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과 한국교회

이 글을 쓰는 지금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아마 태풍 ‘갈매기’의 효과인가 보다.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분명한 실체(reality)로 존재하는 이 바람을 고대 구약성서 시대의 사람들이 ‘영’(루아흐)으로 생각했다니, 그 통찰력이 예사롭지 않다. 그 영은 생명의 힘으로 하나님의 존재방식이다. 오늘 오전에 샘터교회에서 드린 예배도 역시 이 영의 인도를 받은 영적 사건이다. 바람, 영, 하나님, 예배, 교회 공동체는 궁극적 생명의 깊이에서 서로 소통되는 어떤 것들이다. 이런 영적 경험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의 삶을 끌어간다. 이런 점에서 주일공동예배를 드린 주일은 진정한 의미에서 안식이며 자유이다. 특히 예배를 인도한다는 중압감에서 해방된 목사에게 주일 하오는 행복한 순간이다. 바람도 시원하니, 여기서 더 필요한 게 무엇이 있으리오.
이런 행복한 순간에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자청해서 그 수렁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오늘 샘터교회의 점심 식사 시간에 나눈 대화에서 한국교회의 어떤 영적 위기를 다시 한 번 더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런 위기야 필자가 지난 수년간 설교비평 작업을 진행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언급했기에 새삼스러운 게 아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위기에 결정적인 일격을 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분명히 새로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교회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긴 말이 필요 없다. 그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소망교회 장로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장로였지만 이명박 대통령과는 그 강도가 전혀 달랐다. 뉴라이트를 비롯해서 한기총과 대형교회 담임 목사들이 이명박 장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노골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도 정치와 종교를 구분하지 못하는 발언을 해서 구설수에 오를 때가 많았다. 이를테면 서울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발언이 그런 것들이다. 아마 대도시의 성시화 운동에 앞장 서는 목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대통령이야말로 가장 믿음이 좋은 기독교인으로 비쳐질 것이다.
지금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실제로 기독교적인 신앙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인지, 아니면 정치적 야망을 위해서 기독교 신앙을 이용하려는 것인지 판단할 입장이 아니다. 그가 설령 기독교를 이용했다고 해도 그것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다. 사람이 완전하게 순수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가. 그리고 그 이외에 수많은 기독교 정치인들도 그런 정치적 야망과 종교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더 근본적으로는 필자가 알지 못하는 깊이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신앙적 순수성이 자리하고 있을지 모르는 것 아닌가. 물론 필자가 서울을 하나님께, 또는 포항을 하나님께, 같은 신앙적 구호를 입에서 뱉어내는 정치인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말할 게 많지만, 그것도 접어두겠다. 그런 정치신학적인 문제를 거론하기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교회의 운명이 그렇게 한가롭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학자나 경제, 또는 사회학자가 아닌 목사가 정치 현안에 대해서 너무 깊숙이 발언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평소 필자가 취하던 입장이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행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쇠고기 협상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는 할 말이 없다. 나름의 정치적 판단으로 미국과 그런 협정을 맺은 것에 대해서 목사가 뭐라 말할 수 있는가. 이는 곧 작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국과 FTA 협상을 맺은 것에 대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과 비슷하다. 이라크 파병도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한 국가를 운영하는 책임자로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찜찜하지만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이다. 이것을 정신적 자세, 또는 마음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기독교적인 용어로 말하면 그의 영성이다. 개인의 영성이 눈에 보이냐,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생각할 게 하나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 나름의 특성이 있다. 그걸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사람의 향기라 할 수 있다. 여러 냄새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그런 냄새가 난다. 이게 과학적이지 않은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과학적이다. 관상이 공연히 관상이겠는가. 오해는 마시라. 지금 필자가 이명박 대통령의 외모를 말하는 게 결코 아니다. 그리고 그의 고유한 인격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세계관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성으로 나타난다. 세계관과 영성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설명하려면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하니까, 여기서는 그냥 한 마디로만 짚고 넘어가겠다. 세계관과 영성이 일치하는 점은 바로 생명이다. 사람은 각각 생명을 보고 경험하는 깊이가 다르다. 그것이 축적되면서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게 되고, 그것이 기독교에서는 영성으로 나타난다.
지난 몇 달 동안 필자의 눈에 비친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정정당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내가 여기서 어떻게 소상히 말하겠는가. 그럴 능력도 없으니, 그냥 눈에 들어오는 한계 안에서 두 가지만 말하겠다.
첫째, 쇠고기 국면에서 이 대통령은 계속해서 자기변명으로 일관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필자는 협상 자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건 내 능력을 벗어나는 전문적인 과학과 국제정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뻔하게 드러난 문제까지 감추는 데만 급급했다. 미국과의 FTA 협상과 동맹강화를 위해서 이런 졸속 협상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그 표현이야 다른 말로 바꿔도 되지만, 진솔한 자세로 국민들의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걸 감추고, 처음부터 질 좋고 값싼 미국 쇠고기 운운했다. 코미디도 더 이상의 코미디가 없다. 어쩌면 그게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솔직한 내면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 뒤로 그가 촛불 국면을 모면하기 위해서 쏟아낸 말은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 그야말로 필자의 눈에 꼼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비쳤다.
