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9일

대제사장 관저에서(23)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14:65)


유대의 산헤드린 공의회가 예수님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는 사실은 근거가 있을까요? 복음서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니 당연한 거 아니냐 하고 생각할 분들이 있겠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기자가 이 산헤드린 공의회의 현장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예수에 대한 산헤드린의 심문은 심야에 이뤄졌고, 그 심문과 회의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어떤 이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겠지요. 따라서 그 현장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를 찾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당시에 산헤드린이 사형 선고의 권한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합니다. 당시 유대는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 총독이 사회 치안의 최종 권한을 독점하고 있던 상태에서 산헤드린이 사형을 선고할 수는 없었다고 봐야겠지요. 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로마 총독이 산헤드린에게 일정한 권한을 위임했다고 말입니다. 로마 총독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형식적으로는 총독만이 사형을 선고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산헤드린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하는 겁니다. 신학자들도 이런 문제에서 일치된 입장을 보이지 못합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복음서의 보도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게 최선이겠지요.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이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기 전에 이미 산헤드린에 의해서 사형 선고를 받았고, 극심한 모욕을 당했다고 보도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운명에 대한 전반적인 기조에서 본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죽음에는 로마보다는 산헤드린의 책임이 더 크고 본질적입니다. 이 말은 다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형식적으로는 정치적인 사형 선고를 당하셨지만 실제로는 종교적인 사형 선고를 당하셨다고 말입니다.

List of Articles
No. Subject Date Views
1786 9월16일 베드로의 울음(7) [4] [1] Sep 15, 2009 3872
1785 9월15일 베드로의 울음(6) [3] Sep 14, 2009 3005
1784 9월14일 베드로의 울음(5) Sep 14, 2009 1832
1783 9월13일 베드로의 울음(4) Sep 12, 2009 1920
1782 9월12일 베드로의 울음(3) Sep 11, 2009 2475
1781 9월11일 베드로의 울음(2) Sep 10, 2009 2180
1780 9월10일 베드로의 울음(1) [3] Sep 09, 2009 2547
» 9월9일 대제사장 관저에서(23) Sep 08, 2009 1797
1778 9월8일 대제사장 관저에서(22) [1] Sep 07, 2009 1891
1777 9월7일 대제사장 관저에서(21) [2] Sep 06, 2009 2223
1776 9월6일 대제사장 관저에서(20) [1] Sep 05, 2009 1668
1775 9월5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9) Sep 04, 2009 1956
1774 9월4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8) [2] Sep 03, 2009 1947
1773 9월3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7) [3] Sep 02, 2009 2132
1772 9월2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6) [4] Sep 01, 2009 2602
1771 9월1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5) Aug 31, 2009 1752
1770 8월31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4) Aug 30, 2009 1859
1769 8월30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3) [1] Aug 29, 2009 1786
1768 8월29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2) [3] Aug 28, 2009 2194
1767 8월28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1) [2] Aug 27, 2009 1847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