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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는(ㅠ.ㅠ;) 북악산 도전기

Views 1726 Votes 2 2008.11.18 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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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다비안들 중에는 새하늘님, 평민 장로님 등 등산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저는 본격적인 등산보다는 그저 한나절 가벼운 나들이 하는 정도를 좋아합니다.    
경치도 깊은 숲으로 들어가서 만나는 우람하고 신비한 산줄기의 풍광보다는, 사람 사는 동네가 잘 내려다보이는 도시 근교의 경치를 좋아하구요. 산을 찾아서도 세속에 물든 때를 못 벗는 것이지요 ^^*

재작년인가요, 인왕산에 이어 북악산의 등산로가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는 뉴스에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북악산 자락에 청와대가 들어선 이후로 수십년간 일반인에게 출입이 허용되지 않은 지역이 비로소 빗장을 열다니, 내가 기다리던 등산로가 바로 저곳이다, 생각이 들더군요. 창의문에서 삼청공원까지 이어지는 북악산 능선을 걸으면서 바로 눈 아래 펼쳐질 서울 도심을 원 없이 감상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후 저의 북악산 산행 시도는 매번 불발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세 번 씩이나.

첫 번째는, 시작도 전에 딴짓 하다가 실패했습니다. 작년 가을이었던가, 종로에서 볼일을 보고 다음 약속까지 시간이 세 시간쯤 비길래 옳거니! 북악산에 올라야지, 마음먹고 삼청공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그만 중간에 안국동과 북촌마을의 박물관과 골목길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보니 시간을 너무 지체하고 말았습니다. 삼청공원에 도착해 등산로 안내문을 보니 창의문(자하문)까지 가는데 최소한 두시간,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뭐 오늘만 날이겠냐, 다음번을 기약하며 돌아왔지요.

두 번째는, 입장시간을 몰라서 실패했습니다. 한가한 오후를 잡아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삼청공원을 찾았지만, 오후 3시 이후에는 등산로 입장이 허용되지 않더군요. 군인 아저씨들의 통제에 의해 정해진 시간의 입장만 허용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지요. 덕분에 등산을 깔끔하게 마치고 자하문 근처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돌아오리라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아아, 다음엔 꼭 오전에 오리라....

세 번째는 간만에 고등학교 동창과 약속을 잡아서 월요일 오전에 일찌감치 길을 나섰습니다. 배낭 안에 점심 도시락까지 챙겨가지고 말입니다. 그런데 또 실패. 이번에도 말바위 쉼터의 등산로 초입이 굳게 닫혀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운동 나오신 듯한 동네 할아버지가 월요일에는 입장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가르쳐 주시더군요. 낭패스러워하는 우리를 앞에 두고 북악산 등산로의 경치가 얼마나 좋은지를 한참 설명하시더니 한마디 덧붙이시더군요.
“젊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미리 보고 와야지~”  이 양반이 누구 놀리시나?

이왕 나선김에 북한산이든 도봉산이든 가자고 했지만, 첨부터 등산에 별 의욕이 없었던 게으른 친구놈은 얼씨구나 하는 표정으로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하산을 재촉하더군요. 하는 수 없이 와룡공원쪽으로 내려와서 혜화동 근처에서 점심 먹고, 차 마시고 돌아왔습니다. 월요일 오전부터 등산복장의 사내 둘이서 서울 시내를 배회하려니 어찌나 뻘쭘하던지...

그리고 지난 주 화요일, 비로소 한 맺힌(ㅜ.ㅜ;) 일년여간의 도전에 기필코 종지부를 찍으리라, 세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소요시간도, 개방시간도, 요일도 철저히 체크했으니 더 이상의 실패는 없다! 를 외치며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히말라야 설산의 미개척 루트를 오르는 박영석 대장의 비장함에 맞먹는 각오로 말이지요 ^^*

이왕이면 가장 긴 코스를 따라가리라 맘 먹고 홍제동 전철역에서 내려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홍제동 골짜기를 타고 산 중턱까지 이어지는, 재개발을 앞둔 달동네를 지나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다가 바위능선을 타고 가니 인왕산 줄기가 나타났습니다. 왼쪽으로 서울성곽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니 창의문(자하문) 쉼터. 그곳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창의문 안내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입장표를 목에 걸고 본격적으로 북악산 코스에 들어섰습니다.

창의문에서 백악마루(북악산 정상 근처의 쉼터) 까지는 서울성곽을 따라 아주 가파르게 이어지는 계단길이었습니다. 간만에 무리를 하고 있는 종아리는 일찍부터 좀 쉬엄쉬엄 가자고 보채고 있었지만, 바로 아래에서 쉬지도 않고 추적해 오시는 육십대 노부부에게 추월되는 수모를 겪고 싶지는 않아서 죽어라 계단을 올랐습니다. 무슨 노인네들이 그리도 힘들이 좋으신지, 나중엔 완전 좀비에게 쫓기는 기분이더군요. 겨우 정상에 올라 땀을 식히며 종아리를 주무르고 있는데, 지친 기색도 없이 팔팔하신 노부부 자기들끼리 하는 말,
“힘드는감?” “힘은 무슨, 이게 무슨 산이여? 동네 뒷동산이지~”
쩝... 인삼으로 깍두기를 담가 드시는 분들인가 봅니다.

