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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과 한국교회
이 글을 쓰는 지금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아마 태풍 ‘갈매기’의 효과인가 보다.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분명한 실체(reality)로 존재하는 이 바람을 고대 구약성서 시대의 사람들이 ‘영’(루아흐)으로 생각했다니, 그 통찰력이 예사롭지 않다. 그 영은 생명의 힘으로 하나님의 존재방식이다. 오늘 오전에 샘터교회에서 드린 예배도 역시 이 영의 인도를 받은 영적 사건이다. 바람, 영, 하나님, 예배, 교회 공동체는 궁극적 생명의 깊이에서 서로 소통되는 어떤 것들이다. 이런 영적 경험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의 삶을 끌어간다. 이런 점에서 주일공동예배를 드린 주일은 진정한 의미에서 안식이며 자유이다. 특히 예배를 인도한다는 중압감에서 해방된 목사에게 주일 하오는 행복한 순간이다. 바람도 시원하니, 여기서 더 필요한 게 무엇이 있으리오.
이런 행복한 순간에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자청해서 그 수렁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오늘 샘터교회의 점심 식사 시간에 나눈 대화에서 한국교회의 어떤 영적 위기를 다시 한 번 더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런 위기야 필자가 지난 수년간 설교비평 작업을 진행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언급했기에 새삼스러운 게 아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위기에 결정적인 일격을 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분명히 새로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교회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긴 말이 필요 없다. 그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소망교회 장로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장로였지만 이명박 대통령과는 그 강도가 전혀 달랐다. 뉴라이트를 비롯해서 한기총과 대형교회 담임 목사들이 이명박 장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노골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도 정치와 종교를 구분하지 못하는 발언을 해서 구설수에 오를 때가 많았다. 이를테면 서울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발언이 그런 것들이다. 아마 대도시의 성시화 운동에 앞장 서는 목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대통령이야말로 가장 믿음이 좋은 기독교인으로 비쳐질 것이다.
지금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실제로 기독교적인 신앙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인지, 아니면 정치적 야망을 위해서 기독교 신앙을 이용하려는 것인지 판단할 입장이 아니다. 그가 설령 기독교를 이용했다고 해도 그것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다. 사람이 완전하게 순수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가. 그리고 그 이외에 수많은 기독교 정치인들도 그런 정치적 야망과 종교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더 근본적으로는 필자가 알지 못하는 깊이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신앙적 순수성이 자리하고 있을지 모르는 것 아닌가. 물론 필자가 서울을 하나님께, 또는 포항을 하나님께, 같은 신앙적 구호를 입에서 뱉어내는 정치인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말할 게 많지만, 그것도 접어두겠다. 그런 정치신학적인 문제를 거론하기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교회의 운명이 그렇게 한가롭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학자나 경제, 또는 사회학자가 아닌 목사가 정치 현안에 대해서 너무 깊숙이 발언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평소 필자가 취하던 입장이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행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쇠고기 협상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는 할 말이 없다. 나름의 정치적 판단으로 미국과 그런 협정을 맺은 것에 대해서 목사가 뭐라 말할 수 있는가. 이는 곧 작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국과 FTA 협상을 맺은 것에 대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과 비슷하다. 이라크 파병도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한 국가를 운영하는 책임자로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찜찜하지만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이다. 이것을 정신적 자세, 또는 마음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기독교적인 용어로 말하면 그의 영성이다. 개인의 영성이 눈에 보이냐,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생각할 게 하나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 나름의 특성이 있다. 그걸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사람의 향기라 할 수 있다. 여러 냄새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그런 냄새가 난다. 이게 과학적이지 않은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과학적이다. 관상이 공연히 관상이겠는가. 오해는 마시라. 지금 필자가 이명박 대통령의 외모를 말하는 게 결코 아니다. 그리고 그의 고유한 인격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세계관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성으로 나타난다. 세계관과 영성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설명하려면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하니까, 여기서는 그냥 한 마디로만 짚고 넘어가겠다. 세계관과 영성이 일치하는 점은 바로 생명이다. 사람은 각각 생명을 보고 경험하는 깊이가 다르다. 그것이 축적되면서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게 되고, 그것이 기독교에서는 영성으로 나타난다.
지난 몇 달 동안 필자의 눈에 비친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정정당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내가 여기서 어떻게 소상히 말하겠는가. 그럴 능력도 없으니, 그냥 눈에 들어오는 한계 안에서 두 가지만 말하겠다.
첫째, 쇠고기 국면에서 이 대통령은 계속해서 자기변명으로 일관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필자는 협상 자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건 내 능력을 벗어나는 전문적인 과학과 국제정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뻔하게 드러난 문제까지 감추는 데만 급급했다. 미국과의 FTA 협상과 동맹강화를 위해서 이런 졸속 협상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그 표현이야 다른 말로 바꿔도 되지만, 진솔한 자세로 국민들의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걸 감추고, 처음부터 질 좋고 값싼 미국 쇠고기 운운했다. 코미디도 더 이상의 코미디가 없다. 어쩌면 그게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솔직한 내면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 뒤로 그가 촛불 국면을 모면하기 위해서 쏟아낸 말은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 그야말로 필자의 눈에 꼼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비쳤다.
물론 다르게 평가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국내외적 상황을 살펴야 한다고 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난 10년 동안에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좌파(?)세력의 노골적인 국정 발목잡기로 인해서 불거진 문제라고 말이다. 이런 변명은 궁색하게 보일 뿐이다. 그의 국정 지지도가 20% 내외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좌파만이 아니라 우파까지, 현재 정권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이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실망하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필자가 보기에 오늘의 상황은 좌우의 이념 대결이 아니라 국정에 임하는 대통령의 기본적인 태도에 연관된 문제이다.
둘째, 얼마 전부터 느닷없이 매스컴을 장식하기 시작한 봉하마음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청와대의 논란에서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한 나라를 통치하는 정치가라기보다는 권모술수에 능한 정략가처럼 보였다. 정치에 정략이 필요하기는 하나 그것이 비열하게 수행된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당당하지 못함이 여기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오죽했으면, 중앙일보의 한 논설위원(?)조차 청와대를 질책했겠는가. 정확한지 모르겠으나 ‘상처뿐인 승리’라는 말로 비판한 것 같다. 청와대는 계속적으로 익명에 숨어 노 전 대통령을 파렴치한으로 비치게 하는 발언들을 계속 생산해왔다. 이런 문제도 구체적으로는 내가 할 말이 별로 없다. 상식적으로만 본다면 노 전 대통령이 재위 시절에 기록한 정보를 열람할 길이 아직 확보되지 않아 약간의 편법이라 할 사본의 방식으로 가져온 것이 문제가 된 모양이다.
여기서 핵심은 두 가지이다. 사본을 만든 행위가 합법인가 불법인가, 하는 게 하나이고, 이런 논쟁에서 국가기록원을 제쳐두고 청와대가 앞장 서는 게 정당하냐, 하는 게 둘째이다. 첫째 문제는 전임 대통령의 열람권을 사본까지 포함하는지에 대한 것인데, 법제처가 가능하다고 보았다는데, 필자는 이에 관해서 정확하게 말할 입장이 못 된다. 둘째 문제에 관해서는 청와대가 월권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노 전 대통령이 자기가 만든 기록물을 정한 법에 따라서 국가 기록원에 넘겨야 하고, 기록원은 전임 대통령에게 열람권을 확보해주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두고 지난 몇 달간 기록원과 봉하마을 측이, 그리고 청와대와 봉하마을 측이 협상을 계속 해온 것 같다. 국가기록물에 관한 법률이 아직 미비한 관계로 인해서 벌어진 작은 해프닝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했고, 그에게서 전임 대통령의 예우에 맞게 해결한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그 뒤로 묵묵부답에다가 봉하마을 측을 비난하는 청와대 측근들의 발언이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매스컴에 퍼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왜 이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는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필자도 더 거론하지 않겠다.
필자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시골에서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가벼운 글이나 써대는 서생(書生)인 주제에 일국의 대통령에 대해서, 그것도 업무를 시작한지 채 5개월이 안 된 분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판단한다면 경솔하다는 말을 들을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필자는 위에서 거론한 것을 근거로 해서 두 가지 관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평가한다. 첫째, 그의 철학 내지 세계관은 극단적인 통속주의이다. 영어 몰입으로부터 시작해서 대운하계획, 공교육의 황폐화 등등, 그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하나님으로 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의 정책들을 시도하고 있다. 둘째, 이게 사실은 더 중요한 문제일지 모르며 앞에서 이미 지적한 것이지만, 그가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는 태도가 당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에서는 이런 말을 하고 뒤에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인 일들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꼼수’라고 하는데, 바둑에서도 사용되는 이 꼼수는 밝은 수가 아니라 어둠의 수이다. 상대방이 속아야만 통하는 수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정수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세상을 오직 자신이 신봉하는 꼼수로만 읽고 그 방식으로만 살아간다.
지금 필자가 목사의 한계를 벗어나는 발언을 했을지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 개인에 대해서 뭔가 불평을 쏟아냈지만, 이것은 이명박이라는 자연인에 대한 비판이나 염려가 아니라 사실은 한국교회를 향한 연민의 하소연이다. 그의 정치행위에 나타나는 극단적 통속주의와 꼼수주의가 바로 한국교회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염려가 그에게 표출된 것뿐이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옳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지난날 한국의 대형교회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온 힘을 쏟았으며, 이제는 이명박 지키기에 진력하고 있다. 언제까지 한국교회가 이명박 대통령과 한 배를 타고 가려는지. 그렇지 않아도 한국교회가 지난 10년 동안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자칫 이명박 대통령으로 인해서 그 속도가 가속화할지 모르겠다. 주님,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키리에 엘레이송!
이 글을 쓰는 지금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아마 태풍 ‘갈매기’의 효과인가 보다.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분명한 실체(reality)로 존재하는 이 바람을 고대 구약성서 시대의 사람들이 ‘영’(루아흐)으로 생각했다니, 그 통찰력이 예사롭지 않다. 그 영은 생명의 힘으로 하나님의 존재방식이다. 오늘 오전에 샘터교회에서 드린 예배도 역시 이 영의 인도를 받은 영적 사건이다. 바람, 영, 하나님, 예배, 교회 공동체는 궁극적 생명의 깊이에서 서로 소통되는 어떤 것들이다. 이런 영적 경험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의 삶을 끌어간다. 이런 점에서 주일공동예배를 드린 주일은 진정한 의미에서 안식이며 자유이다. 특히 예배를 인도한다는 중압감에서 해방된 목사에게 주일 하오는 행복한 순간이다. 바람도 시원하니, 여기서 더 필요한 게 무엇이 있으리오.
이런 행복한 순간에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자청해서 그 수렁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오늘 샘터교회의 점심 식사 시간에 나눈 대화에서 한국교회의 어떤 영적 위기를 다시 한 번 더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런 위기야 필자가 지난 수년간 설교비평 작업을 진행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언급했기에 새삼스러운 게 아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위기에 결정적인 일격을 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분명히 새로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교회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긴 말이 필요 없다. 그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소망교회 장로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장로였지만 이명박 대통령과는 그 강도가 전혀 달랐다. 뉴라이트를 비롯해서 한기총과 대형교회 담임 목사들이 이명박 장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노골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도 정치와 종교를 구분하지 못하는 발언을 해서 구설수에 오를 때가 많았다. 이를테면 서울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발언이 그런 것들이다. 아마 대도시의 성시화 운동에 앞장 서는 목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대통령이야말로 가장 믿음이 좋은 기독교인으로 비쳐질 것이다.
지금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실제로 기독교적인 신앙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인지, 아니면 정치적 야망을 위해서 기독교 신앙을 이용하려는 것인지 판단할 입장이 아니다. 그가 설령 기독교를 이용했다고 해도 그것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다. 사람이 완전하게 순수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가. 그리고 그 이외에 수많은 기독교 정치인들도 그런 정치적 야망과 종교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더 근본적으로는 필자가 알지 못하는 깊이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신앙적 순수성이 자리하고 있을지 모르는 것 아닌가. 물론 필자가 서울을 하나님께, 또는 포항을 하나님께, 같은 신앙적 구호를 입에서 뱉어내는 정치인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말할 게 많지만, 그것도 접어두겠다. 그런 정치신학적인 문제를 거론하기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교회의 운명이 그렇게 한가롭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학자나 경제, 또는 사회학자가 아닌 목사가 정치 현안에 대해서 너무 깊숙이 발언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평소 필자가 취하던 입장이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행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쇠고기 협상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는 할 말이 없다. 나름의 정치적 판단으로 미국과 그런 협정을 맺은 것에 대해서 목사가 뭐라 말할 수 있는가. 이는 곧 작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국과 FTA 협상을 맺은 것에 대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과 비슷하다. 이라크 파병도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한 국가를 운영하는 책임자로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찜찜하지만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이다. 이것을 정신적 자세, 또는 마음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기독교적인 용어로 말하면 그의 영성이다. 개인의 영성이 눈에 보이냐,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생각할 게 하나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 나름의 특성이 있다. 그걸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사람의 향기라 할 수 있다. 여러 냄새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그런 냄새가 난다. 이게 과학적이지 않은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과학적이다. 관상이 공연히 관상이겠는가. 오해는 마시라. 지금 필자가 이명박 대통령의 외모를 말하는 게 결코 아니다. 그리고 그의 고유한 인격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세계관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성으로 나타난다. 세계관과 영성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설명하려면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하니까, 여기서는 그냥 한 마디로만 짚고 넘어가겠다. 세계관과 영성이 일치하는 점은 바로 생명이다. 사람은 각각 생명을 보고 경험하는 깊이가 다르다. 그것이 축적되면서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게 되고, 그것이 기독교에서는 영성으로 나타난다.
지난 몇 달 동안 필자의 눈에 비친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정정당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내가 여기서 어떻게 소상히 말하겠는가. 그럴 능력도 없으니, 그냥 눈에 들어오는 한계 안에서 두 가지만 말하겠다.
첫째, 쇠고기 국면에서 이 대통령은 계속해서 자기변명으로 일관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필자는 협상 자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건 내 능력을 벗어나는 전문적인 과학과 국제정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뻔하게 드러난 문제까지 감추는 데만 급급했다. 미국과의 FTA 협상과 동맹강화를 위해서 이런 졸속 협상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그 표현이야 다른 말로 바꿔도 되지만, 진솔한 자세로 국민들의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걸 감추고, 처음부터 질 좋고 값싼 미국 쇠고기 운운했다. 코미디도 더 이상의 코미디가 없다. 어쩌면 그게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솔직한 내면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 뒤로 그가 촛불 국면을 모면하기 위해서 쏟아낸 말은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 그야말로 필자의 눈에 꼼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비쳤다.
물론 다르게 평가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국내외적 상황을 살펴야 한다고 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난 10년 동안에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좌파(?)세력의 노골적인 국정 발목잡기로 인해서 불거진 문제라고 말이다. 이런 변명은 궁색하게 보일 뿐이다. 그의 국정 지지도가 20% 내외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좌파만이 아니라 우파까지, 현재 정권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이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실망하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필자가 보기에 오늘의 상황은 좌우의 이념 대결이 아니라 국정에 임하는 대통령의 기본적인 태도에 연관된 문제이다.
둘째, 얼마 전부터 느닷없이 매스컴을 장식하기 시작한 봉하마음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청와대의 논란에서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한 나라를 통치하는 정치가라기보다는 권모술수에 능한 정략가처럼 보였다. 정치에 정략이 필요하기는 하나 그것이 비열하게 수행된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당당하지 못함이 여기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오죽했으면, 중앙일보의 한 논설위원(?)조차 청와대를 질책했겠는가. 정확한지 모르겠으나 ‘상처뿐인 승리’라는 말로 비판한 것 같다. 청와대는 계속적으로 익명에 숨어 노 전 대통령을 파렴치한으로 비치게 하는 발언들을 계속 생산해왔다. 이런 문제도 구체적으로는 내가 할 말이 별로 없다. 상식적으로만 본다면 노 전 대통령이 재위 시절에 기록한 정보를 열람할 길이 아직 확보되지 않아 약간의 편법이라 할 사본의 방식으로 가져온 것이 문제가 된 모양이다.
