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딸애의 편지^^

Views 2172 Votes 0 2013.04.04 12: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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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엄마 글 잘 읽었어.

 
누구나 존재의 무게가 같다는 말이 와닿고...

 
또 갈수록, 누군가의/뭔가의 가치 같은건 우리가 결정할 게 아니란 느낌이 들어.

 
우린 우리가 편한대로, 특히 '언어'라는 도구로 세상을 토막내고 썰어대고...

 
어렸을때부터 느꼈던 건데 인생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기는 굉장히 힘든 것 같아.

 
'인간'이라는 관점에 단단히 묶여있고... '인간'의 두려움, 갈망, 이런 것들로 

 
세상을 굴절시켜 보는게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식상태인 것 같아.

 
우리가 매일 쓰는 언어에도 이런 고정관념이 녹아있고.

 
난 그런게 너무 너무 답답해.

 

 
엄마는 노자 도덕경을 통해, 목사님들을 통해... 이런 이치를 배우고...

 
나는 혼자 침묵속? :-)에서 같은 걸 깨닫는 것 같아.

 
신기하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결국 의식이 도달하는 장소는 같으니...

 

 
 
뭘 하면서 살까... 나란 인간은... 뭐 이런 생각은 하면 할수록 좋은 것 같아.

 
내 경우에는... 기억할 수 있는 한 평생 그 질문을 해오니 조금씩 조금씩 더 밝게, 

 
점점 드러나는 햇빛처럼 그 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아직 스물세살이긴 하지만...

 
그래도 전에는 우울한 시기가 오면 그냥 무조건 절망스럽기만 했는데,

 
몇 번 겪어보니까 느껴지는게, 내가 이번에 겪는 절망이 깊을수록 그 다음에 오는

 
깨달음? 은 더 크고 밝더라고. 그래서 이젠 아무리 우울해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

 
전에 우리도 이야기했듯이 에너지는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게 자연의 이치니까.

 

 
그리고 가장 막막한 좌절 (우울증, 무력감)을 겪고 나서 다시 설 때 확실히 느끼는게,

 
내 의지로 모든 걸 이루려고 (혹은 control하려고) 하면 그건 세상과 어우러져 사는 게 아니라는 거야.

 
그런데 우리는 (특히 한국의 교육방식) 어렸을때부터 자기(ego)만의 성공을 위해,

 
이게 내 리듬에 맞든 어떻든 막무가내로 될때까지 밀어부치라고 배우는 것 같아.

 
그렇지만 가장 깊고 흔들리지 않는 평온을 느낄 때는, '내가' 힘 쓸 수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있고 당연히 그래야하지만, 내가 온 힘을 다해, 나의 의지로 무언가 하는 것이 전체의 한 20%라면, 

 
나머지 80%는 세상, 우주, 또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느낄때야.

 

 
몇 주 전에는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그 날은 왠지 정말 '무아지경'이랄까?

 
사람으로서의 내 identity도 잊을 정도로, 그냥 내 팔, 손, 손가락 끝이 피아노의 건반에 닿는 그

 
느낌에만 완전히 집중, 몰두가 되더라고. 내 모든 정신이.

 
그러다가 깨달은게, 나는 지금까지 피아노를 '내가 친다' 라고만 생각해왔던거야.

 
내가, 나에게 얼마나 실력이 있는가를 보이기 위해, 얼마나의 힘을 어떻게 가하고,

 
악기를 어떻게 '다루는가', 얼마만큼의 통제력이 있는가만을 누군가한테 증명해 보여야 할 것 같은

 
마음의 상태로 거기에만 신경을 팔아서, 연주하면서 완전히 즐거웠던 적이 없었어. 

 
(5th form에 그 선생님을 만나 무의식적으로는 어느정도 즐거움을 깨달았지만...

 
선생님의 지적이나 지켜보는 눈에 가장 신경이 쏠려서 대부분은 조마조마해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증명해 보이려는 마음으로 쳤지... 그러니까 부자연스럽고, 팔은 아프고...)

 
그런데 이 날은 내 의지라기보다 피아노가 울리는 느낌, 건반과 내 손가락이 어우러지는 느낌에

 
'올인'하다보니까 느껴졌어. 내가 '가하는'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거야.

 
피아노의 반동, 그러니까 피아노가 받아치지 않으면,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고, 아름다운 소리는

 
더더욱 낼 수 없다는 거. 

 
내 존재라는 에너지? 힘이 피아노라는 에너지와 어우러진 것 같은 느낌이었어.

