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초월과 실존의 긴장...

Views 1324 Votes 0 2009.10.26 00:22:23
관련링크 :  
신앙이란 것은 초월과 실존이라는 긴장관계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둘 중에 어느 하나만 말하여 지는 신앙은...

하나는 리얼리티가 없는 관념론으로 빠져버릴 것만 같고,

또 다른 하나는 실존의 한계성 속에서 질식될 것만 같습니다.

초월과 실존이 만나는 지점에서 참된 신앙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일찌기  "色不異空 空不異色"이라고 했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퀄리아

2009.10.26 17:48:20
*.222.66.211

제 짧은 생각으로는 초월도 실존도 아닌, 내재적 원인으로써의 신이 정답이라고 생각됩니다.
"색불이공 공불이색"의 공과 색은 신의 양태와 변용일 뿐이라는 이야기로 보여집니다.

안희철

2009.10.26 19:30:21
*.206.196.122

판넨베르크에 의하면, 초월(Transzendenz)개념의 상대어는 실존이라기보다는 주체(Subjekt)개념입니다. 여기서 주체란 유한한 인간의 "자기 구별"을 위해 요구되는 능력(Unterscheidungsvermögen)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입니다. 즉 인간은 주체로서 유한의 경험을, 즉 타자와 구별되는 자기 인식을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실존이란 용어로 부를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주체로서의 인간이 "동시에" 결국 무한의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초월입니다. 유한 인식이 무한 인식의 출발이겠고, "나"란 주체가 "너"란 타자를 경험하는 것을 초월이라 부를 수 있겠지요. 사고를 통해서든 감각을 통해서든. 이것이 판넨베르크가 설명하는 인간의 존재방식에 대한 대체적인 설명이 아닐까 합니다(TRE, "Transzendenz II"). 참고로, 전에 transzendental님과도 이야기를 나눈 바 있습니다만, 이 용어를 "초월"이란 단어로 번역해도 되는가 하는 문제도 남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칸트나 독일 관념론을 전공하신 분께서.

그래서 제 생각에는, 초월과 실존이 만나는 점에서 신앙이 시작되기도 하겠지만, 실존에 집중하거나 초월로 나아가거나 어느 방식으로든 신앙이 촉발될 여지가 있다고 이해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저는 주변에 그런 "긴장관계"를 갖고 살아가는 분들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있기는 합니다만). 이것은 곧 "개별적"인 것이 아닌 "역사적"인 이해 내에서는 이미 충분히 그런 긴장이 세계에 존재한다고 판단되며,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그 긴장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으로도 어쩌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즉시공, 색즉시색". 결론은 이것이 아닐까요. 이 얘기는 제 것이 아니고 제 사진 스승의 말씀입니다.



첫날처럼

2009.10.27 00:30:04
*.67.83.36

물론 실존이라는 것이 인간 하나 하나가 개별적 단독자인 "주체" 이기 때문에 생기는 필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실존이 있기에 초월이 의미를 가지며, 초월이 있기에 실존이 의미를 가지는 그 지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초월이든 실존이든 "실체" 의 양면이 아닌가 합니다... 

초월만을 말하거나, 실존만을 말하게 된다면 이게 바로 허상이 아닌가 해서요...  

  

첫날처럼

2009.10.27 10:32:16
*.54.79.126

다시 한 번 이야기하면, 퀼리아님 말씀대로 실존이든 초월이든 그냥 그 것 자체로는 허상일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이런 경우 실존도 거짓이고, 초월도 거짓일 수 있다는 거죠...


살아가면서 느껴보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서요...


예수 그리스도가 참 인간이요, 참 하나님이라는 고백도 이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실존과 초월이 만나는 지점을 정확히 잡은 분이라는 이야기가 되겠죠...
 
그러나 여전히 나는 그 괴리감 속에서 실체를 만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평생 그렇게 살다가 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필요한 것이겠죠...
 