여기서 핵심은 두 가지이다. 사본을 만든 행위가 합법인가 불법인가, 하는 게 하나이고, 이런 논쟁에서 국가기록원을 제쳐두고 청와대가 앞장 서는 게 정당하냐, 하는 게 둘째이다. 첫째 문제는 전임 대통령의 열람권을 사본까지 포함하는지에 대한 것인데, 법제처가 가능하다고 보았다는데, 필자는 이에 관해서 정확하게 말할 입장이 못 된다. 둘째 문제에 관해서는 청와대가 월권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노 전 대통령이 자기가 만든 기록물을 정한 법에 따라서 국가 기록원에 넘겨야 하고, 기록원은 전임 대통령에게 열람권을 확보해주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두고 지난 몇 달간 기록원과 봉하마을 측이, 그리고 청와대와 봉하마을 측이 협상을 계속 해온 것 같다. 국가기록물에 관한 법률이 아직 미비한 관계로 인해서 벌어진 작은 해프닝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했고, 그에게서 전임 대통령의 예우에 맞게 해결한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그 뒤로 묵묵부답에다가 봉하마을 측을 비난하는 청와대 측근들의 발언이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매스컴에 퍼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왜 이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는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필자도 더 거론하지 않겠다.
필자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시골에서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가벼운 글이나 써대는 서생(書生)인 주제에 일국의 대통령에 대해서, 그것도 업무를 시작한지 채 5개월이 안 된 분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판단한다면 경솔하다는 말을 들을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필자는 위에서 거론한 것을 근거로 해서 두 가지 관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평가한다. 첫째, 그의 철학 내지 세계관은 극단적인 통속주의이다. 영어 몰입으로부터 시작해서 대운하계획, 공교육의 황폐화 등등, 그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하나님으로 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의 정책들을 시도하고 있다. 둘째, 이게 사실은 더 중요한 문제일지 모르며 앞에서 이미 지적한 것이지만, 그가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는 태도가 당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에서는 이런 말을 하고 뒤에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인 일들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꼼수’라고 하는데, 바둑에서도 사용되는 이 꼼수는 밝은 수가 아니라 어둠의 수이다. 상대방이 속아야만 통하는 수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정수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세상을 오직 자신이 신봉하는 꼼수로만 읽고 그 방식으로만 살아간다.
지금 필자가 목사의 한계를 벗어나는 발언을 했을지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 개인에 대해서 뭔가 불평을 쏟아냈지만, 이것은 이명박이라는 자연인에 대한 비판이나 염려가 아니라 사실은 한국교회를 향한 연민의 하소연이다. 그의 정치행위에 나타나는 극단적 통속주의와 꼼수주의가 바로 한국교회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염려가 그에게 표출된 것뿐이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옳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지난날 한국의 대형교회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온 힘을 쏟았으며, 이제는 이명박 지키기에 진력하고 있다. 언제까지 한국교회가 이명박 대통령과 한 배를 타고 가려는지. 그렇지 않아도 한국교회가 지난 10년 동안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자칫 이명박 대통령으로 인해서 그 속도가 가속화할지 모르겠다. 주님,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키리에 엘레이송!
2008.07.24 19:15:45
정목사님 가운데
예리한 통찰력 그리고 선지자적인 기름 부으심을
덧입혀주사
이 시대와 교회를 더욱 선명하게 밝혀
길 잃은 중생들에게 새 빛을 비추이게 하소서!
목사님의 충정이 담긴 글 감사히 보고갑니다.
예리한 통찰력 그리고 선지자적인 기름 부으심을
덧입혀주사
이 시대와 교회를 더욱 선명하게 밝혀
길 잃은 중생들에게 새 빛을 비추이게 하소서!
목사님의 충정이 담긴 글 감사히 보고갑니다.
2008.07.24 23:39:52
청개구리, 광야 님,
읽어주시고 대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예리한 통찰이라고 할 것은 없구요,
대개 다른 분들도 생각하는 걸 그냥 정리한 건데,
생각이 다른 분들도 많을 걸로 압니다.
요즘 정국을 보면 국가 운영이 20년 쯤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잠시 멈칫하는 것 같아도
그래도 역사를 뒤로 돌릴 수가 엾겠지요.
아자.
읽어주시고 대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예리한 통찰이라고 할 것은 없구요,
대개 다른 분들도 생각하는 걸 그냥 정리한 건데,
생각이 다른 분들도 많을 걸로 압니다.
요즘 정국을 보면 국가 운영이 20년 쯤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잠시 멈칫하는 것 같아도
그래도 역사를 뒤로 돌릴 수가 엾겠지요.
아자.
2008.07.27 04:53:06
정 목사님....대구는 무척 덥죠? 잘 지내시는지요...
시원시원한 글.......잘 읽었습니다...ㅎㅎ 백골단이 다시 부활한다고 합니다...'경찰관기동대'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포털사이트에 대한 재갈물리기와 더불어 표현의 자유, 인격권의 실현에 대한 탄압이 거셉니다.
완전히 수구공안정국으로의 회귀가 아닐런지요..
시원시원한 글.......잘 읽었습니다...ㅎㅎ 백골단이 다시 부활한다고 합니다...'경찰관기동대'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포털사이트에 대한 재갈물리기와 더불어 표현의 자유, 인격권의 실현에 대한 탄압이 거셉니다.
완전히 수구공안정국으로의 회귀가 아닐런지요..
2008.07.29 09:15:52
정 목사님의 글은 언제나 생각의 틀을 깨뜨리고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어줍니다. 이번 글을 통해서도 역시 흔들림이 없는 정론직필의 소신을 감당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정 목사님의 글에는 "탈식민화"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한 향기가 풍겨집니다.
작년 선거철부터 KBS 프로그램 중에 열린토론이니 심야토론이니 하는 시사방송을 열심히 시청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제작진을 통해서도 역시 동일한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탈식민주의'적 사고에 입각한 사회비평 또는 시대비평은 비평을 위한 비평일 뿐, 탈식민화 그 이후는 무엇인가에 대한 명료한 대안이 미비하다는 데 있습니다.
기독교 영성신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Miguel A. De La Torre와 같은 탈-식민주의적 해방주의 신학자의 경우에도 기독교 선교 역사에서의 제국주의적 요소들에 대한 분석과 극복에 대해서는 매우 구체적이고 예리한 통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극복 이후는 무엇인가? 이제 다음은 무엇이 다가오고 있으며, 기독교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제시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결국 여성신학적 성경읽기, 동양적-아프리카적 기독교신학 등의 인종분리주의적인 제시가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성공회대학의 경우에도 80년대를 지나면서 벌써 극복했어야 할 탈-식민주의적 의식구조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한국기독교의 자립화니, 사회신학적 역사해석이니 하는 운동들에서 아직도 구시대적 발상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지나친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성공회대학의 지난 발자취(연혁)를 살펴보면 외국인선교사들의 헌신에 대한 기록은 온데간데 없고 한국인으로써는 최초의 교장인 정철범 주교의 이름부터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토속교회를 추구해온 성공회이기에 그럴만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성서적 신앙과 신학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탈-식민화의 테두리를 이제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 한국의 신학계에서는 탈-식민적 정서와 선교정신 사이에 거의 정반대의 입장으로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디까지를 식민주의라고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서부터가 탈-식민주의인지? 선교 역사에 있어서, 세계화 또는 국제화의 흐름과 제국주의적 여파는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이와 같은 탈식민화의 문제들은 아직도 현재의 사회, 정치적 상황에도 나타나고 있는 듯싶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하 mb)의 세계관과 그 나름의 영성을 판단하는데 있어서도, 우선 mb의 종말론은 어떤 것이며 그 종말론에 입각한 정치적 가치관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더욱 구체적인 연구와 설명이 먼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고 나서 mb의 탈-식민화에 대한 견해 및 입장은 어떤 것이며, 그 극복 이후에 대한 정치신학적 대처방법은 어떤 것인지 논해야 하지 않을까요?
작년 선거철부터 KBS 프로그램 중에 열린토론이니 심야토론이니 하는 시사방송을 열심히 시청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제작진을 통해서도 역시 동일한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탈식민주의'적 사고에 입각한 사회비평 또는 시대비평은 비평을 위한 비평일 뿐, 탈식민화 그 이후는 무엇인가에 대한 명료한 대안이 미비하다는 데 있습니다.
기독교 영성신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Miguel A. De La Torre와 같은 탈-식민주의적 해방주의 신학자의 경우에도 기독교 선교 역사에서의 제국주의적 요소들에 대한 분석과 극복에 대해서는 매우 구체적이고 예리한 통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극복 이후는 무엇인가? 이제 다음은 무엇이 다가오고 있으며, 기독교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제시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결국 여성신학적 성경읽기, 동양적-아프리카적 기독교신학 등의 인종분리주의적인 제시가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성공회대학의 경우에도 80년대를 지나면서 벌써 극복했어야 할 탈-식민주의적 의식구조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한국기독교의 자립화니, 사회신학적 역사해석이니 하는 운동들에서 아직도 구시대적 발상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지나친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성공회대학의 지난 발자취(연혁)를 살펴보면 외국인선교사들의 헌신에 대한 기록은 온데간데 없고 한국인으로써는 최초의 교장인 정철범 주교의 이름부터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토속교회를 추구해온 성공회이기에 그럴만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성서적 신앙과 신학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탈-식민화의 테두리를 이제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 한국의 신학계에서는 탈-식민적 정서와 선교정신 사이에 거의 정반대의 입장으로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디까지를 식민주의라고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서부터가 탈-식민주의인지? 선교 역사에 있어서, 세계화 또는 국제화의 흐름과 제국주의적 여파는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이와 같은 탈식민화의 문제들은 아직도 현재의 사회, 정치적 상황에도 나타나고 있는 듯싶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하 mb)의 세계관과 그 나름의 영성을 판단하는데 있어서도, 우선 mb의 종말론은 어떤 것이며 그 종말론에 입각한 정치적 가치관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더욱 구체적인 연구와 설명이 먼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고 나서 mb의 탈-식민화에 대한 견해 및 입장은 어떤 것이며, 그 극복 이후에 대한 정치신학적 대처방법은 어떤 것인지 논해야 하지 않을까요?
2008.07.29 14:24:22
요셒 님,
안녕하세요?
마음을 담아서 대글을 올리셨군요.
감사합니다.
글을 보니 핵심이 '탈식민주의' 문제군요.
내 꼭지글에서 그런 경향을 읽으셨다면
둘 중의 하나입니다.
1. 내 글이 그런 오해를 받기에 안성맞춤이다.
2. 요셒 님이 요즘 탈식민화 문제에 예민하다.
위의 글에서 나는 탈식민 문제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그런 의식이 내게 잠재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내 관심은 기독교의 중심을 붙잡는 거랍니다.
이런 점에서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제국주의적 요소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식민, 탈식민, 제국 등등의 문제에는
단지 정치적인 것만이 아니라 오늘의 모든 패권적 힘이 포함됩니다.
가부장제나 천박한 자본주의나 경쟁 만능의 교육 등등이 그런 것이지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복음은
현실에서 투쟁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지요.
요셒 님은 어떤 신학공부를 하셨는지 모르겠으니
탈식민 문제를 너무 과민하게 생각하는 것 같군요.
대안이 없다고 했지요?
왜 없겠어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가 바로 그거지요.
그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역사적으로, 성서적으로 접근하는 게 바로 신학이지요.
감사.
안녕하세요?
마음을 담아서 대글을 올리셨군요.
감사합니다.
글을 보니 핵심이 '탈식민주의' 문제군요.
내 꼭지글에서 그런 경향을 읽으셨다면
둘 중의 하나입니다.
1. 내 글이 그런 오해를 받기에 안성맞춤이다.
2. 요셒 님이 요즘 탈식민화 문제에 예민하다.
위의 글에서 나는 탈식민 문제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그런 의식이 내게 잠재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내 관심은 기독교의 중심을 붙잡는 거랍니다.
이런 점에서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제국주의적 요소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식민, 탈식민, 제국 등등의 문제에는
단지 정치적인 것만이 아니라 오늘의 모든 패권적 힘이 포함됩니다.
가부장제나 천박한 자본주의나 경쟁 만능의 교육 등등이 그런 것이지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복음은
현실에서 투쟁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지요.
요셒 님은 어떤 신학공부를 하셨는지 모르겠으니
탈식민 문제를 너무 과민하게 생각하는 것 같군요.
대안이 없다고 했지요?
왜 없겠어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가 바로 그거지요.
그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역사적으로, 성서적으로 접근하는 게 바로 신학이지요.
감사.
2008.07.29 22:11:44
정 목사님께서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그런데 1번과 2번 모두 맞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2번이 더 정확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제가 요즘들어서 신학계의 탈식민화에 대해
더 민감해진 것은 아닙니다.
1.
저는 우리가 지금 거치고 있으며 이제 다가오는 시대에 대하여 더이상 탈-근대화, 탈-식민화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초-다원화의 시대(Post Pluralistic Threshold)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죠.
예컨대, 1000년 이상 서구유럽의 기독교-제국주의 또는 선교-식민주의와 대립해오며 그 정체성과
영향력을 키워온 이슬람 문화권이 벌써 세계를 잠식시키기 시작한지 오래입니다. 이슬람은 절대로
다원주의와 타협하거나 희석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슬람의 영향력은 미국은 물론, 벌써
한국까지 침투해 있습니다.
즉, 탈식민화 이후의 문제는 다원주의의 문제인데 지금의 시대적 흐름 또는 세계의 움직임을
사회과학적으로 따져보자면 벌써 다원주의의 노을 역시 거의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모든 패권적 힘을 이야기 하자면, 이슬람이 벌써 기독교 문화를 넘실넘실 잠식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은 탈식민화가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이슬람적
선교에 나섰습니다. 사실 이슬람은 그 역사적 뿌리가 로마의 제국주의, 식민주의로부터의 극복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1000년이 훨씬 지났죠.
2.
그런데 이상하게도 탈식민주의적 신학계와 종말론적 선교신학계 사이에는 미묘한
자력 같은 것이 서로를 밀어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탈식민주의적 선교신학에 대한 확실한
메뉴얼이 부족한 것이 신학계의 현실 또는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심지어, 칼 라너와 같은 카톨릭 신학자의 Unknown Christian(한글 단어를 몰라서 영어로
적습니다.)이라는 개념을 자의대로 해석하고 그와 같은 초다원주의적 신학을 위시하여
구속사적 종말론에 입각한 기독교-선교와 그동안의 선교역사 자체를 무의미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영성신학 주류 안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초기 예수회의 Contemplative Action의
정신이 그리워집니다.
3.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역사적, 성서적 접근과 해석은 교단마다 정말 서로 다르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저는 미국 켄사스시티에 위치한 아이합(International
House Of Prayer)의 하나님 나라의 오심, 예언, 계시, 성령, 사탄론 등 다양한 종말론적 신학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희 부모님이나 함께 신앙을 나누는 수많은 친구들은 아이합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지요.
때문에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역사적, 성서적 접근은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또한, 그렇기 때문에 쉽게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4.
그러므로,
mb의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 개념은 어떤 것인지, 역사적으로 성서적으로 접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서 "서울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어느 연설 도중의 발언을 문제 삼으려면,
과연 '하나님께 드린다' 또는 '바친다'라는 어구의 신학적 요소들은 무엇인지? 제 기억으로는,
당시에 mb 옆에는 조용기 목사님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시간 그 장소에 모였던 특정한
기독교 집단의 신학적 분위기는 mb의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등등을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5.
