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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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이시지만 기억력도 좋으시고 너무 인상이 좋으신 할머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녹내장이 있으셔서 안약을 넣으시며 치료받으러 다니셨지요.
안압은 10-21 이 정상입니다.
안압이 정상이더라도 녹내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정상범주에 있으면서 녹내장이 생기는 경우를 정상안압 녹내장이라 합니다.
정상안압 녹내장의 경우에는 최대한 안압을 낮은 정상치(10-15, 시야나 시신경 상태에 따라 목표치가 다릅니다)를
유지해주어야만 합니다.
할머님은 12-15를 왔다 갔다 하셨습니다.
15라고 하면 실망과 걱정을 하시고 12라고 하면 너무 좋아하시고...
처음엔 결과가 나온대로 말씀드렸지만 할머님께서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셔서
거짓말로 12라고도 많이 하게 되었었습니다.
한달에 한번만 오셔도 되는데 안압 상태가 궁금하셔서
매주 꼬박꼬박 휠체어를 타고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오셨습니다. 3년여 동안을...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안오시는 겁니다.
처음엔 마음이 많이 안정 되셨는가보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약이 떨어질 때가 넘었는데도 안오시길래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전혀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고 얼굴 빛도 좋으셨던 분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된 날 기분이 정말 이상하고 이런 저런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아무도 모르지만 그래서 어쩔 수 없었지만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줄 알았다면 안압약을 쓰지 않았을 것을..
굳이 안압약을 쓰지 않아도 3년동안은 시력을 잃지 않고 충분히 지낼 수 있었는데.
하루에도 세번씩 꼬박 꼬박 안압약을 넣고 안압이 높을까 전전 긍긍하셨는데
차라리 녹내장 진단을 하지 말아버리고 그냥 정상이라고 해버릴걸.
할머니께서 32년생이셨으니까 작년에 77세.
의사가 질병을 발견하여 치료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할 의무이고
질병을 치료하는 목적은 삶의 질을 높여주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연세가 아주 많으신 분들의 경우 녹내장이 있으니까 무조건 치료를 해야 한다는
학문적인 생각을 버리고 치료를 하지 않을경우 얼마나 있다가 시력을 잃으실 것인가를
대강이라도(정확하게는 알 수 없기 때문에) 판단하여
만약 사시는 날까지(이것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건강상태와 수명등을 고려하여) 시력을 보존하실 수 있다면
녹내장 진단을 하지 않고 그냥 모른척 지나가는 것도 삶의 질을 높여드리는 것 아닐까 하는
의사로서는 말도 안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오실때마다 너무나 말씀도 잘 듣고 제가 시킨대로 너무 잘하시고 너무 인자하셔서
정이 들만큼 들었는데...
오늘따라 그 할머님이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