시드니

2009.10.27 13:05:04
*.45.80.74

머리에 쥐가 날려구 그래요. ㅋㅋ

첫날처럼

2009.10.27 14:14:15
*.54.79.126

쉽게 말하면, 제가 말하는 초월과 실존이 만나는 지점은 이런 겁니다...  이건 사실 본회퍼의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예전에 오웅진 신부께서 꽃동네를 하실 때 최귀동 할아버지를 보고 충격을 받은 건데... 정신도 그렇게 옳지 않은 분이, 맨발로 다니면서 애들 발 다칠까봐 주위에 떨어져 있는 날카로운 물건들과 병조각을 주우며 다니시던 그 모습이었죠...
 
성자들 중에는 자신들이 먹을 빵을 자신의 굶주린 배에도 불구하고 옆에 사람을 준다든가, 옆의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목숨을 내놓는다든가, 때로는 연약한 어머니가 아이를 위해서 자신을 목숨을 던져서 구해낸다든가 하는 그런 영웅적인 초월의 모습도 있겠으나... 

일상의 사소한 부분들에서 초월과 실존이 만나는 지점들은 존재합니다... 그 스위트 포인트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우리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희철

2009.10.27 19:26:26
*.142.13.114

일상의 사소한 부분들이라면 좀 사소한 단어로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요?
하찮다는 뜻은 아닙니다만, 굳이 초월이니 실존이니 붙일 필요가 있을까 해서요.
그냥, 생각도 하고 행동도 하자, 이정도면 되지 않을런지?
아니면 철학적 논의를 해보자는 뜻이신지... 그런 것이라면 누구의 "초월"인지
그런 용어 정립도 필수인데, 제 머리로는 뭐가 뭔지 모르겠네요.
예수와 그리스도를 동시에 만나야 한다, 뭐 그런 것인가요?
이는 이미 판선생의 주체와 초월 이해에서 납득할만한 신학적 답변이 주어졌다고 봅니다만.

그리스도를 통해서 스윗 포인트로 나아갈 수 있다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혹은 예수는 그리스도다 라는 복음의 사신을 통해서는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리스도를 통해서라... 잘 납득이 안 가는데
부연설명이 가능하실런지요?
아무튼, 어떤 실존적 고민을 지금 하고 계시는 듯 합니다.

첫날처럼

2009.10.28 11:17:29
*.54.79.126

"그냥 생각도 하고 행동도 하자" 라는 식으로 안희철 님이 이해하셨다면, 제가 이야기를 잘못 한 겁니다... 어쩌면 물론 그 말도 맞기도 하구요... 실은 정용섭 목사님과 민영진 목사님의 토론에서 힌트를 얻어서 그간 생각해오던 고민을 한 번 글로 표현해본 것입니다... 

   



첫날처럼

2009.10.28 00:02:54
*.67.83.36

골로새서를 읽으면서 "그리스도" 에 대한 생각이 많았습니다... 첨부터 너무 거창하게 시작하다보니 수습이 안되요... 뭔가 표현은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잘 안되네요...

퀄리아

2009.10.28 10:01:29
*.222.66.211

주체, 타자, 실존, 초월 ...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네요 ....
제 짧은 생각과 지식으로 비춰봤을 때,
첫날처럼 님 글은 굉장히 선(zen style)스타일에 가까운 깨달음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어보이는 듯 합니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니 어려운 듯 보입니다.

위에서 초월이라고 부르는 온전하게 대상과 일치하는 경험이 아마도,
칸트에게서는 인식할 수 없는 '물'로 규정됬고, 후썰에게서는 노에시스-노에마 구조로 설명됬던거 같습니다.

아무튼, 주체를 매개로 한 객체에 대한 사유에 의문을 품은 것이 현대 사상가들에게 와서 인것 같습니다.
주체가 없으면 객체도 없고, 혹 객체가 있다함은 주체를 전제로 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니,
어느쪽이든 다시 주체로 환원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여기에서 개인적인 타자에 대한 생각은 들뢰즈의 타자-구조를 지지합니다. ( 나름의 짧은 들뢰즈이해를 바탕으로 )
쉽게 말해, 타자는 세계를 인식하게 하는 선험적 구조에 불과한, 즉 외연적인 양태(펼쳐진 주름) 입니다.
그리고, 이 타자를 생성하는 잠재성(접힌 주름)을 사유하는 것이  들뢰즈의 사유라고 하더군요.

