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42)

조회 수 226 추천 수 0 2019.10.29 21:03:31

56-11: 영원한 영광과 잠깐의 고난

6.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시리라 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이제 베드로 사도는 6절에서 겸손을 한 번 더 언급한다. “때가 되면은 종말이나 예수의 재림을 가리킨다. 그들을 높이시리라.”라는 표현은 4절에 나온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라는 표현과 같다.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이런 표현이 우리에게는 모호하기도 하고, 추상적으로 들린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경험하는 생명과 질적으로 다른 생명으로 변화하는 것이기에 쉽게 이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우리에게 약속으로 주어진 것이라서 희망의 영역에 속한다. 예수도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이런 기독교의 약속을 공허하다고 비판한다. 우리는 이 약속을 아무런 근거없이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예수의 공생애에서 일어난 구원 사건에 근거하여 이 약속을 신뢰하고 희망한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신앙은 일종의 모험이다. 예수라는 역사적 실존 인물의 말과 행동과 운명을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근거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서 잘 멀고 잘사는 것으로 충분하지 미래는 무슨 미래냐 하고 주장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삶은 한순간으로 끝난다. 거기서 삶의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 오늘의 삶이 의미 충만해지기 위해서라고 이 약속과 희망은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생명을 약속으로 믿는 사람은 7절이 가리키듯이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긴다.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기독교인은 없겠지만 종종 그 사실에서 멀어진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평생 믿음 생활을 해왔어도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염려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나이가 들면 잠이 줄어든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 어떤 의학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염려가 더 늘어난다는 사실을 그 이유의 하나다. 이렇게 되는 건 삶을 거꾸로 살았다는 증거다. 나이를 먹으면서 염려가 줄어야 정상이다. 삶을 수행의 차원에서 대하지 않으면 나이가 들수록 삶의 수준이 더 떨어진다. 자신의 본성에만 맡겨두면 아무리 삶의 조건이 좋아도 염려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을 수밖에 없다. 여기 바둑 동호인이 두 사람 있다고 하자. 한 사람은 바둑을 평생 승부에만 집착해서 두었다. 다른 한 사람은 바둑의 길을 평생 따라가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두 사람의 바둑 수준은 더 벌어진다. 기독교인은 기독교 신앙을 도구적으로 대하지 말고 순례의 길로 대해야 한다. 즉 신앙의 세계 안으로 시나브로 깊이 들어가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래서 성경 기자들은 늘 깨어 있으라거나 하나님을 닮아가라거나 구원을 이루어가라고 권면한다. 본문 8절과 9절도 그것을 말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그리고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대적 마귀) 대적하라.” 한마디로 정신을 차리라는 말이다. 현대인들은 돈을 버는 데만 정신을 차린다. 이런 표현이 진부하게 들리긴 하겠지만,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시대 정신이 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돈이 없으면 생존이 위태롭고 돈이 많으면 괜찮은 인생이라고 인정받는다. 이게 현실이다. 성경은 돈에 예민하게 사는 것을 깨어 있는 삶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삶이야말로 잠들어 있는 것이다. 무엇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인지는 우리가 다 안다. 가장 원초적인 기독교 신앙으로 말한다면 예수의 재림을, 또는 예수의 재림으로 인해서 벌어진 생명 심판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다. 시편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는 태도를 가리킨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130:5,6). 이런 말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하지만 실제로 그런 태도로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나님의 임재, 예수의 재림은 관념적이지만 인생살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주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인생살이에서 해결해야 한 현안의 긴박성을 본문은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면 삼킬 자를 찾나니 라고 표현했다. 마귀는 흉한 검은 물체가 아니다. 당시 기독교를 박해한 로마 황제와 그 권세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오히려 매혹적으로 보이는 시대정신이다. 아주 구체적으로 말해서, 우리의 모든 인생 설계가 완성되었다고 하자. , , 자녀, 명예 등등을 골고루 갖췄다. 그것에만 몰두하게 하는 힘이 마귀다. 왜냐하면, 우리가 몰두하여 완성한 성과로 우리가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몰두할수록 우리의 영혼은 궁핍해진다. 이게 인간의 근원적인 딜레마다. 성공적인 인생을 외면할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 우리 삶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문은 9절에서 다시 그를 대적하라.”라고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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