결론입니다. mb의 정치신학적 입장은, 매우 소극적인 해석이지만, 탈식민화와 초다원주의
사이 식역(識閾: Threshold 또는 Liminality)에 처해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늘의 세계 신학계 전체가 동일한 문제로 갈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선교신학을 중심으로한 시대비평은 점점 더 인기가 없어지고 있지요. 초기 예수회의 정신에는
분명히 영성과 종말론적 타문화권 선교를 모두 끌어안고 있었는데, 그런 분위기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쉬울 뿐입니다.
추신:
정 목사님 글을 통해 매번 도전받고 있습니다. 꾸벅!
제 주장이 불투명해서 송구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특히 2번이 더 정확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제가 요즘들어서 신학계의 탈식민화에 대해
더 민감해진 것은 아닙니다.
1.
저는 우리가 지금 거치고 있으며 이제 다가오는 시대에 대하여 더이상 탈-근대화, 탈-식민화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초-다원화의 시대(Post Pluralistic Threshold)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죠.
예컨대, 1000년 이상 서구유럽의 기독교-제국주의 또는 선교-식민주의와 대립해오며 그 정체성과
영향력을 키워온 이슬람 문화권이 벌써 세계를 잠식시키기 시작한지 오래입니다. 이슬람은 절대로
다원주의와 타협하거나 희석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슬람의 영향력은 미국은 물론, 벌써
한국까지 침투해 있습니다.
즉, 탈식민화 이후의 문제는 다원주의의 문제인데 지금의 시대적 흐름 또는 세계의 움직임을
사회과학적으로 따져보자면 벌써 다원주의의 노을 역시 거의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모든 패권적 힘을 이야기 하자면, 이슬람이 벌써 기독교 문화를 넘실넘실 잠식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은 탈식민화가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이슬람적
선교에 나섰습니다. 사실 이슬람은 그 역사적 뿌리가 로마의 제국주의, 식민주의로부터의 극복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1000년이 훨씬 지났죠.
2.
그런데 이상하게도 탈식민주의적 신학계와 종말론적 선교신학계 사이에는 미묘한
자력 같은 것이 서로를 밀어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탈식민주의적 선교신학에 대한 확실한
메뉴얼이 부족한 것이 신학계의 현실 또는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심지어, 칼 라너와 같은 카톨릭 신학자의 Unknown Christian(한글 단어를 몰라서 영어로
적습니다.)이라는 개념을 자의대로 해석하고 그와 같은 초다원주의적 신학을 위시하여
구속사적 종말론에 입각한 기독교-선교와 그동안의 선교역사 자체를 무의미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영성신학 주류 안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초기 예수회의 Contemplative Action의
정신이 그리워집니다.
3.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역사적, 성서적 접근과 해석은 교단마다 정말 서로 다르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저는 미국 켄사스시티에 위치한 아이합(International
House Of Prayer)의 하나님 나라의 오심, 예언, 계시, 성령, 사탄론 등 다양한 종말론적 신학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희 부모님이나 함께 신앙을 나누는 수많은 친구들은 아이합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지요.
때문에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역사적, 성서적 접근은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또한, 그렇기 때문에 쉽게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4.
그러므로,
mb의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 개념은 어떤 것인지, 역사적으로 성서적으로 접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서 "서울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어느 연설 도중의 발언을 문제 삼으려면,
과연 '하나님께 드린다' 또는 '바친다'라는 어구의 신학적 요소들은 무엇인지? 제 기억으로는,
당시에 mb 옆에는 조용기 목사님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시간 그 장소에 모였던 특정한
기독교 집단의 신학적 분위기는 mb의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등등을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5.
결론입니다. mb의 정치신학적 입장은, 매우 소극적인 해석이지만, 탈식민화와 초다원주의
사이 식역(識閾: Threshold 또는 Liminality)에 처해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늘의 세계 신학계 전체가 동일한 문제로 갈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선교신학을 중심으로한 시대비평은 점점 더 인기가 없어지고 있지요. 초기 예수회의 정신에는
분명히 영성과 종말론적 타문화권 선교를 모두 끌어안고 있었는데, 그런 분위기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쉬울 뿐입니다.
추신:
정 목사님 글을 통해 매번 도전받고 있습니다. 꾸벅!
제 주장이 불투명해서 송구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7.30 04:29:04
정치권에서 일하는 제 친구는 "정치 철학? MB는 그딴 거 없다."고 강하게 얘기하더군요. 허튼말 하는 친구는 아니라서 반신반의했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물며 어떤 "정치 신학적 입장"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가 어렵네요.
"근대"를 규정하는 한 잣대가 "합리성의 추구"라고 배웠는데요. 그 잣대로라면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많은 분들은 아직도 근대 이전과 근대의 사이의 어느 시대를 살고 계신 듯 합니다. 내치/경제/국방/외교 전 분야를 이토록 짧은 기간 안에 "예측 불가능" 상황으로 몰고 가시는 분들은 과연 어떤 "합리성"을 추구하고 계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근대"를 규정하는 한 잣대가 "합리성의 추구"라고 배웠는데요. 그 잣대로라면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많은 분들은 아직도 근대 이전과 근대의 사이의 어느 시대를 살고 계신 듯 합니다. 내치/경제/국방/외교 전 분야를 이토록 짧은 기간 안에 "예측 불가능" 상황으로 몰고 가시는 분들은 과연 어떤 "합리성"을 추구하고 계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2008.07.30 16:43:54
빈이 님, mb는 최소한 이 시대가 이미 탈식민화의 시대를 벗어났으며 다원주의 시대를 거쳐 새로운 격돌
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에 대해서 만큼은 자각하고 있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mb에게 누구보다 확실한 국정철학, 정치신학이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탈근대
적 또는 탈식민주의적 관점으로는 mb의 사상이나 방향성을 분석하거나 해석하기가 힘이 들지 않을까 생
각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관점 자체가 구시대적인 것이요 미국의 반-신자유주의(Anti-neoliberalism)적
인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mb의 국정철학, 정차신학적 입장이 어떤 것인지 본격적으로 분석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구체적
으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문이나 뉴스의 자료를 토대로 그와같은 판단을 내
릴 수는 더더욱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mb의 대통령 당선 이후의 국정운영 실력에 대해 분석하고 해석하는 많은 시도 중에서 한가지 매우 중요
한 것이 빠져있는 듯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안보*정보'(이하 안정)라는 문제입니다. 다른 어떤 것은
몰라도, mb가 지금 집중하고 있으며 씨름 중에 있는 중요한 문제는 철저한 국가-안정 시스템의 제구축
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만큼 국가-안정 분야에 있어서 빈약하고 헛점 투성이인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을 미국의 정보기관에 의지하고 있지요.
지난 참여정부 시절 겨우 북한 내 정보 몇가지에 대해 미리 알거나 확보해놓은 것에 대해 우쭐댔지만, 세
계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거의 '꼴통'의 수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안보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지요.
저는 정치철학, 정치신학을 거론함에 있어서 안정에 대한 실용적인 접근 및 해석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합
니다. mb는 욕을 먹을지언정 국가-안정 시스템을 철저히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신념에 있어서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실용주의적 정치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죠.
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에 대해서 만큼은 자각하고 있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mb에게 누구보다 확실한 국정철학, 정치신학이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탈근대
적 또는 탈식민주의적 관점으로는 mb의 사상이나 방향성을 분석하거나 해석하기가 힘이 들지 않을까 생
각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관점 자체가 구시대적인 것이요 미국의 반-신자유주의(Anti-neoliberalism)적
인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mb의 국정철학, 정차신학적 입장이 어떤 것인지 본격적으로 분석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구체적
으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문이나 뉴스의 자료를 토대로 그와같은 판단을 내
릴 수는 더더욱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mb의 대통령 당선 이후의 국정운영 실력에 대해 분석하고 해석하는 많은 시도 중에서 한가지 매우 중요
한 것이 빠져있는 듯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안보*정보'(이하 안정)라는 문제입니다. 다른 어떤 것은
몰라도, mb가 지금 집중하고 있으며 씨름 중에 있는 중요한 문제는 철저한 국가-안정 시스템의 제구축
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만큼 국가-안정 분야에 있어서 빈약하고 헛점 투성이인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을 미국의 정보기관에 의지하고 있지요.
지난 참여정부 시절 겨우 북한 내 정보 몇가지에 대해 미리 알거나 확보해놓은 것에 대해 우쭐댔지만, 세
계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거의 '꼴통'의 수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안보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지요.
저는 정치철학, 정치신학을 거론함에 있어서 안정에 대한 실용적인 접근 및 해석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합
니다. mb는 욕을 먹을지언정 국가-안정 시스템을 철저히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신념에 있어서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실용주의적 정치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죠.
2008.07.30 19:48:50
요셒님, 위 글로 볼 때 이명박 정부를 신학적 이데올로기로 접근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만,
탈식민화, 다원주의, 정치신학 등 이런 용어를 이mb 정부에 사용한다는 자체가
무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철학이 있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그것도 정목사님이
적시한 바대로 통속주의 내지는 꼼수 정치 그대로이지요.
더군다나 mb의 '종말론적 하나님나라'라는 용어는 너무 비약이 아니겠는지요.
이분들이 신학적 기반에서 이런 말과 행동을 했다고는 잘 믿겨지지 않습니다.
'서울을 하나님께 드리겠다.' 란 말은 정치적인 숨은 의도가 여실히 보여지는 대목인데
여기에 신학적인 요소, 신학적 분위기의 고려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데 그런 것이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4. 그러므로,
mb의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 개념은 어떤 것인지, 역사적으로 성서적으로 접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서 "서울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어느 연설 도중의 발언을 문제 삼으려면, 과연 '하나님께 드린다' 또는 '바친다'라는 어구의 신학적 요소들은 무엇인지? 제 기억으로는, 당시에 mb 옆에는 조용기 목사님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시간 그 장소에 모였던 특정한 기독교 집단의 신학적 분위기는 mb의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등등을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
아무리 이명박 대통령이 장로이고, 기독교가 밀어주고 서울시를 봉헌한다고 들먹여도
정권을 창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게지요.
작금에 이르러, 실정이 드러나는 현실인데
앞으로 다시 새롭게 나아간다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공안정국과
시장논리로 몰아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라인홀드 니버의 말을 빌리면 국가란 가장 위선적이고 부정직한 단체이며,
특별히 국가의 특권계급이 그렇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사람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살려고 해도 이 사회가 부도덕하여서
자신도 모르게 부도덕한 사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정치는 목사나 장로, 신학자가 하여도 어둠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하지요.
따라서 시대 불의와 맞서는 진실하고 정직한 지도자가 요구됩니다.
물론 탁월한 능력과 반듯한 국정철학도 있어야겠지요. 무엇보다
분별력과 소명감을 가지고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는
섬김의 리더쉽이 필요합니다. 이것 없이는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하기가 어렵겠지요.
예수의 이름을 빌려 권력과 부를 갈망하고 기독교의 너울을 쓰고
수단이 목적을 대체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지도자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주권과 통치를 기대하며 올곧은 공의의 정치를 희망합니다.
보여집니다만,
탈식민화, 다원주의, 정치신학 등 이런 용어를 이mb 정부에 사용한다는 자체가
무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철학이 있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그것도 정목사님이
적시한 바대로 통속주의 내지는 꼼수 정치 그대로이지요.
더군다나 mb의 '종말론적 하나님나라'라는 용어는 너무 비약이 아니겠는지요.
이분들이 신학적 기반에서 이런 말과 행동을 했다고는 잘 믿겨지지 않습니다.
'서울을 하나님께 드리겠다.' 란 말은 정치적인 숨은 의도가 여실히 보여지는 대목인데
여기에 신학적인 요소, 신학적 분위기의 고려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데 그런 것이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4. 그러므로,
mb의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 개념은 어떤 것인지, 역사적으로 성서적으로 접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서 "서울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어느 연설 도중의 발언을 문제 삼으려면, 과연 '하나님께 드린다' 또는 '바친다'라는 어구의 신학적 요소들은 무엇인지? 제 기억으로는, 당시에 mb 옆에는 조용기 목사님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시간 그 장소에 모였던 특정한 기독교 집단의 신학적 분위기는 mb의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등등을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
아무리 이명박 대통령이 장로이고, 기독교가 밀어주고 서울시를 봉헌한다고 들먹여도
정권을 창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게지요.
작금에 이르러, 실정이 드러나는 현실인데
앞으로 다시 새롭게 나아간다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공안정국과
시장논리로 몰아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라인홀드 니버의 말을 빌리면 국가란 가장 위선적이고 부정직한 단체이며,
특별히 국가의 특권계급이 그렇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사람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살려고 해도 이 사회가 부도덕하여서
자신도 모르게 부도덕한 사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정치는 목사나 장로, 신학자가 하여도 어둠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하지요.
따라서 시대 불의와 맞서는 진실하고 정직한 지도자가 요구됩니다.
물론 탁월한 능력과 반듯한 국정철학도 있어야겠지요. 무엇보다
분별력과 소명감을 가지고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는
섬김의 리더쉽이 필요합니다. 이것 없이는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하기가 어렵겠지요.
예수의 이름을 빌려 권력과 부를 갈망하고 기독교의 너울을 쓰고
수단이 목적을 대체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지도자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주권과 통치를 기대하며 올곧은 공의의 정치를 희망합니다.
2008.07.30 22:12:34
요셒 님,
내 생각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행위에
어떤 신학적 해석을 한다는 것은 좀 무리스러워 보이네요.
물론 무리해서라도 하려고만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럴만한 대상이 못된다는 말씀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가 한국을 그저 무난하게만 끌어가 주면 좋겠다 생각해요.
그의 실패는 곧 한국 민중들의 삶이 고달파진다는 뜻이니
가능한대로 성공은 아니라 하더라도 중간만이라도 해주었으면 해요.
이렇게 말해도 될는지요.
이 대통령의 철학은 철학이 없다는 것이라고요.
그분의 정치신학은 신학적이지 않다고 말이지요.
요셒 님은 선교사의 꿈이지요?
좋은 선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의 은총이.
내 생각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행위에
어떤 신학적 해석을 한다는 것은 좀 무리스러워 보이네요.
물론 무리해서라도 하려고만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럴만한 대상이 못된다는 말씀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가 한국을 그저 무난하게만 끌어가 주면 좋겠다 생각해요.
그의 실패는 곧 한국 민중들의 삶이 고달파진다는 뜻이니
가능한대로 성공은 아니라 하더라도 중간만이라도 해주었으면 해요.
이렇게 말해도 될는지요.
이 대통령의 철학은 철학이 없다는 것이라고요.
그분의 정치신학은 신학적이지 않다고 말이지요.
요셒 님은 선교사의 꿈이지요?
좋은 선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의 은총이.
2008.07.31 09:15:12
제 생각에는 '정치신학'이라는 분야 자체에 대하여 재정립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정치학과 윤리학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동일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 정치적 인물에 대하여 구체적인 분석 및 해석을 내려야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개신교 신학계의 정치신학 분야는 매우 낙후된 상태라는 사실은 광야 님과 정 목사님 두분 다 인정하고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두분께서는 정치신학과 윤리학을 혼돈하고 계시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21세기 '한국'의 정치신학을 논하기 위해서 서구유럽에서 흘러 들어온 탈식민주의 또는 탈근대주의적 기독교 윤리학이라는 기준과 메뉴얼로는 바른 방향성을 제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냉정하고 철저하게 분석해야만 하는 것이, 한국의 기독교 윤리학 내에 존재하고 있는 사회주의 철학과 반미-반공화제 정서입니다. 그래서 탈식민주의 관점으로는 구시대적 반미감정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인구의 1/4이 기독교인이고 정치 지도자까지 기독교인이라면, 그 나라의 정치현실은 신학계의 현실과 직접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도자의 통치 행위에 대하여 정치신학적인 명료한 분석 및 해석을 해낼 수 없는 신학계라면 책임을 통감해야 할지언정 비판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참 이상하네요. 목회자나 교회 지도자에 대해서는 대단히 이성적이고 학구적인 분석 및 해석을 내놓는 신학계가(특별히 독일 쪽 신학에 영향을 받은 부류) 현실정치에 대해서는 왜 이리도 감정적인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신학계 역시 언론의 언론플레이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한낱 여론일 수밖에 없는가 봅니다. 죄송하지만, 존경하는 정 목사님의 설교비평이나 글쓰기에서 반미적 색깔이 짙게 나타나고 있답니다. 정 목사님 글을 대단히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읽을 것이지만, 목사님 글에서 나타나는 반미적 성향에 대해서는 조금 아쉽습니다.