 
그리고 나서 일기를 쓰는데, 아무래도 산다는 건 이것과 마찬가지인것 같은거야.

 
내가 가진 힘,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나라는 에너지,를 내 주변의, 나머지 세상의 에너지와

 
어우려트리는것... 매일 매일 기억하기도 힘들고 실천하기도 힘들지만 (조깅을 할 때는 이게 더 

 
쉽게 되더라) 이게 진짜로 '사는' 방법 같아.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이런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다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 

 
'내 것' 이라는 개념을 버리는 것.

 

 
암튼 말로 하면 거창해지기만하는데,

 
우선 친구들과 대화하는 방식이라던가.. 부터 바꾸고 있어.

 
'내'가 '너'와 서로 말을 한다, 이런 태도가 아니라, 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이 순간, 이 사람을 억지로 끼워맞추는게 아니라, 

 
그리고 상대가 무슨 말을 하던지 '나'를 중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순간에, 그 사람의 에너지에 완전히 몰입한달까? 

 

 

 
며칠 전 윌을 만나서 그렇게 대화했거든? 

 
'나'를 의식하지 않고, 내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윌과 나누고 싶은 생각들만에 집중하면서,

 
머리통을 열고, 가슴팍도 연 느낌으로, 내 안에서 막 빛 같은, 물 같은 뭔가가 흘러나오는

 
감각이 들면서 있는 그대로 소통을 했어.

 
그러니까 윌의 반응도 놀라울 정도로 더 밝고, 더 enthusiastic 한게 눈에 띄게 보이고,

 
그날 저녁에 각자 집에 돌아가서는 다음에 다시 만날 날짜를 정하면서

 
서로 오늘 진짜 재미있었다고 문자를 보냈어. 

 
우리는 보통 만나면 심각한 분위기에서 심각한 이야기만 하다 헤어질 때가 많은데 (그리고

 
대부분 윌이 내 말을 들어주는 것 같은 느낌) 이번엔 진짜 서로 에너지를 융합?

 
한 것처럼, 거기서 나온 시너지가 더욱 기운을 북돋아준 것 같아.

 

 
그러니까...

 
엄마가 지금 하는 질문과 같은 것들을 나도 항상 하는데, 

 
무조건 고민만 하기보단, 삶에 대한 고정관념, 모든 것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내 존재를 열고, 일단은 일상의 작은 무언가 하나라도, 아무런 필터도 없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나'/'나의 길'에 대한 깨우침/확신/guidance는 저절로 오는 것 같아.

 
예를 들자면... 산책을 하거나 조깅을 할 때.

 
항상 다니는 길이라도, '보이는 것'보다 '느껴지는 것'(바람, 온도, 습도, 하늘의 색, 

 
햇살이 나는 정도, 등) 에 정신을 집중하면 항상, 매 순간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아.

 
꼭 강 물이 내 등 뒤에서 몸을 통해 콸콸 흘러서 내가 새로워지는 느낌이야.

 

 
전에 시공간에 대한 비디오에서 본 이야기인데, 우리는 매일 매일 우리 몸의 바깥에 있는 것들과

 
원자? atom 을 주고받는다고. 마시는 물, 먹는 음식, 숨쉬는 공기, 주의의 색깔, 모든 것과.

 
그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계속 바뀌고 있고, 새로워지고 있는 셈이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생각'으로써만 질문을 하고, 생각으로써 답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엄마가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자주 그렇거든)

 
아무 생각 없이 한 번 온몸을 열고 세상을 몸을 통해 흐르게 하면 

 
(엄마가 해준, 명상을 할 때, 잡생각이 들면 들게 하고, 

 
지나가게 하면 지나가게 하라고 하는 말을 항상 기억해. 이것과 비슷한 과정인 것 같아)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내 갈 길에 놓이게 되는 것 같아.

 
바람이 슬슬 등을 떠밀어서 걸었는데 어느샌가 내 갈 길에 서 있었다? 뭐 이런 느낌... 

 
(나는 아직 큰소리 칠 입장은 못 되지만)

 

 
그리고 우선 '하나'가 되면, 무엇보다 너무너무 즐거워.

 
이럴때 깨달은 건데, 정말로 걱정하고, 스트레스 받아서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더라고.

 
내가 정말로 즐거워야지 글도 잘 써지고, 집중도 더 잘 되고, 다른 사람이랑 소통도 잘 되고.

