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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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마치 내 알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고 또 나누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이렇게 글을 남겨봅니다.
요즘 하루하루를 살면서 참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모든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요.
여전히 우리에게 개방되어있고 우리에게 희망이 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다림은 한 인간으로서
이 시대를 발판삼고 있는 자에게 큰 버팀목이 됨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너무나 괴롭기도 합니다.
내가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는 현실의 터전 가운데 한 종교집단의 이야기로만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위한 누구의 구상물인지 모를 이념들로 사람들을 얽매며 서로를 향해 총대를 겨누게 하는 이 현실이
오늘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픔과 슬픔이 되어 돌아옵니다.
"하나님 어디에 숨어 계시는지요? 당신의 백성들이 눈물짓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도라는 것일까요? 오늘도 이렇게 한탄해 봅니다.
하나님의 나라소식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 이것은 축복과 아픔을 함께 담고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인가 봅니다.
그 가운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들고 일어나서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하는 건가요? 아님 한 가수의 노래처럼
귀를 막고 어둠 속에서 세상을 등지고 외톨이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이런 물음은 저에게 계속해서 다가와 내 머리를 두드리는 친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생각 속에 산다는 것, 이전에는 몰랐던 행복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여호와 샬롬.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고 또 나누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이렇게 글을 남겨봅니다.
요즘 하루하루를 살면서 참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모든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요.
여전히 우리에게 개방되어있고 우리에게 희망이 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다림은 한 인간으로서
이 시대를 발판삼고 있는 자에게 큰 버팀목이 됨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너무나 괴롭기도 합니다.
내가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는 현실의 터전 가운데 한 종교집단의 이야기로만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위한 누구의 구상물인지 모를 이념들로 사람들을 얽매며 서로를 향해 총대를 겨누게 하는 이 현실이
오늘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픔과 슬픔이 되어 돌아옵니다.
"하나님 어디에 숨어 계시는지요? 당신의 백성들이 눈물짓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도라는 것일까요? 오늘도 이렇게 한탄해 봅니다.
하나님의 나라소식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 이것은 축복과 아픔을 함께 담고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인가 봅니다.
그 가운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들고 일어나서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하는 건가요? 아님 한 가수의 노래처럼
귀를 막고 어둠 속에서 세상을 등지고 외톨이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이런 물음은 저에게 계속해서 다가와 내 머리를 두드리는 친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생각 속에 산다는 것, 이전에는 몰랐던 행복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여호와 샬롬.
방랑자님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특히 어머니와의 대화 가운데서 말이죠.
어머니는 당신이 교회에서 교육받으신데로 저에게 이야기하시며 저의 물음에 대답하셨죠.
그 안에 있는 권위주의와 잘못된 천국사상들의 파편들......
이런 것들이 어머니의 삶을 왜곡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나 속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차라리 이런 것들을 몰랐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어머니와의 대화 가운데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눈물짓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와 저 사이에 남겨진 숙제가 바로 한국이란 터전에 남겨진 우리들의 숙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는 당신이 교회에서 교육받으신데로 저에게 이야기하시며 저의 물음에 대답하셨죠.
그 안에 있는 권위주의와 잘못된 천국사상들의 파편들......
이런 것들이 어머니의 삶을 왜곡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나 속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차라리 이런 것들을 몰랐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어머니와의 대화 가운데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눈물짓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와 저 사이에 남겨진 숙제가 바로 한국이란 터전에 남겨진 우리들의 숙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전 차라리 한번도 예수님에 대해 들어본적 없었으면 좋았겠다 싶을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들은 하지도 않는 고민을 가지고 씨름할 필요는 없었을 거 아닌가 하고요
하지만 이곳 다비아에서 전 희망의 불씨를 보았습니다.
아직은 여전히 세상적이고 속물 근성에 육의 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전 처럼 한없이
자책하고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날마다 조금씩 나아질거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두렵고 떨리지만 언젠가 종말에 단독으로 절대자를 대면하는 상상을 하며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그렇게 살아 가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