또한 신학이란 프로 신학자만의 전유물은 아니지요.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행위 속에 신학적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하여 판단하려면, 최소한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방식이나 성향을 갖고 성경을 읽고 있는지? 평상시 기도생활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또는 그 주변 인물들(김진홍 목사님이나 서경석 목사님 등)을 통한 간접 접근의 방식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탈-식민주의적인 고정관념에서 비롯되는 반미감정(감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나 철학에 대하여 신학적인 요소가 있다 없다 거론할 수조차 없지 않을까요? 또는 신학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꾸벅.
21세기 '한국'의 정치신학을 논하기 위해서 서구유럽에서 흘러 들어온 탈식민주의 또는 탈근대주의적 기독교 윤리학이라는 기준과 메뉴얼로는 바른 방향성을 제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냉정하고 철저하게 분석해야만 하는 것이, 한국의 기독교 윤리학 내에 존재하고 있는 사회주의 철학과 반미-반공화제 정서입니다. 그래서 탈식민주의 관점으로는 구시대적 반미감정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인구의 1/4이 기독교인이고 정치 지도자까지 기독교인이라면, 그 나라의 정치현실은 신학계의 현실과 직접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도자의 통치 행위에 대하여 정치신학적인 명료한 분석 및 해석을 해낼 수 없는 신학계라면 책임을 통감해야 할지언정 비판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참 이상하네요. 목회자나 교회 지도자에 대해서는 대단히 이성적이고 학구적인 분석 및 해석을 내놓는 신학계가(특별히 독일 쪽 신학에 영향을 받은 부류) 현실정치에 대해서는 왜 이리도 감정적인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신학계 역시 언론의 언론플레이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한낱 여론일 수밖에 없는가 봅니다. 죄송하지만, 존경하는 정 목사님의 설교비평이나 글쓰기에서 반미적 색깔이 짙게 나타나고 있답니다. 정 목사님 글을 대단히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읽을 것이지만, 목사님 글에서 나타나는 반미적 성향에 대해서는 조금 아쉽습니다.
또한 신학이란 프로 신학자만의 전유물은 아니지요.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행위 속에 신학적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하여 판단하려면, 최소한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방식이나 성향을 갖고 성경을 읽고 있는지? 평상시 기도생활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또는 그 주변 인물들(김진홍 목사님이나 서경석 목사님 등)을 통한 간접 접근의 방식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탈-식민주의적인 고정관념에서 비롯되는 반미감정(감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나 철학에 대하여 신학적인 요소가 있다 없다 거론할 수조차 없지 않을까요? 또는 신학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꾸벅.
2008.08.04 21:36:01
2MB 의 정치에 신학적 혹은 철학적 사유가 있다고 말하면 지나가는 개가 웃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밖으로 드러나는 그의 모습은 그렇습니다. 다만, 5개월의 시간은 그를 제대로 평가하기에 너무 짧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고려를 해볼수는 있겠습니다.
2008.08.05 01:44:30
전 정치철학,탈-식민지 등등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단 한가지는 압니다... 2mb의 정책은 서민(백성)을 죽이는 정책입니다...
구약의 경제정의를 외치는 선지자들과 약자의 편이셨던 예수님의 생각과는 반대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기지 못할 것이니라::
단 한가지는 압니다... 2mb의 정책은 서민(백성)을 죽이는 정책입니다...
구약의 경제정의를 외치는 선지자들과 약자의 편이셨던 예수님의 생각과는 반대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기지 못할 것이니라::
2008.08.06 16:14:29
요셒 님,
정치신학을 공부하시나요?
세 가지 점을 위 대글에서 지적했군요.
1. 정치신학의 당위성에 대해
2. 정용섭의 반미적 성향에 대해
3. 탈-식민주의에 대해
일일이 답변하기는 좀 그렇군요.
그냥 두서 없이 몇 마디만 씁니다.
독일 신학이 정치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은
아마 루터의 두왕국론에 기인한 것인지 모르겠군요,
나는 그게 옳다고 봅니다.
신학은 사회과학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사회과학은 아니거든요.
사회과학을 향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는 하지만 직접 간섭하지는 않거든요.
정용섭 목사에게 반미적 성향이 있다고 말하는 분은
요셒 님이 처음이 아닌가 싶군요.
나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라,
단지 친미주의자가 아닐 뿐이랍니다.
요셒 님은 이 대목에서 탈식민주의 문제를 자꾸 거론하는데,
전체 맥락으로 볼 때 별로 정확하지 않은 것 같네요.
뭐가 문제일까 생각해봤어요.
그게 바로 미국신학의 독일신학의 차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거칠게 말해서 미국은 실용이라면
독일은 존재거든요.
미국신학은 응용적이고 실천적인 대목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독일은 언어 존재론에 천착하거든요.
그래서 역사적 예수(예수 세미나) 연구가 미국에서 발흥하면 반면에
독일은 해석학에 집중하는 거지요.
내가 보기에 아무리 미국신학적 토대에서 본다고 하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신학적으로 말할만한 게 별로 없어요.
뭔가를 말하려면 일관성이 보여야 하는데, 그게 없잖아요.
국내외 정치가 오락가락하잖아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반기독교적 바알숭배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기총 대표자들과 비슷한 신념이지요.
부시 대통령 방한 환영 기도회를 시청 앞에서
한기총이 주관해서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런 모임을 한기총이 니사사 주최했다니,
할말이 없군요.
요셒 님,
미안합니다.
공연히 말을 하다가 요셒 님에게 푸념을 쏟아놓은 것 같아서요.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행위가
한국의 역사를 퇴보시키고 있다는 염려가
이렇게 표현되고 말았군요.
주의 은총이.
정치신학을 공부하시나요?
세 가지 점을 위 대글에서 지적했군요.
1. 정치신학의 당위성에 대해
2. 정용섭의 반미적 성향에 대해
3. 탈-식민주의에 대해
일일이 답변하기는 좀 그렇군요.
그냥 두서 없이 몇 마디만 씁니다.
독일 신학이 정치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은
아마 루터의 두왕국론에 기인한 것인지 모르겠군요,
나는 그게 옳다고 봅니다.
신학은 사회과학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사회과학은 아니거든요.
사회과학을 향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는 하지만 직접 간섭하지는 않거든요.
정용섭 목사에게 반미적 성향이 있다고 말하는 분은
요셒 님이 처음이 아닌가 싶군요.
나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라,
단지 친미주의자가 아닐 뿐이랍니다.
요셒 님은 이 대목에서 탈식민주의 문제를 자꾸 거론하는데,
전체 맥락으로 볼 때 별로 정확하지 않은 것 같네요.
뭐가 문제일까 생각해봤어요.
그게 바로 미국신학의 독일신학의 차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거칠게 말해서 미국은 실용이라면
독일은 존재거든요.
미국신학은 응용적이고 실천적인 대목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독일은 언어 존재론에 천착하거든요.
그래서 역사적 예수(예수 세미나) 연구가 미국에서 발흥하면 반면에
독일은 해석학에 집중하는 거지요.
내가 보기에 아무리 미국신학적 토대에서 본다고 하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신학적으로 말할만한 게 별로 없어요.
뭔가를 말하려면 일관성이 보여야 하는데, 그게 없잖아요.
국내외 정치가 오락가락하잖아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반기독교적 바알숭배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기총 대표자들과 비슷한 신념이지요.
부시 대통령 방한 환영 기도회를 시청 앞에서
한기총이 주관해서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런 모임을 한기총이 니사사 주최했다니,
할말이 없군요.
요셒 님,
미안합니다.
공연히 말을 하다가 요셒 님에게 푸념을 쏟아놓은 것 같아서요.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행위가
한국의 역사를 퇴보시키고 있다는 염려가
이렇게 표현되고 말았군요.
주의 은총이.
2008.08.08 16:26:03
이명박 대통령이 점점 문민독재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군요.
오늘은 KBS 이사회에서 정연주 사장 해임 건의안을 의결했다네요.
대통령에게 임명권만 있지 임면권이 없는 케비에스 사장을 끌어내리려는 작전이
청와대, 검찰, 감사원, 케비에스 이사회 등등에 의해서 총체적으로 수행되고 있군요.
아무리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가 되지 않네요.
법이 정한 대로 임기를 보장해 주고,
다음 사장을 원하는 대로 임명하면 될 것을
이렇게 불법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이다니,
어처구니가 없군요.
이 대통령은 참으로 정치력이 부족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천천히 문제를 풀어가도
자신의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꿀 수 있을 텐데,
조급증만 드러내고 있네요.
지금이 정말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KBS 이사회에서 정연주 사장 해임 건의안을 의결했다네요.
대통령에게 임명권만 있지 임면권이 없는 케비에스 사장을 끌어내리려는 작전이
청와대, 검찰, 감사원, 케비에스 이사회 등등에 의해서 총체적으로 수행되고 있군요.
아무리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가 되지 않네요.
법이 정한 대로 임기를 보장해 주고,
다음 사장을 원하는 대로 임명하면 될 것을
이렇게 불법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이다니,
어처구니가 없군요.
이 대통령은 참으로 정치력이 부족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천천히 문제를 풀어가도
자신의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꿀 수 있을 텐데,
조급증만 드러내고 있네요.
지금이 정말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2008.08.08 16:42:55
목사님, 명료하지 못한 제 반론에 대해서 계속해서 응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저는 루터의 두왕국론(성 어거스틴의 신국론에 이미 등장했던 개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유대교 철학자 마틴 부버가 소개한 "왕으로써 오신 하나님"의 정치신학, 또는 칼빈의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이 제시하는 개념이 더 옳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 루터의 두왕국론을 지지하신다니, 의외입니다. 루터와 독일 신학이 정치에 무관심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듯이, 루터의 두왕국론은 이미 히틀러 시대에 그 정치신학적 유오성(有誤性)을 만천하에 드러내지 않았습니까? 루터교 목회자요 독일의 대표적 신학자였던 본회퍼 목사님 역시 이 부분을 인식하여, 칼 바르트의 고백교회 운동을 지지하고 적극 참여했었지요. 그리고 독일 내에서의 고백교회 운동은 본회퍼 목사님이 주도하셨고,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시지 않았습니까?
독일과 미국의 정치신학적 차이를 논하자면, 미국의 정치를 이끌고 있는 주류 신학자들는 두왕국론을 거부하고 있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6,70년대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가 두왕국론에 대한 견해 차이에 있다고 하는 정치신학자(Glenn Tinder)도 있었습니다. 복음주의 신학자 Alister Mcgrath 교수는 "The Second One Thounsand Years"(Edited by Richard John Neuhaus)라는 책에서 루터의 정치사회에 대한 생각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루터의 정치신학적인 생각에는 도시사회에서의 경제 및 금융에 대한 현실적인 논리가 빠져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루터의 정치신학은 자칫 해석의 차이에 따라 프롤레탈리아적 제국주의 또는 루터적 사회주의 철학에 가깝죠. 때문에 날이 갈수록 부강해지는 유럽의 유대인 공동체를 그토록 핍박하는 신학적 도구로 악용되었지 않습니까? 학문적인 업적에 있어서, 본회퍼 목사님은 바로 그와같은 루터신학의 헛점을 보안하기 위해 일생을 투자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면에 칼빈은 도시사회에서의 경제 및 금융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고, 자본주의 철학을 위시한 자유 기업 제도와 시장경제 체제를 주창했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칼빈주의 신학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저는 그런 차원에서 탈-식민주의에 대해 말씀 드린 것은 아닙니다. 아주 간단한 예를 하나 들자면, 북한선교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 차이를 '탈-식민주의'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탈식민주의의 한계를 극복했는지 아니면 아직도 ‘피해의식’이라는 집단 무의식에 머물러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북한의 상황을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탈-식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역사관은 북한의 주체사상에 휩쓸리기 딱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복인지 보호인지, 중국의 관리하에 있는 티벳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봐야 합니까?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탈-식민주의라는 기준이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서구적 제국주의 정서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있다는 문제입니다. 중국이나 이슬람의 동양적 제국주의 정서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한 해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무감각한 지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탈-식민주의”라는 스펙트럼으로 지난 역사를 관찰하고 해석한 후에 지금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대책 또는 대안을 내놓는 역사해석의 방법론적 메뉴얼이 발전하지 못한 상태로 정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탈-식민주의적 역사관에 익숙한 일부 선교사들이 북한이나 이슬람선교를 하다가 동정심이나 피해의식 따위에 휩쓸려 오히려 주체사상이나 이슬람의 수피즘(Sufism)에 세계관 자체가 희석되어 버리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이슬람권 선교지에서 미국 대통령에 대해 욕설을 퍼붓기도 하는 등, 선교라기 보다 전문 반미운동가와 같은 언행을 일삼기도 합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 한인교회 2세 영어부에서는 한 사역자의 부주의함 때문에 청년 여러명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행위에 대한 제 생각은 조금 다르지만,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겠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제 겨우 몇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렇다 저렇다 한다면 조금 이른듯 합니다만, 사실 선거운동 기간동안 내세웠던 기본철학에 만큼은 그대로 이행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아직은 별 문제없이 진행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연 현실정치의 통치 행위 자체가 역사를 퇴보시키거나 진보 또는 "진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요? 그다지 신학적인 해석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행위가 "반기독교적인 바알숭배"라고 말씀하시기 이 전에, "우리민족제일주의"와 같은 북한의 무신론 사상이나 이슬람이 남한의 기독교문화를 말살시키기 위해 펼치고 있는 반기독교적 정치공작에 대해서 먼저 거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목사님이 반미'주의자'라고 생각해서 그런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전달받는 느낌들 중에 반미적 성향이 있는듯해서 솔직히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신학은 사실 독일과 영국, 게다가 라티노(남미) 신학까지 품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불행히도 아직까지 동양적 신학이 제대로 제시되고 있지 못한 상태죠.)
우선, 저는 루터의 두왕국론(성 어거스틴의 신국론에 이미 등장했던 개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유대교 철학자 마틴 부버가 소개한 "왕으로써 오신 하나님"의 정치신학, 또는 칼빈의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이 제시하는 개념이 더 옳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 루터의 두왕국론을 지지하신다니, 의외입니다. 루터와 독일 신학이 정치에 무관심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듯이, 루터의 두왕국론은 이미 히틀러 시대에 그 정치신학적 유오성(有誤性)을 만천하에 드러내지 않았습니까? 루터교 목회자요 독일의 대표적 신학자였던 본회퍼 목사님 역시 이 부분을 인식하여, 칼 바르트의 고백교회 운동을 지지하고 적극 참여했었지요. 그리고 독일 내에서의 고백교회 운동은 본회퍼 목사님이 주도하셨고,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시지 않았습니까?
