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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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존재에 알리바이는 없다."
- 미하일 바흐친-
세월호, 윤일병, 청도 밀양 송전탑 등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러한 사건들과 무관한 듯이 살아가기도 하고 사건의 지속됨을 못마땅하게 바라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모든 사건과 상관없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이러한 생각을 표현한 바흐친의 글입니다.
항상 마음에 와 닿는 문구입니다.
아마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런 존재적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분 또한 아르헨티나의 폭정과 사건 속에서 삶을 살아오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독교인들 중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분들이 카톨릭과 교황의 방문을 가지고 못마탕해 하는 언행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리적으로 다를 수도 있고 그런 이유로 해서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 속에서 스스로 어떤 존재였는가를 먼저 고민하고 무엇인가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다른 이의 못남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삼은 것이야 말로 스스로가 비판하는 자 보다 훨씬 못난이 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 또한 50년 넘게 기독교인으로 살아왔기에 이러한 것들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는 주체가 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제2의 종교개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한국 땅에서 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개신교가 중세의 카톨릭 만큼이나 추악해졌기 때문이고 스스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타 종교에 대한 부정을 통해서만 존립 가능해 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한국의 기독교적 상황 속에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알리바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이제 종교개혁을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종교가 분리되는 것이 부정적인 것 만은 아닙니다.
종교개혁이 바티칸의 자기 비판을 이끌어 냈듯이 분리를 통하여 갈라서는 것 만이 지금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2의 종교개혁은 다른 존재에 대한 비판으로 부터가 아니라 스스로 존립의 힘들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근본주의자들은 분리된 이들을 비난하고 그것을 자신의 존재의 근거로 삼겠지만 분리되어 나갈 이들은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KNCC가 교회일치운동을 벌여왔지만 일치란 가능하지 않는 허상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기도교의 문제들을 덮는 효과조차 있습니다.
KNCC의 일치운동은 오히려 이런 의미에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일치가 아닌 분리를 고민할 때 입니다.
카톨릭도 종교개혁의 비판을 통해 스스로를 수정해서 윤리적 일치를 이루어 나온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개혁의 근거를 중심으로 기독교와 카톨릭은 일치를 이루어 낸 것입니다.
분리가 일치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일치 속에서 분리를 봅니다.
같은 기독교인 이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면 행동하고 있습니다.
일치는 전혀 하나가 아니며 오히려 분리적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일치가 분리인 것입니다.
일치의 강박 속에서 분리하는 용기를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 미하일 바흐친-
세월호, 윤일병, 청도 밀양 송전탑 등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러한 사건들과 무관한 듯이 살아가기도 하고 사건의 지속됨을 못마땅하게 바라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모든 사건과 상관없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이러한 생각을 표현한 바흐친의 글입니다.
항상 마음에 와 닿는 문구입니다.
아마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런 존재적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분 또한 아르헨티나의 폭정과 사건 속에서 삶을 살아오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독교인들 중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분들이 카톨릭과 교황의 방문을 가지고 못마탕해 하는 언행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리적으로 다를 수도 있고 그런 이유로 해서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 속에서 스스로 어떤 존재였는가를 먼저 고민하고 무엇인가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다른 이의 못남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삼은 것이야 말로 스스로가 비판하는 자 보다 훨씬 못난이 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 또한 50년 넘게 기독교인으로 살아왔기에 이러한 것들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는 주체가 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제2의 종교개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한국 땅에서 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개신교가 중세의 카톨릭 만큼이나 추악해졌기 때문이고 스스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타 종교에 대한 부정을 통해서만 존립 가능해 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한국의 기독교적 상황 속에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알리바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이제 종교개혁을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종교가 분리되는 것이 부정적인 것 만은 아닙니다.
종교개혁이 바티칸의 자기 비판을 이끌어 냈듯이 분리를 통하여 갈라서는 것 만이 지금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2의 종교개혁은 다른 존재에 대한 비판으로 부터가 아니라 스스로 존립의 힘들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근본주의자들은 분리된 이들을 비난하고 그것을 자신의 존재의 근거로 삼겠지만 분리되어 나갈 이들은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KNCC가 교회일치운동을 벌여왔지만 일치란 가능하지 않는 허상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기도교의 문제들을 덮는 효과조차 있습니다.
KNCC의 일치운동은 오히려 이런 의미에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일치가 아닌 분리를 고민할 때 입니다.
카톨릭도 종교개혁의 비판을 통해 스스로를 수정해서 윤리적 일치를 이루어 나온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개혁의 근거를 중심으로 기독교와 카톨릭은 일치를 이루어 낸 것입니다.
분리가 일치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일치 속에서 분리를 봅니다.
같은 기독교인 이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면 행동하고 있습니다.
일치는 전혀 하나가 아니며 오히려 분리적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일치가 분리인 것입니다.
일치의 강박 속에서 분리하는 용기를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목사님 댓글이 늦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사업은 걱정해 주시는 덕분에 잘 경영하고 있습니다.
아버님과 어머님도 잘 계십니다.
요즘은 집사람과 목사님 교회에 꼭 가보겠다고 자주 이야기를 합니다.
말만 이렇게 하고 가지 않는 게으름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집사람은 좀 부지런 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니 곧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콰미님의 말씀 처럼 재미있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어떻게 묶어서 이야기 하기가 어렵고 또 현대철학자들 중 자신의 사상이 포스트모더니즘임을 거부하는 분들도 계시니 개혁의 사상이 포스트모더니즘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근대적 사유의 체계로 부터는 벗어나야 함은 맞는 것 같습니다.
대형교회와 신자들의 문제에는 욕망과 그것의 관리라는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은 단순히 금욕의 방식으로만 접근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을 문제인 것 같습니다ㅏ.
오히려 욕망을 긍정하고 그것을 건강하게 재편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갹해 봅니다.
즐거운 날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떡진머리 님, 잘 계시지요?
사업도 잘 되나요?
가족들도 두루두루 평안하시고요?
일치를 추구해야 할 때와
분리를 감행할 때를 잘 분간할 지혜가 필요한 거 같습니다.
주님의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