신학은 기독교의 형이상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 없이 성서텍스트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답니다.
위 세 가지 공부는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신학생들의 3년 공부가 그렇게 짧은 것도 아니구요.
문제는 이것들을 통합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신대원의 커리큘럼도 좀 바뀌 필요가 있겠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삶에 대한 이해와
텍스트에 대한 해석 능력입니다.
힘을 냅시다.
다비아에서 한달에 한번 설교공부를 하는데,
관심이 있으면 오세요.
알림판에서 그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