독일과 미국의 정치신학적 차이를 논하자면, 미국의 정치를 이끌고 있는 주류 신학자들는 두왕국론을 거부하고 있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6,70년대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가 두왕국론에 대한 견해 차이에 있다고 하는 정치신학자(Glenn Tinder)도 있었습니다. 복음주의 신학자 Alister Mcgrath 교수는 "The Second One Thounsand Years"(Edited by Richard John Neuhaus)라는 책에서 루터의 정치사회에 대한 생각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루터의 정치신학적인 생각에는 도시사회에서의 경제 및 금융에 대한 현실적인 논리가 빠져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루터의 정치신학은 자칫 해석의 차이에 따라 프롤레탈리아적 제국주의 또는 루터적 사회주의 철학에 가깝죠. 때문에 날이 갈수록 부강해지는 유럽의 유대인 공동체를 그토록 핍박하는 신학적 도구로 악용되었지 않습니까? 학문적인 업적에 있어서, 본회퍼 목사님은 바로 그와같은 루터신학의 헛점을 보안하기 위해 일생을 투자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면에 칼빈은 도시사회에서의 경제 및 금융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고, 자본주의 철학을 위시한 자유 기업 제도와 시장경제 체제를 주창했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칼빈주의 신학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저는 그런 차원에서 탈-식민주의에 대해 말씀 드린 것은 아닙니다. 아주 간단한 예를 하나 들자면, 북한선교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 차이를 '탈-식민주의'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탈식민주의의 한계를 극복했는지 아니면 아직도 ‘피해의식’이라는 집단 무의식에 머물러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북한의 상황을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탈-식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역사관은 북한의 주체사상에 휩쓸리기 딱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복인지 보호인지, 중국의 관리하에 있는 티벳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봐야 합니까?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탈-식민주의라는 기준이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서구적 제국주의 정서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있다는 문제입니다. 중국이나 이슬람의 동양적 제국주의 정서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한 해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무감각한 지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탈-식민주의”라는 스펙트럼으로 지난 역사를 관찰하고 해석한 후에 지금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대책 또는 대안을 내놓는 역사해석의 방법론적 메뉴얼이 발전하지 못한 상태로 정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탈-식민주의적 역사관에 익숙한 일부 선교사들이 북한이나 이슬람선교를 하다가 동정심이나 피해의식 따위에 휩쓸려 오히려 주체사상이나 이슬람의 수피즘(Sufism)에 세계관 자체가 희석되어 버리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이슬람권 선교지에서 미국 대통령에 대해 욕설을 퍼붓기도 하는 등, 선교라기 보다 전문 반미운동가와 같은 언행을 일삼기도 합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 한인교회 2세 영어부에서는 한 사역자의 부주의함 때문에 청년 여러명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행위에 대한 제 생각은 조금 다르지만,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겠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제 겨우 몇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렇다 저렇다 한다면 조금 이른듯 합니다만, 사실 선거운동 기간동안 내세웠던 기본철학에 만큼은 그대로 이행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아직은 별 문제없이 진행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연 현실정치의 통치 행위 자체가 역사를 퇴보시키거나 진보 또는 "진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요? 그다지 신학적인 해석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행위가 "반기독교적인 바알숭배"라고 말씀하시기 이 전에, "우리민족제일주의"와 같은 북한의 무신론 사상이나 이슬람이 남한의 기독교문화를 말살시키기 위해 펼치고 있는 반기독교적 정치공작에 대해서 먼저 거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목사님이 반미'주의자'라고 생각해서 그런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전달받는 느낌들 중에 반미적 성향이 있는듯해서 솔직히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신학은 사실 독일과 영국, 게다가 라티노(남미) 신학까지 품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불행히도 아직까지 동양적 신학이 제대로 제시되고 있지 못한 상태죠.)
2008.08.08 17:48:50
목사님, 이번 정부가 공영방송의 사장 임명권 뿐만 아니라 해임권까지 모두 회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만약에 그렇다면 뭐가 그리 큰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신문사와 방송언론사의 모든 운영 방식에 시장경제의 원리원칙을 적용하자고 선거 때부터 공약으로 내세웠었는데, 새삼스러울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불법적인 방식"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어떤 부분이 불법적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자기가 세운 회사도 아니고 어차피 지난 정부의 권력을 등에 업고 올라간 자리인데 그냥 내주면 될 것을 왜 이리도 시끄럽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알게된 H사모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총련에 연관된 故 H목사님 사모님이신 그분이 지나가는 이야기로 해주신 KBS를 장악하고 있는 주체사상파들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분은 비록 자기는 친북파이지만, 한국 주사파들의 진화론적 무신론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말을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하여튼 저로써는 구두로 귀동냥한 이야기라서 별 신빙성은 없는듯 합니다.
하지만, 목사님! 신학계에서 먼저 나서서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에 나타나는 진화론적 무신론에 대한 치밀한 분석 및 비평을 내놓아야하는 것 아닙니까? 신학계가 언론에 대한 바른 성찰이나 비평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결국 정치계가 직접 참견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SBS '신의 길 인간의 길' 사건 때 한기총이 그랬듯이 교인들 숫자로 밀어붙이는 항의를 할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신학계에서 균형잡힌 비평을 해야하는게 아닙니까?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신학계는 독도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학적인 아젠다를 내놓아야 하지 않나요?
저는 오히려, 자기가 세운 회사도 아니고 어차피 지난 정부의 권력을 등에 업고 올라간 자리인데 그냥 내주면 될 것을 왜 이리도 시끄럽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알게된 H사모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총련에 연관된 故 H목사님 사모님이신 그분이 지나가는 이야기로 해주신 KBS를 장악하고 있는 주체사상파들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분은 비록 자기는 친북파이지만, 한국 주사파들의 진화론적 무신론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말을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하여튼 저로써는 구두로 귀동냥한 이야기라서 별 신빙성은 없는듯 합니다.
하지만, 목사님! 신학계에서 먼저 나서서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에 나타나는 진화론적 무신론에 대한 치밀한 분석 및 비평을 내놓아야하는 것 아닙니까? 신학계가 언론에 대한 바른 성찰이나 비평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결국 정치계가 직접 참견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SBS '신의 길 인간의 길' 사건 때 한기총이 그랬듯이 교인들 숫자로 밀어붙이는 항의를 할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신학계에서 균형잡힌 비평을 해야하는게 아닙니까?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신학계는 독도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학적인 아젠다를 내놓아야 하지 않나요?
2008.08.08 17:57:46
요셒 님,
뜬금없이 주사파, 친북, 진화론적 무신론 등등의 이야기를 하는군요.
불법, 합법 문제는 이미 내가 위에서 설명했는데,
그걸 모르겠다니,
닌감하네요.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된 자리를 중간에 끌어내리는 게 불법이지요.
이명막의 지지도가 20%도 안 될 정도로 정치를 못한다고 해서
지금 끌어내릴 수는 없지요?
법적으로 5년이 보장되었으니까요.
케비에스 사장 자리도 마찬가지에요.
그건 그렇고,
자기가 세운 회사도 아니고,,, 운운은
정말 책임 없는 발언이군요.
그런 정도로 생각을 가볍게 하는 분이라면
더 이상 대화할 필요도 없겠군요.
감사.
뜬금없이 주사파, 친북, 진화론적 무신론 등등의 이야기를 하는군요.
불법, 합법 문제는 이미 내가 위에서 설명했는데,
그걸 모르겠다니,
닌감하네요.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된 자리를 중간에 끌어내리는 게 불법이지요.
이명막의 지지도가 20%도 안 될 정도로 정치를 못한다고 해서
지금 끌어내릴 수는 없지요?
법적으로 5년이 보장되었으니까요.
케비에스 사장 자리도 마찬가지에요.
그건 그렇고,
자기가 세운 회사도 아니고,,, 운운은
정말 책임 없는 발언이군요.
그런 정도로 생각을 가볍게 하는 분이라면
더 이상 대화할 필요도 없겠군요.
감사.
2008.08.08 18:52:05
제 생각이 무책임하고 가볍게 여겨지신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KBS 사장직을 임기제로 바꾸는 법적 과정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지 않았나요? 중요한 것은, 지금 이명박 정부와 여당은 바로 그 "법"을 다시 바꾸기 위해 집권여당으로써의 법적 권한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직까지 월권행위라고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조금더 지켜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역시 국회의원들에 의해 탄핵될 수 있지요. 물론 그 이유는 타당해야겠지만 말입니다. KBS 사장에 대해, 바로 그 타당성과 당위성을 법적으로 검진하고 있는 중인 것 같은데, 아직 확실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불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면 오히려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생각됩니다.
제 소견으로는, 주체사상과 진화론과 친북은 동일한 문맥으로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체사상의 과학적인 바탕이 되어주는 철학이 진화론적 무신론이기 때문이죠. 지금, 한국에서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집권여당 쪽에서는 정연주 사장을 친북좌파라고 분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리도 끌어내리려 하는 것이고요. 상황이 이와같을진대 뜬금없다고 하신다면, 저는 그저 난감할 뿐입니다.
사실 정연주 사장이 임기를 채우고 싶으시다면, KBS가 흑자였냐? 적자였냐?와 같은 부분에 대해 변호하기 보다는 자기가 친북좌파가 아니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확증해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몇가지 이유로 정연주 사장이 이제는 그만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친북좌파라는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논리적인 반론이 없었다.
2. 정연주 사장이 올라간 이후로 KBS는 북한인권 운동에 대해서 편파적이 되었다.
3. KBS의 운영방식이 공영방송인지 민영방송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4. 민영방송이라고 보기에는 경영실력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5. 공영방송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반정부적이다.
등등....
그런데 오히려 KBS 사장직을 임기제로 바꾸는 법적 과정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지 않았나요? 중요한 것은, 지금 이명박 정부와 여당은 바로 그 "법"을 다시 바꾸기 위해 집권여당으로써의 법적 권한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직까지 월권행위라고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조금더 지켜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역시 국회의원들에 의해 탄핵될 수 있지요. 물론 그 이유는 타당해야겠지만 말입니다. KBS 사장에 대해, 바로 그 타당성과 당위성을 법적으로 검진하고 있는 중인 것 같은데, 아직 확실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불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면 오히려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생각됩니다.
제 소견으로는, 주체사상과 진화론과 친북은 동일한 문맥으로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체사상의 과학적인 바탕이 되어주는 철학이 진화론적 무신론이기 때문이죠. 지금, 한국에서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집권여당 쪽에서는 정연주 사장을 친북좌파라고 분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리도 끌어내리려 하는 것이고요. 상황이 이와같을진대 뜬금없다고 하신다면, 저는 그저 난감할 뿐입니다.
사실 정연주 사장이 임기를 채우고 싶으시다면, KBS가 흑자였냐? 적자였냐?와 같은 부분에 대해 변호하기 보다는 자기가 친북좌파가 아니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확증해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몇가지 이유로 정연주 사장이 이제는 그만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친북좌파라는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논리적인 반론이 없었다.
2. 정연주 사장이 올라간 이후로 KBS는 북한인권 운동에 대해서 편파적이 되었다.
3. KBS의 운영방식이 공영방송인지 민영방송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4. 민영방송이라고 보기에는 경영실력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5. 공영방송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반정부적이다.
등등....
2008.08.08 18:52:56
어제 마틴 목사랑 시내에 함께 나갈 일이 있었어요.
최근 한국 소식을 아냐고 물으니 전혀...
영국에서는 북한 소식은 가끔 나와도 한국 소식은 참 접하기 어려워요.
특히 정치관련 뉴스는.
촛불문화제를 비롯하여 목회자들과 시민들이 체포당한 일 등에 대해
약간 설명을 드렸더니 너무 많이 놀라더군요.
21세기 대명천지에 한국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정신이 조금이라도 있는 영국인들은 대개 반미성향이 강합니다.
영국 교회 목회자들의 상당수는 미국식 천민자본주의에 입각한 상업주의적 목회에 대해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표하지요.
미국 핫바지만 붙들고 있다가는 이 나라가 큰 일 날텐데요...
제가 일 주일 내로 어디다 관련 글을 써야 하는데
한국 상황에 요 며칠 가슴이 답답하고 자꾸 분노가 일어 그걸 삼키느라 글이 잘 안 써지네요.
어떻게 일구어낸 민주주의인데 하루 아침에 이런 식으로 뭉개버리다니요...
제가 제 아이들에게 논담조로 자주 쓰는 말이 있어요.
"얘들아 인생을 좀 진지하게 살어!"
저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이 삶을 좀 진지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우리 애들이 배울까봐 걱정되네요.
녀석들 요즘 방학을 맞아 한국말 더 배우겠다고
틈만 나면 유튜브로 <무릎팍 도사> 보며 낄낄대는데
정치 관련 소식을 대하면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나 봅니다.
도무지 상식적인 일이어야지요.
이 코너에 글을 올리지 말야야지 매일매일 다짐하다가 오늘은 도무지...
최근 한국 소식을 아냐고 물으니 전혀...
영국에서는 북한 소식은 가끔 나와도 한국 소식은 참 접하기 어려워요.
특히 정치관련 뉴스는.
촛불문화제를 비롯하여 목회자들과 시민들이 체포당한 일 등에 대해
약간 설명을 드렸더니 너무 많이 놀라더군요.
21세기 대명천지에 한국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정신이 조금이라도 있는 영국인들은 대개 반미성향이 강합니다.
영국 교회 목회자들의 상당수는 미국식 천민자본주의에 입각한 상업주의적 목회에 대해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표하지요.
미국 핫바지만 붙들고 있다가는 이 나라가 큰 일 날텐데요...
제가 일 주일 내로 어디다 관련 글을 써야 하는데
한국 상황에 요 며칠 가슴이 답답하고 자꾸 분노가 일어 그걸 삼키느라 글이 잘 안 써지네요.
어떻게 일구어낸 민주주의인데 하루 아침에 이런 식으로 뭉개버리다니요...
제가 제 아이들에게 논담조로 자주 쓰는 말이 있어요.
"얘들아 인생을 좀 진지하게 살어!"
저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이 삶을 좀 진지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우리 애들이 배울까봐 걱정되네요.
녀석들 요즘 방학을 맞아 한국말 더 배우겠다고
틈만 나면 유튜브로 <무릎팍 도사> 보며 낄낄대는데
정치 관련 소식을 대하면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나 봅니다.
도무지 상식적인 일이어야지요.
이 코너에 글을 올리지 말야야지 매일매일 다짐하다가 오늘은 도무지...
2008.08.09 04:34:34
"통속주의와 꼼수주의"에 대해 이야기한 글에, 뜬금없이 "탈-식민주의적 관점"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와서 무슨 영문일까, 보고 있었는데 결국은 댓글들이 이런 식으로 흘러 가네요.
외람되지만 아무래도 필요할 것 같아서 말씀드리자면, 요ㅅㅔㅍ님은 지금 스스로 무슨 말을 하시고 계신 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글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초-다원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고 쓰시면서, 한편으로는 '친미하면 왜 안되냐'고 질문하신다던가 (다시 확인하니 이 댓글은 지워졌네요?), "신문사와 방송언론사의 모든 운영 방식에 시장경제의 원리원칙을 적용하자"는 게 MB의 공약이었으니까, 공영방송의 임명권/해임권을 "회수"하는 게 무슨 문제냐라고 하신다던가, "주체사상과 진화론과 친북은 동일한 문맥으로 통한다"고 쓰신다던가...
마치 물가상승을 억제하겠다고 새로 물가지수도 만들고 하는 동시에, 성장률 7%를 맞추겠다고 환율을 건드리는 모 정부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_-; 여기까지 말씀드렸는데도 '아차, 왜 이렇게 썼을까' 하는 생각이 안드신다면, 참, 더 말씀드리기가 어렵겠네요.
KBS 사장 문제만 간단히 반복해 드리면, 그의 임기는 "법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 보장을 법률로 명시할 것을 발의한 건 현 여당이었구요. 그가 (무슨 혐의가 있었는 지 금시초문입니다만) 친북좌파가 아니라 주사꼴통할애비라고 해도, 그의 '사상'은 해임의 "법률적 요건"이 아닙니다.
저도 법에 대해 별반 아는 건 없습니다만, 법률로 임기가 보장된 자리를,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리고 자신의 사람으로 채우려는 시도에 대해서 "그래서 뭐가 문젠데? 정권 바뀌면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만약 드신다면, 우리나라가 법치주의 국가인가에 대해 (다시) 공부하셔야만 할 겁니다.
