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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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를 받느라 언니가 머리를 밀었습니다.
독한 항암제로 어차피 머리카락이 다 빠지기 때문에
빠지기 전에 밀었는데도 이미 앞부분엔 듬성듬성 빠져버려
그나마 빡빡머리도 없습니다.
어제 병원식당에서 모자를 쓰고 밥을 먹던
언니가 덥다며 모자를 휙 벗어제꼈습니다.
허연 머리통이 드러나자
지나던 사람이 흠칫 놀라는 눈치였어요.
언니와 저는 깔깔 웃었습니다.
박박머리가 볼수록 웃겨서요.
비구니같기도 하고 ...,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조지훈의 시 <승무>가 연상되면서 처연한 슬픔도 올라오구요.
그런데 볼수록 언니 머리통이 예쁜 거 있죠?
이마에서 정수리로 올라가는 선이나 동그란 뒤통수,
또 거기서 뒷목으로 내려오는 곡선이 얼마나 이쁜지..
"언니, 머리통이 되게 이쁜 거 알아?"
"그러니? 난 여태 몰랐는데....
머리를 밀어 준 사람이 하두 감탄하길레
위로하느라 그러는 줄 알았더니 정말인가 봐.."
앞으로 머리가 자라더라도 꼭 짧은 숏커트로
그 이쁜 머리통을 살리라고 당부했습니다.
두 번째 항암주사를 맞느라 침대에 누워 잠든
언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눈가에 짙게 드리운 다크써클이 56년 인생의
그늘처럼 무겁게 내려앉아 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느님께 마구 대들었다는..,
또 그만큼 싸안아주시는 사랑도 경험한다는 언니의 고백을 들으면서
이 병상기간이 크나큰 은총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길 기도합니다.
머리카락에 덮여있었다면 몰랐을,
박박 밀었기 때문에 드러난 예쁜 머리통처럼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했을
감추어진 신비와 감사를,
우리가 얼마나 큰 사랑에 쌓여있는가를,
확연히 볼 수 있는 영혼의 눈이 밝아지기를...
그렇게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