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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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천억의 보살을 교화했다고 하자, 그 말을 의아하게 여긴 한 제자가 묻는다.
"이상하옵니다. 여래께서는 태자 시절 궁궐을 나와 가야성에서 가까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셨고, 그 일이 이제 40년이 되었을 뿐이온데, 그 짧은 세월동안 어찌 이리 수많은 보살을 제도하셨다 하나이까?"
이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은 너무 길어서 간단하게 정리해본다.
"선남자야... 나의 성불은 억겁 무한대 이전이며, 그 이후로 수 많은 중생들을 인도하였느니라. 내가 왕자로서 젊어서 출가하여 부처가 되었다 함은 너희들 눈 높이 - 차원 - 에서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 여래에게는 진실로 나거나 죽거나 생기거나 없어지는 법이 없느니라"
나는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요한복음의 이 부분이 생각났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 하였다. 그리고 그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유다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쉰 살도 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여기에서 마지막에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라는 "있었다" 라는 시제는 틀렸다. 원문에는 "에고 에이미" 로 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있다' "
시제 파괴다...
이 것은 "야웨" 라는 뜻과 같다고 한다.
나는 있다....
이 표현은 현재 과거 미래를 넘어선 "영원한 지금"을 의미한다.
공교롭게도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은 폴 틸리히의 설교집 제목이기도 하다.
영원한 지금의 존재, 야웨...여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