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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와 중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대에 본 영화, 숀코네리 주연의 "장미의 이름"때문이다.
원작은 움베르트 에코의 중세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은 중세라는 음험한 광기, 비인간성, 독단이 낳은 혼돈의 시대가 오늘까지 삶의 각 분야에서 재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도원을 처음만든 베네딕트 성인을 따르는 베네딕트파와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를 따르는 프란치스코파와의 대립이 축을 이룬다.
베네딕트파는 "게으름은 모든 악의 시작이다. 기도하고 일하라" 가 모토이다. 즉 수도자는 평신도의 신앙을 볼모로 입으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몸을 놀려 육체노동을 하라는 것이다. 이파의 주장은 그 시대상과 딱 맞아 떨어졌다. 그래서 학교와 병원, 박물관 등을 설립하며 열심히 일하여 비약적으로 세가 불어났다. 그 댓가로 많은 부를 얻게 되고 수도원은 갈수록 화려하고 비대해졌다. 소설의 시대적 상황에서 베네딕트파는 세속적 황제와도 가까왔고 교황도 이파에 속했다.
반면에 프란치스코파는 1181년에 태어난 "중세의 스타" , 청빈을 강조한 프란치스코를 따랐다. 소설에서는 프란치스코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영향력이 왕성하던 시기였다.
프란치스코는 예수께서 옷도걸치지 않고 머리둘 곳없는 "무소유"로 살았기에 크고 화려한 수도원을 비판했다. 그래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밥을 얻어 먹어가며 연명했다.프란치스코가 살던 이탈리아는 상공업이 발달하여 오늘날 처럼 빈부의 격차가 매우 심하여 도시빈민이 많았던 시대였다.
세상에서 무슨일이 터져도 은둔하여 기도만하고, 일만하는 베네딕트파와는 달리 프란치스코는 도시빈민과 함께 생활했다. 그가 빈민의 성자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몰려왔다. 그래서 기존 교단들이 불안하여 프란치스코 분파들을 이단으로 몰아 화형을 처하기도 했다.
청빈을 강조한 프란치스코와 교황 요한22세가 대립하자, 교황의 권력약화를 노리는 루드비히황제는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잠정적인 동맹관계로 끌어안았다.
소설은 프란치스코파인 주인공 월리엄 수도사가 황제와 교황을 중재하기 위해 세속적 명예욕에 찌든 수도원장이 있고 의문의 죽음이 일어나는 베데딕트 수도원을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예수가 옷을 입었느냐?(교회 재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웃었느냐?(인간성)를 두고 논쟁하는 두 교파는 이 시대의 이슈를 명징한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교황이란 새옷을 입고, 우리시대 베네틱트와 마주 서 있다.
[출저] 움베르트 에코 : 장미의 이름, 모래콩 나라 블로그 글 참조
베네딕트 수도회와 프란체스코 수도회만 생각하면
개신교 목사로서 가톨릭이 부러워지네요.
우리에게도 그들과 똑같지는 않더라도
수도승 전통을 세워나갔으면 합니다.
<장미의 이름>을 시간 나면 숙독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