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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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制度)
[명사]관습이나 도덕, 법률 따위의 규범이나 사회 구조의 체계
연애는 제도다.
남자친구라는 단어는 ‘남자’라는 명사와 ‘친구’라는 명사가 합쳐진 합성명사이다.
이 말은 ‘친구인데 남자’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남자인데 친구’를 뜻하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이 말은 제도화된 연애의 한 축을 차지하는 특정인을 칭하는 말이다.
그 특정인은 개별주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젠더(gender)를 ‘남성’으로 인식하는 제도 내 역할 분담자이다.
연애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 조건은 ‘좋아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의식적ㆍ무의식적으로 형성해 놓은 ‘좋아함의 내적 조건’들이 일순간 특정인에게 전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투사(投射)됨으로 생기는 환상의 논리요, 존재 사건이다.
그렇기에 좋아함의 내적 조건에 반하는 행위들을 상대방에게서 확인한다 하더라도 좋아함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조차 창조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즉, 특정 조건들을 곰곰이 따져보다가 상대방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현실이 아닌 환상이기에) 좋아함의 내적 근거를 살펴본다면 하나씩 끄집어 낼 수 있다.(논리이기에)
그렇기에 고백은 비참하고 허술하다. 고백의 엄중성은 고백이라는 형식에서 기인할 뿐 고백은 실체적으로 자명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자신에게 발생한 ‘존재사건’에만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을 뿐이다. 좋아함이 존재 사건이라면, 싫어함도 존재 사건이다. 그러니 의지로 붙잡을 수 없는 존재를 가지고와서 ‘내 마음’이라고 내보이고 있으니 어찌 비참하지 않다 할 수 있으랴...
고백은 그렇다고 치자. 그럼 연애는 어찌할꼬.
고백자들은 연애의 유혹을 피할 수가 없다. 이것이 연애의 제도화된 힘이다.
고백의 산을 넘은 당사자들은 이제 ‘사귀자’라는 언술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남친과 여친으로 자리 매김시키며 연인으로서의 관계를 시작하게 된다.
‘사귀다’의 사전적 의미는
[동사]서로 얼굴을 익히고 친하게 지내다
이다. 고로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 일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모든 사람과 사귀고 있다. 또는 사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제도화된 언어로서의 ‘사귀자’는 ‘서로 얼굴을 익히고 친하게 지내자(물론 저변엔 이런 뜻이 깔려 있겠지만)’라는 말보다는 ‘연애라는 제도에 편입되자’라는 뜻에 가깝다.
즉, 남친은, 그리고 여친은 연애라는 제도의 쌍두마차이고, ‘사귀자’는 언술은 연애라는 제도에 편입하자라는 청약이며, ‘연인’은 두 개체가 제도 내 관계를 맺고 있다는 공적 확인이다.
이제 두 사람은 제도 내 개체로서 본인들의 역할을 시작할 것이다. 커플 요금제를 실시하며 자주 통화를 할 것이고 주말에도 만날 것이며, 생일, 공휴일, 연말, 크리스마스에는 당연히 붙어 있는 등등. 때로는 상대방이 제도 내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지 않을 때 제도에 합당한 행동을 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때론 우리 서로 얽매이지 말자고. 쿨하게 살자고 얘기하는 커플들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얽매이지 않음은 연애라는 제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단지 느슨한 관계를 영위하자는 것. 어차피 제도인 만큼 느슨한 관계에 대한 공통의 합의만 있다면)
내가 너무 연애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좋아서 위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또 사람 관계가 어떻게 항상 좋을 수만 있겠느냐.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만나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 너무 연애를 제도라고 몰아세우는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맞는 말일 것이다. 일반 친구라고 항상 만나고 싶어 만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약속 장소에 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다. 친구는 친구라는 이름을 붙여주지 않더라도 친구이지만 연애 내 개체들에겐 남친 또는 여친이란 이름을 붙여주지 않으면 그들은 더 이상 연인이 아니게 된다. 친구라는 관계의 힘은 자체 내 내적 동력에 기인하지만 연인을 지속시키는 힘은
연인이라는 ‘합의’의 기초하고 있다. 즉, 남친이나 여친은 사실 친구일 필요는 없다. 그들은 친구가 아니어도 좋다. 역할 만 충실히 수행한다면.
문제는 이러한 연애 행동들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처음의 ‘존재사건’에 있지 않고, 제도 자체의 구조적인 힘에 있다는 것이다. ‘좋아함’이라는 ‘존재사건’의 무한 확장을 바라보며 시작한 관계가 제도화 된 연애에 편입되면서 처음의 존재사건은 자연 소멸해 버리게 된다는 것.
연애 후 결혼을 결심하는 이유 또한 ‘좋아함’이라는 ‘존재사건’의 증폭을 통한 점화에 기초하기보다 제도 내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한 서로에 대한 보상이요, 제도에 익숙해진 서로가 더 큰 제도로 편입하고자 하는 그 무엇.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그대에게 ‘좋아함’이란 존재 사건이 일어났는가. 그것을 확장하고 싶은가.
