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39)

조회 수 436 추천 수 0 2019.10.21 20:40:56

51-5 장로와 젊은이들에게

1.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5.젊은 자들아 이와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이제 베드로전서 마지막 장이다. 장로와 젊은이에게 주는 권면이다. 우선 1절에 베드로전서를 작성한 사람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세 가지 특징이 거론되었다. 1) 그는 장로였다. 베드로 사도의 이름을 빌려도 될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은 사람이다. 굳이 오늘날의 직책으로 바꾼다면 목회 전반을 책임지는 목사에 해당한다. 2)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증인이라고 했다. 그가 예수의 고난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아니라 지금 기독교 신앙으로 고난을 당하는 자다. 고난은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한다. 교회 지도자라고 한다면 고난의 증인이 되는 걸 각오해야 하지 않을는지. 3) 영광에 참여할 자는 순교 당할 자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순교자는 특별한 명예를 얻는다. 말이 순교지,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침묵>

월간지 <기독교 사상>에 지난 2년 동안 엔도 슈사큐와 건너는 강이라는 제목의 글이 연재되었다. 글쓴이는 일본 난진대학교 김승철 교수다. 20172월호에 최종회 밟힘과 밝힘의 세계라는 글이 실렸다. 여기에 영화 사일런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일런스는 엔도 슈사쿠(1923-1996)<침묵>을 원자료로 사용해서 만들어진 영화다. 17세기 일본에 선교사로 온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소식이 스페인 가톨릭 본청에 알려진다.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 두 명의 제자 신부가 이를 확인하려 일본에 와 숨어서 신앙생활을 유지하던 신자들을 만난다. 순교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그 끔찍한 상황 앞에서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는다. “(후미에를) 밟아도 좋다.” 후미에는 17세기 일본의 에도막부 시대에 기독교인을 색출하기 위해 동판이나 목제판에 새긴 그리스도나 마리아상이다. 감독 스콜세지는 <침묵> 독일어 역에 기고한 서문에서 엔도의 작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붙였다고 한다. 6.25를 배경으로 하는 김은국의 소설 <순교자>도 이런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신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비적이라는 것. 그분은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맡기고 계시다는 것. 그리고 그분은 침묵하고 계실 때조차 모든 것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계시다는 것. <침묵>은 이러한 사실들을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 몸으로 알게 된 어느 남자의 이야기다. (기독교사상, 173).

 

기독교 역사에서 순교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오늘날 우리가 직접 순교를 당하지는 않겠지만 기독교인이라고 한다면 순교 영성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단초를 우리는 스데반의 순교 이야기(7)에서 발견한다. 스데반은 마지막 순간에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스데반은 보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지금 돌에 맞아 죽는 그 광경이 현실(reality)이지만 스데반에는 예수가 현실이었다. 기독교인은 순교자만이 아니라 모두가 사람들이 못 보는 환상을 현실로 보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게 바로 순교의 영성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는 연금술사를 만나고 싶은 열망으로 순례에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큰 스승을 만난다. 스승은 그에게 말한다. 납을 금으로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금으로 보는 능력이 연금술이라는 것이다. 세상 만물은 각각의 시간에 따라서 납이 되기도 하고 나무가 되기도 한다. 시간에 따라서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본질에서는 같은 것이라는 관점이다. 이걸 느끼는 사람은 세상을 새롭게 본다. 밥 한 그릇에서 천사를 만날 수도 있다. 벼가 자라고 익는 과정에 참여한 물, 탄소, 바람, 햇살, 안개, 박테리아 등등, 그런 힘들이 한 그릇의 밥에 숨어있다. 이 사실을 뚫어보는 사람은 5만 원 호텔 뷔페만이 아니라 5천 원에 먹을 수 있는 시장통 백반 정식으로 생명의 충만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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