외람되지만 아무래도 필요할 것 같아서 말씀드리자면, 요ㅅㅔㅍ님은 지금 스스로 무슨 말을 하시고 계신 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글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초-다원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고 쓰시면서, 한편으로는 '친미하면 왜 안되냐'고 질문하신다던가 (다시 확인하니 이 댓글은 지워졌네요?), "신문사와 방송언론사의 모든 운영 방식에 시장경제의 원리원칙을 적용하자"는 게 MB의 공약이었으니까, 공영방송의 임명권/해임권을 "회수"하는 게 무슨 문제냐라고 하신다던가, "주체사상과 진화론과 친북은 동일한 문맥으로 통한다"고 쓰신다던가...
마치 물가상승을 억제하겠다고 새로 물가지수도 만들고 하는 동시에, 성장률 7%를 맞추겠다고 환율을 건드리는 모 정부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_-; 여기까지 말씀드렸는데도 '아차, 왜 이렇게 썼을까' 하는 생각이 안드신다면, 참, 더 말씀드리기가 어렵겠네요.
KBS 사장 문제만 간단히 반복해 드리면, 그의 임기는 "법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 보장을 법률로 명시할 것을 발의한 건 현 여당이었구요. 그가 (무슨 혐의가 있었는 지 금시초문입니다만) 친북좌파가 아니라 주사꼴통할애비라고 해도, 그의 '사상'은 해임의 "법률적 요건"이 아닙니다.
저도 법에 대해 별반 아는 건 없습니다만, 법률로 임기가 보장된 자리를,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리고 자신의 사람으로 채우려는 시도에 대해서 "그래서 뭐가 문젠데? 정권 바뀌면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만약 드신다면, 우리나라가 법치주의 국가인가에 대해 (다시) 공부하셔야만 할 겁니다.
2008.08.09 10:33:21
빈이 님, 네 맞습니다. 친미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되어서 지워버렸던 것입니다. 저는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우선 미국은 다원주의 국가입니다. 부시 대통령과 정치적 주도권을 쥐고 있는 부류는 물론 미국식 복음주의 보수라고 할 수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다원화된 나라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문화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도시들 중에 하나인 시애틀에 살고있습니다. 사춘기 때 부모님을 따라서 이민을 왔고, 벌써 인생의 절반 이상을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미국이 한국만큼이나 소중한 제2의 고향이고, 한국이 어머니라면 미국은 최소한 대모(代母: godmother) 정도는 됩니다.
이런 차원에서라면 친미하는게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데, 대구성서아카데미의 분위기상 "친미"라는 단어가 오해를 살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친미=식민주의" 또는 "국제화=식민주의"라는 이상한 공식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교포로써 오히려 미국에서 한국인-크리스챤으로써 열심히 신실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친미하고 있네요. 사실 저는 미국의 정치적 방향성에 대해 반대할 부분은 반대하지만, 이 나라의 바탕에 아직까지는 지켜지고 있는 성서적 가치관들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나라 중심의 가치관이 점진적으로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슬람이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제가 살고있는 시애틀은 매우 강력한 뉴에이지 정신 때문에 어떤 종류의 종교이든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지역으로 유명한데, 요즘 이슬람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제가 탈식민주의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은 그저 근거 없는 헛소리를 하고있는게 아닙니다. 실제로 친미니 반미니 하는 생각들의 배경에는 탈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부르스 A. 맥도웰이 조사한 미국 이슬람에 대한 연구내용을 찾아보시면 조금더 전문적인 자료를 찾아보실 수 있겠습니다만, 미국의 개신교회는 이슬람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또다른 형태로 미국을 미워합니다. 6개월 정도 중국에 있는 동안, 토론토 쪽에서 온 친북 해외동포들을 위해 준비된 어느 세미나 비슷한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어느 조선족 목회자로부터 전달받은 자료 일부분을 적어보겠습니다.
"우리 민족제일주의기치밑에 조국통일위업을 추동하기 위하여서는 우리 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를 실천으로 해결하는것이 또한 중요한 문제로 나서고 있다.
지난날 조선반도에서의 대결구도는 북과 미국사이의 량자구도로 되여있었다.
그러나 6.15, 10.4공동선언이 밝힌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밑에 나아가는 오늘에 와서는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민족 대 미국의 관계로 력량편성이 새롭게 이루어지게 되였다.
오늘 남조선에서는 북과 남, 해외의 모든 조선동포들이 서로 뗄수 없는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이 날로 높아가고있다.
남조선인민들 속에서는 북이 "주적"이 아니라 함께 통일로 가고 생사고락을 같이해야 할 동족이며 미국은 "우방"이 아니라 쳐몰아내야 할 침략자라는 관점이 확고하게 서가고있다.
최근 남조선의 한 민심조사기구가 대학생 1,270명 을 조사한 결과 근 50%의 대학생들이 미국을 조선반도의 통일을 반대하는 남조선인민들의 "적대세력"으로 인정하고있다. ........." <우리 민족제일주의와 조국통일> 평양출판사 주체96(2007)년, 송승환.
동일한 책에 이와같은 내용도 있습니다.
"북과 남의 사상과 제도가 서로 다른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해외동포들속에도 정견과 신아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실정에서 북과 남, 해외의 3자가 서로 자기 사상, 자기 제도, 자기 신앙만을 고집하고 내세우려 한다면 전민족대단결은 고사하고 민족사이에 불신과 대결의 골만 깊어지게 된다.
전민족대단결을 이룩하는데서 기독교적 사상과 제도,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는것은 어길수 없는 근본원칙이다. ....."
중요한 것은 그곳에 수십명의 대학생,청년들을 이끌고 온 지도자가 미국에서 온 한인목회자였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친북 문제, 반미 문제, 탈식민주의 문제 등은 서로 연결되어있고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제작년인가 모새골 임영수 목사님이 전하신 주일설교방송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주 간단하게 왜 북한의 공산주의와 기독교가 공존할 수 없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는 신앙을 인정하지도 예배를 허용하지도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대구성서아카데미에서는 좋은 글을 읽을 수 있고 신학적 주제들에 대해 열정적으로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왜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열정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KBS 사장 해임문제 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더 큰 문제는 북한에서의 인권유린 문제 아닙니까? !! 제가 아는 많은 분들은 지금도 중국 공안국에서 북한으로 보내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현실은, 그런 분들이 일단 북한으로 넘겨지면 그야말로 "끝"이라고 얘기 합니다.
KBS 사장은 사장직 잃어도 알아서 잘 먹고살지 않겠습니까?(지울까 말까, 그냥 올리겠습니다.) 그분은 아주 잘 사실 것 같은데요. 신문사나 민영 케이블방송사를 창업하시면 오히려 더 자유롭게 운영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명예"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자칭 "민주화"를 이룩해놨는데 그 "민주화"라는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네요.
부디 주님의 귀한 대구성서아카데미 공동체가 지금 우선적으로 해야할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길고 쓸데없는 글, 죄송합니다!!
이런 차원에서라면 친미하는게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데, 대구성서아카데미의 분위기상 "친미"라는 단어가 오해를 살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친미=식민주의" 또는 "국제화=식민주의"라는 이상한 공식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교포로써 오히려 미국에서 한국인-크리스챤으로써 열심히 신실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친미하고 있네요. 사실 저는 미국의 정치적 방향성에 대해 반대할 부분은 반대하지만, 이 나라의 바탕에 아직까지는 지켜지고 있는 성서적 가치관들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나라 중심의 가치관이 점진적으로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슬람이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제가 살고있는 시애틀은 매우 강력한 뉴에이지 정신 때문에 어떤 종류의 종교이든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지역으로 유명한데, 요즘 이슬람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제가 탈식민주의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은 그저 근거 없는 헛소리를 하고있는게 아닙니다. 실제로 친미니 반미니 하는 생각들의 배경에는 탈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부르스 A. 맥도웰이 조사한 미국 이슬람에 대한 연구내용을 찾아보시면 조금더 전문적인 자료를 찾아보실 수 있겠습니다만, 미국의 개신교회는 이슬람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또다른 형태로 미국을 미워합니다. 6개월 정도 중국에 있는 동안, 토론토 쪽에서 온 친북 해외동포들을 위해 준비된 어느 세미나 비슷한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어느 조선족 목회자로부터 전달받은 자료 일부분을 적어보겠습니다.
"우리 민족제일주의기치밑에 조국통일위업을 추동하기 위하여서는 우리 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를 실천으로 해결하는것이 또한 중요한 문제로 나서고 있다.
지난날 조선반도에서의 대결구도는 북과 미국사이의 량자구도로 되여있었다.
그러나 6.15, 10.4공동선언이 밝힌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밑에 나아가는 오늘에 와서는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민족 대 미국의 관계로 력량편성이 새롭게 이루어지게 되였다.
오늘 남조선에서는 북과 남, 해외의 모든 조선동포들이 서로 뗄수 없는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이 날로 높아가고있다.
남조선인민들 속에서는 북이 "주적"이 아니라 함께 통일로 가고 생사고락을 같이해야 할 동족이며 미국은 "우방"이 아니라 쳐몰아내야 할 침략자라는 관점이 확고하게 서가고있다.
최근 남조선의 한 민심조사기구가 대학생 1,270명 을 조사한 결과 근 50%의 대학생들이 미국을 조선반도의 통일을 반대하는 남조선인민들의 "적대세력"으로 인정하고있다. ........." <우리 민족제일주의와 조국통일> 평양출판사 주체96(2007)년, 송승환.
동일한 책에 이와같은 내용도 있습니다.
"북과 남의 사상과 제도가 서로 다른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해외동포들속에도 정견과 신아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실정에서 북과 남, 해외의 3자가 서로 자기 사상, 자기 제도, 자기 신앙만을 고집하고 내세우려 한다면 전민족대단결은 고사하고 민족사이에 불신과 대결의 골만 깊어지게 된다.
전민족대단결을 이룩하는데서 기독교적 사상과 제도,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는것은 어길수 없는 근본원칙이다. ....."
중요한 것은 그곳에 수십명의 대학생,청년들을 이끌고 온 지도자가 미국에서 온 한인목회자였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친북 문제, 반미 문제, 탈식민주의 문제 등은 서로 연결되어있고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제작년인가 모새골 임영수 목사님이 전하신 주일설교방송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주 간단하게 왜 북한의 공산주의와 기독교가 공존할 수 없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는 신앙을 인정하지도 예배를 허용하지도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대구성서아카데미에서는 좋은 글을 읽을 수 있고 신학적 주제들에 대해 열정적으로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왜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열정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KBS 사장 해임문제 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더 큰 문제는 북한에서의 인권유린 문제 아닙니까? !! 제가 아는 많은 분들은 지금도 중국 공안국에서 북한으로 보내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현실은, 그런 분들이 일단 북한으로 넘겨지면 그야말로 "끝"이라고 얘기 합니다.
KBS 사장은 사장직 잃어도 알아서 잘 먹고살지 않겠습니까?(지울까 말까, 그냥 올리겠습니다.) 그분은 아주 잘 사실 것 같은데요. 신문사나 민영 케이블방송사를 창업하시면 오히려 더 자유롭게 운영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명예"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자칭 "민주화"를 이룩해놨는데 그 "민주화"라는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네요.
부디 주님의 귀한 대구성서아카데미 공동체가 지금 우선적으로 해야할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길고 쓸데없는 글, 죄송합니다!!
2008.08.09 12:00:01
긴 답글 수고하셨습니다. 다만, 과연 제 댓글에 대한 답글인 지 알 수 없군요.
북한 인권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는 것은 이해했습니다만, 여전히, 왜 현 정부와 한국 교회의 꽁수부림에 대해 쓰신 정목사님의 본글을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분석한', 혹은 '반미적인' 글로 읽어야 되는 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명예"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자칭 "민주화"를 이룩해놨는데 그 "민주화"라는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네요.]
공영 방송 수장의 진퇴를 둘러싼 그 모든 논의가, 한 순간에 개인의 명예욕으로 수렴하는 장면이군요. 이 분께 제가 무슨 말씀을 더 드릴 수가 있을까요...? 일단 사춘기 때 이민가셨다니 한국 근현대사를 정상적으로(?) 공부하시지는 않으셨을 걸로 짐작하고, 되도록 서로 다른 관점의 책들을 구하셔서 한 번 차분히 훑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정치 주제들은, 길게 보기 시작하면 저 멀리 노론 시파와 벽파를 가르던 세월, 혹은 그 이상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니까요.
북한 인권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는 것은 이해했습니다만, 여전히, 왜 현 정부와 한국 교회의 꽁수부림에 대해 쓰신 정목사님의 본글을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분석한', 혹은 '반미적인' 글로 읽어야 되는 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명예"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자칭 "민주화"를 이룩해놨는데 그 "민주화"라는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네요.]
공영 방송 수장의 진퇴를 둘러싼 그 모든 논의가, 한 순간에 개인의 명예욕으로 수렴하는 장면이군요. 이 분께 제가 무슨 말씀을 더 드릴 수가 있을까요...? 일단 사춘기 때 이민가셨다니 한국 근현대사를 정상적으로(?) 공부하시지는 않으셨을 걸로 짐작하고, 되도록 서로 다른 관점의 책들을 구하셔서 한 번 차분히 훑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정치 주제들은, 길게 보기 시작하면 저 멀리 노론 시파와 벽파를 가르던 세월, 혹은 그 이상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니까요.
2008.08.09 13:42:39
빈이 님, 여전히 제 글이 명확하지 않군요. 죄송합니다.
저는 정목사님 글을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봐야한다거나, '반미'적인 글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에게 비춰진 느낌을 얘기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인신공격적인 느낌이 있어서 답변하지 않으려다 몇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꼭 한국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마쳐야지만 한국의 근현대사를 알수 있나요? 편협한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저는 미국에 있었지만 하와이대학의 서대숙 박사님이나 Bruce Cummings 교수님의 강의를 기회가 되면 꼭 참석해서 들어왔구요, 그런 분들의 책 역시 꼬박꼬박 읽어왔습니다. 오히려, 중국계 미국인 교수님들이나, 저와는 아주 절친한 할얼빈대학 종교사회철학과 교수님이셨던 러시아인 드미트리 교수님 같은 분들과 멘토쉽을 통해서 다양한 관점들을 섭렵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탈식민주의 어쩌구 떠들어대는 이유가 바로 이와같은 이유에 있습니다. 한국의 '근현대사'라는 Status Quo에 멈춰버려 극변하고있는 세계 정세와 현실을 충분히 소화해내지 못한 역사관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디 한국의 신학계가 탈식민주의라는 듣기좋은 용어로 잘 포장된 우리의 "피해의식"을 이제는 정말 극복할 수 있게되길 바랍니다. 지금의 한국 신학계는 한국의 교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낼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정목사님 글을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봐야한다거나, '반미'적인 글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에게 비춰진 느낌을 얘기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인신공격적인 느낌이 있어서 답변하지 않으려다 몇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꼭 한국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마쳐야지만 한국의 근현대사를 알수 있나요? 편협한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저는 미국에 있었지만 하와이대학의 서대숙 박사님이나 Bruce Cummings 교수님의 강의를 기회가 되면 꼭 참석해서 들어왔구요, 그런 분들의 책 역시 꼬박꼬박 읽어왔습니다. 오히려, 중국계 미국인 교수님들이나, 저와는 아주 절친한 할얼빈대학 종교사회철학과 교수님이셨던 러시아인 드미트리 교수님 같은 분들과 멘토쉽을 통해서 다양한 관점들을 섭렵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탈식민주의 어쩌구 떠들어대는 이유가 바로 이와같은 이유에 있습니다. 한국의 '근현대사'라는 Status Quo에 멈춰버려 극변하고있는 세계 정세와 현실을 충분히 소화해내지 못한 역사관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디 한국의 신학계가 탈식민주의라는 듣기좋은 용어로 잘 포장된 우리의 "피해의식"을 이제는 정말 극복할 수 있게되길 바랍니다. 지금의 한국 신학계는 한국의 교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낼 자격이 없습니다.