이런 관점에서, 초월은 거부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제 첫 리플같은 스피노자적 관점이 인정된다고 봅니다.
이미 내재 되어있는 신 ... 인간들 개개의 사유도 이미 신의 양태인 것이니, 따로 초월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안으로(주름 안쪽의 내재면을 따라) 침잠해 들어가야 겠죠.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다보면 타자가 없는 지점, 즉 타자가 생성되는 지점에 이르게 되면,
빛은 눈이되고, 냄새는 코가 된다고 하더군요. ㅎ
이 런 관점에서, 스피노자의 견해처럼 신은 "무한한 것이 무한한 방식으로 무한하게 사유되는 것" 혹은 "잠재성"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괜히 더 복잡해 진 것만 같네요. ㅠ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라깡이라는 사람은 실존을 상상계에 갖힌 편집증적 망상이라고 하더군요.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책에서 이런 표현을 본 것 같습니다.
(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의도입니다. )

첫날처럼

2009.10.28 11:02:17
*.54.79.126

철학에 좀 문외한이라 퀼리아 님의 글이 낯설기는 하지만, 뭔가 좀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초월이 거부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동의가 되구요,,, 사실 제가 철학적 논쟁을 할 깜냥도 못되구요...그냥 느낀 점을 표현하다 보니 대책없이 좀 거창하게 시작해버린 것 같습니다... 암튼 다시 꼼꼼히 더 잘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퀄리아

2009.10.28 11:40:46
*.222.66.211

저도 그럴 깜냥이 안됩니다.
아직도 봐야 될 책과 만나야 될 사유가 많고 체화되지 못한 개념들이 많아서, 
혹시 한달 후에 제 리플을 다시 보게 된다면 부끄러워질 겁니다.
그러니, 꼼꼼히 보실 필요는 없어욤 ^^

다만, 저는 직관에 의존하는 편입니다.
직관을 따라 봤을 때, 초월(어떤 철학자든지 간에)이라는 단어자체에 거부감이 있을 뿐더러,
그 개념도 속으로는 좀 억눌리고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리플 남겨봤습니다.

첫날처럼

2009.10.28 12:24:23
*.54.79.126

저도 사실 초월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온당한가 하는 그런 문제 의식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암튼 관심 감사합니다...
List of Articles
No. Subject Author Date Views
4133 가톨릭대학교에서 공개&무료 인문학강좌를 합니다. 바우로 Oct 28, 2009 1210
4132 로그인이 정용섭 Oct 28, 2009 1555
4131 LiKaF: 한국에서 일한다는 것 [1] Trumpetvine Oct 27, 2009 1290
4130 어라?; [4] 차성훈 Oct 27, 2009 1387
4129 WCC 개최를 반대하는 주장들을 보면서.... [6] 닥터케이 Oct 27, 2009 1541
4128 8. 팔이 빠져버렸어요 [2] 눈사람 Oct 27, 2009 1426
4127 잊혀져가는 풍경 (구멍가게) file 이신일 Oct 27, 2009 1221
» 초월과 실존의 긴장... [13] 첫날처럼 Oct 26, 2009 1324
4125 인내력 테스트~ [1] 잠수토끼 Oct 23, 2009 1740
4124 2009 종교개혁 기념 심포지움으로 초대합니다. 솔가든 Oct 21, 2009 2299
4123 안녕하세요. 마포에서. [10] 정용섭 Oct 21, 2009 1998
4122 잊혀져가는 풍경 (구멍가게) file 이신일 Oct 21, 2009 10203
4121 설교 강좌에 다녀왔습니다~ 파란혜성 Oct 20, 2009 1210
4120 7. 젖을 떼려는 엄마에게 강력 저항하다 [2] 눈사람 Oct 20, 2009 1144
4119 울산에서 교회를 찾습니다. [2] 황소걸음 Oct 20, 2009 1872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