물론 다르게 평가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국내외적 상황을 살펴야 한다고 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난 10년 동안에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좌파(?)세력의 노골적인 국정 발목잡기로 인해서 불거진 문제라고 말이다. 이런 변명은 궁색하게 보일 뿐이다. 그의 국정 지지도가 20% 내외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좌파만이 아니라 우파까지, 현재 정권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이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실망하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필자가 보기에 오늘의 상황은 좌우의 이념 대결이 아니라 국정에 임하는 대통령의 기본적인 태도에 연관된 문제이다.
둘째, 얼마 전부터 느닷없이 매스컴을 장식하기 시작한 봉하마음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청와대의 논란에서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한 나라를 통치하는 정치가라기보다는 권모술수에 능한 정략가처럼 보였다. 정치에 정략이 필요하기는 하나 그것이 비열하게 수행된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당당하지 못함이 여기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오죽했으면, 중앙일보의 한 논설위원(?)조차 청와대를 질책했겠는가. 정확한지 모르겠으나 ‘상처뿐인 승리’라는 말로 비판한 것 같다. 청와대는 계속적으로 익명에 숨어 노 전 대통령을 파렴치한으로 비치게 하는 발언들을 계속 생산해왔다. 이런 문제도 구체적으로는 내가 할 말이 별로 없다. 상식적으로만 본다면 노 전 대통령이 재위 시절에 기록한 정보를 열람할 길이 아직 확보되지 않아 약간의 편법이라 할 사본의 방식으로 가져온 것이 문제가 된 모양이다.
여기서 핵심은 두 가지이다. 사본을 만든 행위가 합법인가 불법인가, 하는 게 하나이고, 이런 논쟁에서 국가기록원을 제쳐두고 청와대가 앞장 서는 게 정당하냐, 하는 게 둘째이다. 첫째 문제는 전임 대통령의 열람권을 사본까지 포함하는지에 대한 것인데, 법제처가 가능하다고 보았다는데, 필자는 이에 관해서 정확하게 말할 입장이 못 된다. 둘째 문제에 관해서는 청와대가 월권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노 전 대통령이 자기가 만든 기록물을 정한 법에 따라서 국가 기록원에 넘겨야 하고, 기록원은 전임 대통령에게 열람권을 확보해주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두고 지난 몇 달간 기록원과 봉하마을 측이, 그리고 청와대와 봉하마을 측이 협상을 계속 해온 것 같다. 국가기록물에 관한 법률이 아직 미비한 관계로 인해서 벌어진 작은 해프닝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했고, 그에게서 전임 대통령의 예우에 맞게 해결한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그 뒤로 묵묵부답에다가 봉하마을 측을 비난하는 청와대 측근들의 발언이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매스컴에 퍼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왜 이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는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필자도 더 거론하지 않겠다.
필자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시골에서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가벼운 글이나 써대는 서생(書生)인 주제에 일국의 대통령에 대해서, 그것도 업무를 시작한지 채 5개월이 안 된 분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판단한다면 경솔하다는 말을 들을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필자는 위에서 거론한 것을 근거로 해서 두 가지 관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평가한다. 첫째, 그의 철학 내지 세계관은 극단적인 통속주의이다. 영어 몰입으로부터 시작해서 대운하계획, 공교육의 황폐화 등등, 그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하나님으로 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의 정책들을 시도하고 있다. 둘째, 이게 사실은 더 중요한 문제일지 모르며 앞에서 이미 지적한 것이지만, 그가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는 태도가 당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에서는 이런 말을 하고 뒤에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인 일들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꼼수’라고 하는데, 바둑에서도 사용되는 이 꼼수는 밝은 수가 아니라 어둠의 수이다. 상대방이 속아야만 통하는 수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정수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세상을 오직 자신이 신봉하는 꼼수로만 읽고 그 방식으로만 살아간다.
지금 필자가 목사의 한계를 벗어나는 발언을 했을지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 개인에 대해서 뭔가 불평을 쏟아냈지만, 이것은 이명박이라는 자연인에 대한 비판이나 염려가 아니라 사실은 한국교회를 향한 연민의 하소연이다. 그의 정치행위에 나타나는 극단적 통속주의와 꼼수주의가 바로 한국교회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염려가 그에게 표출된 것뿐이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옳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지난날 한국의 대형교회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온 힘을 쏟았으며, 이제는 이명박 지키기에 진력하고 있다. 언제까지 한국교회가 이명박 대통령과 한 배를 타고 가려는지. 그렇지 않아도 한국교회가 지난 10년 동안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자칫 이명박 대통령으로 인해서 그 속도가 가속화할지 모르겠다. 주님,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키리에 엘레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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