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민중?

Views 1172 Votes 0 2009.06.05 15: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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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민중신학 연구소를 다녀왔고  어제는 민중신학학회에 다녀왔습니다.

연구소 방문하고 세미나를 참석하면서 민중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민중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이며 어디까지가 민중이며  민중의 의미와 한계는 무엇인가?

또 민중신학은  신학적 보편적 지평에서 어떻게 이야기 될 수 있으며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과 소통과 역동이 가능한 것인가 ?    호기심 사항이 되기도 합니다.

물음이 있고 답변이 있어야 진도를 나갈 수 있을 터인데 

저는 민중이라는 스타트에서 벌써부터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는 막막함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의 대상이 되었던 민중들이 민중의 출발지점이라 할 수 있을진데

그 민중이라는 정체성이 오늘 날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경제적으로 끼니 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극빈층 , 정치적으로  로마의 식민지에서  주권을 잃어 버린 국민

사회적으로 지탄과 억압을 받는 여성과 이방인  ....  역사적 예수의 민중에게는 이런 현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한국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민중일까요 ?

경제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와 88세대들 과 신자유주의에 노출되 버린 경쟁력 없는 농민과  중소기업인

정치적으로 분단현실에서 자주국방을 상실하고 이라크 파병에 끌려 나가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성적 소수자,  이주 노동자,  노숙자 들일까요?


그리고 민중이라는 정체성이 누가 민중일까?로 물었다면 소극적으로  누구는 민중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민중이 아닐까요?  고넬료는요?   오늘 날로 말씀드리면 이명박 대통령은요?

어제 김희헌 교수님께서 에큐메니안에 투고한 민중에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글을 저는 읽었고 보다 명쾌하게

답변을 듣기 위해 오늘 날 민중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는데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을 빌려  '생각하는 씨앗'

이라는 답을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민중은 사유하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유하지 못하는  사람은 민중이 될 수 없다는 이야깁니다.

또한 사유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수준의 학식과 역사의식을 갖춘 지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사유는 꼭 고학력의 지식과 전문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실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사유하는 자들의 결과물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요?


민중은 예수다  예수는 곧 민중이다.  필요충분조건과 등가 속에서 민중이 스스로 구원의 가능성을

타진하는데  과연   민중이라는 정체성이 주체와 객체 자력과 타력의 

 동시성으로 표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목사님이  악한 정권을 민중이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악한 정권은 소수의 엘리트와 부자가

탄생시킨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서민들이 표를 던져서 탄생한 것이랍니다.

악한 정권이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악한 정권을 만들어낸 당사자들도 심판을 받아야 겠지요


저는 이런 모순 속에서  하나님의 배타적 구원의 원리를 새삼스레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민중이 선해서, 의로워서가 아니라   그 삶의 자리에 불쌍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조건없이 구원이

일어나는 사건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중 없는 민중신학이 오히려 민중신학의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민중이라는 정체성이  특정 계층 혹은 상황의  사람들에게 독점되는 것이 아니라  악한자,  매국노,

당의 사람들에게도 열린 가능성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늘오늘

2009.06.05 16:05:52
*.239.101.218

 

전혀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말하자면 ‘민중’과 관련한 제대로 된 논의들을 알지 못하는,,

아 하나 있군요, 막연한 기억 속에.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누가 지식인인가?  누가 이웃인가?  누가 친구인가?

사르트르가 그러했듯, 누구라도 자기 나름의 대답을 할 수 있겠고,

사르트르의 ‘지식인’은 보편적으로 특정될 수 없습니다.

‘이웃’이 그러하고, ‘친구’가 그러하고, ‘민중’이 그러하겠죠.

특정될 수 없는 단어라서, 신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

선과 악, 타락과 구원, 믿음, 사랑, 역사, 보편 등등은 뭔가요?


일종의 깃발이죠.

때론 가난한 자를, 때론 정치적 피지배자를, 때론 소수자를,,

하여, 언제나 보편적인(?) 불편함을 불러일으키고 경계의 대상이 되어 온,,

하지만, 언제나 어떤 방향성을 묻는 질문으로서, 결단으로서, 실천으로서,

배부른 자들의 현학을 비웃으며, 슬픔 가운데 사랑을 질문하는,

우리의 화두입니다.

내릴 수 없는 깃발입니다.

정치 경제 종교 문화, 그것이 ‘누구의 무엇’이냐를 질문케 하는,,


콰미

2009.06.05 16:14:08
*.54.206.24

민중신학이 신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적은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했던건

민중이라는 정체성의 애매모호함을 이야기 했고요   민중을 구원의 주체라기 보다는  대상으로 이야기 했고

민중이라는 정체성이   어떤 기준이나  가치로 독점되지 않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거기다 더하자면 박득훈 목사님께서  다비아의 인문학적 성서읽기의 방법론을 엘리트 주의로 비판하셨는데

모든 진보신학이  접근성에 있어서 엘리트 주의를 표방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민중신학이야말로 학문의 방법론에 있어서  민중성( 평이성?  )을 표방하고 그 신학이 지성안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현장성을 담지 해야 할텐데   제겐  벅찬 과제로 보인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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