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대에게 시 한편을 읽어주겠소. 백무산 시인의 시집 <길은 광야의 것이다>(창작과비평사, 창비시선 182)의 제호로 채택된 ‘길은 광야의 것이다’라는 제목의 시요. 내가 시를 해설할 능력이 없으니 그대가 알아서 새기시구려. 그가 왜 길을 광야라고 했는지를 한번 쯤 생각해보는 것도 좋소. 광야는 구약 신앙의 중심 개념이기도 하오만 백무산이 그것을 구약에서 따온 것은 전혀 아니오.

 

 

얼마를 헤쳐왔나 지나온

길들은 멀고 아득하다

그러나 저 아스라한 모든 길들은 무심하고

나는 한 자리에서 움직였던 것 같지가 않다

 

가야 할 길은 얼마나 새로우며

남은 길은 또 얼마나 설레게 할 건가

하지만 길은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었고

동시에 나락으로 내몰았다

나에게 확신을 주었고 또 혼란의 늪으로 내던졌다

 

길을 안다고 나는 감히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되돌아 서서

길의 끝이 아니라 시작된 곳을 찾았을 때

길이 아니라 길을 내려 길을 보았을 때

길은 저 거친 대지의 것이었다

나는 대지에서 달아나지 않았으므로

모든 것은 희생되었다 그러자,

한순간에 펼쳐진 바다와 같은 아, 하늘에 맞닿아

일렁이는 끝없는 광야의 그늘을 나는 보았다

 

우리들 삶은 그곳에서 더 이상 측량되지 않는다

우리들 꿈은 더 이상 산술이 아니다

길은 어디에나 있고 또 없다

 

길은 대지 위에 있으나

길은 자주 대지를 단순화한다

때로는 대지에서 자란 우리를

대지에서 추방하기도 한다

우리가 헤쳐온 길이 우릴 버리기도 한다

길은 자주 대지의 평등을

욕망의 평등으로 변질시키고

대지의 선한 의지를

권력의 사욕으로 타락시키다

 

삶이란 오고 가는 것일까

인생이란 흐르는 길 위의 흔적일까

저기 출렁이는 물결을 보아라

허공에 맞닿아 끝없이 일렁이는 물결을 보아라

 

길이란 길은 광야 위에 있다

길 위에 머물지도 말고 길 밖에 서지도 말라

길이란 길은 광야의 것이다

삶이란 흐르는 길 위의 흔적이 아니다

일렁이어라 허공 가운데

끝없이 일렁이어라 다시 저 광야의

끝자락에서 푸른 파도처럼 일어서는

길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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