백악마루에서 숙정문을 지나 삼청공원 위쪽의 말바위 쉼터에 이르는 능선 구간은 쉬엄쉬엄 경치를 구경하며 내려오는 환상의 코스였습니다. 멀리 이어진 능선에는 북악 스카이웨이의 팔각정이 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으로는 청와대와 경복궁, 그리고 강북의 도심이, 왼쪽으로는 삼청각과 성북동의 고급 주택가가 손에 잡힐 듯 가깝습니다. 멀리로는 북한산과 수락산, 불암산, 망우산, 용마산, 그리고 낙산, 남산, 인왕산, 금화산 등 사대문을 둘러싼 모든 산들을 둘러볼 수 있었지요. 멀찌감치 인천 계양산과 제가 살고있는 일산의 고봉산 철탑도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가을이 한창 무르익은 산기슭을 따라 울긋불긋한 단풍들이 새롭게 단장한 서울성곽과 멋지게 어우러지는 풍경도 원없이 감상했구요. 천이백만이 모여 사는, 세계적인 도시인 서울의 한가운데에 이렇듯 기가 막힌 산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귀한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네 번만에야 비로소 북악산 등산에 성공한 저는 기분이 좋아서 간만에 교보문고에도 들러 책도 고르고, 종로 근처로 직장을 다니는 친구를 조기 퇴근시켜 저녁까지 함께 먹고 잘 놀다가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북악산과의 악연은 역시 질기더군요. 땀에 젖은 옷을 입은채로 너무 늦게까지 돌아다닌 탓인지, 그날 이후 지독한 목감기에 걸려 일주일동안 고생 하다가 오늘에서야 좀 가라앉았습니다. 아무래도 북악산은 나의 방문이 별로 내키지 않나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햇살 좋은 봄날에 서울이 기지개 켜는 소리 들으러 또 갈겁니다. 그땐 좀 잘 대해주렴, 북악산아~~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도전 끝에 얻은 북악산 사진 몇 장 함께 감상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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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봉

2008.11.18 12:58:35
*.82.136.189

글과 사진이 잘 어울립니다
사진의 구도가 예술입니다
세번째 사진, 브이자를 그린 그림자와 성곽이
잘 어울립니다^^*
덕분에 저는 인문학 강의 광고를 해야했죠^^*
profile

시와그림

2008.11.18 15:25:25
*.109.72.25

북악 스카이웨이,삼청각, 성북동 고급 주택가 등등은
저희 부부가 시내를 나갔다 집에 오는 길이면
일부러 지나가는 코스지요! 자동차로 슈~웅^^
그 동네서 살고 싶다는 내 소박한? 꿈을
선취?시켜주는 희망봉님의 갸륵한 배려지요~ㅋ
보아하니 소풍님도 노련한 등산가는 아닌 듯 싶은데
우리 산 못타는 인간들 끼리
'뒷동산 '등반의 날을 함 가져보죠!
여름에 다비아 속리산행때
저 정말,힘들고 서러워서 엉엉 울 뻔했습니다!
하지만 뭐 소풍님 다녀온 정도면
저도 남부럽지 않게 오를 수 있지 않을 까요?

평민

2008.11.18 17:32:48
*.90.49.136

이런 "난독증" ㅎㅎㅎ"북악산"을 "북한산"으로 ...
우째 사진이 이상타 했더만 ....
지금 부터라도 시작해서 북한산 자락을 날라 다니다보면
북악산은 산이 아닌겨 !!
그리고 사진기 그럴듯 한거 하나 장만하고
조금 기초를 배우면 금상첨화것내요 ....
profile

새하늘

2008.11.18 19:16:03
*.126.124.241

소풍님!
저도 가보지 못한 북악산을 가셨다니, 제 앞길의 선각자 이십니다.^^*

저 멀리 계양산을 보셨다고요, 제가 계양산 산적입니다.
집이 계양산 밑자락이라 계양산을 혼자서 산적처럼 이리저리 수없이 다녔습니다.
산에 대한 막연한 꿈을 꾸기 시작한것이 계양산을 쑤시고 다녔을때 부터 인가 봅니다.
그래서 친근한 산입니다.

그리고 서울의 산 중 수없이 다닌 곳이 우면산입니다.
우면산 밑자락에 예술의 전당에 방송문화원에서 1개월동안 연수를 받았습니다.
점심을 얼른 먹고 나서, 수없이 우면산을 오르락 내리락 했습니다.
덕분에 점심후 강의에는 좀 졸았지요.

이제 서서히 입산을 시작 했으니, 계속해서 많은산을 오르세요.
그러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profile

캔디

2008.11.18 19:36:25
*.129.46.26

정말 눈물나는 도전기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소풍님께 자주 느끼는건데요
싱글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
자유로움과 여유로움과 평화로움...
왕 부럽습니다^^*
profile

모래알

2008.11.18 19:37:14
*.116.154.86

지난 겨울 한국에 갔을 때 북악스카이웨이를 한바퀴 돌았어요.
청와대 뒤쪽으로 해서 성북동(??)인가 그쪽으로 내려왔는데..
소풍 님 덕에 다시한번 자세히 봅니다. 감사!!

인삼으로 깍두기를 만들어 먹으라구요?
거의 실현 불가능한 일이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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