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에 부쳐


지금 2009년 4월30일 오전 11시이다. 세 시간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 사저를 떠났다. 검찰의 소환에 따른 것이다. 피의자 신분이란다. 죄목이 ‘포괄적 뇌물죄’라고 한다.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죄를 지었으면 전직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응분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노무현에게 그런 죄가 있느냐 하는 건데, 그거야 앞으로 공판 과정과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드러날 것이다.

이번 사건의 단초는 박연차 씨에 대한 세무조사였다. 그 결과 박연차는 세금포탈 등의 불법적 방법으로 비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구속되었고, 그때부터 그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람들에게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박연차의 기업을 세금 조사한 전 국세청장은 출국한 상태이다. 검찰의 주장에 따르면 박연차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돈을 주었는데, 그것이 포괄적 뇌물이라는 것이다. 노무현에게 직접 준 게 아니라 조카와 아들, 그리고 부인에게 주었다고 한다. 조카와 아들에게는 기업 지금으로, 부인에게는 빚을 갚는 자금으로 주었다. 그 돈이 대략 100억 정도 되는 것 같다. 박연차는 검찰에서 그 모든 걸 노무현을 보고 주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노무현이 돈을 달라고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말했는지 아닌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검찰이나 언론의 발표가 그럴 뿐이다. 또 다른 것은 1억짜리 외제 시계를 노무현 부부에게 두 개를 주었고, 청와대 비서관이 판공비를 빼돌려 12억원을 숨겼는데, 그것도 노무현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박연차라는 인물이다. 그가 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는 자기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 검사가 원하는 말을 사실보다 부풀려서 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똑같은 말이라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다르게 표현하기도 한다. 예컨대 정상문 비서관이 노 대통령의 뜻이라고 박연차에게 말했을 때 그것을 다시 확인할 때의 상황에 따라서 그 뉘앙스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어쨌든지 이것에 대한 사실관계는 결국 재판에서 다뤄질 것이고, 나로서는 가타부타 말하기 어렵다.

다만 이런 점은 분명하다. 박연차와 노무현이 가깝게 지낸 게 하루이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박연차는 노무현의 형인 노건평 씨와 가까웠다고 한다. 친구의 동생이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자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동안 박연차는 이런저런 일들로 노무현을 많이 도왔으며, 가족들과 아주 가깝게 지냈을 것이다. 대통령이 된 뒤로도 그런 흉허물이 없는 사적인 관계는 계속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노무현의 실수는 바로 이것이 아니었겠는가. 오랜 전부터 가깝게 지내던 인물과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한 것 말이다. 대표적인 토호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박연차를 내치지 못한 것이다. 형 노건평 씨를 관리하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 아들과 사위는 해외로 보냈지만 형과 형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손을 대지 못했다. 오해는 마시라. 사람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말로 검찰이 주장하는 노무현의 잘못이 가려진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이 늘 공과 사를 완벽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도 잘못이 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어떻게 보면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정도를 걷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안타깝지만 별로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 브리핑을 했다. 형사법에 피의 사실을 밝히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다고 하는데, 법을 다루는 검찰 스스로 그것을 위반하고 있었다. 노무현에게 불법이 발견되었으면 수사를 해서 기소를 하면 된다. 그런데 검찰은 정치인처럼 행동했다. 예컨대 아들이 받고 부인이 받았는데, 노무현이 그 사실을 몰랐겠느냐, 하는 발언도 나온다. 부부 사이에도 말하지 않는 건 많다. 이런 식이라면 법망에 걸려들지 않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지금 노무현이 깨끗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검찰의 수사가 전혀 공정하지도 않다는 말이다. 위에서 말한 이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국세청장을 출국하게 만들고 불러들일 생각도 하지 않으며, 이명박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천신일 씨 사건은 거의 손을 놓고 있다. 지금 이 사건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한국의 검찰은 정치를 하고 있다.

‘포괄적 뇌물죄’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직접 뇌물을 받지는 않았으나 포괄적으로 뇌물을 받은 거나 똑같다는 말이라면, 결국 이현령비현령으로 적용될 개연성이 높다. 이런 식이라면 나에게도 포괄적 뇌물죄에 해당되는 게 참으로 많다. 먼지털이 식으로 접근하면 먼지 나지 않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정치계 인사들은 더 하다. 거의 일년 내도록 노무현 주변 인사들을 조사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런 정도의 흠집이라면 그렇게 심각한 것도 아니다. 아마 드러나지 않은 것도 또 있을지 모른다.

오늘 노무현은 소환되었다. 피의자 신분이란다. 검찰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었는지 수긍이 안 된다. 노무현은 고향 봉하에서 지난 일년 동안 농사를 지면서 고향 살리기에 매진했다. 설령 그가 가까운 박연차에게 호의적으로 물질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실증적으로 불법이 확정되는 게 아니라면 그냥 농사를 지면서 살게 내버려두는 게 당연하다. 방문 조사도 가능한 것 아니었을는지. 지금 해외에 나가 있는 국세정창이 박연차 기업을 세무 조사한 결과를 들고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을 독대 했다고 한다. 그 뒤로 노무현 주변에 대한 조사가 급물살을 탔다. 지금까지 전개되는 이 사건에 정치보복이 개입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목사가 이런 정치적인 현안에 대해서 발언한다는 게 여러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입을 무조건 다무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아서 주제넘게 몇 마디 했다. 저와 생각을 달리 하는 다비안들과 교우들의 이해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아주 개인적인 느낌으로 이 글을 마쳐야겠다. 나는 노무현을 여전히 지지한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양심에 크게 어긋나는 일을 행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검찰이 말하는 내용이 앞으로 사실로 드러나서 그가 사법적 책임을 지는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정치인으로서 노무현에 대한 나의 지지는 현재로서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한국이라는 정치 지형에서 최선을 다 한, 그야말로 풍운아적인 정치인이었다. 부디 이 어려움을 벗어나서 고향 살리는 일에 모범을 보이는 전임 대통령으로 자리를 잡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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