잠깐.
그 사건이 소중하다면, 상대방이 진정 당신에게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면.
연애는 아니다.
시대가 바뀌고 지역과 언어가 낯설다 보면
이해 안 되는 것들이 허다하다는 것 이해는 하지만 정말 어렵네요. ㅎㅎ
남자 친구들은 꽤 있는데 정작 연애하는 친구는 없던 딸에게 물었습니다.
is he your boyfriend?
펄쩍 뛰며 하는 말.
no no no.. he is not my boyfriend. he is one of my friends.. guy friend..
요즘 시집 장가 안 가는 자녀들을 둔 제 세대 부모들의 답답한 마음을 혹
"연애가 제도다" 라는 생각을 하시는 찬선님은 아시는지요? ㅎㅎ
요즘 님의 글들이 좀 뱅뱅 돌려서 말하는것 같아
예전에 글들보다 좀 난해하고 복잡한 글들이 많군요...
연애라..
그건 남녀가 둘이 필이 딱 꽂히면 제대로 되지요 ...
그리되면 합의든..환경이든.. 제도든 별 영향을 받질 않지요 ^^*
그리고 말미에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그대에게 ‘좋아함’이란 존재 사건이 일어났는가. 그것을 확장하고 싶은가.
잠깐.
그 사건이 소중하다면, 상대방이 진정 당신에게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면.
연애는 아니다. " 라는 말은 어떠한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지 궁금 하네요..
이것도 비유와 암시가 담겨진 글 인가요?
연애라는 제도 밖의 연애는 없다라는 말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연애라는 제도가 연애, 혹은 제도가 존재사건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조건이 될 수도 있다는 뜻에서 한번 긴 댓글을 남겨봤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것보다는 훨씬 더 강력한 연애의 가능조건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말입니다. 연애는 제도이지만 제도는 탈제도로 운동하는 것으로 저는 읽고 싶군요. 그렇다면 우정의 가능조건도 어떤 제도가 되겠지요.
한가지만 덧붙이자면, 그렇다면 [유니스님께서 언급하신] 연애라는 제도의 바깥은 없지 않을까요?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라 제도가 조건이라면 말이지요.
다시 한번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 생각이 정리되네요.
예리하시네요.
고진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김영민 선생을 통해 고진의 시각을 접했습니다. 고백이 제도일 수 있다면 하물며 연애 또한 제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밀고 나가며 쓴 글입니다.
리토르넬로? 저 철학 잘 몰라요.^^ 철학이든 다른 분야든 ‘내용’은 사실 많이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읽어보셔서 아시겠지만 혹 저의 글이 흥미로울 수는 있어도 깊이는 없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어제 어떤 분이 이런 문자를 보내오셨어요.
‘좋아함의 존재사건이 한순간에 끝나는건 아냐 밉고 좋고가 늘 같이가는게지 그래서 제도 안에 있는거고’
T님을 통해 문자의 내용이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가 되네요.
야구가 생각이 나요. 처음부터 홈런을 칠 수는 없겠지요. 아무리 힘이 좋아도 말이에요. 제도라고 할 수 있는 정형화 된 폼을 몸에 익히게 하는 것이 급선무지요. 그 폼이 몸에 익으면(제도 내 정착) 이제 하나씩 홈런이 나오겠지요? 홈런을 존재사건이라고 해도 괜찮겠지요? 그 다음에는 어때요. 그 홈런치기를 지속시킬 수 있는 자신만의 폼을 개발해 나가겠지요. 교본에 없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폼. 이 사람은 더 이상 제도라고 할 수 있는 정형화된 폼에 얽매이지 않을 테고요. 이것을 영토화의 탈영토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맞게 이해를 한건가요?
제가 미처 보지 못한 시각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홈런치기를 연애하기에 어떻게 접목시켜야 할지 좀 더 고민해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결국 문제는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타일이 있으려면 어떤 반복이 요청될 수 밖에 없지요. 그것이 제도로 고착된다면 [고진의 말마따나] 고백이라는 제도는 내면을 발견하게 했듯이 연애라는 제도가 무엇을 발견하게 하지 않을까요?
어떤 분의 문자가 참으로 인상적이네요.
연애에 아픈 추억이라도?
연애5(戀愛) [명사] 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함.
제도(制度) [명사]관습이나 도덕, 법률 따위의 규범이나 사회 구조의 체계
연애는 제도다 (박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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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함"은 "관습이나 도덕, 법률 따위의 규범이나 사회 구조의 체계"이다."
박찬선님의 말씀이 사전적으로는 이렇게 되나요?
복잡한 해석은 접어두고, 제 경험으로는 연애를 제도처럼 하게 되면 숨쉬기가 힘들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