 

 

 
인간으로서의 나는 이렇게 작은데. 모든걸 짊어질수는 없잖아?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런데 자아과잉상태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인생으로 '자기', 그리고 자기의 힘으로만 꽉 채우려고 아등바등하는 것 같아.

 
그럴수록 자연에서는 멀어지는 것 같아.

 

 

 
우린 그렇게 살지 맙시다!!

 

 

 
오홍홍

 

 
엄마 딸 진짜 말 많지?

 
게다가... 지금 한국에 가 있는 (원래 영국에 사는 한국인) 친구 중에 한명이 

 
연기코스를 하는데 넘 힘들다고, 나한테 조언을 좀 해달래서 나는 성심 성의껏, 그리고 될 수 있는한

 
간결하고 명확하게 답을 해줬더니 '지연아... 다 맞는 말인데, 정말 얄밉다...' 라는 말을 들었어.

 
ㅋㅋ 나는 정말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을 다 담아서 써준 글이었는데. 너무 단정한 문체? 인간미가 

 
결여된 문체였나봐. 나는 기법/조언을 달라길래 정말로 기법 위주, 걔가 직접 바로 사용해 볼 수 있는

 
방법 위주로 답장을 했지. ㅋㅋㅋ 

 
얘랑은 파장이 좀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나보다 한 살 어린데, 꼭 1년(좀 전) 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고 그랬어.

 
아직 '자아'에 꼭 묶여,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나', '내 감정', '내 자존심'이란

 
필터로 모든걸 걸러내어 받아들이는 탓에 쓴 맛, 단 맛 밖에 못 보는... 

 
그래도 이제는 제법 내 중심을 찾아서인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더라.

 
그냥 얘가 아직 거기에 있구나... 내가 몇 년 전에 있었던 그 자리에.

 
답답하고 절망스럽고 아슬아슬하고 무서운 그 기분을 너무 잘 알아서 그냥 굉장히 안타까웠어.

 
그래도 내적으로 자라는 건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니까.

 
윌한테 이야기했더니 '음... 정말 답답하겠구나. 이럴땐 난 내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주면 

 
상대가 이해하기 더 쉬운 것 같던데...' 라고 하길래 나도 한 번 더 내 경험담을

 
해주고 말았어.

 
그랬더니 도움이 되었다고, 고맙다네. 

 
 
남한테 도움을 주는 건 정말 뭘 바라고 할 일이 아닌 것 같아.

 
그냥 내가 줄 수 있는 거니까 주는거지...

 
뭐, 살면서 진짜로 하는 일은 다 그런거지만. 엄마가 말한대로.

 

 

 
아~ 엄마랑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너무 많은데, 

 
글로 쓰기에는 끝이 없네용~

 
스카이프로 대화하는 게 저는 더 좋아요~
 
 
항상 엄마를 응원하는 지연이가.

눈꽃

2013.04.04 12:52:44
*.62.172.82

와~~감탄!
"그 순간에 그 사람의 에너지에 몰입한다고 할까"
이십대에 벌써 이런걸 깨닫다니 . . .
딸과 이렇게 풍부한 인문학적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엄청 부럽소이다.
잘 읽었습니다. 자주 올려 주시와요. ^ ^*
profile

하루

2013.04.04 19:08:39
*.106.55.198

엄마와 딸의 대화가 이렇게 철학적일 수 있다니...
따님이 엄마의 좋은 벗이 군요.
귀한 나눔입니다. ^^

Lucia

2013.04.04 21:04:27
*.111.223.110

스물셋의 청년이...!!
참~ 고차원의 부모대화가 다른세계군요
소통의창이 열린 모녀가 부러우면서
나름 느끼게하시네요~고맙습니다.^^
얼마전 시집간딸은 "엄마 오늘 무슨 국 끓여먹지?"

profile

클라라

2013.04.04 21:52:08
*.34.116.82

우와, 김혜란 집사님, 대체 따님을 어케 키우셨길래..^^
속이 참 알토란 같이 꽉 찼군요. 
앞으로 종종 소개해 주셔야 할듯 혀요.
감동입니다.

피트

2013.04.04 22:13:18
*.211.197.175

웃겨님이 무척 재미있는 분인건 알았는데...

보통 고수가 아니네요?
profile

paul

2013.04.12 09:27:23
*.190.38.181

그 어머니에 그 딸의 글이네요.
웃음님 처럼 좋은 글을 많이 쓰는 따님이 되실 것 같습니다.
살짝 (아니 많이) 부럽기까지 하네요.
웃음님 건강하시죠? 오랫만에 다비아에 들어와 보고 웃음님의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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