2008.08.09 14:21:52
제가 이제는 글을 그만 올리는게 좋겠죠. 어차피 정치얘기는 끝도없이 이어질 것 같네요.
답글을 올리다 보니 저 혼자 네게티브한 논쟁을 일으키고 있군요.
죄송합니다. 꾸벅!
주님과 함께하시는 대구성서아카데미 되시길 바라며,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답글을 올리다 보니 저 혼자 네게티브한 논쟁을 일으키고 있군요.
죄송합니다. 꾸벅!
주님과 함께하시는 대구성서아카데미 되시길 바라며,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2008.08.09 14:25:46
이런, 제가 이야기 나눌 대상을 잘못 선택한 것 같네요. 외람되지만, 여전히 요ㅅㅔㅍ님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스스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지 잘 모르는 상태로 글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직업병을 이길 수 없어, 한 가지만 여쭙고 물러가지요. 요ㅅㅔㅍ님은 [부디 한국의 신학계가 탈식민주의라는 듣기좋은 용어로 잘 포장된 우리의 "피해의식"을 이제는 정말 극복할 수 있게되길 바랍니다. 지금의 한국 신학계는 한국의 교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낼 자격이 없습니다.] 라고 쓰실 수 있는, 어떤 "자격"을 본인이 갖추고 계신다고 믿으시나요?
직업병을 이길 수 없어, 한 가지만 여쭙고 물러가지요. 요ㅅㅔㅍ님은 [부디 한국의 신학계가 탈식민주의라는 듣기좋은 용어로 잘 포장된 우리의 "피해의식"을 이제는 정말 극복할 수 있게되길 바랍니다. 지금의 한국 신학계는 한국의 교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낼 자격이 없습니다.] 라고 쓰실 수 있는, 어떤 "자격"을 본인이 갖추고 계신다고 믿으시나요?
2008.08.23 00:10:36
저는 솔직히 요셒 님의 글이 하나도 이해가 안됩니다... 논점이 도대체 뭔지도 모르겠구요... 탈식민주의라는 말이 돌돌돌 맴도는데... $%#@&!... 이해력이 떨어지는지...
2008.08.23 00:36:23
당구로 말하면 글에 너무 심하게 "히네루" 를 넣으시는 것 같기도 하구요...
저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깜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적극 반대했구요... 사람들은 이명박 후보가 그냥 말을 잘 못할 뿐이지 실무는 잘할 거라고 했지만, 방송 토론에 나와서 정견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자기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을 하고 있는 듯 하더군요... 듣고 있는 내가 민망하고 불안할 정도로... 그냥 장돌뱅이처럼 이래 저래 퉁 치면서 돈 벌 줄만 아는 사람으로 보이지, 철학 같은 것은 없어 보이더라구요... 국정을 제대로 이해는 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더라구요...
민심이 천심(?)이라 압도적인 표차이로 당선이 되더군요... 저는 실망스러웠지만, 어찌되었든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나라가 흔들 흔들거릴까 생각했습니다.. 교장 하나 바뀐다고 학교가 완전히 바뀌지 않는 것처럼... 만약에라도 정치를 제대로 하고 뭔가 후보 시절에는 보여주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면... 까짓 거 지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쇠고기 협상을 그냥 단순한 거래 수준으로 오판하는 모습, 일본의 과거를 마치 자기가 용서해줄 수 있는 문제인양 이야기 하는 모습, 그런 것 하나 하나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별 못하는 느낌에다가, 항상 떳떳하지 못한데 그냥 우기다가 다시 말 바꾸는 모습들... 그냥 천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요즘엔 신 독재, 신 공안 신공(神功)까지...
거기다가 환율 함부로 건드렸다가 지금은 겉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정말 이 정도면 나라 제대로 말아먹겠구나 겁이 덜컥 나기 시작합니다...
정말 올게 왔구나... 우리 국민들 제대로 임자 만났구나... 개구리들이 뽀대나는 황새를 왕으로 세웠더니, 황새가 개구리들을 잡아먹는다더니 우리 국민들이 그 짝 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 어른들은 오매불망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점점 끓어오르는 물에 뜨거운 줄도 모르고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저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깜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적극 반대했구요... 사람들은 이명박 후보가 그냥 말을 잘 못할 뿐이지 실무는 잘할 거라고 했지만, 방송 토론에 나와서 정견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자기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을 하고 있는 듯 하더군요... 듣고 있는 내가 민망하고 불안할 정도로... 그냥 장돌뱅이처럼 이래 저래 퉁 치면서 돈 벌 줄만 아는 사람으로 보이지, 철학 같은 것은 없어 보이더라구요... 국정을 제대로 이해는 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더라구요...
민심이 천심(?)이라 압도적인 표차이로 당선이 되더군요... 저는 실망스러웠지만, 어찌되었든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나라가 흔들 흔들거릴까 생각했습니다.. 교장 하나 바뀐다고 학교가 완전히 바뀌지 않는 것처럼... 만약에라도 정치를 제대로 하고 뭔가 후보 시절에는 보여주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면... 까짓 거 지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쇠고기 협상을 그냥 단순한 거래 수준으로 오판하는 모습, 일본의 과거를 마치 자기가 용서해줄 수 있는 문제인양 이야기 하는 모습, 그런 것 하나 하나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별 못하는 느낌에다가, 항상 떳떳하지 못한데 그냥 우기다가 다시 말 바꾸는 모습들... 그냥 천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요즘엔 신 독재, 신 공안 신공(神功)까지...
거기다가 환율 함부로 건드렸다가 지금은 겉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정말 이 정도면 나라 제대로 말아먹겠구나 겁이 덜컥 나기 시작합니다...
정말 올게 왔구나... 우리 국민들 제대로 임자 만났구나... 개구리들이 뽀대나는 황새를 왕으로 세웠더니, 황새가 개구리들을 잡아먹는다더니 우리 국민들이 그 짝 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 어른들은 오매불망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점점 끓어오르는 물에 뜨거운 줄도 모르고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2008.08.23 09:58:36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정작 자신들은 초법적으로 치외법권적으로 놀면서, 그 반대편 사람들에게는 혹독하다못해 너무도 가혹한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사실입니다... 룰이 없다는 거죠...
2008.08.23 11:50:11
꼭 느낌이 어떤 사람이 은행 이자가 너무 형편없이 작다고, 그냥 원금 수준밖에는 보장이 안되는 불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자율 20-30 프로라는 말에 현혹되어서 리스크가 굉장히 큰 검증되지 않은 투자신탁에 돈을 맡기고는 불안해져 있는 상태로 보입니다... 근데 정작 돈 넣은 사람은 투자신탁 회사의 현란한 구찌(?)에 최면이 걸려서 아무 개념도, 불안도 안 느끼고 있는데, 옆에 있는 사람들이 "저사람 어떻게 될까... 안되었다" 면서 불안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까요?
히네루, 구찌... 일본말을 많이 써서 죄송합니다... 구찌는 "말빨" 입니다...
히네루, 구찌... 일본말을 많이 써서 죄송합니다... 구찌는 "말빨" 입니다...
2008.09.18 11:55:29
좀 늦게 이 글을 읽고나서...
문득 진정성에 대해 누군가 한 말이 생각나는군요...
제 생각엔 이명박 정부의 진정성은 어느 애국지사의 진정성 만큼이나 진정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다는 진정한 마음이 있다는거죠..
근데, 그 철학이나 실천방법이 엄청난 잘못된 결과를 드러낼 수 있다는게 큰 문제입니다.
물론, 철학이나 실천방법이 전무하다는 것도 포함입니다.
요셒님이신가요..마찬가지인 것 같군요..신실하게 산다거나, 이것저것 말하는 것에는 어떠한 의도가 없는 순수한 진정성이 엿보이지만, 그것이 최종적인 어떤 결말과 연결되는지는 제가 보기에 무척 많이 생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신 것 같은데. . 그 시간을 줄여서 생각하는 시간을 늘리심이 어떨지..(제 말을 무리없이 들으셨으면 합니다. 저도 좀 화가 났거든요..)
문득 진정성에 대해 누군가 한 말이 생각나는군요...
제 생각엔 이명박 정부의 진정성은 어느 애국지사의 진정성 만큼이나 진정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다는 진정한 마음이 있다는거죠..
근데, 그 철학이나 실천방법이 엄청난 잘못된 결과를 드러낼 수 있다는게 큰 문제입니다.
물론, 철학이나 실천방법이 전무하다는 것도 포함입니다.
요셒님이신가요..마찬가지인 것 같군요..신실하게 산다거나, 이것저것 말하는 것에는 어떠한 의도가 없는 순수한 진정성이 엿보이지만, 그것이 최종적인 어떤 결말과 연결되는지는 제가 보기에 무척 많이 생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신 것 같은데. . 그 시간을 줄여서 생각하는 시간을 늘리심이 어떨지..(제 말을 무리없이 들으셨으면 합니다. 저도 좀 화가 났거든요..)
2008.11.07 15:01:58
오랜만에 다시 들어옵니다. 부디 제 글이 정 목사님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비방성 글로 읽여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왕따 당할만 하니까 왕따를 당하고 있겠지요. 저도 몇 달만에 다시 읽어보니 두서가 없고, 마치 제가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듯한 느낌을 주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시장-경제 체제와 자본주의 사상이 "신자유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여겨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장-경제 체제나 자본주의의 "근본 정신"은 분명히 성서적 세계관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아직 검증이 덜 되었고, 문법으로 치자면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국식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체제와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 체제, 어느쪽이 더 효과적인 경제제도인지 곧 결판이 나겠죠.
하여튼, 오늘 제가 "세상읽기" 게시판에 다시 방문한 이유는 '이명박 정권과 한국교회'라는 지극히 소극적인 테두리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더이상 발전적인 성서적 시대비평을 할 수 없지 않을까 싶어서 새로운 논제를 제시하고자 鐵面皮한 글을 다시 올립니다. 다름 아닌 동성연애 문제입니다.
요즘 시끌벅적한 미국의 바락 후세인 오바마 후보의 당선 소식은 참으로 감동적인 한 인물의 인간승리 그 자체일 뿐 아니라, 미국의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저에게는 매우 희망적인 뉴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조금 불안한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오바마 당선자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낙태자율화 운동, 동성연애자 결혼 합법화 운동 등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보적인 일에 앞장 서던 인물입니다.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세라 패일린 부통령 후보가 매우 근본주의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기 시작하면서 오바마로써는 기회를 잡은듯 예전과는 말을 슬쩍 바꿔서 하기 시자했습니다. 그러나 동성연애자들의 결혼 합법화 문제는 변함 없이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동성연애자들의 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오바마 당선자의 소식과 동시에 민주당의 강한 지지 기반 중에 하나인 켈리포니아 주에서는 동성연애자들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안(Proposition 8)을 통과 시켰습니다. 아마도 미국의 경제공황 문제, 이라크 전쟁-철군 문제, 그리고 오바마 당선자의 대통령 임기 초반을 뒤흔들 다음의 문제는 동성결혼 합법화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주가 최초로 동성결혼을 금지시키게 된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다비안 가족분들의 의견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참고로, 물론 저는 매케인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하여튼, 오늘 제가 "세상읽기" 게시판에 다시 방문한 이유는 '이명박 정권과 한국교회'라는 지극히 소극적인 테두리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더이상 발전적인 성서적 시대비평을 할 수 없지 않을까 싶어서 새로운 논제를 제시하고자 鐵面皮한 글을 다시 올립니다. 다름 아닌 동성연애 문제입니다.
요즘 시끌벅적한 미국의 바락 후세인 오바마 후보의 당선 소식은 참으로 감동적인 한 인물의 인간승리 그 자체일 뿐 아니라, 미국의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저에게는 매우 희망적인 뉴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조금 불안한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오바마 당선자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낙태자율화 운동, 동성연애자 결혼 합법화 운동 등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보적인 일에 앞장 서던 인물입니다.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세라 패일린 부통령 후보가 매우 근본주의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기 시작하면서 오바마로써는 기회를 잡은듯 예전과는 말을 슬쩍 바꿔서 하기 시자했습니다. 그러나 동성연애자들의 결혼 합법화 문제는 변함 없이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동성연애자들의 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오바마 당선자의 소식과 동시에 민주당의 강한 지지 기반 중에 하나인 켈리포니아 주에서는 동성연애자들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안(Proposition 8)을 통과 시켰습니다. 아마도 미국의 경제공황 문제, 이라크 전쟁-철군 문제, 그리고 오바마 당선자의 대통령 임기 초반을 뒤흔들 다음의 문제는 동성결혼 합법화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주가 최초로 동성결혼을 금지시키게 된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다비안 가족분들의 의견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참고로, 물론 저는 매케인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2008.11.10 17:42:29
저는 한 가지 궁금한게... 공화당 민주당 공화당 민주당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정권을 이어나가는데, 그러면 대통령이 바뀔 때 마다 동성연애자 결혼, 낙태 자율화 문제가 법이 계속 바뀐단 말인가요?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다... 아니면 버락 오바마도 공약은 그렇게 내세우지만 결국 실행은 못하니까 이런 식으로 법안은 바뀌지 않은 채로 말만 하고 마는 것인지...
낙태 자율화에 대해서는 저도 별로 긍정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동성연애자 결혼 합법화는 왜 그렇게 반대해야 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저같은 사람이 신규로 동성연애자가 되는 것도 아니구요... 어차피 그들만의 리그가 될텐데... 그냥 그렇게 인정해주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요?
그리고 보통 복음주의자들이라고 이야기하는 보수 기독인들이 낙태에 대해서는 "생명 경시"라면서 그렇게 반대하면서도,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적극 옹호하는 태도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이거 딜레마 아닌가요?
낙태 자율화에 대해서는 저도 별로 긍정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동성연애자 결혼 합법화는 왜 그렇게 반대해야 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저같은 사람이 신규로 동성연애자가 되는 것도 아니구요... 어차피 그들만의 리그가 될텐데... 그냥 그렇게 인정해주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요?
그리고 보통 복음주의자들이라고 이야기하는 보수 기독인들이 낙태에 대해서는 "생명 경시"라면서 그렇게 반대하면서도,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적극 옹호하는 태도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이거 딜레마 아닌가요?
2008.11.13 10:18:12
제가 완전히 왕따는 아닌가 봅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당의 전체적인 당론적 차원에서 동성연애와 낙태문제에 대한 의견이 갈라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민주당에 진보적인 성향을 띈 정치인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있지만, 제가 잘 아는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민주당 당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은 단순히 " 이라크 전쟁 반대"라는 차원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지, 동성결혼이나 낙태자율화 등에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동성결혼이나 낙태자율화에 관련된 법안은 통과됐다가도 다시 번복되고, 금지됐다가도 다시 허용되고 그러면서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켈리포니아주에서의 경우가 좋은 예라고 생각됩니다. 켈리포니아주에서는 2000년도 부터 올해 5월까지 엎치락 뒤치락하다, 이번 대선에 맞춰서 마침내 "Proposition8 - Only marriage between a man and a woman is valid or recognized in California."라는 주민발의안을 국민투표로 실시함으로써 동성결혼 금지법을 주정부 차원에서 통과시켰습니다.
동성결혼 합법화 문제는 단순히 동성연애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헌법적인 차원에서 동성연애를 옹호하는 법안을 만든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동성연애를 인정하는 것이고 이에 따른 여파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부류는 초중고 학교를 다니고 있는 어린학생들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성교육이라는 부분이 변해야하고, 따라서 자라는 아이들의 세계관이 통째로 흔들리게 되어있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성연애자들이 절대로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수적으로 보자면 사회 전체에 비해 적은 무리라고 할 수 있지만, 많은 동성연애자 또는 동성연애, 동성결혼 옹호자들은 어느정도의 지휘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 선생님, 대학교 교수님, 회사 중간부, 목회자 등 결코 사회적 약자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문제가 심각한 현실에 놓여있는 것 같습니다.
버락 오바마 당선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이 있지만, 말을 아끼겠습니다. 다만, 그의 말은 여러번 다양한 표현법으로 바뀌었고, 일관적으로 동성결혼을 마치 5,60년대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사이의 결혼을 금지하는 시대의 문제와 마찬가지라는 뉘앙스였다는 사실만을 말하겠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복음주의 보수 기독교인들이 사형제도를 찬성한다는 얘기는 처음 듣습니다. 혹시 자료를 제공해주실 수 있습니까? 확인해보고, 사실이라면 참고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사형제도를 반대합니다. 무기징역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당의 전체적인 당론적 차원에서 동성연애와 낙태문제에 대한 의견이 갈라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민주당에 진보적인 성향을 띈 정치인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있지만, 제가 잘 아는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민주당 당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은 단순히 " 이라크 전쟁 반대"라는 차원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지, 동성결혼이나 낙태자율화 등에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동성결혼이나 낙태자율화에 관련된 법안은 통과됐다가도 다시 번복되고, 금지됐다가도 다시 허용되고 그러면서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켈리포니아주에서의 경우가 좋은 예라고 생각됩니다. 켈리포니아주에서는 2000년도 부터 올해 5월까지 엎치락 뒤치락하다, 이번 대선에 맞춰서 마침내 "Proposition8 - Only marriage between a man and a woman is valid or recognized in California."라는 주민발의안을 국민투표로 실시함으로써 동성결혼 금지법을 주정부 차원에서 통과시켰습니다.
동성결혼 합법화 문제는 단순히 동성연애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헌법적인 차원에서 동성연애를 옹호하는 법안을 만든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동성연애를 인정하는 것이고 이에 따른 여파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부류는 초중고 학교를 다니고 있는 어린학생들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성교육이라는 부분이 변해야하고, 따라서 자라는 아이들의 세계관이 통째로 흔들리게 되어있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성연애자들이 절대로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수적으로 보자면 사회 전체에 비해 적은 무리라고 할 수 있지만, 많은 동성연애자 또는 동성연애, 동성결혼 옹호자들은 어느정도의 지휘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 선생님, 대학교 교수님, 회사 중간부, 목회자 등 결코 사회적 약자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문제가 심각한 현실에 놓여있는 것 같습니다.
버락 오바마 당선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이 있지만, 말을 아끼겠습니다. 다만, 그의 말은 여러번 다양한 표현법으로 바뀌었고, 일관적으로 동성결혼을 마치 5,60년대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사이의 결혼을 금지하는 시대의 문제와 마찬가지라는 뉘앙스였다는 사실만을 말하겠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복음주의 보수 기독교인들이 사형제도를 찬성한다는 얘기는 처음 듣습니다. 혹시 자료를 제공해주실 수 있습니까? 확인해보고, 사실이라면 참고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사형제도를 반대합니다. 무기징역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2008.11.14 14:07:13
아... 미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이 사형제를 찬성한다고 도매급으로 이야기한 것은 잘못한 것 같네요... 신념들이 다 같지는 않을테니까요... 전에 제가 한 번 들은 일이 있어서요... 보수 기독교 전반적인 분위기는 사형제에 대해서는 옹호하는 입장이면서도, 낙태나 안락사 같은 경우엔 그렇게 반대한다고... 자료를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동성애는 참 뜨거운 감자네요... 저도 어떻게 이야기를 못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실제적으로 동성애자를 접해본 일도 없고, 이야기를 해본들 그냥 원론적인 이야기만 될테니까요... 실체는 없는...
동성애자가 영원히 저주받아야할 존재가 아닌, 인권이라는 것으로 존중받아야 할 한 소중한 인간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존중받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완벽한 이치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적으로도 태어나면서부터 정상인들과는 다른 출생을 하는 아기들이 있구요, 정신적으로도 자신들의 선택과는 관계없는 그런 경향성을 타고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생각해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성애는 참 뜨거운 감자네요... 저도 어떻게 이야기를 못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실제적으로 동성애자를 접해본 일도 없고, 이야기를 해본들 그냥 원론적인 이야기만 될테니까요... 실체는 없는...
동성애자가 영원히 저주받아야할 존재가 아닌, 인권이라는 것으로 존중받아야 할 한 소중한 인간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존중받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완벽한 이치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적으로도 태어나면서부터 정상인들과는 다른 출생을 하는 아기들이 있구요, 정신적으로도 자신들의 선택과는 관계없는 그런 경향성을 타고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생각해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2008.11.14 19:23:54
네. 동감입니다. 동성연애자들 역시 인격을 지닌 인격체이고, 마땅히 존중받아야할 존엄한 인간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감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씩 시애틀 브로드웨이에서 마주치는 남성형 게이와 여성형 게이가 뜨겁게 입맞춤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심한 혐오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저와 동일한 권리가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마땅히 존중받아야한다는 사실은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동성연애라는 것이 단순히 생물학적 또는 유전학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정신적 또는 심리학적 현상인지 바르게 판단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동성연애에 매우 강력한 "집단적 전염성"이 있다는 이론을 말한 학자도 있습니다. 성장과정에서 습득될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즉,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성연애를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그 이론적 논리에 있어서 암담하기 때문에 그저 "것," 단순히 "그 것"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점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동성결혼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인간으로써의 권리 그 이상이라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바마 당선인이 말대로 단순히 자신의 파트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자유롭게 병문안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원하고 추진중에 있습니다. 동성결혼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법적인 논리를 틀어서 결혼, 성, 그리고 관계라는 것의 총체적 의미 전체를 변질 시키고 그 변질된 논리를 교육기관 안으로 적용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문제입니다. 미국의 동성연애자들이나 옹호자들은 사회 각계각층은 물론 특별히 교육계 안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요직에 올라와 있습니다. 만약에 법적인 제한이 없어진다면, 그 다음 단계는 교육기관에 가장 큰 영향이 끼쳐질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참으로 아이로니한 것이 바로 그 인권이라는 보호막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만, 이 인권이라는 단어는 보호막 그 이상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다면, 이 인권이라는 것 자체는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는 문제입니다.
동성연애, 동성결혼이 지극히 정상적인 또 하나의 Life Style 또는 문화권일 뿐이라고 가르치는 공립학교 선생님에게 동성연애와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들이 학생들을 맡겨야 한다면 어떤식으로 인권을 보장해줘야 하는가?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너희 선생님이 남자 선생님이니? 여자 선생님이니?" "어, 우리 선생님은 남잔데, 선생님 아들이 선생님 한테 엄마래...!?" 이런 경우, 부모님은 인권침해를 당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구의 인권이 우선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는가? 상대적인 문제죠.
이와같은 동성연애 문제에 실체가 있느냐? 주체는 과연 존재하는가? 라고 물으신다면, 물론 "예수님이시라면 뭐라고 대답해주셨을까?"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동성연애자들은 아마도 예수님 역시 동성연애자 또는 중성이셨다고 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동성연애라는 것이 단순히 생물학적 또는 유전학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정신적 또는 심리학적 현상인지 바르게 판단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동성연애에 매우 강력한 "집단적 전염성"이 있다는 이론을 말한 학자도 있습니다. 성장과정에서 습득될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즉,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성연애를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그 이론적 논리에 있어서 암담하기 때문에 그저 "것," 단순히 "그 것"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점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동성결혼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인간으로써의 권리 그 이상이라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바마 당선인이 말대로 단순히 자신의 파트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자유롭게 병문안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원하고 추진중에 있습니다. 동성결혼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법적인 논리를 틀어서 결혼, 성, 그리고 관계라는 것의 총체적 의미 전체를 변질 시키고 그 변질된 논리를 교육기관 안으로 적용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문제입니다. 미국의 동성연애자들이나 옹호자들은 사회 각계각층은 물론 특별히 교육계 안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요직에 올라와 있습니다. 만약에 법적인 제한이 없어진다면, 그 다음 단계는 교육기관에 가장 큰 영향이 끼쳐질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참으로 아이로니한 것이 바로 그 인권이라는 보호막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만, 이 인권이라는 단어는 보호막 그 이상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다면, 이 인권이라는 것 자체는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는 문제입니다.
동성연애, 동성결혼이 지극히 정상적인 또 하나의 Life Style 또는 문화권일 뿐이라고 가르치는 공립학교 선생님에게 동성연애와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들이 학생들을 맡겨야 한다면 어떤식으로 인권을 보장해줘야 하는가?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너희 선생님이 남자 선생님이니? 여자 선생님이니?" "어, 우리 선생님은 남잔데, 선생님 아들이 선생님 한테 엄마래...!?" 이런 경우, 부모님은 인권침해를 당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구의 인권이 우선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는가? 상대적인 문제죠.
이와같은 동성연애 문제에 실체가 있느냐? 주체는 과연 존재하는가? 라고 물으신다면, 물론 "예수님이시라면 뭐라고 대답해주셨을까?"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동성연애자들은 아마도 예수님 역시 동성연애자 또는 중성이셨다고 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8.12.08 20:20:29
요셒 님 의견이 참으로 소중한 생각인 것 같네요. 고등학교 교산데요, 바른 교육이 너무 힘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역사에 대한 관심보다도 역사 이야기를 통한 느낌들을 흡수하더라구요. 요즘 전교조 동료들은 오히려 반항아들을 키우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라면....쯥쯥.
요셒 님 처럼 바른소리를 할 수있는 용기있는 사람이 동료 교사로 있다면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네요.
저는 요셒 님 이야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답니다.
요셒 님 처럼 바른소리를 할 수있는 용기있는 사람이 동료 교사로 있다면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네요.
저는 요셒 님 이야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답니다.
2009.01.02 17:41:01
하나님을 마음깊이 섬기는 분들이시라면 판단기준이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사람들에게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인정받기 위한 것이어야 할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할까요.
제가 하나님을 몰랐으면 개인적인 혐오감의 유무를 떠나서 동성애자들의 인권이 중요하므로 그들의 권리를 옹호할 것을 역설했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1:27에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게 받았느니라"
라고 동성애가 잘못된 상태임을 분명히 말해줍니다.
길거리에서 숫캐 두마리가 교미를 한다면 얼마나 신기한 일일까요?
동성애 성향이 선천적이건 후천적이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원리와 거리가 먼 상태임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보아야 할 상대인것만은 분명하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주는 것을 그럴듯한 내 의의 판단기준에 빠지게 되는 유혹을 경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에게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인정받기 위한 것이어야 할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할까요.
제가 하나님을 몰랐으면 개인적인 혐오감의 유무를 떠나서 동성애자들의 인권이 중요하므로 그들의 권리를 옹호할 것을 역설했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1:27에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게 받았느니라"
라고 동성애가 잘못된 상태임을 분명히 말해줍니다.
길거리에서 숫캐 두마리가 교미를 한다면 얼마나 신기한 일일까요?
동성애 성향이 선천적이건 후천적이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원리와 거리가 먼 상태임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보아야 할 상대인것만은 분명하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주는 것을 그럴듯한 내 의의 판단기준에 빠지게 되는 유혹을 경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09.01.03 01:04:21
동성애 당사자들 빼고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도대체 몇 있겠습니까? 일반적인 순리에서 벗어나있는 아주 부자연스런 것 맞습니다. 성경이 어떻게 이야기 하느니 할 것도 없이 말입니다. 유교에서는 더 더욱 괴상망측한 일로 보겠죠...
그런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보아야할 상대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이야기는 왜 나와야 하는 건가요? 그들이 우리에게 원수질 일이라도 한 것인가요? 일단 그들을 원수처럼 생각한다는 생각의 근저에는 그들을 우리와는 다른 인간으로 취급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습니다. 그래가지고는 진정 사랑할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값싼 동정 수준이겠죠...
그들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는 또 왜 나와야 하나요? 그들이 돌 맞을만하지만 돌을 던지지 않겠다는 말은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리얼리티의 관점에서 보자는 말입니다. 그 사람들을 만났을 때 뭐 별다른 사람이겠습니까? 우리랑 똑같은 인간일 뿐이죠... 그들의 진심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내면과 만나면 그들이 무에그리 나쁜 사람들이겠습니까...
저는 만약에 동성연애자를 만난다면 그냥 아무런 편견 가질 것도 없이 그냥 그 "사람" 과 만나겠습니다...
그런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보아야할 상대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이야기는 왜 나와야 하는 건가요? 그들이 우리에게 원수질 일이라도 한 것인가요? 일단 그들을 원수처럼 생각한다는 생각의 근저에는 그들을 우리와는 다른 인간으로 취급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습니다. 그래가지고는 진정 사랑할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값싼 동정 수준이겠죠...
그들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는 또 왜 나와야 하나요? 그들이 돌 맞을만하지만 돌을 던지지 않겠다는 말은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리얼리티의 관점에서 보자는 말입니다. 그 사람들을 만났을 때 뭐 별다른 사람이겠습니까? 우리랑 똑같은 인간일 뿐이죠... 그들의 진심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내면과 만나면 그들이 무에그리 나쁜 사람들이겠습니까...
저는 만약에 동성연애자를 만난다면 그냥 아무런 편견 가질 것도 없이 그냥 그 "사람" 과 만나겠습니다...
2009.01.03 02:47:55
첫날처럼 님은 몇군데 글에서 확인했듯이 칼을 손잡이 까지 갈은것 같군요. ㅎㅎㅎ
나와 다르다고 남에게 돌을 던지지 말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삐뚤어져 보인다면 더 할 얘기가 없겠지요.
보통 자기와 의견이나 사상이 다르면 돌팔매질을 일삼는 게 우리네 현실 때문에 쓴것이에요.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동정은 싫다' 이런 대사들이 멋있어보이지요?
진심에서 나오는 동정은 값싼 것이 없습니다.
단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처받은 마음, 자존심 또는 교만이 있을 뿐이지요.
저는 많이 동정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많이 동정하고 싶어요.
제 글 핵심을 잘 못이해하신것 같은데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동성애자를 정죄하고자 하는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의 동성애에 대한 판단기준은 말씀이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나와 다르다고 남에게 돌을 던지지 말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삐뚤어져 보인다면 더 할 얘기가 없겠지요.
보통 자기와 의견이나 사상이 다르면 돌팔매질을 일삼는 게 우리네 현실 때문에 쓴것이에요.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동정은 싫다' 이런 대사들이 멋있어보이지요?
진심에서 나오는 동정은 값싼 것이 없습니다.
단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처받은 마음, 자존심 또는 교만이 있을 뿐이지요.
저는 많이 동정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많이 동정하고 싶어요.
제 글 핵심을 잘 못이해하신것 같은데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동성애자를 정죄하고자 하는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의 동성애에 대한 판단기준은 말씀이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2009.01.03 09:53:36
저는 저를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으니 "칼을 손잡이까지 갈았다" 고 님께서 하신 말씀 거울삼아 제 자신을 돌아보아야겠네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사회적 소수자들에대한 태도의 문제였습니다...
바리새인들 중에는 그 당시에 지신들이 율법에 따라서 "죄인" 취급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동정심" 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은 도대체 이 "죄인" 들을 죄인 취급했는지 부터가 의문이 생길 정도로 그들에게 첨부터 벽 자체가 없었고 스스럼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사회적 소수자들에대한 태도의 문제였습니다...
바리새인들 중에는 그 당시에 지신들이 율법에 따라서 "죄인" 취급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동정심" 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은 도대체 이 "죄인" 들을 죄인 취급했는지 부터가 의문이 생길 정도로 그들에게 첨부터 벽 자체가 없었고 스스럼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인격을 모독하는 표현은 삼가해주세요.
정론직필의 길을 가자는 뜻이랍니다.
좋은 한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